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결과, 겉으로 보이는 신분제도는 사라졌으나 신분의식은 온존하게 되었다. 혼란기를 통과하면서 기존의 지배 질서는 무너졌지만, 귀족적 차별의식은 오히려 보편화되었다. 그래서 한국은 여전히 전통적인 신분 관념이 강하게 지배하는 사회다. 다만 그 틀이 전근대적인 신분 질서가 아닐 뿐이다. 그 대신 학력, 빈부, 외모, 지위 등이 강력한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 차이들을 중심으로 귀함과 천함을 구분하고 자기와 타인을 위아래로 자리매김한다.
(김찬호, 『모멸감』 , 125-126쪽)
안녕하세요, 오은입니다. 사회학자 김찬호는 저서 『모멸감』 에서 한국 사회가 일제의 지배와 전쟁,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어떤 방식으로 신분제도를 소멸시켜왔는지 분석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각적인 청산”은 아니었으며 “한국은 여전히 전통적인 신분 관념이 강하게 지배하는 사회”라고 진단하는데요. 2014년에 출간된 이 책의 인식으로부터 지금 우리가 얼마나 변화되어 왔는지 생각해보면 마음 한 구석이 조금 답답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는 갑을 관계, 적폐, 권위주의 그리고 차별과 같은 말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요?
오늘은 문학상과 공채라는 한국만의 독특한 채용 방식이 어떻게 안과 밖을 만들고, 차별의 출발점으로 자리하게 되었는지 살펴본 소설가 장강명의 신작 『당선, 합격, 계급』 으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인터뷰- 장강명 작가 편>
오은 : “소설가. 공채의 신. 엑셀 마니아. 탁월한 전업주부. 더 이상 수식이 필요 없는 문학상 4관왕, 핫한 소설가 장강명! 그는 그러나 작가 이전에 기자, 기자 이전에 건설사 직원, 그 이전에는 공대생이었던 남다른 이력의 소유자다. 이 이력의 과정에서 그는 ‘삼성고시’라 불리는 삼성그룹 공채와 ‘언론고시’에 합격한 바 있다. 역시, 공채의 신! 사실 그는 원래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일기도 일 년에 책 한 권 분량씩 쓰는 사람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첫 책은 대학생이던 1996년에 출간한 『클론 프로젝트』. 이 책을 누가 읽을까봐 늘 두려워하고 있다.
<동아일보> 기자로 11년간 일했고, 2011년 『표백』 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2013년 9월, 작가로 완전히 전업한 후에는 ‘하루 8시간, 연간 2200시간 글쓰기’ 원칙을 지켜왔다. 이것은 한국인 평균 노동시간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며 글을 쓴다. 엑셀 마니아인 그는 엑셀 파일에 글 쓴 시간, 작품 아이디어, 구체적인 취재 일정과 취재 내용 등을 모두 기록한다. 소설가 장강명의 모든 것이 담긴 창작노트인 셈이다.
2014년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2015년 『댓글부대』 로 제주4.3평화문학상과 2016년 오늘의 작가상을, 2015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다. 이번 책 『당선, 합격, 계급』 은 장강명의 첫 르포르타주. 2015년 4월 집필을 시작해 출간까지 자그마치 3년이 걸렸다. 문학상과 공채 시스템이 양산하는 한국 사회의 차별의식을 분석해낸 이 책의 초고가 끝났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이혼한 기분이 들 정도로 지긋지긋했다. 아내가 다시는 르포를 쓰지 말라고 했을 정도. 르포를 또 쓰고는 싶지만, 적당히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작가 활동 이후 십 수 권의 책을 펴냈다. 공저 포함 소설 12권, 물론 『클론 프로젝트』까지 하면 13권이다.
이른바 ‘월급사실주의’ 작가로서 언제나 성실한 작가가 되고 싶다. 인생의 목표 첫 번째가 ‘행복한 결혼생활’, 두 번째가 ‘소설가로서의 성공’, 그리고 세 번째는 ‘사회에 대한 관심과 공헌’이다.” 안녕하세요. 장강명 작가님 반갑습니다. 그런데 ‘월급사실주의’는 뭔가요, 작가님?
