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작가 특집] 전석순 “감정에도 계급이 있는 사회를 그렸다”
소설은 가장 섬세하고 촘촘하게 약자를 위로하는 장르라고 생각하거든요. 머릿속으로 1인칭이 되어서 등장인물을 경험하고, 떨어져서 보는 게 아니라 머릿속으로 그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읽어야 소설의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글ㆍ사진 정의정
2018.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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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정이 ‘감정 측정기’로 분석되는 시대, 불안과 긴장, 두려움, 불쾌 등의 감정은 숫자로 표기된다. 결혼하는 사람들끼리 감정 진단서를 교환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감정 분석 결과는 개인 정보가 되어 암암리에 직장과 보험 회사에 공유된다. 표준 감정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보호 관찰 대상자가 되어 제대로 된 직장도, 제대로 된 집도 구할 수 없다. 표준 감정으로 돌아가기 위한 감정 치료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나’는 감정 분석 결과를 요구하지 않는 업체에서 밤마다 빌라를 철거하는 일을 맡는다.


미메시스 단편 소설 시리즈 테이크아웃은 젊은 소설가 20명을 선정해 이들의 단편 소설과 일러스트레이터 20명의 작품을 함께 넣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네 번째 『밤이 아홉이라도』 에서는 소설가 전석순과 일러스트레이터 훗한나가 섬세하게 밤결을 축조해 ‘감정마저 팔아넘겨야’ 하는 시대를 이야기한다.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를 지나다니며 켜켜이 쌓았던 밤을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작지만 묵직하게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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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적으로 만든 이야기


이제까지 낸 책보다 작은 판형으로 나왔어요.

 

‘테이크아웃’ 이름에 걸맞은 판형인 것 같아요. 시리즈 중에서는 제 책이 제일 두꺼운데, 정말 작은 작품은 외투에도 들어가겠더라고요. 책을 보려면 속된 말로 각 잡고 보게 되잖아요. 들고 다니기도 쉽고 가방 안에 들어가 있으면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아요. 외형의 가벼움에 초점이 맞춰지면 내용도 가볍게 가게 될 때가 많은데, 무거운 내용이든 외부에서 돌아다니면서 읽을 수 있게 만든 시리즈라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소설이 접근하는 방식은 가벼워야 하는 게 맞지만, 내용도 다 가벼워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훗한나 일러스트레이터와 협업한 결과물이에요.


삽화가 들어가는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소설에 삽화가 들어가면 오히려 소설 내용을 제한해서 읽는 사람이 마음속에 떠올리는 재미를 많이 반감시킨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걱정했는데, 처음 보고 너무 예뻐서 소리 질렀어요. (웃음) 제가 생각하던 소설의 이미지와 거의 일치했어요. 밤의 질감은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렵기도 하고 한계도 있는데, 미술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더라고요. 이야기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게 아니라 튕겨내서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하고, 일러스트레이터와의 인터뷰가 같이 들어가서 더 좋았어요. 그림을 그린 사람이 그림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쓴 사람이 또 이야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작품과 함께 세 가지 의견이 다양하게 표출되면서 입체적으로 이야기를 만든다는 게 이 책이 가진 매력인 것 같아요.


밤을 생각하면 대개 어두운 색을 생각하는데, 밝은 노란색이 들어가요. 밤을 더 부각하는 느낌이었어요.


새벽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운교동 골목을 돌아다녔어요. 오히려 시커먼 밤보다 중간중간 가로등이 있는 거리가 더 무섭더라고요. 그냥 까맣다면 눈이 암순응을 하면서 돌아다닐 텐데, 가로등이 있으면 가로등 사이는 훨씬 어두워 보이고 그 사이가 너무 무서웠어요. 그림에서도 노란색을 넣어서 소설 속 생각한 이미지가 나왔어요.


이전에 발표했던 단편 「고공행진」을 새로 썼는데요.


우연히 인터넷에서 표정을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어요. 조만간 표정뿐만 아니라 혈액이나 심박수 등 모든 신체 조건을 통틀어서 사람의 감정을 분석하고 건강검진처럼 감정검진도 받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정도 중요한 스펙의 하나가 되는 거죠. 그때부터 감정노동자를 썼던 「고공행진」과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처음 감정노동을 조사하고 공부하면서는 마치 허공을 걷는 걸음 같았어요. 분명히 걷고 있지만 땅이 아니라 허공을 걷는 게 감정노동자들의 감정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처음 제목이 ‘고공행진’이었어요.


