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우리 인간의 뇌가 가장 많이 변하는 시기는 생후 2년간입니다. 갓난아기를 보면 매달 새로운 행동을 하지요. 태어났을 때는 무기력하게 잠만 자던 녀석이 3개월이 되면 목을 가누고, 6개월이 되면 몸을 뒤집고, 9개월이 되면 기어 다니고, 12개월이 지나면 짠!하고 일어나 걷기 시작합니다. 행동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지만 사실은 뇌에서 명령을 내려야만 가능합니다. 어떤 행동이든 뇌가 뒷받침되어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뒷받침이란 필요한 뉴런끼리 연결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몸속에는 세포가 대략 몇 개나 있을까요? 놀랍게도 아직 정확히 모릅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30-40조 개라고도 하고, 100조 개가 넘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세포 하나하나가 각자 맡은 일을 열심히 해줘야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5천만이 살아도 별 일이 다 생기는데, 수십 조의 세포가 원활하게 일을 하려면 의사소통이 중요하겠지요. 멀리 떨어진 사람끼리 유선전화와 무선전화로 연락을 주고받듯, 세포들도 유선과 무선으로 신호를 주고받습니다. 유선통신을 신경, 무선통신을 호르몬이라고 합니다. 신경은 연결된 곳에만 신호를 전달하는 반면, 호르몬은 혈액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신호를 전달합니다. 신경을 이루는 세포를 신경세포, 또는 뉴런이라고 합니다.
친구 집과 우리 집이 단 한 개의 전선으로만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몸속의 유선신호 또한 수십, 수백 개의 신경세포, 즉 뉴런이 이어져 전달됩니다. 그런데 뉴런은 전화선과 다른 점이 있어요. 전화선은 한 번 설치하면 몇 년, 몇 십 년을 쓰지만 뉴런 사이의 연결은 항상 변한다는 겁니다. 이걸 신경가소성이라고 합니다. 기타를 연습한다면 처음에는 줄을 정확히 짚는 데도 애를 먹지만, 매일 연습을 거듭하면 아주 빠른 곡도 어렵지 않게 연주할 수 있습니다. 코드를 짚고 줄을 뜯는 동작을 그렇게 빨리 할 수 있는 것은 그 동작에 필요한 뉴런끼리 연결되어 하나의 신경회로가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신경회로는 연습을 거듭할수록 점점 강력해지고, 신호가 전달되는 속도도 빨라집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오솔길이었던 것이 나중에는 포장도로가 되고, 4차선, 8차선에 인터체인지까지 놓인 고속도로가 됩니다. 몸을 가누기도 힘든 빙판에서 하늘 높이 뛰어올라 몇 바퀴를 빙글빙글 돌고 안정된 자세로 착지할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연습에 의해 그 동작에 필요한 신경회로가 만들어진 후 계속 발전해왔기 때문입니다.
걷는 동작에 100개의 뉴런이 필요하다고 칩시다. 아기가 돌이 되어 걷는다는 건 그간 뇌에서 100개의 뉴런이 연결되어 신경회로가 형성되었다는 뜻입니다. 한 번 걷고 다시는 걷지 않는다면 회로는 없어집니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매일 걷는다면 뇌는 길을 넓히고 포장을 해서 신호가 더욱 잘 전달되도록 합니다. 우리처럼 아스팔트를 까는 게 아니라 긴 뉴런을 지방 성분의 특수한 절연체로 감싸는 방식을 쓰지요. 이 절연체를 수초, 수초가 뉴런을 감싸는 현상을 수초화라고 합니다. 수초화가 일어나면 신경전달속도가 약 3천배 빨라집니다. 뉴런을 따라 천천히 전달되던 신호가 수초 사이를 점프하기 때문이죠. 한두 발짝도 위태롭게 떼어 놓던 녀석이 점점 잘 걷게 되고 나중에는 천지사방을 뛰어다니고, 엉덩이를 씰룩씰룩 춤까지 추는 건 다 수초화 덕분입니다.
두 돌이 지나면 뉴런의 연결과 수초화 과정은 느려집니다. 하지만 이때도 피아노나 수영을 가르치면 그 동작을 하는 데 필요한 경로가 형성되고 수초화가 일어납니다. 뇌는 8세가 되면 대략 성인의 크기에 도달합니다. 크기가 커지면서 운동능력이 함께 발달하므로 8세 정도 되면 성인이 하는 모든 동작을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세계적인 운동선수나 연주자가 되려면 어린 나이에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근력이나 지구력 등이 받쳐줘야 하기 때문에 최대 운동능력에 도달하는 건 한참 뒤지만요.