장강명 : 재미있는 말이 없을까 하고 붙여본 말인데요. 약간 진지하게 설명을 드리자면요. 지금 한국 소설계가 세대 교체 중이지 않나 생각해요. 독자의 요구에 맞춰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먼저 1990년대에 세대 교체가 한 번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당시 한국 사회가 개인을 발견했고요. 독자들이 사람의 내면을 섬세하게 얘기하는 소설들을 원했죠. 2010년대에는 독자들이 어떤 종류의 리얼리즘을 원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워낙 갈등이 심하고, 부조리가 있는 나라잖아요. 개인에서 다시 사회로 시선을 옮기는 중인 것 같은데요. 그걸 ‘신참여파’, ‘신현실주의’ 이렇게 붙이려니 간지러워서 ‘월급사실주의’ 정도로 붙여봤어요. 월급 받는 평범한 사람들의 현실을 월급 받아본 적 있는 작가들이 정확하게 포착해서 현주소를 알려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맥락에서 조남주 작가님, 정세랑 작가님, 모두 그런 분들 같아요.
오은 : 옹기종기 인터뷰는 처음에 ‘deep & slow’ 질문을 드리죠. 인터뷰 마지막 단계에 이에 대한 답을 해주시면 됩니다. 장강명 작가님께 드리는 ‘deep & slow’는 이것입니다. “장강명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사회란?”
장강명 : 네, 잘 생각해보겠습니다.
오은 : 첫 르포죠. 『당선, 합격, 계급』 은 대규모 선발방식에 대한 작가 장강명의 문제의식이 엿보이는 책이었어요. 3년의 취재 기간을 거쳤다는 점이 눈길을 끄는데요. 이 문제의식이 처음 시작된 때는 언제인가요?
장강명 : 아마 학생 때지 않았을까요? 대학에 꼭 가야 해? 이것도 문제의식의 뿌리겠고요. 대학생 때 신춘문예에도 몇 번 응모했거든요. 그때도 어떻게 써야 당선이 될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마 다들 고민할 겁니다.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은 다들 합격자 스타일이 있을까, 거기에 맞춰야 하나, 그런 고민 많이들 할 거예요. 그런 의문이 쌓여 있었는데요. 작가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몇 가지 준비를 하다보니까 이 문제의식과 닿더라고요. 그러다가 작업이 점점 방대해져서 3년이 걸렸어요.
오은 : 책에 성(城)에 대한 은유가 나오는데요. 역설적이게도 성에 들어간 사람이, 성 안을 샅샅이 살펴본 사람이 성 내부의 나쁜 점까지 가감 없이 말하는 책이거든요. 재미있는 것은 이거죠. 공모전과 언론사와 기업이라는 성에 모두 들어간 사람이 이런 책을 썼다는 것 말이에요. 어쩌면 쓸 때 부담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장강명 : 내가 이런 걸 얘기할 자격이 있나, 하는 내부검열은 있었어요. 수혜자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호의적으로 묘사하려고 하지 않을까 하고요. 수혜자는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이 있었는데요. 중간에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수혜자로서 조심해야 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너는 그 시스템의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부조리에 대해서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당선, 합격, 계급』 을 쓸 때 그런 말을 하는 분이 있었다는 건 아닙니다. 그냥 제 마음 속 어떤 목소리였는데요. 그건 아니겠구나, 그 정도로 순결적인 것을 요구할 필요는 없겠다, 생각하게 됐어요.
오은 : 편집자, 작가, 기자, 지망생 등 굉장히 많은 분들을 만나 인터뷰하셨잖아요. 그 중 특별히 기억나는 인터뷰는 무엇이었나요?
장강명 : 책이 문학계 얘기 반, 공채 제도 얘기 반인데요. 제일 기억나는 분은 사실 문학계 분은 아니었고요. 여러 공채 중에 제일 문학 공모전과 비슷한 공채가 아나운서 공채였더라고요. 합격자가 한 명이라는 점에서 비슷하죠. 아나운서 아카데미 원장님과 인터뷰를 했는데요. 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경쟁이 그렇게 눈물 나는 줄 몰랐어요. 너무 놀랐고요. 하도 충격을 받아서 아나운서 지망생이 주인공인 단편 소설도 썼습니다. 신춘문예든 장편소설 공모전이든 준비하는 데 돈이 드는 건 아니잖아요. 시간은 걸린다 하더라도 말이죠. 그런데 아나운서는 준비하는 데 돈이 많이 들어요. 아카데미 두 곳 정도 다니면 돈 천만 원 듭니다. 게다가 메이크업도 받아야 하고, 옷도 그렇고, 성형수술 받는 분도 있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구직자라는 사회적 약자를 등쳐 먹는 산업이 많은 거죠. 이상한 미신도 많고요. 진짜 한국 사회가 참 기괴하고 잔인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은 : 아나운서 지망생이 주인공인 소설도 발표하셨다고 했는데요. 왜 이 책이 소설이 아닌 르포여야 했는지도 궁금하네요.
