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장애 아이 보호자들을 만나보면 장애 아이가 자기한테 올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류승연은 쌍둥이 남매의 엄마다. 이제 열 살이 된 남매 가운데 아들 동환이는 발달장애인. 장애인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말에는 이견이 없는 사회에서 그러나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일은 외롭고 힘에 겨웠다. ‘세상이 갑자기 나한테 왜 이래?’라고 생각할 만큼 삶이 180도 바뀌었던 것이다. 그는 “미안해요. 죄송해요”라는 말을 달고 살아야 했고, ‘고개 숙인 엄마’가 되어야 했다. 내 아이가 장애인이라서 미안하다, 이 말은 특히 동환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매일 같이 해야 했던 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부 학부모가 동환이의 퇴학을 위해 교육부에 진정을 넣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말았다.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어, 고개 안 숙여! 이제는 보호자들이 바뀌어야 해.’라고 생각한 류승연은 2016년 11월 <더퍼스트미디어>에 ‘동네 바보 형’이라는 글을 연재하기 시작한다. 연재글을 묶은 책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에서 그는 장애인의 삶, 장애인 보호자의 삶을 자세히 보여주고, 아직까지 만연해 있는 사회의 편견과 차별의 실체를 낱낱이 고발한다. ‘장애 바이러스’가 묻은 괴생명체들처럼 여기는 시선이 장애인뿐만 아니라 장애인과 한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 것인지 말한다. 배려의 차원을 넘는 훨씬 적극적인 차원에서의 인식 변화를 요구한다. “장애 아이들이 분노발작 일으킬 때” 장애인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쳐다보고, 거부감 나타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탓하며 쳐다보”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장애인을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다.
일상을 자세히 보여주는 것만으로
2016년 11월부터 현재까지 <더퍼스트미디어>에 ‘동네 바보 형’이라는 글을 연재를 하고 있어요. 연재를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 처음 순간 하셨던 생각이 궁금했어요.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적기도 하셨는데요.
동환이가 사람들 사이에 부적응자로 있어야 했던 이유는 사람들이 동환이의 장애를 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동환이에게 편견을 갖고 있었던 거죠. 이 아이가 생각만큼 괴물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몰라요. 그러니까 특히 아이가 어릴 때, 보호자들은 작은 사건도 크게 만들죠. 우리가 알고 있다면 정보를 거를 수 있는데요. 모르는 사실은 듣는 것이 그대로 정보가 되는 거예요. 안 되겠다, 또 이런 일을 내 아들에게 겪게 하지 않으려면 이제는 알려야겠다, 한 거죠. 그런데 가르치려 하면 사람들은 다가오지 않아요. 보는 것만으로도 알게 되거든요. 일상을 자세히 보여주는 것만으로 스스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그런 마음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쓸 때 정말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뭔가요?
장애가 특별한 게 아니라는 것. 우리는 말로는 다 끄덕이고, 알아요. 다들 ‘다른 건 틀린 게 아니야’라고 하고요. 이 말에 반대하는 대한민국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그렇지가 않아요.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죠. 저도 이기적인 생각에서 책을 쓰기 시작한 거예요. 내 아들만 그렇게 대하는 게 아니라 아들의 가족인 나, 우리 가족까지도 함께 ‘장애 바이러스’가 묻은 괴생명체들처럼 여기는 시선을 느꼈거든요. 제가 먼저 느껴버렸으니까요. ‘세상이 갑자기 나한테 왜 이래?’했었으니까요.
심지어는 가족 안에서도 장애를 모르는 경우도 많잖아요.
내 피붙이가 장애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그분들이 먼저 이해를 해야 해요. 예를 들면 친정 엄마가 그렇죠. 내 딸이 장애 아이를 키우고 있는 건 알아요. 힘든 건 알지만 쟤가 대체 뭘 하고 살지, 무슨 생각으로 살지, 아무것도 몰라요. 이 책을 쓰면서 사람들한테는 장애는 특별한 게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요. 사실 장애가 가진 특성 때문에 장애인이 있는 가정은 특별한 환경 속에서 살게 돼요. 그 환경은 겪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그런 것을 알면 그들을 바라볼 때 좀 더 이해하게 되겠죠. 다른 가정들은 나나 너나 사는 것 비슷비슷하잖아요. 대충 이해가 되는데요. 장애인이 있는 가정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있다면 읽고, 이해를 했으면 좋겠어요. 가족부터요.
