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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너무 멀쩡하므로 꾀병으로 오해받기도
“아니, 어린 아이가 무슨 걱정이 있다고 머리가 아파?” 이렇게 얘기하면 뭘 모르는 소리가 됩니다. 두통은 복통, 이통(귀 아픈 것)과 함께 어린이의 3대 통증이라 불릴 정도로 흔합니다. 연구에 따라 다르지만 30-50%의 어린이가 두통을 경험합니다. 복통과 마찬가지로 원인이 뚜렷한 경우에는 맞게 대처합니다. 예를 들어, 머리를 다쳤다면 아픈 것이 당연하지요? 가볍다면 집에서 잘 지켜보면 되고, 심한 것 같으면 병원에 가야 합니다. 감기에 걸려 열이 날 때도 머리가 아픕니다. 푹 쉬고 해열제 등으로 열을 떨어뜨리면 두통도 사라집니다. 이렇게 원인이 명백한 두통 말고 건강한 아이가 멀쩡하게 잘 지내다 잊어버릴 만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람이는 초등 5학년입니다. 학교에서도 잘 지내고 학원도 빼먹는 일 없이 열심히 다닙니다. 그런데 오늘은 학원에 못 가겠다고 합니다.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약간 메슥거린다고도 합니다. 엄마는 의사 선생님께 들은 대로 거실 TV를 꺼서 조용하게 해 준 후, 아이 방에 커튼을 쳐 어둡게 하고 눕혀주었습니다. 30분쯤 뒤에 가보니 아이는 잠이 들었습니다. 더 아프면 먹으라고 머리맡에 둔 해열진통제와 물은 그대로입니다.
보람이가 머리 아프다고 한 지는 조금 됐습니다. 5학년 올라 오면서 한 달에 한두 번은 그랬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어느 날 옆집 은비 엄마가 “요즘은 뇌종양도 많다던데 한번 병원에 가보지 그래요?” 하는 바람에 더럭 겁이 나 다니던 소아과에 갔지요. 의사 선생님은 얼마나 자주 아픈지, 지끈지끈 아픈지 쿡쿡 쑤시는지, 음식과 관련은 없는지 등 이것저것 물어보았습니다. 진찰도 다른 때와는 좀 달랐어요. 눈만 움직여 선생님의 손가락을 쫓아가 보거나, “으”, “우” 소리를 내며 얼굴을 찡그리고 입술을 내밀거나, 일어서서 한쪽 발을 들고 눈을 감아보거나 하는 검사는 낯설기도 하고 호기심도 일었습니다. 진찰을 마친 선생님은 아무 이상이 없다며,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많은 “편두통” 같으니 안심하고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엄마가 뇌종양 얘기를 하자 웃으면서 거의 가능성이 없으니 CT나 MRI를 할 필요는 없다고 했습니다. 가만, 그러고 보니 머리가 아프면 두통일기를 쓰라고 했는데! 소아과에서 받은 두통일기 인쇄물을 어디다 뒀더라…
의사 입장에서 어린이가 두통으로 찾아오면 가장 먼저 1차성인지, 2차성인지를 따집니다. 2차성이란 뭔가 다른 원인으로 인해 두통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원인을 찾아 해결해주면 두통도 사라집니다. 제일 흔한 원인이 감기나 감기 합병증으로 생긴 부비동염(축농증)입니다. 그 밖에 충치나 시력 문제, 수면부족 등도 원인이 될 수 있고, 갑자기 찬 것을 먹거나, 커피를 매일 마시던 청소년이 끊었을 때 두통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컴퓨터 앞에 너무 오래 앉아 있어 생긴 목과 어깨의 근육통이 머리로 뻗치거나,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수면부족이 두통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성인에서 점점 늘어납니다. 청소년의 생활패턴도 크게 다르지 않은 만큼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원인들이 없을 때를 1차성 두통이라 하는데, 크게 편두통과 긴장성 두통으로 나뉩니다. 긴장성 두통이란 주로 정서적 스트레스로 인해 생깁니다. 머리가 전체적으로 무겁고 둔하게 아프며, 머리 둘레로 뭔가를 둘러 놓은 듯 꽉 조이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어른처럼 돈을 벌어야 하거나 다양한 사회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누구나 연령에 따라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어 자기 몫의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합니다. 아이의 어려움을 인정해주고, 관심을 기울이되 간섭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편두통은 고생스럽지만 평소에는 너무 멀쩡하므로 꾀병으로 오해받기도 합니다. 증상이 특징적이라 예로부터 의사는 물론 작가들의 관심을 끌었지요. 