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지해서인지, 판교에 스타트업 캠퍼스라는 곳이 있는지도 몰랐다. 2017년 1월 그곳에서 선수들 (학생을 선수, 선생을 코치라고 불렀다)과 이야기를 나눠달라는 요청을 받고서야 ‘판교에 스타트업 인큐베이터가 있구나’ 하고 알게 됐다. 진정으로 원하고 세상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업을 찾아 열정과 시간을 쏟아 붓고 있는 이들을 만날 기회는 그 후로 두 번 더 있었다. 마흔여섯이 되도록 의사라는 트랙 위만 달려왔던 터라 정해진 길을 벗어나 새로운 모험에 뛰어드는 로망이 마음 한구석에 있다. 그래서일까, 과거와 결별하고 미래를 향해 온 몸을 던진 사람들은 언제나 멋져 보였다.
지난주 세 번째 그곳에서 강의 했는데, 이런 질문을 받았다.
“정신과 의사들은 왜 자꾸 과거를 캐묻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불안과 불면으로 정신과에서 진료 받은 적이 있는데, 의사가 과거의 고통이나 트라우마를 자꾸 이야기하라는데, 그게 무슨 상관인지...” 그런데도 자꾸 과거를 물어서 그 다음에는 가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게. 과거가 뭘까. 과거를 말한다고 지금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과거를 들춰내려고 할까.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려 본들, 현재가 바뀌고 미래가 장밋빛이 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굳이 아버지를 말하고, 어머니를 말하고, 마음의 상처를 드러내라고 한다. “내 과거에는 별 이야기가 없다”라고 하면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가 ‘방어 기제’를 보이고 있다며 ‘고상하게’ 해석하기도 한다. 사실 과거를 털어놓고 이해하는 것이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확고한 근거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중요하다.
이미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다. 지난 과거는 그저 과거일 뿐이다. 다만 우리는, 과거를 다르게 이해하고 그것에 대해 새로운 감정을 느낄 수는 있다. 과거 그 자체와, 과거에 대한 현재의 해석은 별개다. 과거 사건에 대한 태도가, 사건 그 자체보다 중요하다. 과거는 심리적으로 재편성 될 수 있다. 비록 변할 수 없는 과거지만, 의미 있는 방식으로 과거를 재해석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과거가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과거를 지배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과거를 해석하느냐”이다. 과거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된다. 기억의 파편들과 현재의 경험으로 끊임없이 재구성될 수 있다. 현재와 미래를 추동하기 위해 과거가 새롭게 이야기될 때, 삶의 의지도 끓어오르는 법이다.
또 다른 선수가 계속 손을 들었다. 진행자는 그를 미쳐 보지 못 했는지,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내가 그의 눈을 맞추고, 질문해보세요, 라고 했더니 그녀는 "인간에게 후회란 뭘까요?"라고 물었다.
언스플래쉬
후회? 나도 후회에 종종 빠진다. 의대를 입학한 일을 후회했고 (지금도 의대에 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고 공상에 빠지곤 한다) 정신과 말고 다른 전공을 선택했으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상상한다. 학위를 할 때 지도교수가 꼭 그 사람이어야 했을까, 하며 진한 아쉬움을 느끼기도 한다. 누군가를 만나고 인연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였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고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마음으로 그려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할까? 그렇지 않을 거다. 비록 내 선택에 후회와 아쉬움이 어느 정도 있는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나의 선택이니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았고 그 결과로 지금의 내가 되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살아보라고 해도, 지금까지보다 더 낫게 살 자신은 없다. 지금껏 살아온 삶이 영원히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비록 또다시 고통 속에 빠져들겠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할 거다. 과거를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그 속을 뚫고 지금에 이른 내가 나는 자랑스럽다.
내가 영원히 반복하길 진정으로 원하는 것만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 니체는 이러한 실천만이 “우리의 삶에 영원의 형상을 새기는” 길이라고 말한다. 영원회귀는 틀에 박힌 것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영원회귀는 이 순간의 삶에 영원성을 부여할 수 있을 정도로 영원히 반복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삶이 영원히 반복되기를 원할 정도로 정말 간절히 원하는가? ... 너의 삶을 다시 살기를 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살아라!
(『니체 - 알프스에서 만난 차라투스트라』 중에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고,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고난을 겪으면 어떻게든 그것을 가슴에 꽁꽁 숨겨두려고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을 마음에 품고도 친구를 사귀고, 사랑에 빠지고, 취직해서 일을 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며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다. 하지만 불현듯 가슴이 휑해질 때, 마음의 갈라진 틈으로 과거가 불쑥 솟아오를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또 다른 위기에 맞닥뜨리거나 마흔이 되고 쉰이 되어 인생 반환점을 돌 때 묻어두었던 과거는 지진처럼 요동친다. 자신의 삶이 정처 없이 떠돌다 원치 않는 곳에 이르렀다 여길수록 지난 상처는 더 크게 솟구친다. 아픈 기억이 너무 크고 무거우면 물속으로 가라앉는 배처럼 삶은 멈춰버린다.
과거의 기억은 몸 밖으로 나와 이야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내 것으로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고통스러운 과거는 말을 통해 세상으로 나가 새로운 이야기가 되고, 그것이 내 몸으로 되돌아와 나의 일부가 된다. 이렇게 되었을 때 과거가 나를 발목 잡지 않고, 현재에 더 충실할 수 있으며, 미래를 향해 과감히 한 발 더 내디딜 수 있다. 은밀한 과거가 특별한 역사로 승화될 때 자신의 진정한 가치가 비로소 발견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과거를 다시 이야기하는 정신 치료가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내 과거를 나만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거짓말 같다. 현재를 모르는 내가 과거를 알 리 없다.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잘못인 것 같다. 결과가 일어나지 않고 원인이 어디에 있으랴. 중력이 있기 때문에 천체가 운행하고 사과가 떨어진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는 반대였다. 영국의 시골에서 사과가 떨어진 뒤에 만유인력이 생겨난 것이다. ( 『도토리』 중에서)
김병수(정신과의사)
정신과의사이고 몇 권의 책을 낸 저자다. 스트레스와 정서장애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하고 진료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교수 생활을 9년 했고 지금은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의 원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