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환자를 살리고 싶다면, 간호사가 살아야 한다”
간호사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죠. 정말 많은 일을 하는데 보이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그래서 보이기 위해 노력을 하고 싶었어요. 드라마 극본 공부를 하고, 공모전 최종심까지 가면서 간절하게 원했던 건 간호사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글ㆍ사진 신연선
2018.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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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바로 저승사자와 싸우는 아이로구나.”

내 모습을 한참 동안 옆에서 지켜보단 한 할머니가 두 눈가로 흘러내린 땀을 닦아내고 있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 순간, 그동안 희망론자와 회의론자를 오가던 중심 없던 마음이 가슴 아래로 묵직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랬다. 나는 내 환자들을 지키는 사람이었다.(85쪽)

 

그렇게 “내 환자”를 지키려 고군분투하던 간호사 김현아는 2017년 7월, 21년 2개월 동안의 간호사 생활을 마치고 병원을 떠난다. 치열한 메르스와의 싸움 한 복판에서도 환자 곁을 지켰던 그다. 그런 그가 끝내 병원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가슴 속에는 “오래도록 알게 모르게 쌓여온 자괴감”(15쪽)이 가득 차 있었다. 한 달 휴식 후 3개월, 김현아는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의 초고를 완성한다. “이름을 아는 큰 출판사 여덟 군데에” 투고했고, 하루 만에 연락이 온 곳과 계약했다. 담당 편집자는 “이 원고를 보자마자 최소 다섯 군데에서는 연락을 받을 원고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니 그 마음들을 헤아리지 않을 수 없다. 3개월 그리고 하루. 이 간절함은 무엇이었을까. 김현아는 거듭 “간호사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비판한다. 친오빠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간호사의 일이니 제대로 알리는 일이 중요했다고 말한다. 안하무인 환자 보호자들에게 멱살을 잡히는 간호사, 분실된 응급 비품을 사비로 채워야 하는 간호사, 병원 주최 건강 강좌에 머릿수 채우러 가는 간호사, 휴일을 반납하며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간호사.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는 21년,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환자 곁을 지켰던 간호사 김현아의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온 울음 같은 책이었다.

 

 

뭔가 잘못됐다


먼저 투고를 했고, 하루 만에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병원을 나와서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게 저한테 1년 정도 휴식기를 주는 것이었어요. 3교대로 21년 2개월을 살아왔으니까요. 또 쉴 때 책을 쓰고 싶었고요. 누가 써보라고 한 건 아니지만 간호사에 대한 얘기를 한 번 쯤은 꼭 쓰고 싶었죠. 석 달 만에 원고를 완성했는데요. 출판사를 잘 모르니까 이름을 아는 큰 출판사 여덟 군데에 우선 투고를 했어요. 다음날 바로 쌤앤파커스에서 연락을 주셨죠. 이후로도 몇 군데 연락을 받았고요.

 

석 달 만에 원고가 완성되었다고요?


글 쓸 때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어요. 후배가 환자 보호자들에게 폭행을 당하는데 아무런 보호도 못 받는 걸 봤고요. 거기 계속 있다가는 제 자신도 잃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그렇긴 해도 21년 다닌 직장을 그만 두기까지 결정은 너무 힘들었죠. 계속 병원에 있으면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도 할 것이고, 정년까지 다닐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나중에 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병원을 나왔는데요. 그래도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있었어요. 어쨌거나 백수가 된 거잖아요.(웃음) 딱 1년만, 많지 않은 퇴직금이나마 그걸 가지고 나한테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볼 시간을 주자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래서 제일 먼저 책을 썼는데요. 운이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자존감은 떨어져 있던 한편으로 석 달 만에 원고를 써낸 에너지, 그게 어떤 것이었을까 싶어요.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했어요. 보통 삶과 죽음 사이에 선 분들을 만날 일이 많지 않잖아요. 중환자실에서는 그게 일상이거든요. 제가 만난 환자분들은 제 인생의 가치관을 세워주셨고요. 환자분들에게 삶의 방향, 가치관 같은 것을 많이 배웠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환자 얘기를 쓰면서 간호사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잖아요. 간호사 얘기를 하면 병원 얘기를 또 안 할 수가 없고요. 그래서 간호사가 병원에서 겪고 있는 불합리함에 대해서도 쓰게 된 거예요.