새로 쓴 가제는 ‘밤결’이었더라고요.


새로 고쳐 쓰면서 생각해보니 감정노동자들은 감정이 뒤섞인 상태 같았어요. 모든 색이 합쳐지면 검은색이 되는 것처럼, 낮 이미지가 응축되면 밤이라는 이미지가 되는 거죠. 감정노동자의 감정도 어둡고 우울하고 칙칙한 것 같지만, 사실 그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감정이 다 응축되어야 하는 것처럼요. 검은색은 결이 있어도 잘 안 보여요. 그래서 밤에도 분명 결이 있고 감정노동자에게도 결이 있지만, 우리는 그걸 모르거나 무시하는 것 같아 ‘밤결’이란 단어를 썼어요.

 

‘밤결’이 ‘밤이 아홉이라도’로 된 과정이 궁금해요.


글을 고치는 와중에 ‘밤이 아홉이라도’라는 말을 알게 되었는데요. 어느 순간까지는 그 일을 끝내야 한다는 말이더라고요. 밤이 아홉이라도 꼭 끝내야 하는 일, 스트레스받는 상황이 오히려 감정노동자의 스트레스를 구체적인 이미지로 그려낼 것 같았어요. 지금 감정노동자가 상처받아 보이는 것도 몇 년 전부터 스트레스가 겹치고 겹쳐서 결을 이루었다는 표현을 하고 싶었어요.


작가님도 밤형 인간에 더 가까운 편인가요?


절대 안 고쳐지더라고요. (웃음) 나이를 먹으니 건강에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면과학센터 같은 곳에서 상담을 받았었어요. 중요한 건 언제 자느냐가 아니고 안 깨고 여섯 시간 이상 자는 게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안 고쳐도 된다고 해서 안심하고 밤에 안 자고 있어요.

 

 

감정에도 계급이 있는 사회


배경이 된 춘천의 운교동은 ‘구름을 걷는 다리’라는 뜻이 있어요. “그런 이름을 붙여주는 감정이 표준이 되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감정일까요?


항상 이름의 뜻을 궁금해 하는 편이에요. 운교동은 제가 대학을 마치고 소설을 써야 할지 고민하다 내려온 동네였어요. 언덕이 많아서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했죠. 왜 하필 운교동인지 지역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이름을 붙인 공무원이 언덕이 올록볼록하니까 이름만이라도 구름을 걸어간다는 느낌으로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이 마음이 예쁜 마음이잖아요. 감정의 표준을 정할 순 없겠지만 표준이 있다면 그런 마음이 표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춘천의 모습을 즐겨 쓰시는 것 같아요.


일단 춘천이 가장 쓰기 쉽기는 해요. 삼십몇 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춘천의 모습을 다 알고 있으니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춘천을 배경으로 써요. 대학 다닐 때 말고는 항상 춘천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춘천에 있을 때는 긴장이 안 돼요. 소설에서만 긴장하고 다른 데서는 긴장하지 않아도 되니까 조금 더 편하더라고요.


『철수사용설명서』에서는 인간 사용설명서, 『거의 모든 거짓말』 에서는 거짓말 능력 자격증, 『밤이 아홉이라도』 의 감정측정기까지 인간을 구분하는 특정한 기준과 방법을 많이 쓰셨어요.


우리나라 사회에서 계급이 나누어져 있다는 걸 부정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그 계급이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돈으로만 계급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거짓말에도, 감정에도 계급이 있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재밌지만 가볍지 않은 방식으로 널리 퍼져 있는 계급을 이야기하는 게 제가 소설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요. 대개 단편에서 다루기 어렵다 보니 호흡이 긴 이야기에서 이런 소재를 많이 다뤘어요.


그래서인지 「고공행진」보다 이야기 분량이 늘어났어요.