그럼 8세가 되면 뇌 발달이 끝날까요? 그렇지 않죠. 크기가 다는 아니잖아요? 뇌는 발달을 계속합니다. 그러다 12세 전후로 사춘기가 시작되면 다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납니다. 일단 뉴런들이 빠른 속도로 자라면서 연결이 크게 늘어납니다. 동시에 ‘가지치기’가 진행됩니다. 불필요한 뉴런들이 죽어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과수원에서 가지치기를 해주면 더 크고 맛있는 열매가 열리듯, 뉴런도 이 과정을 통해 이미 익힌 기능을 더욱 빠르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새로운 기능을 익히기는 그만큼 힘이 듭니다. 가지치기를 통해 어떤 기능이 보존될지 정해지면 뇌는 수초화를 통해 그 기능을 강화시킵니다. 운동선수나 음악가가 사춘기를 겪으며 기량이 일취월장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가지치기와 마찬가지로 수초화도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수초화가 일어난 뉴런은 새로운 뉴런과 연결되거나 환경에 적응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수초화는 뇌의 모든 부분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진화적으로 오래 전에 생긴 부분부터 최근에 생긴 부분으로, 즉 뇌간 -> 변연계 -> 대뇌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대략 15-16세 경에 운동신경이, 17-19세 경에 변연계가 수초화됩니다. 전전두엽 피질의 수초화는 아주 늦어 24-25세가 되어야 비로소 끝납니다. 그래서 적어도 뇌의 차원에서는 25세까지 청소년으로 봐야 한다는 거지요. 10대 청소년은 변연계는 성숙하고, 전전두엽은 미숙한 상태입니다. 변연계는 감정의 뇌라고 했지요? 또한 보상을 추구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은 같은 일에도 감정을 강하게 느낍니다. 동시에 뇌 속의 도파민이 높은 농도를 유지합니다. 어지간한 자극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성인보다 훨씬 짜릿한 쾌감, 즉 보상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상황을 종합하여 위험을 논리적으로 판단하고 감정을 조절해야 할 전전두엽 피질은 아직 성숙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한마디로 청소년기 뇌의 가장 큰 특징은 충동은 늘어나는데 충동 조절은 잘 안 되는 겁니다. 정서는 급변하는데 통제가 안 됩니다. 길을 가다 누구와 부딪쳤는데 상대방이 욕을 해요. 수초화가 끝난 변연계는 삽시간에 반응하여 분노가 활활 타오릅니다. 이럴 때 전전두엽 피질에서 ‘상대방이 험악해 보이고, 싸우면 다칠 수 있고, 내일 시험이라 빨리 가서 공부해야 하니 꾹 참고 그냥 가자’라고 말해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겁니다. 그대로 주먹이 나가고 싸움이 벌어집니다. 성인은 높은 곳에 올라가 아래만 내려다봐도 발바닥이 간질간질한데, 청소년은 꼭 거기서 번지점프를 해야 직성이 풀리죠. 청소년기에 교통사고, 추락이나 익사, 음주운전, 무방비 상태의 즉흥적 섹스, 폭력, 자해, 심지어 자살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언제까지 이런 상태가 계속될까요? 정서조절 능력은 20대 중반이 되어야 완전히 성숙합니다. 그래서 10대는 물론 20대 초반까지도 왠지 불안하고, 짜증이 나고, 말이나 행동을 성급하게 하다 실수를 하고, 괜스레 부모님 말이 듣기 싫어 대들기도 하는 겁니다.
왜 전전두엽 피질보다 변연계가 먼저 수초화되어 이렇게 불편한 상황을 만드는 걸까요? 그 대답 역시 진화에서 찾습니다. 청소년은 일생 중 가장 빠르고, 힘이 세고, 다치더라도 회복이 빠릅니다.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이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나서거나, 사냥감을 향해 돌진해야 했을 때 나이 든 사람이나 어린이보다는 청소년이 앞장서는 것이 집단의 생존에 유리했을 겁니다. 사실 청소년기에는 충동만 늘어나는 게 아니라 인지, 사회, 정서능력이 발달하여 성인 수준에 도달합니다. 이런 능력들은 주로 같은 집단에 속한 동료들과 신호를 주고 받는 데 관여합니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청소년기가 되면 무리를 지어 큰 짐승을 사냥하러 나섰습니다. 자칫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동료들의 신호를 예민하게 읽어내면서 기회가 오면 몸을 사리지 않고 돌진하는 능력을 갖도록 진화했다는 거지요. 추측이지만 그럴듯하지요?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