 

인력 부족 문제, 병원 내 취약한 위치 문제, 사회적 인식 문제 등 간호사 처우에 관한 여러 문제제기를 하고 있죠. 쓰기까지 고민도 있었을 것 같거든요.


솔직히 망설여지긴 했어요. 저도 병원에 애정이 있었고요. 떠나오긴 했지만 20년 넘게 일했던 곳이에요. 고민했죠. 게다가 선배들, 후배들도 다 그곳에 있잖아요. 그런데 글을 거의 다 써갈 때쯤 제가 다니던 병원의 간호사 처우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어요. 민망한 옷을 입고 장기자랑 한 일로는 국제적인 망신까지 당했죠. 올해 초에는 서울 아산병원에서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까지 있었잖아요.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병원에 있을 때는 몰랐던 것들이 밖에 나오니까 너무 잘 보이더라고요. 병원에 있을 때는 뭔가 불합리해도 “항상 그랬다”, “어디나 똑같다” 하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불합리하다, 고 하면서도 그냥 우리끼리 얘기하는 것으로 끝났었어요.

 

하지만 밖에 나와서 보니 더 명확해지는 부분이 있었던 거군요.


더 정확하게 보였고요. 그래서 서문이나 맺음말을 일부러 더 독하게 썼어요. 그만 둔 후에도 병원에 애정을 갖고 있었는데요. 보통 퇴사 한 달 정도면 퇴직금 등 정산이 끝나거든요. 그런데 작년 12월에 갑자기 병원에서 돈이 들어온 거예요. 병원이 그동안 주지 않았던 시간 외 수당을 노동부 감사가 들어가니까 그제야 퇴직한 간호사부터 기존 간호사들한테 준 거죠. 아무 말도 없이 말이에요. 그걸 받고 너무 배신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더 독하게 썼어요.

 

말씀만 듣는데도 충격인데요. 말도 없이 뒤늦게 돈만 보내다니요.


모든 병원이 거의 그럴 거예요. 정당한 시간 외 수당, 노동 환경에 대한 보호가 없죠. 그래도 그 전까지는 병원을 믿었어요. 책을 쓰면서도 ‘괜히 내가 다니던 병원 이미지 안 좋게 하는 건 아닐까’ 계속 걱정했거든요. 한 병원에서 20년 넘게 근무했고, 동료들도 많고,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고민을 했는데, 배신감이 컸죠. 그러다보니 서문이나 맺음말에 제가 묻어뒀던, 하고 싶었던 말이 나오게 됐어요.

 

지금은 병원에 노조가 생겼어요. 이번에 파업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작년 12월에 받았던 시간 외 수당을 투쟁기금으로 기부했어요. 어떤 용기 있는 사람이 제보하지 않고, 이런 문제가 공론화 되지 않았으면 못 받았을 돈이잖아요. 지금 노조 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은 후배들, 앞으로 들어올 간호사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거고, 저도 병원에 남아 있었다면 그런 활동을 했을 거라 생각하니까요. 희망을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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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는 직업이 아니라 사명


말씀하신 간호사의 자살이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 등으로 점차 이 문제가 사회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병원 바깥에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면, 지금 이런 장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세요? 


그런데 저는 아직도 일반인들이 간호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간호사의 인권 유린, 열악한 처우, 이런 이야기를 해도 기사에서는 몇 줄이거든요. 간호사는 정말 많은 일을 하는데 그 많은 일 중 한두 가지만 언론에 노출된 거예요. 저는 ‘열악한 처우’라고 할 때,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까지를 말하는지 보여주고 싶어요. 심지어 저희 오빠도 몰랐으니까요. “내 동생이 이런 일까지 하는 줄은 몰랐다”고 했거든요. 가족도 모르는데 누가 알까, 싶었어요. 공감대가 있어야 바뀌잖아요. 돌이켜 보면 지난 20년 동안 간호사의 일은 사람들에게 공감 받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워낙 특수한 직업이고, 그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직업이기 때문이겠죠. 상대적으로 의사라는 직업은 많이 보게 돼요. 언론으로, 드라마로 봐요. 그런 미디어에서 이득을 의사가 봤다면, 피해는 간호사가 본 거죠. 간호사들끼리 그래요. 의학 드라마 안 본다고요.

