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서 멀리 못보는 것이다
지금 사회를 위해, 또 개인을 위해 필요한 것은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다. 오이시 시게히로가 1972년부터 2008년 사이의 미국인의 행복지수를 보니 소득불평등이 증가하면 불행지수가 증가하는 패턴이 뚜렷했다.
글ㆍ사진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2018.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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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경기가 좋지 않으면 보험을 해약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2016년 보험소비자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득별 보험 가입률에서 중소득층(85.4%), 고소득층 (92.9%)는 변화가 없는 반면, 저소득층(60.5%)은 14.9%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해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일어난다. 생각해보면 오늘 하루를 버티기 힘든 상황이라 아무리 금리가 좋고, 몇 년만 더 부으면 세금 혜택도 받을 수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에 반해 부자들은 어떻게든 버텨내면서 같은 금전적 어려움이 있어도 다른 방식으로 해결한다. 이 상황을 “가난한 사람들은 참을성이 모자란다. 그래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이해하기 쉽다.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 예가 어릴 때 마쉬맬로우를 먹는 걸 오래 참지 못한 아이들이 나중에 대학 입학시험 SAT점수가 낮다는 마쉬맬로우 테스트다. 일찍이 멀리 내다보고 잘 참는 사람이 공부도 잘하고, 나중에 사회적 성공을 거둔다는 이야기다.

 

이런 가정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가난하고 불평등하면 사람의 마음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라고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가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심리학과의 키스 페인 교수의 부러진 사다리(The broken ladder)』 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저자는 매주 토요일 대학교육을 받은 중산층 집안인 스티븐이란 친구의 집에서 놀았다. 어머니는 흔히 “오늘 뭘 하고 놀 거니?”라고 묻고, 스티븐은 알고 보니 오전에는 두 시간 농구를 하고, 오후에는 비디오 게임을 할 것이다라는 식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살아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매일 그때그때 되는 대로 살아오는 것이 저자의 가족뿐 아니라 주변의 당연한 생활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습관 덕분에 페인 교수는 중산층 출신 동료들의 성실함과 체계성이 부족해서 무척 힘든 대학생활을 보냈다.

 

문제는 이게 저자 개인의 성격적 특성이 아니라, 그가 속한 계급에서 보고 자란 문화적 습성이라는 것이다. 사회에서 복지정책을 세울 때 기본적으로 빈곤층이나 중산층이 같은 상황에 던져지면 똑같이 판단하고 행동할 것이라 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부유한 사람은 미래를 계획하고 기다릴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극단적인 현재주의를 따른다. 미래를 멀리 바라보며 저축하고 지금의 욕망을 참고 더 큰 이득을 바랄 여유가 없다.

 

저자는 이런 성향을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한다. 생명체는 자기자신의 생존과 다음 세대의 창조 중 환경 요인에 따라 달리 투자한다. 현재 사정이 좋다면 오래 건강하게 살 가능성이 높으므로 기회를 엿보다가 최선의 상황에 아이를 낳는다. 반면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면 미래가 불투명하니 아이를 낳을 만큼 오래 살지 여부도 알 수 없다. 이럴 때에는 이 한 몸 튼튼하게 잘 버티고, 아이를 낳더라도 최대한 빨리 낳는 것이 낫다. 전자를 ‘느린 전략’, 후자를 ‘빨리 살고 일찍 죽자’ 전략이라고 한다. 실제 2000년대 중반 가난하고 혼란스러운 가정의 소녀가 초경을 일찍 시작하고, 시카고 시에서는 가난한 지역의 여성이 첫 아이의 출산을 먼저 한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압박을 받거나, 주변 환경이 척박하면 멀리 보기보다는 바로 눈앞의 일에 몰두하고 최대한 빨리 성과를 얻는 일을 하는 근시안적 판단을 하게 된다. 알 수 없는 미래보다, 분명한 현재가 더 소중해지는 것이다.

