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을 판단하는 바로미터, 식기건조대
매력적이라 생각되는 싱크대는 고급빌라나 주상복합에나 있다는 이탈리아나 독일산 고가의 디자이너 제품이나, 한샘 키친바흐 시스템 같은 게 아니다.
글ㆍ사진 김교석(칼럼니스트)
2018.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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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셜록은 상대의 옷차림을 슬쩍 보고 성향과 살아온 역사, 매력 등의 인물 됨됨이 파악하곤 했다. 물론, 그는 19세기말과 20세기 초 영국 런던에 살았다. 현대적인 의복이 기틀을 갖춘 시기긴 하지만 당시에도 귀족 계급은 엄연히 존재했고, 남성복이 지금처럼 캐주얼해지고 군복의 영향을 많이 받기 전이었다. 따라서 옷차림과 아이템으로 어느 정도 출신과 직업군과 재력과 매력을 파악하기가 지금보단 용이했을 거다. 그런데 뭐, 아이폰을 갖고 다니는 셜록도 이런 데 능한 걸 보면 시대를 초월한 능력인 것 같기도 하다.

 

셜록과 달리 발렌시아가나 구찌 혹은 메종 키즈네나 파타고니아처럼 어쩔 수 없이 알아볼 수밖에 없는 경우를 제외하곤 옷차림만으로 타인의 성향과 매력을 파악하는 눈썰미는 내게 없다. 다만, 누군가의 집에 초대되면 싱크대와 그 주변을 흘깃 보면서 그 공간에 대한 나름의 정리를 끝낸다. 내게 있어 싱크대는 셜록의 옷차림만큼이나 누군가를 파악하는 중요한 단서다.

 

사는 모습이 결국엔 다 비슷비슷하다는 명제는 씽크대 위에서 만큼은 통하지 않는다. 싱크대와 그 주변의 정리정돈 상태를 눈여겨보면, 집 안의 나머지 공간을 구지 보지 않더라도 이 집에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자신의 공간과 일상에 애정이 있는지, 하루하루를 그저 고되게 보내고 있는지 아니면 가꾸는 재미를 느끼는지, 몇 명이서 생활하는지, 미적 감각과 성실함, 섬세함은 어떤지 대략 엿볼 수 있다. 더 나아가 경제적 수준과 살아온 환경까지도 가늠할 수 있다.

 

오랜 사용감이 느껴지는 씽크대라도, 그 위에 깨끗이 빨아 반듯이 널어놓은 행주가 기분 좋게 만드는 집이 있는 반면, 어떤 신축 오피스텔에서는 싱크대에 달아놓은 아코디언 문을 열자말자 설거지 산사태를 겪은 경험도 있다. 정상과 찬장의 거리는 불과 10센티미터 미만이었다. 컵라면 용기 안에서 나무젓가락이 뗏목이 되어 떠다니는 설거지 더미나, 먹다 남은 부대찌개를 냄비 째 개수대에 던져 넣고 그 위에 밥공기와 반찬 그릇이 이리저리 쌓여 있는 참혹한 참상도 목격했다.

 

매력적이라 생각되는 싱크대는 고급빌라나 주상복합에나 있다는 이탈리아나 독일산 고가의 디자이너 제품이나, 한샘 키친바흐 시스템 같은 게 아니다. 백조(baekjo)든 콜러((Kohler)든 일단 개수대는 언제나 깨끗하게 비워져 있어야 하고, 식기건조대에 설거지 거리가 잘 정리되어 올라가 있어야 한다. 이런 성실함과 일상을 가꾸는 노력을 미덕으로 치는 이유는, 세상이 그래도 살만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특출 난 재능과 매력, 세상을 뚫어보는 혜안이 있는 자만큼 많이 먹지 못하더라도,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간 사람들에게 오늘의 하루가 내일과 미래를 살아갈 담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의 발로다.