연전에 세상을 떠난 올리버 색스 같은 이는 아예 책을 한 권 쓰기도 했습니다. 편두통은 1) 욱신욱신, 지끈지끈, 두근두근하는 형태로 머리 한 쪽에 치우치는 수가 많습니다. 2) 메슥거림, 구토, 복통 등 복부 증상을 동반합니다. 3) 두통이 오기 전에 눈앞에 뭔가 번쩍거린다거나, 흐릿해진다거나, 손끝, 발끝이 저리거나 따끔거리는 등 전조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4) 자고 나면 좋아집니다. 5) 가족력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6) 호르몬 변화, 특정한 음식, 스트레스 등 유발인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편두통이 오면 소리나 빛에 민감해지므로 어둡고 조용한 방에서 재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심하면 진통제도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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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통을 이렇게 구분해봅시다
부모 입장에서는 이런 정보보다 직관적인 이해가 더 도움이 됩니다. 두통을 이렇게 구분해봅시다. 1) 한 번 아프고 만다(급성 두통), 2) 1달에 두 번 이상 찾아 온다(재발성 두통), 3) 더 자주 아프지만 빈도와 강도가 변하지 않는다(만성 두통), 4) 더 자주 아프면서 빈도와 강도가 점점 증가한다(만성 진행성 두통). 어떤 두통이 가장 문제일까요? 참 잘 했어요! 4)번이지요.
대부분의 어린이 두통은 어느 정도 지속되다가 저절로 사라집니다. 시간이 약인 셈이지만 자꾸 아프다고 하면 부모로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CT라도 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다른 나라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어디가 아프면 가장 흔한 상황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가장 심각한 상황을 떠올립니다. 속이 쓰리면 매일 마시는 맥주 탓을 하는 게 아니라 위암이 아닌가 걱정하지요. 아이들이 두통이 생기면 그러다 말겠지 하는 게 아니라 뇌종양이 아닐까 겁을 냅니다. 의사가 잘 설명을 해주고 지켜보자고 해도 옆집 사람의 말을 듣거나, 밑도 끝도 없는 언론 보도를 보면 또 마음이 흔들립니다. 의사도 사람인데 놓칠 수 있는 것 아니냐고요?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이런 통계가 있습니다. 위 4)번, 즉 만성 진행성 두통이 아니고, 의사가 꼼꼼히 진찰한 결과 큰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을 때 CT나 MRI에서 이상이 발견되어 치료를 바꾸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요? 연구에 따라 다르지만 0 - 0.2%라고 합니다. 그래도 찍어보겠다면 말릴 수는 없지만, 비용도 들고, 어린아이라면 진정제를 써야 하고, CT 검사 시에는 방사선에 노출되는 등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한번 더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로서는 비싼 검사보다 두통일기를 쓰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두통이 생기면 날짜와 시간을 쓰고, 몇 시간이나 지속되었는지, 머리 어디가 아팠는지, 얼마나 심했는지, 그 전 몇 시간 동안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는지, 그 밖에 특별한 문제는 없었는지 적어보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증상의 추세를 알 수 있으므로 영상검사를 해야 할지 판단하기도 쉽고, 편두통이라면 유발인자를 찾아내 피할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건강을 지키는 데는 값비싼 첨단의학보다 세심한 관찰과 따뜻한 관심이 훨씬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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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두통올리버 색스 저/강창래 역 | 알마
오늘도 자신이 앓는 질병에 대한 정확한 정체나 치료법을 알지 못한 채 고통스러워하며 두통약을 복용하는 환자들에게 소중한 자료가 되어준다.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