 

얼마 전 <닷페이스>에서 간호사 네 분이 인터뷰한 영상을 봤어요. 제일 먼저 얘기한 것이 바로 의학 드라마 속 간호사의 모습이었어요. 황당하다고요.


드라마 속 간호사들은 수동적이고, 환자 앞에서 어쩔 줄 몰라서 우왕좌왕 해요. 그건 정말 말도 안 돼요. 유니폼도 그렇게 붙는 것을 입지 않아요. 환자를 살리려면 뛰어 다녀야 하는데 어떻게 그런 옷을 입겠어요. 장신구도 전혀 못하죠. 일하는 데 방해 되니까요. 항상 손을 씻고 환자를 다뤄야 하는데 반지 같은 거 못 끼워요. 그렇게 철저히 환자를 위해서 사는 게 간호사인데 미디어에서 다루는 모습은 너무 달라요. 심지어 할로윈 같은 때는 간호사를 성적으로 그리잖아요. 간호사는 직업이 아니라 사명이라는 말이 진짜 맞거든요. 사명을 느끼려면 자존감이 있어야 해요. 내 일에 자부심이 있어야죠. 현재 병원 환경은 간호사에게 자부심을 주지 않아요. 어떤 환자들은 간호사를 폭행하기도 하고요.

 

간호사에 대한 왜곡된 시선, 오해가 여전히 존재하죠.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고는 해도 말이에요.


간호사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죠. 정말 많은 일을 하는데 보이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그래서 보이기 위해 노력을 하고 싶었어요. 드라마 극본 공부를 하고, 공모전 최종심까지 가면서 간절하게 원했던 건 간호사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죠. 내 환자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환자를 생사의 갈림길에서 삶으로 당겨 왔을 때 기뻐하고, 어쩔 수 없이 죽음에 이르렀을 때는 정말 최선을 다해 인간적인 예우를 하는, 그런 아름다운 직업을 왜 잘 모를까 생각했거든요. 그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드라마를 2년 넘게 공부했죠.

 

책이 드라마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그렇다면 단순히 드라마로도 만들어지는 기쁨 정도가 아니었겠어요.


제작사에서 대본을 제가 직접 써주길 원하셨지만 처음엔 망설였어요. 대본을 손에서 놓은 지도 오래 됐고, 전문 작가보다 잘 쓸 자신도 없어서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까 제가 써야겠더라고요. 아무리 취재를 하고, 인터뷰를 오랜 시간 한다고 해도 저만큼은 간호사의 일을 모르잖아요. 진짜 현실은 모를 거예요. 책 내용을 각색해서 드라마로 쓰겠죠. 그런데 그게 정말 내가 오래전부터 원하던 드라마로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 되겠다, 내가 쓴 거니까 끝까지 마무리 해야지, 라고 생각했고요. 한편으로는 그래서 걱정이 돼요. 많이 울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그냥 사실 그대로, 있는 대로 쓸 거예요.

 

인상적인 것은 ‘내 환자’라는 표현이에요. 책임감의 표현일 텐데요. 왜 그냥 ‘환자’가 아니라 ‘내 환자’인가요?


저희는 항상 “내 환자”, “네 환자”라고 해요. 나한테 맡겨진 환자는 어떻게든 내가 지켜야 한다는 거죠. 저한테는 당연해요. 삶으로 끌어와야 하지만 만약 놓쳤다 하더라도 끝까지 인간적인 예우를 갖춰야 할, 내 환자인 거죠. 간호사의 일은 돈이 안 돼요. 의사들은 찢어진 곳을 꿰매고, 치료하는 게 다 돈이 되지만 환자의 몸을 닦아주고, 환자의 의안을 갈아 끼워주는 간호사의 일은 당연히 돈이 안 되죠. 그렇지만 저는 그건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간호사는 절대 이런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될 존재들이에요. 정말 환자를 살리고 싶다면, 간호사가 살아야 해요. 제가 죽겠는데 어떻게 환자를 살릴 수 있겠어요.