장강명 : 원래 르포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르포만이 줄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작가 지망생인 주인공이 좌절하는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고 할 때 그 책이 주는 울림과 르포를 써서 여기 나온 모든 얘기는 눈으로 본 것이고, 여기 나온 모든 말은 누군가가 직접 한 말이다, 라고 했을 때 이르는 충격이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잘 만든 극영화가 주는 감동이 있고요. 다큐멘터리로만 이룰 수 있는 충격이 있는 거죠. 이것을 쓸 때는 반드시 실제 일어난 것으로 얘기를 하고 싶었고요. 르포로만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오은 : 취재를 하면서 발견한 새로운 사실이나 충격적인 사실이 있었는지도 궁금해요.
장강명 : 처음에는 문학 공모전과 공채를 연결할 생각은 못했어요. 문학 공모전에 관한 책이었고요. 하다보니까 공채로 넓어진 건데요. 그 중간 즈음에 ‘문학 공모전도 시험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속으로 ‘유레카!’ 했죠. 구체적으로는 요즘 젊은이들이 중견회사에 가도 다음 해나 혹은 2년 뒤까지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 입사 시험을 다시 치른다는 것이 놀란 점이었어요. 경력 이직이 아니고요. 신입 공채에 원서를 내고, 필기시험부터 다시 본다는 거죠. 취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되게 놀랐어요.
오은 : 저도 그 부분이 놀랍더라고요. 기업에서 그걸 알고 있다는 것도 놀랐고요.
장강명 : 아예 최종 면접까지 남는 사람은 그런 사람 위주라고 하더라고요. 정말로 경력이 없는 신입은 기업도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워 한다는 거죠. 너무 부조리하죠. 참 이상한 사회입니다.
오은 : 책을 다 읽고 이 책을 외국 사람에게 번역해서 보여주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어요. 이 책으로 한국 사회의 한 단면, 민낯을 보게 될 텐데 그러면 어떤 생각을 할까도 궁금했거든요.
장강명 : 외국 사람이 보면 놀랄 것 같긴 한데요.(웃음) 제가 바라는 것은 이 현상이 빨리 없어지는 것이고요. 그래서 10년이나 20년 뒤에 이걸 본 한국 사람들이 놀라기를 바랍니다. 2018년에 취업 부적이라는 게 있었대, 라면서 놀라는 것. 그런 기록 용도로는 좋을 것 같아요. 어쨌든 있는 것을 기록했고, 있는 것도 희귀한 게 아니라 아주 흔하게 있는 거니까요.
오은 : “사회 한 모퉁이는 늘 그렇게 부글부글 끓는 상태여야 한다”(161쪽)는 말이 중요하게 읽혔습니다. 공모, 공채 제도로 인한 사회의 경직성, 그에 대한 대안처럼 읽혔거든요. 후반부에는 “사람들이 수시로 성을 드나들게 하자”(320쪽)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장강명 : 이 책은 질문하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답을 제시하기에는 제 깜냥도 모자라고요. 한 사람이 답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답의 방향만 제시한 건데요. 결국 성의 관문도 넓어져야 하고, 성벽도 낮아져야죠. 성 안은 지금 고인 물인데, 거기서 나오는 사람도 있고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지금 간판으로 유지되는 성에 대한 정보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간판의 힘은 깜깜이 시장에서 나오니까요. 저는 이 책이 논쟁의 물꼬가 돼서 각 분야에서 간판의 위력을 떨어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정보가 넓어지면 간판의 힘이 떨어질 것인가를 지금부터 많이 얘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오은 : 문학계에서는 그 방법 중 하나로 “독자들의 문예운동”을 제시했어요. 작가님은 페이스북에 꾸준히 책 리뷰와 별점을 남기고 계시잖아요. 이것도 일련의 활동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리뷰에 대한 작가님의 관심, 그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장강명 : 세상에 읽고 쓰는 공동체가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들이 읽고, 책 쓰고 그래야 한다는 거 아닙니다. 그러지 않고도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고요. 다만 읽고 쓰는 사람들이 만날 기회가 너무 적어요. 뿔뿔이 흩어져 있고, 점점 수가 줄어드니까 다 외로워요. 서평을 쓰는 것 만으로도 서로의 존재가 확인이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게 저자들에게도 좋아요. 글 쓰는 사람들 똑같을 텐데요. 독자가 읽고 어떤 식으로든 반응해주면 감격하잖아요. 그게 또 글 쓰는 용기가 되고요. 읽고 쓰는 공동체가 계속 굴러가기 위해서 서평이 필요하죠. 다른 독자에게도, 작가에게도 도움이 돼요. 이걸 조금 더 강화하면 ‘독자들의 문예운동’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의 문학 공동체는 너무 엘리트주의랄까요. 문학 엘리트의 영향이 굉장히 커요. 신문 서평도 그렇고요. 연말에 ‘올해의 책’ 추천을 하는 40인, 100인도 문학 엘리트라고 할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주목하는 책도 있지만 엘리트가 아닌 사람들이 좋아해서 끌어올리는 책도 있거든요. 문학 엘리트는 추천하지 않지만 사실 좋은 책들, 이걸 우리가 발견해서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그 책을 징검다리 삼아 다른 책으로 넘어가는 거죠. 아마 이런 책들이 없어서 어쩌면 우리가 계속 독자를 잃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은 :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진행하고 계시잖아요. 진행자가 된 이후에는 책에 대해 다른 시선을 갖게 되셨을 것 같아요. 책을 다르게 보게 된 부분도 있으세요?