 

그래서, 나의 경우 결코 틈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즉각적인 설거지는 물론, 허연 물방울 자국이나 물때의 물결은 덕지덕지 붙은 고단한 삶의 흔적처럼 느껴져서 개수대의 물기도 때때로 제거한다. 음식물 찌꺼기는 당연히 매번 정리한다. 쌓이면 미루는 것이 살림의 섭리라는 것을 잊지 말자. 음식이 식을지언정 요리하다 나온 설거지부터 먼저하고 밥을 먹는 습관이 들어 있다 보니, 손님을 초대할 땐 종종 항의를 듣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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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가 습관의 영역이라면, 씽크대는 설비의 영역이다. 원활한 설거지 생활과 주방의 품위를 원한다면 사실 어느 정도 물리적인 투자가 필수불가결하다. 허나 씽크대는 쉽게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가구가 아니다. 그 대신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효용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적절한 식기건조대의 구비다. 싱크대는 마음대로 바꿀 수 없어도 식기건조대는 마음먹기 나름이다. 아무리 설거지를 열심히 하고 마른 행주로 닦아놓는다고 해도, 구조적으로나 미적으로 불완전한 싸구려 식기 건조대 위에 얹으면 정갈한 미는 결여되고 살림의 굴레에 함몰되게 된다. 아무리 인테리어를 멋지게 해도 살림이 들어오는 순간 황이 되는 게 이런 경우다.

 

우린 종종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자주 사용하는 필수품일수록 이상하게 하대하며 돈을 아끼는 경향이 있다. 매일매일 사용하는 데다 주방의 표정을 간단한 터치로 드라마틱하게 바꿔주는 식기 건조대만큼은 결코 가벼이 여기고 실수를 하면 안 된다. 부지런히 설거지를 해도 그 성실함이 공간의 분위기로 승화되지 않는다. 주방에 있어 식기 건조대의 존재감은 다 된 화장에 재를 뿌릴지, 화룡정점을 찍을지를 결정하는 립스틱과 같은 거다.

 

좋은 식기 건조대란 물때에 강해서 변색이 적고, 녹이 잘 슬지 않으며 공간 활용도가 높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물 빠짐 기능, 즉 건조 기능이 탁월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위생적이며 사용감이 더해질수록 중후해지는 스탠 소재를 추전한다. 아예 플라스틱이나 실리콘 제품도 캐주얼한 인테리어엔 적합하다. 다만 스탠과 플라스틱이 섞이면 조잡해 보인다.

 

추천 브랜드는 라 바제(La Base)다. 세련되고 날씬한 첫인상과 달리 올 스텐이다보니 대형 제품의 경우 2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육중한 무게를 자랑한다. 고급 스탠 냄비에 주로 쓰는 18-8 스테인리스강을 주재료로 만들어서 녹과 물 자국에 매우 강하며, 그릇 꽂이를 따로 설계하지 않은 대신 굉장히 촘촘한 살이 특징이다. 접시 꽂이가 없어 불편한 경우도 있지만 그 덕분에 더 깔끔하게 공기류나 조리도구들도 정리할 수 있다. 하이라이트는 모퉁이를 우아하게 살짝 접고 물기가 떨어질 수 있게 경사를 준 받침대다. 코팅까지 완벽해 물기를 바로바로 떨군다.

 

참고로,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비슷한 디자인의 무인양품 제품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단, 물 자국 얼룩이 훨씬 더 잘 생긴다. 그 외에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우리나라 주부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심플휴먼의 제품도 고려할 수 있다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헤비하다고 생각한다. 원룸의 경우 조셉조셉(Joseph Joseph)의 익스텐드 식기건조대가, 식구가 많다면 프리미엄랙스(PremiumRacks)의 프로페셔널 디쉬 랙도 좋은 선택이다. 특히 이 두 모델은 리뷰닷컴(reviewed.com)에서 꼽은 2018년 올해의 식기건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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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기건조대 #성실함 #셜록 #설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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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석(칼럼니스트)

푸른숲 출판사의 벤치워머. 어쩌다가 『아무튼, 계속』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