이것 역시 저자의 경험이겠죠?
시어머니가 조금 먼 친척한테 동환이를 숨겼어요. 동네에서 친구 분들을 만나서도 손자가 장애라는 걸 말하지 못하셨고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처음으로 다른 친척 모임에도 데려가자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쓰길 잘했구나(웃음) 생각했어요.
제일 먼저 교사에게 추천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어떤 마음에서 그렇게 생각했을까, 무겁게 느껴지기도 해요.
진정한 사회 변화를 원한다고 한다면 우리 같은 어른들이 바뀌는 게 제일 좋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바꿀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고요. 어린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워야 해요. 그 아이들은 지금부터 바뀔 수 있어요. 그걸 바꿔주는 게 오롯이 교사의 몫이에요.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에 완전히 달려있죠. 일 년에 두 번 장애 교육을 받긴 하는데요. 너무 형식적이에요. TV로 보고, 얘기 하는 것으로는 안 돼요. 결국은 교사가, 담임선생님이 해야 하고요. 담임선생님의 역할이 매우 크죠. 반에 있는 장애 아동을 어떻게 대하고, 우리 반이라는 사회 안에 이 아이를 어떤 역할을 가진 구성원으로 두고 의미를 부여하느냐 자체만으로 아이들은 따로 장애인 교육 안 받아도 교육이 돼요. 그런데 대부분의 교사가 장애를 모르죠. 아이를 너무 겁내고 특수 교사한테 맡긴다든가 혹은 너무 잘해준다든가 하면 교육이 안 되거든요.
너무 잘해주는 것, 또 다른 의미의 대상화니까요.
당연하죠. 청소도, 뭣도 다 열외를 시키면요. 반 아이들은 그걸 보면서 그 아이를 나와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어버려요. 말로는 누구나, 대한민국 국민 모두 “장애가 뭐 어때”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아무도 그렇게 못하고 있다니까요. 그게 어릴 때부터 시작이에요. 교사들부터 시작해야 해요. 교사들이 먼저 장애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할 수 있어야 특별히 장애 교육을 안 하더라도 아이들이 성장한 20-30년 뒤에 사회가 바뀌어요. 교사들의 일이에요. 교사들이 아무것도 모르거든요. 제일 문제라고 생각해요.
연재하는 동안에도 많은 일이 있었어요. 초등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다가 특수학교로 전학을 결심한 일도 있었고요.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어, 고개 안 숙여! 이제는 보호자들이 바뀌어야 해.’라고 생각하면서 글도 쓰고요. 동환이가 2학년이 되면서는 먼저 다가가려는 노력을 했어요. 편지도 준비하고, 담임선생님한테도 장애인 교육을 내가 하겠다고 물어도 보고요. 열심히 해보려고, 바뀌려고 하고 있는데 전학을 권고 받은 거죠.
통합교육을 받았던 마지막 소풍 장면에서 ‘모든 어른들은 마음이 아팠다’라고 쓰셨죠.
그때 생각하면 또 슬퍼져요. 동환이가 불쌍해서요. 사실 동환이는 기억도 못하겠죠. 그날 하루 소풍 갔던 건 기억도 못할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이 괜히 마음 아픈 건 우리 어른들인 거예요. 누구나 이게 동환이의 마지막 소풍이라는 걸 알고 있잖아요. 엄마인 제 입장에서는 쫓겨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비장애인 또래와 함께 하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저렸고요. 담임선생님은 장애 아이도 학생이니 좀 더 껴안았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요. 실무사 선생님은 특수교사에 대한 반발심이 생긴 거죠. 특수교사의 권고로 특수학교로 전학을 하게 된 거니까요. 우리 모두가 마음이 아팠죠. 장애에 대한 무지, 선한 의도에서 나온 실수, 이런 것들이 모여서 결국 전학을 결정해야 했죠.
전문가 육성이 선행되어야
구조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더라고요. 장애가 ‘인생을 모두 바꿔놓’았다고 표현하셨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어느 정도 삶에 영향을 끼칠 수는 있어도 사회가 제대로 역할을 한다면 한 사람의 인생이 이토록 극적으로 바뀌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에요.
