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한 장면
김영하 작가의 소설은 꽤 많이 영화화됐다. 그에 비해 흥행 성적은, 작가의 이름값에는 못 미친다고 해두자. 그런데도 김영하 작가의 이야기는 많은 감독에게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뭐랄까, 그의 대중적인 인기에 편승해 보자는 안전주의와 더불어 원작의 매력적인 이야기와 문장으로 혹할 만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두 마리 토끼 잡기의 심리라고 할까. 솔깃한 목표이긴 한데, 그래서 함정에 빠지기 쉬운 게 김영하 작가 원작의 영화화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김영하 작가의 소설이 원작인 여덟 번째 작품이다(<내 사랑 십자 드라이버>(2000, 단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2003) <주홍글씨>(2004) <오빠가 돌아왔다>(2010) <비상구> <더 바디> <번개와 춤을>(이상 2013, 단편)). 그러니까, 8전 9기의 신화를 쓰겠다며 일떠선 연출자는 원신연이다. 원신연 감독은 어떤 이에게는 숨은 걸작의 발견을, 또 어떤 이에게 말장난처럼 구타를 유발하는 극단적인 호불호의 영화 <구타유발자>(2006)를 출발로, <세븐 데이즈>(2007)와 <용의자>(2013) 등을 만들었다. 이 목록은 그가 스릴러의 작법과 액션 연출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단서로 흘린다. 과연, 영화로 공개된 <살인자의 기억법>은 괜한 욕심 부리지 않고 자기가 잘하는 것을 하겠다는 의지가 충만하다.
외동딸 은희(김설현)와 단둘이 사는 병수(설경구)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혼자 있는 여자를 노린 살인이 연달아 벌어져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병수는 사실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경찰관으로 근무하는 태주(김남길)이다. 살인범은 살인범이 알아보는 법. 병수는 폭력적인 아버지를 살해한 후 쓰레기 같은 인간들의 목숨 줄을 끊었던 ‘살인의 추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사고로 두 차례 머리 수술을 한 이후 알츠하이머에 걸려 나중에 벽에 똥칠이나 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딸에게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한다.
그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생겼다. 태주 이놈이 어떻게 은희를 알았는지 둘이 함께 병수의 눈앞에 나타난다. 내 이 놈을 하는 순간, 근데 내 딸 옆에 있는 댁은 뉘신지? 예, 은희 남자친구입니다. 그렇군요, 제 딸 잘 부탁합니다. 앗! 다시 기억이 돌아와 주변을 둘러보니 태주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다. 태주라는 인물이 존재는 하는 걸까, 아니, 태주가 연쇄살인범이 맞긴 한 것일까? 혹시 내가 살인을 저지르고 딸 옆에 있는 태주에게 뒤집어씌우는 건 아닐까? 태주는 딸이 기억을 저장하라며 준 어학용 녹음기를 켜본다. 거기에는...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기 위해 내가 살짝 내용을 변형한 줄거리인데 부러 ‘…' 말 줄임 한 이유가 있다. 그 뒤에 이어질 사건 전개를 궁금하게 하는 서술이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각색법’이다. 미스터리 스릴러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이 장르에 익숙하다면 ‘…’에 들어갈 상황을 유추하는 건 뭐 일도 아니다. 스포일러라고 하기도 민망한데, 연쇄살인범의 증거가 되는 목소리가 담겨있을 테다. <살인자의 기억법>의 원작과 영화가 서로에게 선을 긋는 지점이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의 한 장면
알려진 대로 원작은 주인공 병수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한다. 독자는 그의 시선에서 전후 상황을 파악할 수밖에 없다. 병수가 보고 듣고 감각하는 바를 따라가되 그 정보가 사실인지, 거짓인지 구분하기 힘들다. 소위 말하는 해석의 여지가 생긴다. 원작은 그게 매력이다. 원작에는 보르헤스의 어떤 단편에서 가지고 온 설정을 병수의 입을 빌려 서술하는 문장이 있다. “노작가가 강변을 산책하다가 한 젊은이를 만나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나중에야 깨닫는다. 강변에서 만난 그 젊은이는 바로 자신이었음을. 만약 젊었을 때의 나를 그렇게 만나게 된다면 알아볼 수 있을까?”
내게는 이 문장이 소설을 이해하는 가이드로 읽힌다. 영화처럼 병수와 박주태(영화의 김태주)의 대결이 아니라 현재의 병수가 젊었을 적 살인을 일삼던 병수 그 자신을 태주라는 환상으로 불러내 기억과 싸움을 벌이는 이야기라고 이해하고 싶어진다. “인간은 시간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치매에 걸린 인간은 벽이 좁아지는 감옥에 갇힌 죄수다.” 밤과 낮이 공존하는 <빛의 제국>(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이자 김영하 작가의 장편 소설!)처럼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갖은 이야기의 파편을 쏟아낸다.
영화는 ‘증거가 되는 목소리’처럼 구체적이다. 병수가 자신의 기억 속에 갇혀 미로를 헤매는 상황이 제시되기는 하지만, 이를 범인을 잡는 데 있어 결정적인 장애 요소로 삼아 미스터리를 강조한다. 그리고 결말부를 장식할 액션의 스릴을 극대화하는 길목을 마련한다. 원신연 감독의 트레이드마크인 액션에는 일관된 테마가 있다. 생존이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중략) 소리도 진동도 없는 이 세계가 점점 작아진다. 한없이 작아진다. 그리하여 하나의 점이 된다. 우주의 먼지가 된다. 아니, 그것조차 사라진다.”고 한 원작이 기억과 사투를 벌이며 소멸하는 쪽이라면, 영화는 살려고 처절하게 투쟁해 무언가를 얻어내는 결말이다.
김영하 작가는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흥행 성적이 좋지 않은 이유에 대해 나름의 진단을 내린 적이 있다. 인물의 선과 악 경계가 희미해 관객이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는 게 원인이라는 거다. 원신연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영화에서만큼은 관객이 태수에게 심정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좀 더 강화하고 싶었다는 요지의 얘기를 했다. 그렇다면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원작자의 진단에 적절하게 반응한 처방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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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