 

이는 절대적 가난도 있지만 상대적 불평등을 느끼는 사람에서도 현재주의가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한 연구에서 피험자를 무작위로 둘로 나눠 절반에게는 상대적으로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돈을 갖고 있다고 알려주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적은 돈을 갖고 있다고 알려줬다. 그후 “오늘 100달러를 받을래요? 다음주에 120달러를 받을래요?”라는 질문을 했고, 상대적으로 가난하다는 평가를 받은 사람들이 즉각적 만족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았다. 이번에는 20달러를 주면서 그냥 가지고 갈 것인지, 아니면 이 돈을 걸고 컴퓨터 도박 게임을 하겠냐는 질문에도 다른 반응을 했다. 상대적으로 부유하다고 인식한 집단은 60%가 도박을 선택한 반면, 가난하다고 인식하는 집단은 88%가 선택했다. 빈곤감을 느낄수록 위험한 선택을 하는 경향도 늘어난 것이다.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는 사람은 눈앞의 일에만 집중하고, 위험한 행동을 하고, 미래를 소홀히 여기게 된다. 실제 가난하지 않더라도 주변과 비교해서 주관적으로 그렇다고 인식하는 것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한국의 전체적 경제 수준은 매우 높아졌다. 동시에 한국의 소득불평등은 최근 십년 사이에 더욱 커졌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6년까지의 소득분배 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상위 10%의 소득 비중은 48.7%였다. 같은 해 프랑스(32.6%)와 스웨덴(30.6%)는 말할 것 없고, 미국(48.3%)과 일본(42%)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상위 10%의 소득 비중은 2003년까지만 해도 36.3%로 유럽 수준이었으나 2004년 40.71%를 기록한 이후 꾸준히 상승을 했다. 즉, 우리가 느끼는 소득 불평등이 지난 10년 사이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노동소득보다 사업소득/금융소득을 통한 격차가 더 커졌다는 점이다. 임금상승에 의한 격차보다 부동산/금융과 같이 축적된 자본에 의한 돈이 돈을 벌게 하는 것에 의한 소득격차가 전체 소득불균등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


이런 지난 십년 사이의 한국의 사회변화는 한국인의 심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 유행하는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탕진잼’도 우리 사회의 환경이 척박해지면서 사람들이 웰빙과 건강보다 이런 작은 사치와 욕망 충족을 얻는 트랜드로 변화한 것이다. 먼 미래보다는 당장의 즐거움이라도 얻자는 마음이 전반적 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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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이런 소비행태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건강,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가별 통계를 보면 선진국의 국가 평균 소득과 사회-건강 문제는 크게 연관성을 없었다. 반면 최상위 20%와 최하위 20%의 격차를 본 불평등지수로 보면 불평등이 높을수록 건강 및 사회문제도 많아지는 양의 상관관계가 관찰되었다. 자신이 평균소득을 버는 중위 집단에 속한다고 해도, 불평등이 심한 국가나 지역에 살면 건강을 해칠 위험이 더 높다는 의미다. 더 나아가 2015년 경제학자 케이스와 디턴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전반적인 선진국의 사망률은 의학과 보건환경의 발달로 감소했지만 1990년 이후 미국 백인 중년연령대의 사망률은 상승했다. 특히 대학학위가 없는 백인 남성에서 두드러졌다. 이들은 간경변, 자살, 만성통증에 의한 진통제 과용으로 많이 사망했다. 저학력의 백인남성은 미국사회의 급격한 빈부격차와 불평등의 증가를 몸소 인식한 집단이다. 이들은 비슷한 학력의 흑인보다 잘 벌지만, 백인으로 상대적 우월감을 갖고 살아왔는데 비해, 고학력의 다른 백인 남성이 엄청난 고소득을 올리는 것을 보고 강한 좌절을 느꼈고 이것이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렇게 가난과 불평등은 은연중에 우리의 선택, 판단,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건강문제와 사망률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직장의 여러 가지 불평등을 개선해야한다고 저자는 제안한다. 능력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열심히 일을 해서 충분한 보상을 받는 환경이 개인의 업무 성과와 회사 전체의 이익을 높여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팩트는 다른 방향이었다. 경제학자 매트 블룸은 모든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팀의 8년간 승률을 분석했다. 만일 위의 가정이 맞다면 상하위 연봉의 격차가 클수록, 즉 엄청난 연봉의 스타플레이어가 영입된 팀의 승률이 높아야한다. 결과는 연봉 격차가 큰 팀의 성적이 더 나빴다. 더욱이 고연봉으로 스카웃된 스타 플레이어들의 팀별 개인 성적을 분석해보니, 불평등이 심한 팀에 들어간 스타 선수의 성적은 그렇지 않은 팀의 스타 선수의 성적보다 좋지 않았다. 불평등은 팀의 단결과 화합을 해치고, 개인의 성적까지도 저하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사회를 위해, 또 개인을 위해 필요한 것은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다. 오이시 시게히로가 1972년부터 2008년 사이의 미국인의 행복지수를 보니 소득불평등이 증가하면 불행 지수가 증가하는 패턴이 뚜렷했다. 이는 상위 20%를 제외한 모든 계층에서 볼 수 있었다. 미국과 같은 부자 나라라 해도 소득 불평등은 타인에 대한 신뢰감을 낮추고 행복감을 얻기 힘들게 한다. 불평등을 도덕과 윤리의 관점에서 좋은 것, 나쁜 것으로 판단해서 보기보다 행복감과 건강을 위한 공중보건의 문제로 보자고 제안한다. 물론 유토피아적 생각일 수 있다고 저자도 인정한다. 그렇다면 현실적 제안은 무엇일까?