심지어 발달장애 영역은 더 인식이 낮아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복지 수준이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오히려 전 정부보다 발달장애 관련 예산이 줄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정부도 바뀌었고, 복지가 좋아지겠지, 라고 해요. 아니에요. 현실은 달라요. 예산 집행자들에게 아직까지 발달장애는 중요하지 않은, 소수의 문제라는 인식이 있는 거예요. 사실 저는 어렵게 키우는 사람이 아니에요. 복지 예산이 줄면 저 같은 가정, 아빠가 돈을 벌고 엄마가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은 그다지 어렵지가 않은데요.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차상위 계층이나 수급자 가정은 피부로 느낄 거예요.
가정의 소득 수준이 많은 것을 좌우하는 거예요.
사회가 그렇잖아요. 사는 지역에 따라 아이들이 가는 대학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죠. 장애 아이들도 부모의 경제력이 있으면 어릴 때부터 조기교육을 굉장히 잘 받아요. 지금은 몇 백만 원 하는 조기 교실이 다 개설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돈이 없으면 어떡해요? 복지관을 이용하거나 어린이집에 종일 맡겨놓거나 해야죠. 어쩔 수 없어요. 장애 영역도 어쩔 수 없이 대한민국의 사회이기 때문에 돈이 있으면 그만큼 다르죠.
저자도 한 달에 백만 원이 우습게 나갔던 경험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희망e든 카드(보건복지부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의 국가바우처 통합카드)’로는 터무니없어요.
그 카드에 나오는 돈이 한 달에 22만원이에요. 그런데 치료실 비용 제일 적게 나가는 게 기본 하루에 4만원이란 말이에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4-5만원 선이에요. 한 달에 22만원이면 다섯 번밖에 못 받잖아요. 일주일도 안 되는 거죠. 돈 좀 있고, 여유 좀 있으면 아침부터 오후 몇 시까지 쭉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희망e든 카드는 하루에라도 다 쓸 수 있죠.
복지 예산을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1등급 장애인 수를 줄이려 하는 건 아닌지, 왜 1등급을 받아야 하는 아이에게 1등급을 안 주기 위해 남의 평균을 가져다가 내 아이의 점수로 둔갑시켜 총점을 올리는 것인지 물었다.(중략) 아들을 매일 마주하는 모든 치료사들로부터 아들의 인지와 행동이 1등급 장애인에 해당한다는 소견서도 받아 함께 제출했다. 하지만 조정 신청 결과 역시 2등급 판정.(78쪽)
장애 등급 판정도 문제가 많은 것 같아요.
내년부터 장애 등급제가 폐지되는 건 아시죠? 큰 틀은 동의하는데요. 대안이 필요해요. 제일 좋은 대안으로 보는 게 ICF(국제기능장애건강분류,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예요. 1,400개 문항이 있어요. 우리는 장애 등급 판정을 할 때 몇 십 개 되는 문항에서 검사가 끝나는데요. ICF는 1,400개 문항이 있어서 이걸 하려면 보호자들이 다 붙어서 해야 해요. 대신 그렇게 되면 ICF 결과만 보고도 그 장애인에 대한 데이터가 구조화되어서 나오죠. 말은 거의 못하지만 화장실은 혼자 다닐 수 있어, 혼자 차 기다리는 것 가능해, 언어치료는 필요하고 장애인 콜택시는 필요 없어. 이렇게 되면 천차만별인 장애인 각각에 맞는 예산을 지원해줄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제반 사항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아요. 문제가 많죠.
‘장애인’이라는 말로 범주화 하기에는 장애인 개개인의 사정이 워낙 다른데 말이에요.
지금은 제도화 되어서 그 안에서만 해야 해요. 어떤 것은 필요 없는 아이도 있고요. 또는 너무 절실한데 더 치료 받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거든요. 언어 다 되는 아이들이 언어치료 받을 필요가 없잖아요. 또 어느 지역에는 승마가 되고, 놀이 체육이 되는데 다른 지역에는 아예 그런 프로그램도 없고 그래요. 개인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구조화 되어야 하고요. 그것을 위해서는 전문가 육성이 선행되어야 해요. 그런데 심지어 그것을 위한 전문가도 없어요. 그렇다면 5년 뒤라도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지금부터 전문가 육성 과정이라도 만들어야 하는데요. 그것조차도 안 하고 있어요.
