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모크>에서 무게감 있는 연기 선보이는 배우 윤소호
나도 다른 사람을 웃길 수 있구나’ 자신감도 생기고, 다른 것도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고. 그래서 백작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ㆍ사진 윤하정
201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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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지은 연작시 [오감도(烏瞰圖) 제15호]를 모티브로 제작된 창작뮤지컬 <스모크> 가 공연되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고통과 현실적인 괴로움으로 세상을 떠나려는 남자 ‘초(超)’, 바다를 꿈꾸는 순수한 소년 ‘해(海)’, 이 두 사람에게 납치당한 여자 ‘홍(紅)’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를 앞서갔던 이상의 삶과 예술, 식민지 조국에서 살아야 했던 예술가의 절망을 담아내고 있는데요. 2016년 트라이아웃 공연, 지난해 초연에 이어 올해 재연까지 관객들의 관심이 뜨거운 작품입니다. 하지만 난해한 시와 범상치 않은 인물을 다룬 작품인 만큼 무대에 오르는 세 배우의 어깨가 더욱 무거울 수밖에 없는데요. 트라이아웃 때부터 <스모크> 에 참여하고 있는 해(海) 역의 배우 윤소호 씨를 공연이 끝난 뒤 직접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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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그러지는 않지만, 방금 전까지 이상이라는 사람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공연이 끝나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멍한 상태가 긴 것 같아요.”

 

그러게요, 공연 뒤 바로 인터뷰를 하는 게 미안할 정도입니다. 윤소호 씨가 나오는 공연을 꽤 많이 봤는데, 무대 위에서 이렇게 우는 모습도 처음 봤어요. 


“눈물이 별로 나지 않는 날도 있는데, 오늘은 좀 많이 갔던 것 같아요. 세 배우가 함께 하니까 합에 따라 느껴지는 게 조금씩 달라서 감정이 더 올 때도 있어요.”

 

<스모크> 가 관객 입장에서 쉽게 읽히는 작품은 아닌데, 트라이아웃 때부터 참여해서 누구보다 이 작품에 대해 잘 아실 것 같아요.


“맞아요, 한 번 보고 모든 걸 이해하기는 힘든 공연 같아요. 저희도 대본을 처음 봤을 때는 많은 궁금증들이 있었고요. 오늘 했던 배우들(김경수, 유주혜)이 트라이아웃 때부터 함께 해서 공부도 많이 하고 이제는 좀 익숙해졌어요. 그래서 연기를 하는 면에서는 편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건 사실이거든요. 글쎄요, 이 작품은 오히려 단순하게 봐야 재밌을 것 같아요. 팩트는 있지만 <스모크>는 작가에 의해 탄생된 작품이니까 이상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아는 정도에서 공연을 관람하다 보면 끝날 즈음에는 많은 퍼즐들이 맞춰지지 않을까. 이상의 시와 작품을 모티브로 만들었기 때문에 대사에 많이 투영돼 있고, 이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분들은 이상의 시가 이렇게 노래로 바뀌었다는 것도 아실 테고요.”

 

관객들이 이 작품의 장치 중에서 가장 많이 궁금해 하는 건 거울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죠. 우리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치이고, 나 자신을 표현할 때 정말 좋은 장치죠. 이상이 실제로 거울을 소재로 시를 많이 썼다고 해요. 사실 불가능하잖아요, 내가 나를 꺼내서 내 인생을 대신 살게 한다는 게. 이상은 그런 판타지를 많이 원했던 사람 같아요. 김해경 안에도 많은 인격이 있고, 수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고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을 산 사람이 아닐까. 이상의 시를 보면 힘들고 아픈 가운데도 그런 판타지를 많이 원했던 게 아닐까 싶고요. 그래서 저도 마음이 아파요.”

 

이 작품을 통해 이상이라는 인물, 이상의 작품도 훨씬 많이 이해하게 됐겠는데요?


“이해하려고 하죠(웃음). 노력하는 것이지, 지금도 이상의 새로운 시를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며칠 전에도 이상 평전을 들춰봤는데, ‘이상의 시나 수필, 소설이 우리 작품에서 각각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었지?’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 때가 있거든요. 굉장히 난해하고 하나의 시에도 수만 가지 해석이 나오다 보니까 궁금할 때가 많아요. 그만큼 어렵고 그래서 저희 공연이 어려운 것 같아요. 그가 쓴 글, 인생 자체가 평탄하지 않기 때문에 이상을 주제로 쉽게 작품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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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작품에서 러브콜이 많았을 텐데, 트라이아웃에 이어 초연, 재연까지 참여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스모크> 를 위해 <마마, 돈크라이> 공연 스케줄도 조정한 것 같던데요.