다른 소설가도 비슷하겠지만, 작품을 쓰면 그 작품과 헤어지는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어떤 소설은 다시는 생각하지 않을 때도 있고, 어떤 소설은 발표하고 나서도 계속 생각날 때가 있거든요. 「고공행진」은 유난히 생각나는 기간이 길었어요. 테이크아웃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기존에 발표했던 단편도 괜찮다고 하셔서 고민하다가 다시 이야기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어요. 이전에 등장인물이 너무 평면적으로 등장했다면, 이제는 과거 이야기도 하면서 등장인물을 깊게 바라보는 시선을 주고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싶었어요. 감정노동자를 관리하는 사람들도 결국에는 감정노동자잖아요. 감정노동자가 싸우는 건 결국 을과 을이 싸우는 것 같더라고요. 관리자도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시스템에 속해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야기에 영감을 준 사건이 있을까요?


친구가 쇼핑몰을 하는데 어느날 아르바이트생이 못 나와서 제가 도와주게 됐어요. 그때서야 감정노동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직접 느꼈어요. 여자 후배가 전화를 받으면 상상을 초월하는 욕을 하더라고요. 제가 목소리 깔고 전화를 받으면 욕설을 하지 않고요. 어쩌면 전화를 거는 사람들도 자기 감정을 어딘가 풀어내야 해서 계속 악순환이 생기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그렇게 경험하고 나니 「고공행진」도 열심히 썼지만, 조금 더 깊이 있게 다른 방식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은 처음에 ‘그녀’라고 불렸었어요. 성(性)이 모호하게 바뀌었어요.


일단은 감정노동자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어요. 감정노동자가 힘들다는 게 아니라 어디 사는 누가 힘들다고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현이라는 인물은 남자일 수도 여자일 수도 있어요. 폭넓게 보면 여성만의 문제보다는 사람의 문제인데, 굳이 성을 바꾸었다기보다는 뭉뚱그려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 말고 이름을 붙이는 작업이 이 사람에게 좀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현과 화자를 동성애적 관계로 보는 독자들도 있었는데, 저는 그 방향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사랑도 감정의 일부고, 그 감정에서 나오는 어려움도 있을 거고요.


스펙을 갖추려 발버둥 치는 청춘, 혹은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에 맞추려고 애쓰는 주인공이 많이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민 때문일까요?


진부한 이야기지만, 소설은 약자 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은 가장 섬세하고 촘촘하게 약자를 위로하는 장르라고 생각하거든요. 머릿속으로 1인칭이 되어서 등장인물을 경험하고, 떨어져서 보는 게 아니라 머릿속으로 그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읽어야 소설의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그 방향이 약자에게 기울어지면 소설이 하는 기능이 효과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었어요. 사는 게 편안하고 재미있는 인물보다는 어렵고 상처받고 괴로운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게 돼요.


소장이 감정을 팔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에 밑줄을 쳤어요.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과정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3, 4일 동안 아무도 안 만난 적이 있어요. 택배도 문 앞에 두고 가고, 인터넷이 있으니까 사람을 안 만나도 되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게 발전일까 싶었어요. 은행 업무를 보러 갔다 할머니가 기계가 복잡하다고 은행원에게 공과금을 내달라고 부탁하는데, 은행원이 오늘까지는 해드리는데 다음 달부터는 배우셔야 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이제 그 업무를 보는 사람이 없어졌다고요.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으로 누군가는 돈을 벌지 않을까 싶어요. 은행에 가면 VVIP만 사람이 나와서 은행 업무를 봐주고 나머지는 다 기계에서 처리해야 하는 시스템이 되는 거죠. 나중에는 사람을 만나서 받는 서비스가 가치가 올라갈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나중엔 말이죠. 감정을 쓰는 일도 전부 기계가 대신할 거예요. 그러니까 감정이라도 팔 수 있을 때 열심히 파세요. 되도록 건강한 감정을.

- 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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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가리고 봐도 전석순 소설이 되었으면


채널예스에서 청춘작가 특집으로 인터뷰 (http://ch.yes24.com/Article/View/17825) 를 한 적이 있어요. 이제는 젊은 작가로 호명이 되었는데, 맞는 옷이라고 느끼시나요?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7년이 지났는데 이제는 청춘에서 젊은 작가가 되고, 20대에서 30대로 넘어오는 과정이 실감이 났어요.


