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먹고살기 – 일과 생활에서 온전히 자립한다는 것
가사 전문가를 고용하는 것은 자신의 손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이다.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글ㆍ사진 신예희(작가)
2017.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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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무자녀, 1인 가정. 나의 현재 상태를 나름 전문용어로 쓴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혼자 살아요’다. 햇살이 쫙 들어오는 오후에 커피 한잔 만들어 머리맡에 놔두고 마루에 벌렁 누워 텔레비전 소리를 들으며 뒹굴거린다. 그러다 갑갑하다 싶으면 손가락에 차 열쇠를 걸어 빙빙 돌리며 주차장으로 내려가 부아앙 드라이브를 간다.

 

어떠냐, 죽이지? 부럽지? ...라는 말을 자녀가 있는 기혼자 앞에서 하지 않는다. 그야 당연하죠. 그런 소리를 해서 제가 대체 뭘 얻겠습니까. 사이만 나빠지지. 상대방을 무척 미워하기 전에는, 영혼을 팔아서라도 속을 벅벅 긁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런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를 당하는 일은 종종 있다. 저한테 왜 그러시죠?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책 『결혼해도 괜찮아(committed)』에는 ‘이모 연대(Auntie Brigade)’ 이야기가 등장한다. 여기에서 이모란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자녀가 없는 여성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니 이기적이고 냉정하다는 소리를 듣는 이모들, 불쌍하고 처량하단 얘기를 듣는 이모들, 나이 더 먹어서 분명 후회할 거라며 그들을 위아래 좌우로 훑는 시선들. 하지만 이모들의 삶은, 실제론, 여러 면에서 자유롭고 여유롭다고 작가는 말한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다. 책을 읽으며 이모 연대를 향해 ‘저요, 여기 한 명 더 있어요!’라고 마음속으로 손을 흔들었다. 이렇게 행복한 이모에게, 만족스러운 이모에게 굳이 ‘네 애를 낳아야지, 그게 진짜 사람 사는 거지’라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 저기요, 저한테 왜 그러시냐니까요??

‘네가 지금은 그래도 계속 혼자 살 수 있겠니, 오십 되고 육십 되면 어쩔 거야?’ 또래 지인의 이런 오지랖에 뭐라고 답해야 하는가. 걱정해주셔서 참말로 감사하다고 허리를 숙여야 하는가. 결혼하지 않았으니, 임신도 출산도 양육도 겪어보지 않았으니 진정한 어른이 아니란다.

 

좋다. 나도 물어보자. 너는 온전히 홀로 30대를 보낸 경험이 있니? 온전히 너 혼자서 네 공간을 꾸리고 지킨 경험이 있니? 그 안에서 고독을 느끼고, 때론 그걸 즐기고, 때론 그걸 떨쳐본 경험이 있니? 너는 그런 걸 해보지 못했는데, 그럼 너 역시 진정한 어른은 아닌 거니?

 

사람은 미지의 행복보다 익숙한 불행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익숙한 가족 형태만이 자신을 보호해주고 감싸줄 울타리가 될 거라 믿는다면, 한 번 더 생각해보라. 나를 보호해주고 나를 감싸줄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다...라고 한참 쓰다 보니 점점 부아가 치미는데, 마침 PMS 기간이라 그 영향인가 싶기도 하다. 잠시 숨 좀 돌리겠습니다.

 

뭐 어쨌든 삶은 계속된다. 나는 나의 살림을 꾸려간다. 더럽게 귀찮지만 할 건 해야 한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해주지 않는다. 가사 노동은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실제론 깨어 있는 시간 내내 풀가동된다.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그대로 주워 먹을 수 있다면, 샤워 후에 뽀송뽀송한 수건으로 몸을 닦을 수 있다면, 출출할 때 꺼내 먹을 음식이 있다면, 그건 모두 누군가 자기 일을 제대로 했다는 의미다. 거기에 제대로 대가를 지급했는지 자문해보자. 나는 나에게 정기적으로 대가를 지급한다.

 

바닥에 떨어진 저 거슬리는 머리카락은 내가 치우기 전까지는 영원히 저 모양 그대로 있을 것이다. 앞으로 계속 떨어질 나의 다른 털들과 똘똘 뭉쳐 큰 덩어리로 변신하겠지.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품 분리수거도 완전히 내 몫이다. 어쩔 수 없다. 청소다. 밀대에 부직포 시트를 끼워 바닥을 쓱쓱 밀고 다니든, 진공청소기를 윙윙 돌리든 전부 내 일. 참고로 나처럼 청소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청소도구를 수집하는 습성이 있다. 매번 이것만 있으면 집이 깨끗해질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 하나둘 사 모으는 것이다. 하여간 그렇게 몸을 직접 움직여가며 그 싫어하는 청소를 하는 나 자신에게 대가를 지급하는 건 당연하다. 전문가에게 일을 의뢰한 후 비용을 지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종종 ‘와이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성별이나 연령 등과는 관계없는, 직업인으로서의 와이프, 즉 가사 전문가 얘기다. 가사 전문가를 고용하는 것은 자신의 손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이다.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연말이 되면 으레 한국 여성들은 왜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 고유의 전통 명절도 아닌데, 심지어 종교도 없는 사람들까지 왜 그렇게 크리스마스 타령이래? 허영 아냐? 사치 아냐? 그런 말을 들을 때면 하핫, 웃음이 나온다. 왜긴 왜겠습니까. (주로 여성의) 노동력을 곱게 갈아 넣어야 하는 명절 대신, 근사하게 차려입고 남이 해주는 맛있는 걸 먹고 마시는 날인데 당연히 좋죠.

