오랫동안 조씨 집안과 연을 맺은 시골 의사 ‘정영'은 조씨 집안이 몰락하면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선택하게 된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원나라(1271∼1368) 때 희곡 작가 기군상의『조씨고아』 를 각색했다. 『조씨고아』 는 중국 희곡 가운데에서도 가장 먼저 서양에 소개되어 지금까지도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2015년 초연했으며, 2018년 세 번째로 무대에 올랐다.
조씨 집안의 살아남은 아이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문인 조순을 질투한 무인 도안고가 조순의 집안을 몰락할 계략을 짜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무인 도안고로 인해 몰락한 조씨 집안에서 어렵게 살아남은 조씨고아가 복수를 하며 극을 마무리한다. ‘복수’의 시작을 부르는 인물은 문인 조순과 무인 도안고다. 조순을 시기하던 도안고가 진나라의 모든 권력을 홀로 차지하려고 조순의 집안을 몰락할 계획을 짠다. 도안고의 계획이 왕에게 받아들여졌고, 조씨 집안은 모두 죽임을 당한다. 조삭의 아내인 공주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마지막 남은 ‘조씨’다. 조삭은 죽기 전 아이를 조씨고아라 부르고, 꼭 살려서 조씨 집안의 복수를 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조씨고아가 태어나자 공주는 주치의인 정영에게 아기를 맡기고 자신은 죽음을 택한다. 궁에서 아기를 탈출시킨 정영은 조씨고아를 지키기 위해 그의 자식을 희생하기로 한다. 정영의 결심에 그의 아들이 죽고, 아들을 잃은 슬픔에 부인도 자살한다. 정영은 조씨고아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그가 복수해야 할 대상을 알려주고, 긴 세월 기다린 복수를 지켜본다. 너무나 긴 세월을 기다렸으며, 사랑하는 많은 사람을 희생한 ‘복수’ 끝에 정영은 복잡한 마음이다.
복수 끝에 남은 정영의 허탈감
극을 이끄는 큰 흐름은 ‘복수’지만, 그것을 향한 여정에는 인간의 욕심, 의리, 신의, 희생과 권력에 관한 질문, 복수 끝에 찾아온 허탈감 등이 흐른다. 이러한 감정이 선명하고 순수하게 드러난다. 이는 무대 위 인물이 현대의 우리와 완전히 다른 사고로 움직이는 것을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무대는 별다른 소품 없이 깔끔하다. 시선이 분산되지 않고, 배우의 연기에 집중할 수 있다. 무대에서 필요한 소품은 대부분 천장에 매달려 있다. 천장에 둔 소품은 무대에서 필요할 때마다 내려왔다가 사라진다. 마치 예술 작품을 걸어놓은 듯해 천장에 매달려 있을 때도 무대와 잘 어우러진다.
묵자(Blind Woman)의 출연으로 극적인 요소를 더한 점도 매력적이다. 거의 모든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 묵자는 까만 의상을 입고 극을 해설하는가 하면, 무대 위에서 살아있던 인물의 죽음을 알리는 사자(使者) 역할도 한다.
왕은 조씨고아에게 도안고의 집안을 멸할 것을 약속한다. 또 다른 복수를 낳을 게 뻔한 이야기의 마지막에 두 집안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정영의 처연한 얼굴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10월 1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연한다.
이수연
재미가 없는 사람이 재미를 찾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