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의 필요성에 대하여
무엇보다, 변명은 설명이 쉽지 않은 순간에 온다.
글ㆍ사진 박현주(번역가)
2018.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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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지난 연재를 읽다가 끝에서 의구심을 품은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에 대항하는 투쟁을 선언하면서 별안간 왜 운전하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지는 건가? 이건 너무 뜬금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두 번째 이야기는 아마도 시간과 운전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 혹은 변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설명과 변명은 그 행위 자체가 다르지는 않다. 둘 다 자신과 세계의 어떤 현상 뒤에 숨어 있는 논리와 이유를 자기 나름대로 제시하는 행동이다. 하지만 설명과 변명의 차이는 말하는 사람의 확신에 있다. 내 말이 합리적으로 이해되리라는 믿음 속에서 시작되면 설명, 내 말에 대한 의구심이 존재하리라는 불확실에서 시작하면 변명이다.

 

무엇보다, 변명은 설명이 쉽지 않은 순간에 온다. 

 

변명으로 오쿠다 히데오의  『걸』 을 가져오면 어떨까. 여기에 나오는 다섯 여자들의 이야기에 일말의 공감을 느꼈던 사람들이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도 있으리라. 『걸』 의 주인공들은 모두 30대 중반의 직장 여성이다. 「띠동갑」의 요코는 12살 어린 신입사원 신타로에게 끌리고, 그를 둘러싼 여성 사원들의 쟁탈전에 적극적으로 참전하지 못하면서도 항상 신경이 곤두서 있다. 「히로」의 세이코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흔치 않은 여성 임원이 되지만, 나이 많은 남자 부하를 다루기가 쉽지 않다. 청춘의 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힌 「걸」의 유키코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오미츠 선배가 여전히 여자아이처럼 옷을 입고 행세하는 모습에 미묘한 반감을 느낀다. 「아파트」는 회사에서 자기 나름의 페이스대로 일해온 홍보부의 유카리가 주택을 사기로 마음먹으면서 안정에 집착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는 이야기이다. 「워킹맘」의 다카코는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도 특별 대우를 거부하고 자신의 힘으로 회사 생활을 이어나가려 한다.

 

아무리 신체적 나이가 숫자적 나이에 비해 젊은 시대라고 해도 어느 시점이 되면 모두 자신의 인생을 점검한다. 일정 이상의 나이를 넘어선 사람들, 모두 각자의 고민이 있다. 그러나 그 고민의 성질은 비슷하기도 하다. 사회의 시선은 더 어렸을 때와는 달라졌고, 가만히 한 자리에 머무르는 것은 이제 퇴보가 되어버린 시점이다. 일에서도 일정 이상의 성취를 이루지 않으면 도태되고, 연애 시장에서는 언제 은퇴하나 바라보고 있다. 남자들도 고충이 있지만, 여성이 일과 사랑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내다보면 그 길에는 때 이른 저녁 안개가 깔려 있다. 

 

내가 그 시점에 느꼈던 감정도 비슷했다. 일은 지금껏 무난했지만, 승진이 없는 프리랜서의 루트, 어디서 멈춰 설지 알지 못했다. 즐거웠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즐거운 사람으로 봐주는 시절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짐작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타인과 자신의 궤도를 비교하며, 내가 큰길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 그렇다면 제대로 걷는 게 맞는지 불안해하기도 했다. 이제 다시 돌아가 새로운 길을 걷기엔 너무 늦었음을 실감했다.

 

그리하여 내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가는 방식으로 선택한 것은 문자 그대로 직접적 은유로서의 운전이었다. 멀리 가려면 나의 두 발 외에도 다른 도움이 필요하구나. 그리고 남들과 함께 가지 않고 혼자 가려면 내게도 이동의 기술이 필요하구나. 나는 이제 속도가 느려졌다, 이러다 멈출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자 불안해졌고 나는 그 안에 갇혀버렸다. 지금의 삶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버겁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시도할 수도 없고, 해도 잘 안 될 것만 같았다. 내가 스스로 내 발을 불안에 묶어놓았다는 것을 깨닫자 어디론가 좀 더 자유롭게 가고 싶었다. 그게 단지 물리적인 이동일 뿐이라도 지금은 그것이 절실했다. 섬에 있다는 고립의 감각이 떠나는 기술의 필요를 새삼 자극한 면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운전이 무척 흔한 기술인 것도 동기가 되었다. 내게는 다른 사람에게는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안정, 동반자, 기본적인 생존 기술이 부족했기에 남들이 다 가진 것을 갖고 싶었다. 물론 나는 이런 부러움이 일종의 성냥팔이 소녀의 환상이라는 것도 알았다. 추운 겨울 바깥에서 보면-실로 나는 추운 겨울에 홀로 서 있었다!-창문 너머의 가정은 따뜻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고정적인 직장이 있든 없든, 자기가 선택한 가정이 있든 없든 어떤 사람이라도 완전히 안정적이지 않고, 고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생존은 늘 어렵다. 모두 각자의 고민이 있다. 나도 그 사실을 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고독과 생존이 그만큼 공통의 문제인 만큼 내게도 많은 사람이 갖춘 기술이 하나는 필요했다. 누가 나를 데려다주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 어느 곳, 가능한 먼 곳까지 갈 수 있는 기술.

