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는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이사 갈 집을 고르는 정도로만 받아들인다. ‘어느 동네로 이사 가고,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몇 평짜리에 살 수 있나’로만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사는 동네가 싫어서 여행만 가려고 한다. 어디서 살 것인가? 이 문제는 객관식이 아니다. 서술형 답을 써야 하는 문제다. 그리고 정해진 정답도 없다. 우리가 써 나가는 것이 곧 답이다. 아무도 채점을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 ‘이 공간은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가?’ 자문해 보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건축가 유현준의 책 『어디서 살 것인가』 속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인터뷰 - 유현준 건축가 편>
김하나 : 책속에 그런 이야기가 있잖아요. 천장이 높은 곳에서 아이디어가 더 많이 발현되고 창의성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다고요. 그런데 이런 콧구멍만한 스튜디오에 모셔서 너무 죄송하고요(웃음). 스튜디오에 대한 소회라고 할까요, 어떠신가요?
유현준 : 제가 지금까지 라디오 녹음을 하러 여러 군데 다녀봤는데 그 중에 최악인 것 같아요(웃음).
김하나 : 그렇죠, 문제가 있습니다(웃음). 일단 온도도 문제가 있고 천장도 아주 낮고요.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요?
유현준 : 사장님, 조금 고쳐주세요. 돈 좀 쓰셔서 에어컨도 달아주시고요.
김하나 : 아무래도 천장이 좀 높아져야 될 것 같은데(웃음).
유현준 : 네, 천장도 높아져야 되고. 폐소공포증 있는 분들은 좀 힘드실 것 같아요.
김하나 : 혹시 폐소공포증이 있지는 않으시죠?
유현준 : 있어요.
김하나 : 정말요? 지금 괜찮으신가요?
유현준 : 여기 창문이 뚫려 있어서 그나마 괜찮은 편이에요.
김하나 : 창 쪽 보고 말씀하셔도 됩니다.
김하나 : 『어디서 살 것인가』 를 읽고 가장 궁금해지는 건 이게 아닐까 싶어요. 어디에서 사시나요(웃음)?
유현준 : 아파트에 살아요(웃음).
김하나 : 아파트에 사세요(웃음)? 책에서 아파트가 많은 걸 구획해 놓았다는 것, 그리고 마당이나 사적인 정주 공간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요. 결국 아파트에서 살고 계시네요.
유현준 : 제가 그런 걸 갖고 있지 않아서 그런 이야기를 자꾸 하는 거예요(웃음).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웃음).
김하나 : 그렇다면 ‘내가 여건이 된다면, 서울에서 이런 식의 형태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주거 형태가 있다면 어떤 건가요?
유현준 : 빌딩 꼭대기 펜트하우스 같은 데에서 월세 받으면서, 옥상 정원에서 사는 게 아닐까...
김하나 : 옥상 정원에서 사신다고요(웃음)?
유현준 : 요즘 같은 세상에 정말 회장님이 아니고서는 단층짜리 마당 있는 집에 살기는 거의 불가능하고요.
김하나 : 그런 여건이 다 충족이 된다면, 한 번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곳은 어디에요?
유현준 : 저는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살고 싶어요. 남쪽으로 한강이 보이고 통과 차량이 거의 없어서 조용하고.
김하나 : 유엔빌리지 좋죠. 최근에는 약간 핫플레이스가 되어서, 차들이 굉장히 밀리던데요(웃음).
유현준 : 한 번은 광고전단을 봤는데 (유엔빌리지에) 빈집이 나온 거예요. 집 구경이나 해보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더니, 전화 받으시는 부동산 업자분이 웃으시더라고요. ‘사장님, 이런 건 그냥 안 보고 사시는 거예요’ 하시면서. 집을 보자고 하는 사람은 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아시더라고요. ‘이 동네는 땅 나오면 그냥 현금 들고 와서 사는 데예요’ 하시면서 웃으시더라고요(웃음).
김하나 : 너무 놀라운 얘기네요. 그쪽에 대사관저 같은 집들이 많죠?
유현준 : 그렇죠. 필지도 크고요. 대부분 부잣집들은 다 경사대지에 있어요. 성북동, 평창동, 한남동 다.
김하나 : 왜 그런가요?