 

양치는 물론 얼굴을 씻기고 머리를 감기며 기관 절개 부위가 감염되지 않도록 소독하는 일 외에 때로는 위생이 불량한 환자의 손발을 따뜻한 물에 불려 두 손으로 박박 때를 밀 때도 있었다. 요로감염을 막기 위한 회음부 간호도 주로 밤에 이루어졌다. 게다가 다른 근무 때와 마찬가지로 매 시간마다 투약을 하고 가래를 뽑아내고 환자의 증상에 따라 수시로 나오는 추가 처방을 확인하고(중략)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고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게 만드는 곳이 중환자실이었다. (188쪽)

 

저는 ‘백의의 천사’라는 말이 너무 싫어요. 숭고하고, 희생적인, 봉사하는 존재라는 프레임으로 간호사를 보면요, 희생만 요구하게 돼요. 현실을 얘기하는데 그 입을 틀어막는 거죠. 저희도 똑같은 사람이에요. 실수도 할 수 있고요. 고통도 느끼고, 좌절도 할 수 있어요. 저는 후배들한테도 얘기해요. 이제는 보이라고요. 그래서 지금의 노조 활동을 희망적으로 보는 거예요. 간호사가 살아야죠. 제가 책을 쓴 것도 그 일환이에요. 이런 것들이 하나씩 쌓이면 바뀌겠죠. 그런 희망을 갖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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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많은 간호사가 필요하다


2장은 메르스 당시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담고 있어요. 영화 같은 반전이 일어나는 대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놀라게 되더라고요. 글의 힘을 체감하셨을 것 같습니다. 당시의 이야기를 부탁드려요.

 

제가 사명이라는 걸 가장 크게 느낀 게 메르스 때예요. 당시 휴대전화에 썼던 일기는 오직 저 자신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새벽에 써내려간 것이었고요. 오직 저만 보는 글이었죠. 당시는 일도 힘들었지만 사람들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갇혀 있는데도 수시로 화를 내고, 욕을 하고, 무시했어요.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도 많았고요. 방호복도 힘들었지만 마음이 더 힘들었죠. 그러다가 글이 신문 1면에 나갔고요. 그때 글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구나, 깨달았어요. 의료진을 욕하고, 손가락질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응원을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응원을 해주시니까 정말 믿지 못할 힘이 생기고요. 실은 앞으로도 어떤 질병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거든요. 책에 메르스 이야기를 자세하게 넣은 이유 중 하나도 그거예요. 또 어떤 질병이 와서 이런 상황이 되어도 그 안에 의료진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알았으면 했어요.

 

응원과 지지만으로 완전히 달라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죠.


최전방에 서 있는 의료진에게 힘을 실어줘야 해요. 메르스 때도 간호사가 제일 많았거든요. 자기 환자 지키려고 자기를 희생하면서 곁을 지켰는데 지금 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또 다른 메르스가 왔을 때 자부심을 갖지 못한 간호사가 어떻게 사명감을 갖고 환자를 지킬 것인가, 생각해요. 너무 큰 문제예요. 병원의 반은 간호사거든요. 치료를 의사가 하기 때문에 의사가 부각되지만 환자의 생명을 간호사가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그 사실에 공감해주신다면 많이 달라질 거라 생각해요.

 

선생님께 2015년 한 해는 어떻게 기억될까요. 메르스와의 전쟁에서 얻은 것은 무엇인지 묻고 싶어요.

바뀐 건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들 인식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왔어요. 메르스 당시에 2주는 문이 잠긴 채로 완전히 격리 됐고, 이후 1주는 자체 격리를 또 했어요. 그런데 딱 한 달 만에 중환자실 앞에서 싸움이 났어요. 쫓아가 봤더니 종교 단체에서 오셔서 입원실에서 예배를 하시겠다는 거예요. 어떤 분은 갓난아이를 안고 오셔서 면회를 하겠다, 하고요. 아무리 안 된다고 해도 듣지를 않아요. 어머니가 이 아이를 좋아하시니 보면 힘을 더 내실 거다, 이런 말을 하는 거죠. 계속 말리면 “너희가 뭔데 면회를 막느냐!”고 해요. 인식은 여전하다고 봐요.