‘장애인 컨설턴트 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하셨잖아요. 말씀하신 전문가 기반이 없으니까 계속 제자리인 건데요. 이 점에 있어 가장 시급한 문제는 뭐라고 보세요?
사실 이것도 10년, 20년 전에 비하면 춤을 출 정도로 많이 좋아진 거예요. 지금 20대 성인이 된 자녀를 둔, 부모 운동의 중심에 계신 보호자 분들이 투쟁하고 요구해서 그나마 바우처 카드라는 걸 받고 있는 거고요. 가족지원센터에 가서 상담도 받는 거예요. 장애인 콜택시도 마찬가지고요. 그 전에는 아예 아무것도 없어서요. 지금은 한 번 치료 받는 데 4만원‘밖에’ 안 하지만 당시에는 치료를 받으려면 집을 전세로 바꾸고, 또 월세로 바꾸면서 해야 했어요. 그럴만한 경제력이 없으면 우리가 어렸을 때 동네에서 봐왔던, 그냥 방치된 이상한 동네 형들이 되었던 거고요. 치료실 자체가 많지 않았던 데다가 부모도 장애를 몰랐죠. ‘모지리’ 태어났다면서 그냥 방치했잖아요. 이런 과정을 거쳐 그나마 지금까지 온 건데요. 왜 이렇게밖에 안 되느냐 생각을 해보면 사회 인식인 것 같아요.
네, 사회 인식이요. 정말 중요한 부분이에요.
선진국 복지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외국은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만큼 사회적 인식도 높아요. 장애 아이들이 분노발작 일으킬 때 우리나라처럼 안 쳐다봐요. 오히려 쳐다보고, 거부감 나타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탓하며 쳐다보죠. 사회 제도, 복지의 변화라는 건 사회 인식이 함께 따라줘야 해요. 1세대 보호자 분들은 워낙 황무지였기 때문에, 사회 인식보다 일단 당장 국가 제도 하나 없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에 열심히 운동해서 지금 우리가 누린 이 혜택을 주신 거예요. 하지만 그러느라 사회 인식을 함께 끌어올릴 여력은 없었던 거고요. 이제는 저 같은 사람도 생겨나기 시작하는 거죠. 사회 인식이 같이 바뀌어주지 않으면 더 이상 질을 바라볼 수 없어요. 필요에 의해 생겨난 존재겠네요, 생각해보니까.(웃음)
힘 빼지 마세요
특히 중요한 책의 메시지라고 한다면 장애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다, 라는 점이었어요.
정말 그걸 사람들이 몰라요. 닥쳐보기 전에는 모르죠. 주변에 장애 아이 보호자들을 만나보면 장애 아이가 자기한테 올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장애라는 것은 그렇게 와요. 성인도 마찬가지죠. 동네에 친하게 지낸 집이 있어요. 거기 남편 분이 워낙 좋으셔서 눈이 오면 집 앞 청소도 먼저 하시고요. 인기도 많은 분이었는데요. 갑자기 회사에서 쓰러지신 거죠. 뇌출혈이었어요. 몸도 마비가 되고, 인지 수준이 네 살 아이가 되어버렸어요.
그런 면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더 많이 전달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두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우선 얘기한 것처럼 교사나 가족 안에 장애가 있는 피붙이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가슴에 가장 큰 대못을 박는 건 장애 바이러스가 옮을까, 쳐다보는 타인이 아니라 내 엄마, 내 아빠, 내 시어머니, 내 가족이거든요. 한편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정말 많은 장애인 보호자들과 소통을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느끼는 게 우리는 아직도 ‘장애도(島)’에 빠졌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거였어요. 장애도에 빠져야만 좋은 부모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여기서 나가려고 하면 죄책감이 들어요. 그래서 우리는 나 자신을 희생하고, 피를 내고, 불행해도 아이가 조금 더 밝아지면 된 것 같아요.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건강하지 않은 거고요. 오래 갈 수 없어요. 어떤 분이 어릴 때 힘 빼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 싸움은 내가 죽든, 동환이가 죽든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라고요.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이제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아들의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내 세상이 ‘장애’로만 가득 차 있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대신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남편의 이야기도 하고, 딸의 이야기도 한다. 이제 나는 ‘장애도’에서만 사는 게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함께 살고 있다. 보통 삶을 살고 있는 다른 엄마들처럼 말이다.(281쪽)
한편으로는 이 책이 딸 수인이와의 관계 성장기로도 읽혔거든요. 그 부분도 굉장히 중요해요. 장애인 형제를 가진 자녀들, 부모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하는 부분 말이에요.
