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2년 만에 무대에 올랐습니다. 제목만 봐서는 어여쁜 동화 같지만 화사한 대자연 속 철모가 그려진 포스터가 암시하듯 이 작품의 배경은 전쟁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남북한 군인이 함께 탄 포로수용선이 무인도에 불시착하면서 벌어지는 100일간의 이야기인데요. 유일하게 배를 수리할 수 있는 순호는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을 놓은 상태. 여신 이야기에 안정을 되찾은 순호를 위해 남북한 군인이 모두 ‘여신님이 보고 계셔 대작전’을 시작합니다. 여신님을 믿는 순진무구한 북한군 순호 역에 전작에서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 배우가 있죠? 바로 윤지온 씨인데요.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윤지온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첫공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나요. 다만 무척 따뜻한 시선들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인터뷰 당시에는 뮤지컬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공연 중이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윤지온 씨가 이들 작품에서 맡은 인물도 북한군으로 같지만, 리해진과 류순호는 달라도 너무 다른 캐릭터라 힘들었을 것 같아요.
“두 인물 모두 17살이고, 북한군이에요. 하지만 무대 위에서 보이는 모습은 완전히 다르죠. 리해진은 굉장히 강한 척 하지만 사실은 여린 친구이고, 류순호는 여리고 약하지만 결국은 극복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니까요. 리해진은 딱딱하고 군기가 잡힌 모습인데, 류순호는 텐션과 릴렉스 편차가 심해서 힘들었어요. 연습 때도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순호는 그러면 안 된다는 코멘트를 많이 받았어요.”
순호에 4명이 캐스팅된 데다 역대 순호들이 쟁쟁하잖아요. ‘내가 하고 있는 순호가 맞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을 텐데요.
“매일 매일 고민했어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그래서 연출님의 코멘트에 더 귀를 기울였어요. 제가 생각하는 순호를 보여드리고 어떤지 듣고. 연습 기간에는 칭찬을 해주신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첫공 끝나고 밤에 ‘아주 좋았다, 이제야 너만의 순호 색깔을 찾은 것 같다’고 연락하셨어요. 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정말 기뻐서 울컥했어요.”
이번 시즌을 함께 공연하는 4명의 순호는 각각 어떤 느낌인가요?
“(정)휘는 일단 가지고 있는 모습이 여려서 소중하잖아요. 그 친구는 자체가 보호해주고 싶은 느낌이고, (임)진섭이는 자이언트 베이비라서 그걸 강점으로 형들이 맞춰주더라고요. 또 (서)은광이는 실력파 아이돌이라서... 제가 가장 문제죠(웃음).”
그러게요, 리해진을 생각하면 윤지온 씨와 순호는 참 안 어울리는데 실제 성격은 어떨까요? 영상으로 직접 확인해보시죠!
히스토리 보이즈>, <은밀하게 위대하게>, <여신님이 보고 계셔>까지 남자배우들이 유독 많이 등장하는 작품에 참여하고 있는데,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연습실 분위기가 어땠어요? 워낙 참여하는 배우가 많아서 친해질 시간도 없었을 것 같은데요.
“제가 팀복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는 작품마다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어요. <여신님이 보고 계셔> 같은 경우는 대학로에서 유명하고 잘 하는 배우들이 많이 참여하셔서 다 같이 모인 적은 몇 번 없는데, 그래도 모일 때마다 굉장히 친하게 지냈어요. 제가 객석에서 바라봤던 분들과 함께 작업하니까 무척 떨렸는데, 떨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잘 챙겨주시더라고요. 특히 (홍)우진 형은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장난도 많이 치고 굉장히 웃겨서 항상 분위기를 재밌게 만드세요.”
두 작품을 함께 준비하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요?
