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이 났다. 걱정이다
더 큰 지진의 전조는 아닐까, 삼국사기처럼.
글ㆍ사진 김성광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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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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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경주에 지진이 났을 때 부모님과 동생이 연락되지 않았다. 수 차례 전화를 시도했으나 소식이 닿지 않았다. 지진이 흔들고 간 경주의 모습이 뉴스와 SNS에 차곡차곡 업데이트 되는 사이, 내 마음은 걱정으로 조금씩 붕괴하고 있었다. 한 시간 가량이 지나서야 마음을 쓸어 내렸다. 경주는 내 고향이다.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도 잊은 채 순식간에 계단을 뛰어내려 건물 밖으로 도망쳤다고, 어머니는 근처 공터에서 놀란 목소리로 상황을 전했다. 아파트가 휘청 흔들렸고, 마치 자동차 앞유리가 금이 가듯 온 건물이 자자작 잘게 쪼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어머니 목소리 뒤로 수많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불안하게 울리고 있었다. 다행히 부모님도 집도 큰 손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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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가 고향인 내게 포항은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아주 가까운 도시다. 어린 시절 나는 포항 돌핀스를 응원했다. (프로축구단 포항 돌핀스는 아톰즈를 거쳐 지금의 스틸러스가 되었다) 여름방학 땐 북부 해수욕장(지금의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피서를 갔고, 12살에 맹장염에 걸렸을 땐 포항성모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했다.(경주에 동국대 병원이 생기기 전) KTX가 생기기 전엔 서울로 가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 새마을호였다. 포항과 울산에서 각각 출발한 열차를 경주에서 연결한 후 서울로 올려 보내는 게 경주발 새마을호 였다. 그래서 경주역엔 유독 긴 7분이나 정차했다.

 

요즘도 포항과 경주는 내게 자주 연결된다. 포항으로 출퇴근하는 친척과 친구가 꽤 있다. 나도 경주에 내려갈 때면 포항 죽도시장이나 북부시장에서 뜬 회를 먹거나. 구룡포에서 게를 먹는다. 전직 대통령과 관련되어 논란 중인 회사도 요즘 핫하다. 대통령의 고향은 포항이고, 그 회사의 사업장은 경주에 있다. 대통령이 경주 이씨라 경주 이씨 문중에서 그를 밀기도 했다. 경주와 포항은 여러 가지 면에서 연결되고 겹쳐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포항엔 고모가 살고 계신다. 지진이 났다는 북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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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문자를 받자마자 고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차례 시도 후 연락이 되었다. 다행히 근처 법원으로 잘 대피하신 상태였다. 여진이 계속 될 테니 몸조심하시라는 인사를 하고 통화를 마쳤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지진은 여진도 심상치 않다. 내게 소중한 사람, 내게 친밀한 도시에 연이어 일어나는 지진으로 내 마음도 긴장 상태다.

 

무엇보다 원자력 발전소가 줄지어 있는 곳이다 보니, 자꾸 큰 재난에 대해 상상을 하게 된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혜공왕 15년(779년) 3월에 큰 지진이 났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의 지진 규모를 현대에 추정하기로는 규모 6.7 정도의 강력한 지진으로 본다고 한다. 그런데 심상치 않은 것은 『삼국사기』에 2년 전인 777년 3월과 4월에 각각 경주에 지진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이다. 어쩌면 작년과 올해의 지진은 더 큰 지진의 전조는 아닐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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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정부의 대응은 이전에 비해 신속한 편이었다. 재난문자가 신속하게 발송되었고, 정해진 라인을 따라 보고와 대응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수능 연기’라는 과감한 결정도 내렸다. 생각해보니, 열흘 전 받았던 민방위 훈련에서도 지진시 대피요령에 대해 교육받았었다. 작년에는 없던 과정이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은 보다 소중하게 대접받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포항 생각하면 수능 연기가 맞는데...>라는 헤드라인을 뽑으며 포항 외의 수험생에게는 수능 연기가 옳지 않다는 뉘앙스를 흘리는 한 언론 기사에서 보듯, 안전은 여전히 다른 여러 가치들 사이에서 1/n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도 여전하다. 최근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 위원회에서도 원전 건설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안전을 여러 경제적 요인들과 같은 선상에 놓고 상대화했다.
 
물론 안전이 중요하다고 해서 다른 요소들을 모두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라의 전력 공급체계라거나, 원자력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의 고용 같은 것은 굉장히 중요하게 사고해야 할 요소다. 하지만 무엇이 보다 절대성을 가지는지는 명확히 판단해야 한다. 나라의 전력 공급체계나 일자리를 위해 안전을 접어두기 보다는, 안전한 전력 공급 체계나 안전한 산업을 통한 일자리 확보를 개선 방향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연이은 지진이 우리들 사이에 이런 생각을 확고히 자리잡게 한다면 말 그대로 전화위복일 것이다. 수능 연기는 그런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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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이라는 가치를 우리 안에 확고히 한다는 의미에서 지진을 겪은 경험과 더 큰 재난을 대비하려는 고민이 우리 사회에 널리 공유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관련 도서들의 출간을 기다리는 것은, 내가 단지 서점인이라서가 아니다. 책이야말로 한 사회와 문제에 대한 고민을 체계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2012년 도쿄 국제도서전을 방문했을 때, 행사장 한가운데를 크게 차지했던 3.11 특별 부스를 기억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부터 1년 여가 지난 시점에, 일본의 시민사회가 그 사건으로부터 배우기 위해 얼마나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었다.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한 책들이 차고 넘쳤다. 물론 후쿠시마와 경주/포항은 피해규모가 천양지차이니 직접 비교할 수 없는 문제지만, 더 큰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는 관점에서라면 전문가와 당사자들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어야 할 시점은 오히려 지금이다.

 

일단 나는 『현관 앞 생존배낭』이라는 “9.12 경주 지진을 겪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책으로 읽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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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은 경주시민이던 1997년 여름, 나도 지진을 겪었다. 공교롭게도 태어나 처음 가위에 눌린 날이었다. 이불을 걷어찬 채 자다가 무서운 꿈을 꿨다. 분명히 깼는데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고 다리 쪽에서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는 것 같았다.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웠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갑자기 침대가 흔들렸고, 발밑에 있던 책장에서 책이 내 다리 위로 쏟아졌다. 다치지는 않았고, 쌩뚱맞지만 나는 덕분에 가위에서 풀려났다. 기상청 지진화산감시센터에서 찾아보니 그때의 기록이 있다. 1997년 6월 26일 새벽 3시 50분, 규모 4.2 지진이 가위를 풀어준 이야기라니, 나는 내가 겪은 신묘한 경험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무용담처럼, 추억처럼 풀어놓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술자리 안주로 꺼낼 이야기는 아니었다. 지진은 추억이 될 수 없다. 나는 보다 진지해야 했다. 나는 부디, 지금 이 일을 겪은 사람들이 훗날에, 지진이 단지 추억으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수능 연기가 99년생들의 무용담으로만 회자되지 않기를 바란다. 2017년 11월부터 시작된, 눈에 띄는 확연한 변화를 함께 연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삼국사기 1김부식 저 / 이강래 역 | 한길사
이 책은 삼국사기에 대한 여러가지 오해를 불식시킴과 더불어 한글세대에 맞는 정본을 염두에 두고 완역해낸 역저이다.


 

 

현관 앞 생존배낭권오민 외 저 | 아루
9.12 경주 지진을 겪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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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광

다행히도, 책 읽는 게 점점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