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에서 사람이든 동물이든 검은색 동물을 도발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이솝 우화에서는 여우가 해낸다. 치즈덩어리를 물고 있는 나무 위 까마귀를 보자 여우는 그의 반짝이는 검정색 깃털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기분이 좋아진 까마귀는 깃털을 뽐내고, 여우가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하자 바로 부리를 벌린다. 그 바람에 떨어진 치즈를 여우가 가로챈다.
그렇다고 허영심에 들뜬 까마귀를 너무 비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까마귀의 검정색은 특별하기 때문이다. 식물과 달리 동물은 멜라닌 덕분에 진정한 검정색을 지닐 수 있다. 유멜라닌과 페오멜라닌의 두 종류가 다양한 농도로 퍼져 피부, 모피, 깃털에 론(roan, 밤색과 회색의 얼룩―옮긴이)이나 토니(tawny, 황갈색―옮긴이), 또는 가장 진한 검정색인 세이블까지 내준다. 인류도 유멜라닌과 페오멜라닌의 농도에 따라 피부색이 달라진다. 아프리카의 옛 인류는 햇빛의 해로운 자외선 파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멜라닌 농도가 높은 짙은 피부색으로 진화했다. 12만 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난 그들의 후손은 북쪽으로 이주하면서, 빛이 적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서서히 옅은 피부색으로 진화했다.
검은 동물 가운데는 갈까마귀가 가장 빼어나다. 멋있어 보일 뿐만 아니라 똑똑하다고 알려진 지 오래다. 덕분에 갈까마귀는 여러 문화권에서 자주 언급되었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신 아폴로, 켈트족의 신 루구스, 북유럽의 신 오딘은 모두 까마귀를 거느린다. 특히 오딘의 갈까마귀들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후긴(Huginn, 사고)과 뮤닌(Muninn, 기억)이라 불리는 이 갈까마귀들은 오딘의 명을 받들어 세계를 돌며 정보를 수집해 그의 전지적 존재감에 기여했다. 초기 게르만족 용사는 까마귀의 상징을 의복에 착용했으며 전투 전에 까마귀의 피를 마셨다고 한다. 이런 경향이 심해지자 서부 독일에 있는 마인츠의 대주교 보니파티우스는 자카리아 교황에게 게르만 평민이 먹는 동물인 황새, 야생마, 산토끼 중 어떤 것을 먼저 금할지 묻는 서신을 보냈다. 교황의 대답은 간결했다. 까마귀와 갈까마귀를 먼저 금지하라는 내용이었다. 자카리아는 성경의 레위기를 생각했을 것이다. ‘새 가운데 너희가 더러운 것으로 여길 것은 이런 것들이다. 이것들은 더러운 것이니 먹지 말아야 한다’는 11장 13~15절 말이다.
한편 인류를 괴롭혀온 검정색 동물도 있다. 1783년 6월 28일자의 편지에서 새뮤얼 존슨은 자신의 우울증을 검둥개에 비유했다.
홀로 일어나 아침을 먹을 때, 검둥개가 먹을 것을 기다린다. 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짖는다. 마침내 밤이 찾아오고 다시 불편함과 혼돈의 시간이 고독한 일상에 찾아온다. 어떻게 하면 검둥개를 몰아낼 수 있을까?
한 세기 뒤 존 러스킨은 정신적인 발작 증상을 ‘거대한 검은 고양이가 거울 뒤에서 뛰어올라 덤빈다’고 몸서리쳐지게 묘사했다. 우울증에 시달린 유명인에는 윈스턴 처칠도 있다. 1911년의 편지에서 그는 아내에게 친구의 우울증을 치료했다는 독일 의사에 대해 말한다. ‘내 검둥개가 돌아온다면 이 남자가 쓸모 있을지도 모르겠소. 요즘은 개가 꽤 멀어진 것 같아 다행이오. 모든 삶의 색깔이 다시 돌아오고 있소이다. 가장 밝은 색깔, 친애하는 당신의 색깔까지.’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기자, 작가. 2007년 브리스톨 대학교를 졸업하고, 옥스퍼드에서 18세기 여성 복식사와 무도회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코노미스트>에서 ‘책과 미술’ 담당 편집자로 일하며, <텔레그래프>, <쿼츠>, <뉴 스테이트먼> 등에 글을 기고했다. 2013년 <엘르 데코레이션>에서 연재했던 칼럼을 정리한 책 <컬러의 말>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