 

나는 요리를 무척 좋아하지만, 이걸 살림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즐거운 취미다. 요리를 좋아한다고요? 살림 잘하겠어요, 시집가야죠, 남자친구분은 좋겠네, 가정적이시네. 뻔한 반응이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취미 생활입니다. 청소를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가스레인지 주변과 싱크대만큼은 반짝거리는데, 취미 작업장이기 때문이다. 요리 관련 책에는 으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 마음, 잘 안다.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요리해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나에게 선물한다. 다른 이들을 위해 요리하고 베푸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하는 내내 그림이든 글이든, 뭐든 다 평가를 받으니 취미로까지 평가받고 싶지 않다. 맛있다는 칭찬도 필요 없다. 그저, 그때그때 먹을 만큼 만들어 식사한다. ‘남은 것 먹어치워라’는 소리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다. 아주 무례한 소리다. 내 입은, 그리고 누구의 입도 쓰레기통이 되어선 안 된다.

 

주말이 되면 남자친구를 만나 외식을 한다. 내 집은, 집인 동시에 사무실이니 굳이 주말에 거기서 요리할 필요가 없다. 주말 출근이잖아요. 싫다. 남이 해주는 음식을 먹을 때다. 재료 수급이나 조리 과정이 만만치 않아 직접 만들어 먹기 어려운 메뉴가 좋다. 특히 근사한 식기가 테이블에 한가득 놓인 것을 보면 설렌다. 보기도 좋고, 내가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왠지 기쁘다. 그렇게 주말을 즐기고, 월요일이 되면 다시 내 식사를 직접 준비한다.

 

요리가 좋은 것은, 과정에서 위안을 받기 때문이다. 바쁜 마감 도중에 잠시 숨을 돌리며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할 기회가 된다. 멀티태스킹에서 잠시 벗어나 유니태스킹 하는 시간. 요리가 최고라는 게 아니라, 나에게 잘 맞는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 이런 배출구는 많은 사람에게 꼭 필요하다.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찬장에는 뭐가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식재료에 대한 예의다. 신선한 재료일수록 자꾸만 사람을 재촉한다. 유통기한을 신경 쓰고, 선입선출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에 따라 계획을 세워 조리하고 섭취하기. 이것은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일정표를 작성한 후 하나씩 착착 마감해나가는 것과 통한다.

 

규모가 크든 작든, 식재료 재고 관리와 프리랜서로서 자기 관리를 하는 것은 모두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배에 王자가 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三자가 있죠. 혼자서 재택근무를 하지만 출퇴근 시간을 정해서 지키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되도록 야근과 철야를 하지 않기. 내가 생각하는 자기관리는 이런 것이다. 배달음식과 냉동식품 구매를 최소화하겠다는 결심과도 통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치킨만큼은 절대 곱게 포기할 수 없어요. 아아... 영험하신 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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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가사 노동 #비혼 #1인 가정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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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주

2017.08.22

아아...전업작가 시작한지 일년도 안되는 저로서는 어떻게 하면 꾸준한 수입이 유지되는가 어디가서 공부라도 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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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희(작가)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후 현재까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는 프리랜서의 길을 걷고 있다. 재미난 일, 궁금한 일만 골라서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30대 후반의 나이가 되어버렸다는 그녀는 자유로운 여행을 즐기는 탓에 혼자서 시각과 후각의 기쁨을 찾아 주구장창 배낭여행만 하는 중이다. 큼직한 카메라와 편한 신발, 그리고 무엇보다 튼튼한 위장 하나 믿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40회에 가까운 외국여행을 했다. 여전히 구순기에서 벗어나지 못해 처음 보는 음식, 궁금한 음식은 일단 입에 넣고 보는 습성을 지녔다. ISO 9000 인증급의 방향치로서 동병상련자들을 모아 월방연(월드 방향치 연합회)을 설립하는 것이 소박한 꿈.
저서로는 『까칠한 여우들이 찾아낸 맛집 54』(조선일보 생활미디어), 『결혼 전에 하지 않으면 정말 억울한 서른여섯 가지』(이가서), 『2만원으로 와인 즐기기』(조선일보 생활미디어), 『배고프면 화나는 그녀, 여행을 떠나다』(시그마북스), 『여행자의 밥』(이덴슬리벨)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