장강명 : 되게 달라졌어요. 진행자라서 달라진 것 같진 않고요. 그전까지는 독서라는 게 저자와 독자가 1:1로 만나는 게 전부고 나머지는 의미 없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달라졌어요. 방송을 하려면 여섯 명이 책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데요. 책을 매개로 한 독자의 관계라는 것이 새롭더라고요. 작은 독서 공동체라고 할 수 있죠. 정말 좋았습니다. 책 이야기도 즐겁고요. 이것도 책의 역할이구나,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에요.
오은 : 요즘 주목하고 있는 신인 작가가 있으세요? 아니면 최근에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이 있다면 두 권 정도 추천해주시면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장강명 : 『당선, 합격, 계급』 에서도 언급했는데요. 이혁진 작가님의 『누운 배』 재미있게 읽었고요. 이진 작가님의 『기타 부기 셔플』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누운 배』 는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고요. 『기타 부기 셔플』은 수림문학상 수상작인데요. 제 생각에는 두 작품 모두 좀 더 독자를 만나야 할 작품들이에요. 일단 재미있고요.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기에 아무 부족함이 없는, 쉽게 읽히는 소설이거든요. 그러면서 메시지도 있고요. 둘 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될 것 같아요. 신인 작가의 책은 아니지만 정말 재미있게 읽은 게 정세랑 작가님의 『피프티 피플』 이에요.
오은 : 끝까지 『유에서 유』 는 나오지 않습니다.(웃음) 저도 『피프티 피플』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한편 기자일 때의 장강명, 소설가일 때의 장강명, 남편으로서의 장강명 등이 있잖아요. 그 중 어떤 장강명이 가장 행복하고 나답다고 느끼세요?
장강명 : 소설가 남편으로서의 장강명이 제일 나답다고 느껴요. 건설회사를 다섯 달 정도 다녔거든요. 그때 이건 나와 안 맞는 옷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회사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저랑 안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소설 쓸 때 저랑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기자일 때는 대체로 맞았는데 그것이 사이즈 맞는 기성복 같은 느낌이었다면 소설가인 지금은 맞춤옷 입은 느낌이에요.
오은 : 모든 사람들이 책을 좋아할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즐긴다면 어떤 고민은 꽤 줄어들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작가로서 자신의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고 계세요?
장강명 : 제 역할은 질문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인데요. 지금까지 썼던 것도 질문에 대한 것이었고요. 비유하자면 노래를 예쁘게 하는 꾀꼬리도 있을 텐데요. 저는 그보다 탄광의 카나리아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예쁜 노래를 부르고 싶은 게 안니라 가스 퍼질 때 비명을 먼저 지르고 제가 죽어서 광부들이 빨리 도망가게 하는 것. 그런 역할이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은 : 마지막으로 ‘deep & slow’ 질문이었죠. “장강명이 생각하는 정상적인 사회란?”에 대한, 답을 찾으셨나요?
장강명 : 상식적인 이야기인데요. 사람 실력을 보고 싶으면 평가할 때 그 사람의 지금 실적 가지고 평가를 하는 사회입니다. 10년 전, 20년 전에 무슨 시험에 통과해서 무슨 간판을 달았는지가 아니고요. 어떤 작가의 작품을 평가하고 싶으면 그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그 사람이 10년 전에 무슨 문학상을 받았는지 어느 문예지로 등단을 했는지 이야기하지 않는 거죠. 누구의 실력을 평가할 때 그 ‘실력’이란 지금의 실력을 말하는 겁니다.
오은 : 앞으로도 장강명 작가님의 작품을 기대하겠습니다. 나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즐겁고 편하게 방송할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장강명 : 네, 고맙습니다.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54
오은(시인)
2002년 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너랑 나랑 노랑』 『유에서 유』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등을 썼으며, 현재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