유현준 : 경사대지면 축대를 쌓고 건물을 지어야 되잖아요. 그러면 일단 골목길에서 마당이 안 보여요. 그리고 마당이 있을 때, 앞집이 낮게 있기 때문에 전망이 좋고요. 그래서 비버리힐스도 그렇고, 항상 부잣집들은 다 경사대지에 있어요. 우리나라만 그렇지 않은 거예요. 북한산도 그렇고 남산도 그렇고 경사대지는 다 공원으로 되어 있죠. 건축 허가가 안 나와서 그런 거예요. 경사도가 일정 수준 이상 되면 사실상 허가가 안 나오거든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허가 안 나오는 빈 땅들에 공원이라고 이름만 붙여놓은 거예요. 그러니까 공원이 갈 데가 없는 거죠. 어디 앉아서 쉴 데가 없잖아요. 다 경사대지 밖에 없어서.
유현준 : 제가 아파트에 사는 거에 대한 변명을 좀 해야 되는데(웃음).
김하나 : 네, 기회를 드릴게요(웃음).
유현준 : 제가 13년 전에 서울에 와서 집을 고를 때, 주택에 살려고 하니까 너무 비싼 거예요. 그런데 저는 교외에 가서 살기는 싫거든요. 시골에서 사는 건 싫어해요. 도시에서 살아야 되는 사람이에요. 결국 도시에서 제가 갈 수 있는 데를 찾다 보니까 아파트를 고를 수밖에 없었는데요. 제가 어렸을 적에 살던 아파트로 다시 갔어요. 굉장히 낡은 아파트인데 아들하고 저하고 같은 문방구를 다니고, 같은 놀이터에서 놀고, 같은 그네를 타고, 이런 추억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그건 성공한 것 같아요. 아파트가 다시 재개발되거나 할 때 이게 없어지는 걸 아들이 아쉬워하더라고요.
김하나 : 그때 지어진 아파트라면 저층 아파트인가요?
유현준 : 아니요, 그것도 고층이었어요. 12층짜리인데 당시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그게 스탠다드였거든요. 저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이사를 갔는데요. 그 아파트에 다시 들어가서 살면서 참 재밌어요. 내가 가던 문방구의 아줌마가 예전에는 시집 온 지 얼마 안 된 새댁 같은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저보다 나이가 많은 50대 중반이고, 그 분이 저도 알고 아들도 알고 제 아내도 알아요. 그런 가족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김하나 : 책에 보면 아드님이 어렸을 때부터 놀던 놀이터, 나중에 중고등학생이 돼서 잘 안 가게 되기는 했지만, 그네에 앉아서 친구들과 이야기하기도 했던 그 공간이 없어진 것에 대해서 아쉬워하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그 이야기를 읽으니까 생각이 드는 게, 놀이터라고 하는 게 꼭 놀이만을 위한 게 아니잖아요. 쉼표에 해당하는 곳인데.
유현준 : 그렇죠. 놀이터는 딱히 특별한 기능이 없이 쓰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 중에 하나예요. 빈 공터. 어릴 적의 놀이터를 생각하면 그네 타고 시소 탄 기억보다는 모래밭에서 뭘 만들고 놀았던 기억이 많잖아요.
김하나 : 맞아요. 흙 파고 땅따먹기 하고.
유현준 : 그렇죠. 비오고 나면 웅덩이가 생기고 거기에서 놀고. 그렇게 아무런 기능이 없는 공간으로 되어 있는 것이 사실 되게 좋은 건데요. 우리나라 현대 사회는 그걸 점점 없애려고 하죠.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지 않으니까 장터로 만든다든지, 다른 기능들을 자꾸 넣으려고 해요. 그건 참 안 좋은 것 같아요.
김하나 : 학교 건축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하시잖아요. 아주 인상적이었던 게, 군대와 교도소와 학교가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는 거였어요. 저도 그런 학교를 다녔지만, 그게 되게 무섭게 느껴졌어요. 학교 대지를 스머프 마을처럼 만드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셨던 이야기도 봤는데요. 그건 비슷하게 됐나요?
유현준 : 일단 그 프로젝트는 제가 총괄지휘자(master architect)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저희 디자인 가이드라인에 맞춰서 공모전을 해야 되거든요. 공모전에 제 디자인 가이드라인에 잘 맞춘 안이 나왔었는데, 심사를 했더니 1차로 떨어졌어요. 두 번째로 제가 좋아했던 안은 두 번째로 떨어지고.
