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라디오스타> MC 4명 중 누가 가장 춤을 잘 출 것 같냐는 질문에 안무가 배윤정은 “윤종신”이라고 답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차태현을 제치고 발라드 가수 윤종신이 뽑힌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이미지가 좀 가볍고, 그래서 춤을 가르쳤을 때 톡톡 튀는 걸 잘 할 것 같다.” 하긴, <라디오스타>에서 윤종신이 보여주는 면모는 한없이 가볍고 잽싸다. 싱거운 말장난이나 상대의 말실수를 붙잡고 늘어지는 악착같음, 둘이 합쳐 100살에 육박하는 김구라와 애들처럼 티격태격 다투며 보여주는 콤비플레이까지.
그렇게 왁자지껄하게 수요일을 보내고 금요일에 다시 만나는 윤종신은 또 사뭇 다르다. JTBC <방구석1열>에서 매주 두 편의 영화를 보며 게스트들과 대화를 나누는 메인 MC의 롤을 수행 중인 윤종신은, 짐짓 무거운 주제들이 오가는 대화를 능란하게 조율한다. <비밀은 없다>와 <미씽: 사라진 여자>를 보며 변영주 감독과 이경미 감독과 함께 여성이 주도하는 영화가 줄어든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괴물>과 <터널>을 보며 진중권과 함께 재난에 대처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이야기한다. 수요일도 금요일도 모두 유쾌한 사람인 건 변함이 없지만, 수요일의 윤종신이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면 금요일의 윤종신은 차분하게 앉아 세상을 이야기한다.
가볍고 얄팍한 이미지와 지적이고 진중한 캐릭터를 마음대로 오가는 연예인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누구도 윤종신만큼 양 극단의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오가지는 못한다. 그건 아마 지난 20여년 간 꾸준히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며 착실히 ‘윤종신’이라는 브랜드를 성장시켜 온 경험 덕분이리라. 처절한 발라드를 부르던 가수였던 그는 시트콤과 토크쇼, 리얼 버라이어티를 겸업하는 전방위 예능인이 됐고, 서바이벌 오디션의 냉철한 심사위원을 거쳐,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하며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큐레이터, 지식인들과 영화를 이야기하며 한국사회를 논하는 MC로 뻗어 나간다. 그는 사방으로 확장한다.
흔히 윤종신을 생각하면 입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 자신의 표현처럼 조금은 앞으로 마중나와 있어서 눈에 잘 띄는 입. 빠르고 능란한 말과 절절한 발라드를 모두 소화하는 입. 하지만 어쩌면 진짜 탁월한 건 그의 눈인지도 모른다. 윤종신은 넓고 멀리 보는 시야를 지녔다. 끊임없이 지금 여기 너머를 바라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도전을 빠르게 찾아내는 시야. 매월 신곡을 발표하는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는 9년째 순항 중이고, 같은 이름의 모바일 매거진은 최근 프로젝트 100호 돌파를 기념하는 특집을 선보였다. 모두 처음엔 뭘 그런 걸 하려 하냐고 물었던 도전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결국 그 모든 착수가 윤종신이라는 브랜드를 키운 수였다. 그는 앞으로 어디로 더 확장하려는 걸까. 한국나이 50의 남자가 바라본 미래가 이렇게 궁금해 본 건, 윤종신이 처음이다.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