 

밤 근무 때 급히 한 환자의 기관 절개술을 하는데 당황한 주치의 곁에서 노련하게 조치하던 선배 간호사가 있었잖아요. 이런 장면을 보면서 간호사의 역할과 전문성에 대한 인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환자의 목에서 마치 바람이 새는 문풍지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환자의 가슴은 전혀 올라가지 않았고 산소포화도가 마침내 한 자리로 떨어졌다. 하지만 주치의는 뭐가 문제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중략) 갑자기 소독 장갑을 낀 손가락 하나가 쑥 들어오더니 공기를 뿜어내고 있는 목의 절개된 기관지 안으로 쏙 들어갔다. 사이즈도 딱 맞았다. 선배 간호사의 손가락이었다. 바람 새는 문풍지 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77쪽)

 

경력 많은 간호사들이 그런 일을 해요. 하지만 병원은 돈이죠. 경력 많은 간호사가 그만 두면 환영해요. 머릿수만 채우면 된다 생각하는 거예요. 신규 간호사도 면허는 있으니까요. 하지만 간호사의 일은 단순하지 않고, 경험이 필요한 직업이에요. 경력 간호사 한 명이 신규 간호사 두세 명 역할을 하거든요. 특히 메르스 때도 느꼈지만 통솔하는 간호사가 있어야 해요. 정확한 판단으로 정확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간호사 말이에요. 저는 말씀하신 그때도 환자가 저러다 죽겠구나,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선배가 아무렇지도 않게 손가락을 집어넣었죠. 의사에게도 노련한 간호사가 파트너로 곁에 있으면 서로에게도 좋고, 환자에게도 지대한 역할을 하는 거예요.

 

결국 근본 원인을 따지자면 간호사를 이익 창출의 도구로만 생각한다는 것이겠네요.


사용은 하되 보호는 해주지 않죠. 그게 너무 화가 나요. 인건비를 줄이려고 간호사에게 잡역부 일까지 시키거든요. 침대 청소도 하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병원의 살림꾼이 간호사고요. 가장 많은 인원수를 차지하는 것도 간호사예요. 하지만 간호사는 환자를 간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춤을 추고, 병원 홍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에요.

 

메르스 당시에도 선생님의 외부 활동으로 병원이 유명해지자 병원 측에서 승진을 제안했는데요. 선생님은 거절하고 간호사 처우 개선을 요구했어요. 하지만 끝내 외면당했고요.


저는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승진은 필요 없었어요. 오히려 수간호사가 되면 힘들어질 것 같았죠. 병원 입장이 되어야 하거든요. 시스템이 그래요. 장기자랑 같은 것도 그렇죠. 기사를 꼼꼼히 찾아봤는데요. 병원 측 인사가 간호사에게 옷 벗고 추라고 한 적 없다고, 자기들끼리 경쟁하다보니 그렇게 된 거라고 했더라고요. 그 말은 맞아요. 대놓고 옷 벗으라고 얘기한 적 없죠. 하지만 그 말은 맞으면서 틀려요. 다섯 개 병원에서 다섯 팀 장기자랑을 하면 늘 춤추는 간호사 팀이 대상을 받았거든요. 그러다보니 경쟁이 붙고, 더 노출을 하고,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됐는데 아무도 제지를 안 했죠. 보고 좋아하긴 했어요. 그런 분위기를 만든 것 자체가 책임이잖아요. 하지 말라고 얘기를 했었어야죠. 알면서도 묵과한 것은 인정이라고 생각해요.

 

당연해요. 방관한 것은 인정한 거죠.


간호사는 전문가인데 전문 집단으로 인정을 못 받아요. 대학에서도 간호사는 전문직이라고 배웠는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고요. 20년 동안 변하지 않았죠. 솔직히 저도 제가 병원에 기여한 부분을 조금이라도 인정해주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요. 바보 같았던 거죠. 당시에 제가 칼럼도 쓰고, 외부활동을 많이 하면서 병원 이미지도 많이 좋아졌고, 환자도 많이 왔거든요. 나라도 얘기를 해야겠다는 책임감 같은 게 있었어요. 그래서 회식 자리에서 병원 고위 관계자에게 전부 말을 했죠. 승진은 바라지 않는다, 우리 간호사들이 너무 힘들다, 얘기를 했는데요. 외면하시더라고요. 병원은 안 바뀌는구나, 생각했어요.