김하나 : 교수님이 좋아하시는 순서대로 떨어졌군요.
유현준 : 네, 제가 좋아하는 순서대로 다른 심사위원들은 싫어하시더라고요. 결국에는 기존의 학교와 비슷하게 큰 덩어리의 학교로 나와 있는 안이 당선됐는데요. 다행히 제가 총괄지휘자(master architect)로 사인을 해야 통과되게 되어 있어서 원래대로 약간 돌려놓기는 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제가 직접적인 건축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한계가 있죠. 당선작들도 교육부의 눈치도 많이 봐야 하거든요., 그쪽 일을 많이 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그쪽 공무원들 이야기를 안 들으면 안 되고요. 그렇다고 제 말을 무시할 수도 없으니까 중간에 진퇴양난의 어려움을 겪는 시간이 있었죠. 하여튼 회의 시간에는 거의 쌍욕이 왔다 갔다 해요.
김하나 : 정말요?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에요.
유현준 : 협박과 욕이 난무하고 거의 전쟁이에요. 안면몰수하고 그렇게 해야지 좀 바뀌거든요. 거의 미친개 흉내를 내야 ‘에이, 정말 더럽네’ 하면서도 고쳐주는 흉내라도 내잖아요. 거기에서 점잖 떨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 되거든요.
김하나 : 원래 교수님 성향은 그렇지는 않죠?
유현준 : 그렇죠. 원래 약자한테 약해지고 강자한테 강해지는 스타일이에요, 제가.
김하나 : 그런데 강자한테 강해지려고 해도 갑자기 어느 날 아침에 그렇게 되지는 않잖아요. 일을 하면서 ‘내가 이런 페르소나를 써야겠다’는 것도 느끼실 것 같아요.
유현준 : 네, 느껴요.
김하나 : 연습도 하시고?
유현준 : 네. 직원들이랑 미리 짜기도 해요. ‘내가 난리치고 나갈 테니까 네가 뒷수습을 해라’ 하고요. 제가 외국의 유명한 건축가한테 배웠어요. 리움미술관 건물 중 하나를 설계한 렘 쿨하스(Rem Koolhaas)라는 네덜란드 건축가가 있는데요. 그 사람이 쓰는 전략이에요. 자기가 의도한 대로 한국의 건축가(local architect)가 잘 안 하면 난리를 치고 그냥 나간대요. 그러면 분위기가 싸해지잖아요. 그 다음에 직원이 수습하고 나면 좋은 얼굴로 다시 오는 거죠. 저도 옛날에 어디 가서 벽지도 찢고 그랬어요(웃음).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만 제대로 된 게 나오냐고요. 미치겠어요, 진짜.
김하나 : 우리나라 국민들이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성향을 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건축을 바라볼 때도 경직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가 이야기했던 학교 건축도 한 예이고요. 답답함을 느끼실 때가 많을 것 같아요.
유현준 : 그렇죠. 엄청 답답하고. 사실은 저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그런 학교를 잊고 살았잖아요.
김하나 : 고등학교를 졸업하신 후에 유학을 가신 건가요?
유현준 : 대학을 갔죠. 그런데 대학 캠퍼스는 건물이 다 따로따로 떨어져 있고, 교양 수업 받을 때 다른 데 왔다 갔다 하고, 공강도 많잖아요. 그래서 (고등학교가) 그런 학교라는 걸 잊어버리고 있었고, (유학 후에) 한국에 와서도 학교 프로젝트를 할 일이 없었어요. 건축가들 중에 학교 건축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어요. 자기들끼리 리그가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학교 프로젝트를 하지 않고 있다가, 우연히 세종시 행복청의 요청을 받고 가서 했던 거예요. 가서 봤더니 말이 안 되는 현실이더라고요. 특히 저도 아들이 있기 때문에, 사춘기의 아들들을 보면서 ‘이 아이가 왜 이런 행동들을 할까?’하고 이해하려고 하다 보니까 아이들이 생활하는 환경상의 문제가 있다는 게 건축가로서 보이는 거죠. 왜 아이들이 게임 중독이 되고 폭력적이고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는지 생각해 보면, 사실은 교도소에 갇혀 지내는 죄수들하고 거의 비슷한 심리상태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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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