 

사회의 변화가 요원하다고 느껴질 때 개인의 선택과 판단으로 현명한 사회적 비교를 하자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의 목표와 현재를 정확히 잘 이해하고, 적당한 수준의 상향 비교를 통해 동기부여를 하고, 나보다 못한 사람과 하향 비교로 안전감을 획득하는 두 가지 비교를 잘 이용하는 것이다. 위와 아래의 경계를 잘 설정하면 크게 보면 불평등한 사회 안에서 살지만 심리적 안정감은 유지할 수 있다. 또한 내 성취에 있어서 경쟁이 최고조에 이르고, 경쟁자들의 능력치가 비슷하다면 이때 아주 성공한 사람과 적당히 성공한 사람을 가르는 것은 바로 ‘운’이다. 결국 인생은 ‘운빨’이라고? 노력해봤자라고? 그게 아니라 능력주의자들이 반복해서 말하는 “나의 성공은 성실성과 노력 덕분”이라는 수사에서 오는 보상에 대한 집착, 특권의식, 사다리 걷어차기를 없애는 길은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차이가 없다. 운이 좋았을 뿐이다”라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책은 작년에 출간된 아픔이 길이 되려면』 과 맥락이 비슷하지만 다소 다른 결론을 내린다. 거시적 측면에서 건강을 다루는 사회역학자와 심리학자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두 저자 모두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사회를 배제한 인간은 없다’는 것, 그 중에서도 사회적 불평등과 가난은 그 자체뿐 아니라, 주관적 인식까지도 현재의 판단과 행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행복해질 기회를 앗아간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행복하다면 그동안 얼마나 운이 좋았던 덕분이라 감사해야 할 것이며, 어려운 처지에서 처한 사람의 현재주의적 판단과 행동이 성격적 결함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이 책이 전달하는 중요한 메시지다. 
 

 


 

 

부러진 사다리키스 페인 저/이영아 역 | 와이즈베리
‘나는 저 사람보다 가난해’라는 인식이 우리 삶을 어떻게 송두리째 바꾸는지 생생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가난을 개인의 인격적 결함으로 보는 잘못된 시각도 바로잡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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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사다리 #가난 #불평등 #소득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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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