 

 

눈앞의 이익만 봐서는 안 돼


그러니까 악순환이죠. 경력 간호사가 병원을 떠나게 되는 상황, 그래서 업무 강도가 높아지니 신입 간호사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안 되는 상황이 고리처럼 연결돼요.


서울 아산병원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설 명절 때였어요. 그때가 제 생일이라 기억이 나요. 처음엔 그렇게 놀라진 않았어요. 간호사의 자살이 드문 일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아산병원이라는 얘기에 깜짝 놀랐어요. 아산병원은 국내 병원 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데예요. 하루 외래환자만도 2만 명이 넘는 곳이거든요.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고 하는 곳인데도 그곳 간호사가 그런 선택을 할 정도면 다른 곳은 오죽하겠느냐고요.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해요. 이대병원도 마찬가지예요. 의사를 구속한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이건 경영진의 문제예요. 병원은 생명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에 엄격해야 해요. 그런데 병원은 돈 벌 생각만 하죠.

 

그런데 이런 구조적인 면을 보지 않아요. 아산병원 때도 언론은 이를 ‘태움’문제로만 접근했죠.


화장실을 못 가서 방광염에 걸리는 게 간호사예요. 그렇게 일이 많은 상태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장의 간호사 교육이 맡겨졌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간호사를 제대로 교육할 수 있겠어요. 간호사는 가르친다고 되지 않아요. 일정 기간이 필요해요. 충분히 경험해야죠. 그런데 그 정도 기다리는 시간도 주지 않는 거죠. 아무에게나 신규 간호사 한 명 맡기고 “네가 오늘 봐라” 해요. 한 번은 중간 간호사가 너무 심하게 혼을 내는 것 같아서  불렀어요. 신규 간호사라 아는 것도 없을 텐데 왜 그러느냐, 했더니 눈물을 뚝뚝 흘려요. “선생님 저도 힘들어요. 저도 좋은 선배 되고 싶어요.”라고 하더라고요. 자기 환자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신경을 써야 하는데 후배까지 가르치다보니까 너무 힘이 드는 거죠. 이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만드는 거예요. 신규 간호사에게는 체계적인 교육팀이 따로 있어야 해요. 그래야 결국 그 혜택이 환자한테 돌아가요. 눈앞의 이익만 봐서는 안 되잖아요.

 

선생님도 중환자실 간호사 입사 하루 만에 ‘이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고 적으셨죠.


지금도 그 생각을 했을 때가 뚜렷하게 기억나요. 정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12시간을 뛰어다녀도 아침이 되면 안 돼 있는 것투성이예요. 환자를 돌보는 일이 정형화 되어 있진 않거든요. 다양한 상황이 있기 때문에 한 케이스에 집중하다보면 다른 일이 밀리고, 또 그 일을 허덕이며 하고요. 한 번은 저녁 근무를 하는데 시계를 보니 6시였어요. 미친 듯이 뛰어다니면서 두 환자 심폐소생술을 같이 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11시인 거예요. 그제야 뒤에 출근한 다른 간호사도 보이고요. 하지만 그런데도 계속 못한 일들이 있어요.

 

아직 해야 할 이야기가 많아요. 앞으로 책도 계속 쓰실 거죠?


원래는 올해 안에 책을 한 권 더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드라마 결정이 되어서 거기에 집중해야 할 것 같아요. 다음 주에 유럽을 가는데요. 간호사를 하는 21년 동안 길게 휴가를 가본 게 딱 5일이었어요. 3교대라 한 달 일정이 미리 나오거든요. 그런데 누가 아프거나 하면 다른 간호사 일정이 다 바뀌어야 해요. 대체 인력이 없어서요. 최소한의 인원만 채용하니까요. 법으로는 간호사 한 명 당 환자를 80명까지 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화재가 났을 때 간호사 한 명이 80명을 어떻게 피신시키겠어요. 말이 안 되죠. 병원이 스스로는 절대 바뀌지 않아요. 간호사는 환자의 목숨과 가까운 존재예요. 법으로 보호를 받아야 해요. 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는 단호하게 대처하고요. 개인의 사명감에만 의지해서는 안 돼요.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김현아 저 | 쌤앤파커스
우리와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간호사들의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이자 ‘인간에 대한 예의’가 무엇인지를 잊은 채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우울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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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