작가가 되기 위한 숙련의 과정을 10년으로 잡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올해가 등단한 지 10년 째인데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마음이 가벼웠어요. 실수하고 망해도 아직 숙련하지 않은 기간이니까 괜찮다는 생각으로 썼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자유로웠던 것도 있고 말랑하게 썼던 것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밤이 아홉이라도’의 아홉은 정말 숫자 아홉이라기보다 많다는 의미거든요. 직업사전에서 작가의 숙련에 필요한 기간을 10년이라고 이야기한 건, 10년 동안 쓰면 잘 쓸 수 있다는 게 아니라 평생 숙련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소설로 마지막에 이루고 싶은 것이 있나요?


일단 꾸준히 쓰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매일 소설을 읽고 쓴다는 게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또 다른 목표는 이름을 가리고 봐도 전석순 소설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마지막에는 누가 썼는지 모른 채 읽으면 전석순 소설이라고 생각이 들만한 소설이 나와 줬으면 좋겠어요.


요새 재밌게 읽은 소설가의 작품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너무 많은데요. 누구를 집어야 할까요? 제가 최근에 만난 소설가로 할게요. 테이크아웃 시리즈 낭독회에서 『정선』 을 쓰신 최은미 작가님을 만났어요. 작가님을 만나면 그런 스타일이 아닌데 소설은 파격적으로 폭력을 아름답게 그리시더라고요. 미화한다는 뜻이 아니라 폭력을 아름답게 그려서 오히려 폭력이 나쁘다는 생각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작가예요. 다른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방식인 것 같아요.


소설가가 되지 않았더라면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어렸을 때부터 거짓말을 많이 했어요. 혼나지 않거나 뭘 얻어내려는 거짓말이 아니라 묘하게 말이 되는 거짓말을 하니까 부모님과 할머니가 걱정을 많이 했죠.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거짓말이 나쁜 게 되니까 혼자 생각하다가 소설로 갔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 관심이 많고 그 사람이 되어 보고 싶은 생각 때문에 소설을 쓰게 된 것 같은데, 안 됐으면 만화를 그리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연극배우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매번 다른 사람이 되지만 기록으로 남지 않고 끝나니까 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아요. 글이 아닌 몸짓과 목소리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문득 생각이 드네요.


최근 『소설 제주』  작업도 하셨어요. 꾸준히 쓰시는 편인 것 같아요.


아직은 부침이 없는 것 같아요. 한 편 쓰고 나면 지치고 쉬고 싶은데, 언젠가 한 번은 에너지가 너무 소모돼서 한동안은 읽지도 쓰지도 말아야겠다 하고 작업실 책을 다 치웠어요. 일주일도 채 안 됐을 때 또 뭔가 쓰고 싶은 내용이 생겼어요. 나중에 쓰자고 미뤄두는 것도 안 되더라고요. 쓰고 싶은 게 생기면 다시 에너지가 채워져요. 글이 안 써질 때가 아니라 쓰고 싶은 게 없을 때 위기인 거겠죠? 다행히 아직 계속 쓸거리가 있어요.


언젠가 써보고 싶은 작품이 있을까요? 아버님이 운영했던 세탁소에 관해 쓰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세탁소 자리가 지금은 말끔하게 사라졌고, 아버지가 줄 수 있는 소재는 다 주셔서 아버지 이야기를 먼저 쓰고 싶어요. 또 다른 하나는 비슷한 시기에 고민했던 건데, 고통 체험관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조카가 초등학교에서 늘 체험학습을 하러 가더라고요. 어느날 조카가 지쳐서 얼마나 많은 체험을 하면 어른이 될 수 있냐고 물어봐서, 나중에는 고통 체험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의사가 항암치료를 체험했다는 증명서가 있으면 환자가 신뢰하는 지표가 되고 의사의 가치는 올라가는 거죠. 고통이 공유되면 갈등이 사라질까요, 혹은 더 심해지게 될까요? 그런 소재를 고민하고 있어요.

 


 

 

밤이 아홉이라도전석순 저/훗한나 그림 | 미메시스
표준 감정에서 벗어나 당국의 감시를 받으며 근근이 삶은 이어 가는 보호 관찰 대상자인 [나]는 불안함 감정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도 가질 수 없고, 삶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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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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