장애도에 빠져서 장애 아이를 위해 온갖 것을 다하면 그렇게 돼요. 사람의 에너지는 무한하지 않거든요. 그러면 장애 아이 기능 하나가 좋아지는 대신 스트레스가 다른 가족한테 가요. 제일 먼저 배우자, 그리고 비장애 형제자매죠. 대항하지도 못해요. 이렇게 힘들게 희생해서 장애 아이를 돌보고 있는 것을 아니까요. 싸울 투지도 못 갖고요. 차라리 참고 말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가정이 파괴된다고 하잖아요. 마음의 파괴예요. 장애도에서 빠져나온다는 건 그렇게 봐요. 장애만 봤던 데에서 빠져나와 남편도 보고, 다른 비장애 형제자매도 보고, 무엇보다 내 자신도 볼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우리는 평생 어린 아이를 키워야 하잖아요.
딸 수인이에게 정말 바라는 것이 뭔가요? ‘네 인생을 살아라’라는 말을 계속 한다고 하셨잖아요.
잠잘 때도 저는 동환이를 보고 자야 하거든요. 수인이는 십 년 동안 제 등만 보고 잤어요. 지금 상황은 장애인 가족이라는 특수한 사정 때문에 감내해야 할 자기 몫인데요. 다만 엄마이기 때문에 너무 미안해요. 적어도 수인이가 스무 살부터는 무조건 자기 인생을 살았으면 해요. 행여 제가 죽은 후에 동환이를 수인이에게 맡기는 짓은 절대 안 할 거예요. 어렸을 때 다른 아이들은 하지 않아도 될 인생의 많은 짐을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지고 살았기 때문에요. 스무 살부터는 네 인생을 살라고 정말 많이 얘기했어요. 양치하다가도 제가 “네가 기억할 게 뭐라고?” 물어요. 그러면 수인이가 “나만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대답해요. 저는 수인이가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사회를 위해서
시선을 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요. 무관심의 관심,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멀쩡한 사람을 한 달 뒤에 괴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비난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돼요. 잘못한 거 없지만 존재 자체만으로 그런 시선을 받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여기서 나가’, ‘너 싫어’라는 시선 말이에요. 화장실을 가건 식당을 가건 버스나 지하철을 타건 하다못해 집 앞에 빵을 사러 가건 그 시선을 던진다면 어떻겠어요. 그 시선을 하루, 이틀, 십 년, 이십 년 겪는다고 생각해보세요. 괴물은 그래서 탄생하는 거예요. 이것은 장애 당사자, 장애 보호자뿐만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도, 당신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해요. 사회 차원에서 자존감이 잘 형성되고 밝고 명랑한 발달장애인과 어우러져 사는 게 좋겠어요, 이런 시선 때문에 위축되고 속에는 분노가 쌓여서 괴물이 되어 버린 발달장애인들과 사는 게 좋겠어요? 어쨌든 우리는 장애인과 같이 살 수밖에 없잖아요. 선택은 세상의 몫이에요.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죠.
시선 이야기는 그런 의미까지 같이 있어요. 당장 아이를 교육하는 데 도와주면 좋겠다, 라는 의미도 물론 있지만요. 사회적인 입장에서도 분명히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예요. 시선을 거둬주는 것이 장애인 보호자나 가족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사회, 나 자신의 입장에서도 생각을 해봐야 해요.
연재할 때나 책 나온 후에 특히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으세요?
벌교에 있는 고등학생들이 인터뷰를 해달라고 전화가 왔어요. 연재 글을 읽고 발달장애인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놀랐어요. 아이돌에 관심 갖고 빠져있을 아이들 꿈이 바뀐 거잖아요. 그게 가장 많이 기억에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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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류승연 저 | 푸른숲
발달장애인이 친구이자 동료, 이웃집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려면 장애인은 낯선 존재가 아니라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