“배우들이 한 작품만 하고 싶지만 공연이 겹칠 때가 있어요. <스모크> 는 재연이지만 배우들도 바뀌고 무대도 바뀌어서 초반에 좀 더 집중해야겠더라고요. 다행히 양해해 주셔서 <마마, 돈크라이>는 1, 2차에 나눠 참여하게 됐어요. 창작뮤지컬의 경우 재연까지는 창작진과 배우들이 계속 다듬어가야 더 좋은 작품이 되는 걸 많이 느꼈거든요. 제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었고, 또 애착이 있는 작품이고요. 초연 때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싶은 배우로서의 욕심도 있었고요.”

 

그럼 캐릭터적으로는 어떤 부분을 좀 더 찾아냈나요?


“찾았다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이상, 김해경의 인생을 다루지만 우리 작품 안에는 스토리가 있잖아요. 초연 때는 해(海)라는 캐릭터가 바다를 늘 꿈꾸는 인물인데 왜 바다에 가고 싶은지, 대사가 나오지만 그냥 지나치는 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시즌에는 해(海)가 바다에 가려는 의지를 심리적으로 좀 더 많이 담아가는 편이에요. 그래야 해(海)가 ‘그래서 바다에 가고 싶구나, 그래서 글을 쓰고 싶구나, 그래서 이상이구나’라는 단계가 좀 더 편해지는 것 같거든요.”

 

재연하면서 가장 와닿는 대사나 장면은 어떤 건가요?


“좋은 부분이 많은데, 요즘은 ‘내가 나로 사는 게 외롭지 않을까’라는 말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더라고요.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옆에 있어도 불현듯 이 말을 떠올리면 다들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요. 나는 이 대사를 이렇게 많이 느끼는데, 내가 무대 위에서 표현할 때 관객들은 어떻게 느낄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스모크> 의 초반 해(海)도 그렇지만, <베어 더 뮤지컬>의 피터, <레미제라블>의 마리우스, <스위니 토드>의 안소니 등 맑고 순수한 청년 역할을 많이 하셨어요. 그러고 보면 <마마, 돈크라이>의 드라큘라 백작이 가장 파격적인 변신 아닌가요(웃음)?


“감사하게도 그런 역할을 많이 맡겨주셨는데, 덕분에 제 나이에 할 수 있는 역할을 많이 해본 것 같아요. 재밌기도 했고요. <마마, 돈크라이>는 처음에 프로페서 V로 제안이 들어왔는데, 제가 백작을 하겠다고 했어요. 그동안 했던 인물과 겹치지 않는 이미지라서 그런지 백작을 더 하고 싶었어요. 백작은 멋져야 하고, 요염함을 발산해야 하는 ‘세라’ 장면 때문에 많은 분들이 도전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사실 더 큰 도전은 작년에 연극 <지구를 지켜라>에서 만식이었거든요. 에너지 소모도 큰 데다 많은 웃음을 담당해야 했는데, 그게 터닝 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나도 다른 사람을 웃길 수 있구나’ 자신감도 생기고, 다른 것도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고. 그래서 백작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1년 데뷔작인 <쓰릴 미> 이후 대극장과 소극장을 오가며 인기 작품의 주요 인물을 연기하고 있는데요. 몇 년쯤 뒤에 거울을 보면 어떤 배우가 자리 잡고 있길 바라나요?

이 답변은 윤소호 씨 음성으로 직접 들어보시죠!

 

 

 

 

 

윤소호 씨는 지난 2014년 <킹키부츠> 때 인터뷰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3년여 만에 다시 만난 그는 꽤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다양한 무대에 서 온 시간과 경험만큼 속이 꽉 채워진 느낌이라고 할까요? 지금도 푸르른 청년의 느낌은 가득하지만, 이제 그야말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표현하는 해(海)가 더욱 진정성 있고, 무대와 객석을 먹먹하게 울리는 게 아닐까 싶군요. 뮤지컬 <스모크> 는 7월 15일까지 대학로 대명문화공장 2관에서 공연되는데요. <스모크> 의 해(海)에서 <마마, 돈크라이>의 드라큘라 백작으로, 그리고 또 다른 인물로 무대에 설 윤소호 씨의 변신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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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