“너무 힘들어요. 저는 공연하면서 다른 작품을 연습한 게 처음이거든요. 한 번에 두세 작품을 하는 분들은 체력관리를 어떻게 하시는지. 제가 생긴 것과 달리 좀 허약한데 운동도 제대로 못하니까 더 힘들더라고요. 목도 못 쉬니까 망가지고. (김)수용이 형한테 목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여쭤봤더니 ‘나도 작품 안 쉬고 한 지는 몇 년 안 됐어. 처음에는 안 되는데 성대도 단련이 되더라(웃음).’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알코올과 카페인을 마시지 않고, 물을 많이 마신다고 하셔서 저도 따라 하고 있어요.”
2013년 제1회 여성극작가전 참여부터 해도 벌써 5년 차인데, 배우로서 생각했던 만큼 잘 걸어가고 있나요?
“생각한 것 이상이죠. 그동안 독립영화에 참여했고 원래 노래를 하던 사람도 아닌데, 지난해 말 <달을 품은 슈퍼맨>으로 뮤지컬 무대에 처음 선 뒤에 <은밀하게 위대하게>, <여신님이 보고 계셔>까지 하고 있으니까 저한테는 과분해요. 무대는 정말 매력적이에요. 물론 매체도 매력 있지만, 무대의 생생함! 무대는 시작과 끝이 한 번에 연결되니까 그때그때, 매일매일 느끼는 게 다르고 표현되는 것도 다르잖아요.”
2017년 하반기는 계속 북한군으로 무대에 서고 있는데, <여신님이 보고 계셔>에서는 궁극적으로 어떤 걸 표현하고 있나요?
“순호 입장에서는 ‘극복’인 것 같아요. 극중 인물들이 모두 사연이 있고 아픔도 있는데, 객석에서도 각자의 상처에 공감하고, 또 극복하는 모습에서 힐링하는 게 아닐까요.”
윤지온 씨 개인적으로, 배우로서 극복하고 싶은 건 어떤 건가요?
“무대공포증이요, 오디션공포증이라고 해야 하나(웃음). 너무 떨려요. 특히 노래는 아직 힘들어요. 그래서 뮤지컬 오디션에서 항상 떨어요.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무대 위에서 오디션을 봤거든요. 연습실에서 오디션을 봤다면 떨어졌을 거예요. 그마나 무대는 제가 계속 밟고 있으니까 덜 떨었던 것 같아요. 극복할 수 있는 걸까요(웃음)?”
연기생활 10년 차 즈음에는 어떤 모습이길 바라요?
“어떤 모습이어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오늘 행복하고, 그래서 잘 때 ‘오늘 행복했다’고 느끼면 만족하거든요. 먼 미래를 바라보고 살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연기 역시 제 스펙트럼 안에 있는 인물이라면 좀 더 수월하고 자신감 있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도전이니까 새로운 걸 만들 수 있고 그래서 어떤 연기를 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럼 질문을 바꿔서 다음 무대에서는 어떤 순호이길 바라나요(웃음)?
“제가 기억할 수 있는 순호(웃음)? 좀 더 연약하고 보호해주고 싶은 순호로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내 안의 벽은 좀 더 무너뜨리고 무대와 객석을 나누는 제4의 벽은 더 두텁게 만들어야죠.”
참, 윤지온 씨의 여신님은 누구예요?
“어머니, 부모님이죠. 부모님은 저의 원동력이니까!”
전쟁이라는 무거운 장치를 사용했지만 곳곳에 코믹한 요소를 배치해 균형을 맞춘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특색 있는 캐릭터, 서정적인 음악까지 곁들여 그야말로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인데요. 새로운 배우들이 만들어낼 또 다른 하모니도 기대가 되네요. 특히 극의 열쇠를 쥐고 있는 순호는 관객들의 사랑까지 한 몸에 받는 캐릭터인데요. 그 상황에 익숙하지 않다는 윤지온 씨의 새로운 도전, 남다른 변신도 기대해 보겠습니다. 2년 만에 돌아온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2018년 1월 21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에서 공연됩니다. 여러분의 여신님은 누구인지, 함께 들여다보시죠!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