 

어떤 사람은 의심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운전을 배우려 했던 건, 이제 누군가의 옆자리에 앉아서 갈 수 있다는 전망이 약해졌기 때문이 아니냐고.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굳이 애인이나 배우자가 아니더라도, 부모님이 운전하는 차에 언제까지나 함께 타거나 친구의 옆자리에 타고 떠날 수도 있다. 그런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 운명은 그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그 당시의 나는 집에서 반(半)독립을 할 계획이었다. 부모님 가까이에 혼자 살 집을 구했다. 특별히 외롭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늘 지지해주고, 형제자매는 협조적이며, 친구들은 나를 걱정해준다. 아마 그렇게 얼마간은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제주에서 두 달간 다시 독립생활을 하며 이렇게 아무도 없이 혼자 살아야 할 시간이 언젠가는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실감한 것이다. “혼자의 삶"은 언젠가 온다. 우리의 삶에 궁극적으로 남은 길은 죽기 전까지 쭉 고독하든가, 고독하기 전에 죽든가 뿐이다. 결혼하든 않든, 아이가 있든 없든 언젠가 혼자가 된다. 그렇다면 혼자서 좀 더 잘살 수 있는 준비를 조금이라도 하는 편이 좋다. 『걸』 의 유카리는 자기의 집을 사려고 할 때 삶을 직시하게 된다. 나도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무언가, 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더 많이 갖고 싶었다. 그중의 하나가 자동차였다.

 

인생에서 무슨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양, “혼자 살려면 운전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혹은 “어른이 되려면 자기 자신의 힘만으로 어디로 가야 한다"라는 주장도 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갖추어야 할 요건에 운전을 넣어야 할 필요도 없다. 애초에 나이가 든다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 자체에 흥미가 없다. 『걸』 의 오미츠처럼 서른여덟 살이 되어도 20대에 좋아하던 옷을 계속 입을 수도 있고 여전히 ‘걸'이어도 괜찮다. 사회가 권고한 삶의 단계와는 상관없이 나도 여전히 환한 원색이나 꽃무늬 옷을 입을 수 있고, 만화와 아이돌을 좋아할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는 기분만으로도 충분히 좋다. 하지만 사람은 달라지지 않는 나를 조금은 바꾸고 싶어 한다. 성장이나 발달이 아니라도 변화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 무엇이 여전히 같은 채로 남아 있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이 같음과 다름이 한 사람의 개성을 만든다.

 

지금까지 하지 않은 어떤 일, 어떤 사람에게는 뜨개질이 될 수도, 다른 사람에게는 요리가 될 수도 있었다. 전기 배선이나 타일 깔기여도 괜찮고, 원예여도 괜찮다. 혹은 고양이 그루밍이어도 상관없다. 무언가를 만들어낼 필요도 없다. 정리와 버리기여도 되고 여행이어도 괜찮다. 남들 보기에는 비슷하게 묶이는 수많은 사람도 각자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살아나간다. 『걸』 에 나오는 여자들처럼 우리는 비슷한 고민을 하지만 각기 다른 사람들이고, 삶의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도 다르다. 나는 그 방법이 다만 운전이었던 것뿐이었다.


 

 

오쿠다 히데오 저/임희선 역 | 북스토리
당시에는 소중한 줄 몰랐던 젊음이 다 지나가버린 다음에야 우리는 그것을 찾기 위해 몸부림친다. 삼십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마음은 이십대인 여자들, 영원히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고 있는 쿨한 여자들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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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변명 #시간 #새로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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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번역가)

소설을 번역하고 에세이와 로맨스 추리 소설을 쓴다. 그리고 드라마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