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한다고?
친구 녀석이 결혼을 한단다. 술자리에서 이루어진 깜짝 발표였다. 폭탄을 투하하듯 결혼 사실을 공표한 태윤은 득의양양한 표정이다. 곧바로 친구들의 축하가 이어질 터였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두환은 제 일인 양 기뻐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진짜 폭탄을 터뜨린 사람은 자신이 아니었다. 분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연홍, 그녀의 입에서 짐작하지 못했던 말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연홍은 물었다.
태윤과 두환, 연홍은 12년 지기 친구들이다. 스무 살에 처음 만난 이래로 한 몸처럼 붙어 다니며 어울렸다. 함께 야구 경기를 보고, 첫 눈 내리는 날이면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진한 우정을 쌓아갔다. 아니,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 날 밤 연홍이 화를 내기 전까지는.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면서 경멸하듯 말했다. ‘어떻게 네가 미영이랑 결혼할 수 있냐고.’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흠, 이해 못할 수도 있겠군.’ 싶다. 미영은, 그러니까 태윤의 신부가 될 이 여성은, 2년 동안 두환과 연인 사이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연홍의 반응에는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태윤이 친구의 연인을 뺏은 것도 아니고, 그가 미영과 연인이 됐다는 건 두환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두환과 미영은 태윤 때문에 헤어진 것도 아니다. 연홍은 ‘두환이 미영과 2년을 만났는데, 그동안 두 사람이 섹스도 안 했을 것 같으냐.’고 묻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태윤이 생각할 문제이지 연홍이 관여할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날카로운 말들을 내뱉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지난 12년 동안 연홍은 태윤을 짝사랑했기 때문이다.
남과 여, 그들의 우정에 대하여
<트러블메이트>의 곽두환 연출은 “어느 책에서 ‘남녀 간의 우정은 어느 한쪽의 지독한 짝사랑이 아닐까?’라는 글귀를 읽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그가 생각한 것은 “얼마나 지독한 짝사랑이면 우정으로 포장해서라도 그 간절함을 유지시킬까? 그들은 차마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에 대한 아픔을 어떻게 치유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아픔의 크기는 얼마만큼일까?”라는 것이었다. 당시의 의문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트러블메이트>는 탄생했다.
우정으로 포장해서라도 간절함을 이어가는 지독한 짝사랑. 연극 <트러블메이트>가 보여주는 사랑의 단면은 바로 그것이다. 태윤의 결혼 발표를 계기로 연홍과 두환이 감춰왔던 감정이 분출하기 시작한다. 우정인 줄 알았던 마음이 실은 사랑이었고, 소울메이트인 줄 알았던 친구들이 한 순간에 트러블메이트로 바뀌어버렸다. 누군가에게는 당황스럽고 슬며시 화도 치밀어 오르는 순간이다. 누군가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인 줄 알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우정이라는 이름으로나마 상대의 곁에 머무르기를 원한다.
세 사람의 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남자와 여자가 친구 사이를 유지한다면, 둘 사이에는 우정이 아니라 짝사랑이 존재하는 걸까. 남녀 간의 우정이란 사랑이 끼어드는 순간 어김없이 깨져버리는 ‘위태롭고 연약한’ 감정일 뿐일까. 이들 질문에 대해 연극 <트러블메이트>은 제법 확고한 태도로 답하는 듯 보이는데, 성급하게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런 경우가 전혀 없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남과 여의 우정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연극 <트러블메이트>는 대학로 위로홀에서 오픈런으로 공연된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