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1924년의 시카고. 열네 살 소년 로버트 프랭스가 사체로 발견된다. 용의자는 20대 초반의 레오폴드와 롭. 두 사람은 로버트 프랭스를 유괴하고 살해한 뒤 배수구 안쪽에 시체를 유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언론은 앞다투어 사건을 보도했고 뜨거운 관심 속에 재판이 시작됐다. 법정에 선 두 명의 용의자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나 뉘우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니체의 초인론에 빠져 자신들이 우월한 존재라 생각했고 “살인은 실험이었”다고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곤충학자가 딱정벌레를 핀으로 찔러 죽이는 것처럼 쉽게 정당화될 수 있는 죽음”이라는 것이다.
검사 크로우는 법정 최고형을 구형한다. 레오폴드와 롭을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호소한다. 변호사 대로우의 생각은 다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Hate the sin, never the sinner)”는 것이다. 레오폴드와 롭을 변호하며 그는 말한다. “나도 당신처럼 이들을 바라볼 수 있어요. 나도 이들이 한 짓에 대해 저주를 퍼부을 수 있어요. 야만을 위해서는, 광기를 위해서는”
연극 <네버 더 시너> 의 모티프가 된 실제 사건은 뮤지컬 <쓰릴 미> 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두 작품은 동일한 사건을 서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쓰릴 미> 가 롭과 레오폴드의 관계, 그 안의 미묘한 심리를 그리는 데 집중했다면 <네버 더 시너> 는 사건의 추이를 살피면서 검사와 변호사의 날 선 대립을 부각시킨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관객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살인을 살인으로 되갚는 것은 온당한가. 죄와 죄인을 분리해 용서하는 것이 가능한가. 쉽사리 답할 수 없지만 언제까지나 묵인할 수도 없는 문제다. <네버 더 시너> 가 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무척 신중하다. 어느 한 쪽의 주장에도 치우치지 않은 채 균형을 유지한다. 그저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만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생각하게 만든다.
존 로건의 첫 번째 작품, 한국 관객과 첫 만남
연극 <네버 더 시너> 는 1985년 이후 현재까지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연극 <레드>로 토니어워즈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극작가 존 로건이 첫 번째로 집필한 작품으로, 해외 각종 시상식에서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한국의 관객들과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뮤지컬 <판>, <넥스트 투 노멀>, 연극 <필로우맨>, <보도지침>, <날 보러 와요>, <도둑맞은 책>의 변정주가 연출을 맡았다.
신구 배우들의 조합도 눈에 띈다. 베테랑 실력파 배우 윤상화, 이도엽, 이현철, 성도현과 함께 대학로의 대세 배우 박은석, 조상웅, 이율, 이형훈, 정욱, 강승호가 무대에 오른다. 기자와 멀티 역을 맡은 배우 윤성원, 이상경, 현석준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작품은 4월 15일까지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에서 만날 수 있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