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뮤지컬 무대에서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활동하는 배우부터 가수, 연주자, 성악가, 무용수까지 결이 꽤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색다른 외도’는 새로운 무대를 갈구하는 관객들에게는 단비와도 같죠. 그런데 이 느낌은 뭘까요? 정통 소리꾼이 뮤지컬에 참여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왠지 낯설었습니다. 뮤지컬 <서편제>의 송화 역이니 캐릭터에 딱 맞는데 말이죠. 어쩌면 ‘뮤지컬’과 ‘국악’이라는 장르에서 쉽게 접점이 떠오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뮤지컬 <아리랑>의 차옥비에 이어 <서편제>의 송화로 뮤지컬과 만나고 있는 그녀는 그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배우가 아닐까 합니다. 바로 국립창극단의 젊은 소리꾼 이소연 씨인데요. 공연이 없어 출입문이 굳게 닫힌 월요일, 국립창극단이 상주하는 국립극장으로 찾아갔습니다.
“창극단 규정 안에서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데, 뮤지컬에 참여한 건 제가 처음이에요. 그래서 2015년에 처음 <아리랑>을 제안 받았을 때는 결심하기까지 많이 두려웠어요. 새로운 장르를 접해보고 싶었지만 그만큼 부담되고 걱정이 됐거든요. 그나마 라이선스 뮤지컬이 아니라 창작뮤지컬이고, 또 소리꾼의 역할이라서 제가 만들어갈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있겠다 생각했죠. 그 전에 창극단에서 접했던 고선웅 연출님, 김성녀 선생님이 계셔서 좀 안심할 수 있었고요.”
올해 <아리랑> 재연에 이어 <서편제>까지 참여하시는 걸 보면 걱정했던 것보다 뮤지컬에서 큰 재미와 보람을 느끼셨나 봅니다. 오히려 주변에서 걱정하는 거 아닌가요(웃음)?
“요즘 좀 그러세요. 이러다 뮤지컬로 가는 거 아니냐고(웃음). 하지만 제 뿌리는 소리에 있으니까요. 가장 보람 있을 때도 뮤지컬을 보러 왔다 국악을 전혀 접해보지 않으셨던 관객들이 창극이나 판소리를 보러 오실 때예요. 정말 뿌듯해요. 개인적으로는 초심을 잃지 않되 새로운 자극을 받고, 그것이 다시 창극으로 돌아왔을 때 좋은 에너지가 되길 바라요.”
창극단에서도 공동 작업을 통해 무대에 작품을 올리지만 뮤지컬과는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리랑>의 차옥비나 <서편제>의 송화나 소리꾼이지만, 극 안에서 일반적인 뮤지컬 넘버도 소화해야 하고요. 어려움은 없었나요?
“사실 판소리 하는 분들이 노래를 정말 잘해요. 대부분 굉장히 촌스럽게, 판소리처럼 부를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노래방 가면 가수처럼 불러요(웃음). 그래서 그 부분은 걱정을 덜 했는데, 뮤지컬 넘버는 일반 가요가 아니라 극과 연결된 노래라서 뮤지컬만의 창법을 채득하는 게 조금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창극과 뮤지컬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뮤지컬이 훨씬 에너지 넘친다고 할까요? 창극은 툭 풀어졌다 싹 매듭짓는 느낌이 있다면 뮤지컬은 에너지가 탁탁 쌓여서 확 발산되는 것 같아요. 어떤 정서의 차이도 있고요.”
객석 분위기도 확연히 다르지 않나요?
“뮤지컬 문화나 객석 반응은 솔직히 부러워요. 처음 <아리랑> 쇼케이스를 할 때 젊은 관객들이 그 노래를 듣기 위해서 한자리에 모이고, 다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시더라고요. 창작뮤지컬인데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왔을까! 그때 뒤풀이하면서 배우들이 한마디씩 하는데 눈물이 터져버렸어요. ‘우리(창극)도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부러운 거예요. 일단 창극을 보면 정말 좋다고 하시는데, 처음 접하기까지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뮤지컬 무대에 서면서 많은 분들이 새롭게 창극을 보러 오시기도 했는데,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창극에 대한 오해나 선입견도 있죠?
“그렇죠, 창극은 나이 드신 분들만 보는 장르는 아니에요. 판소리가 고루하고 못 알아듣는 소리도 아니고요. 요즘 시대, 요즘 세대에 맞춰 창작 창극을 많이 선보이고 있어요. 젊은 관객들도 많이 좋아하시고요. 저희도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지만, 한편으로는 창극이 뭐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왔으면 좋겠어요. 어디선가 소개를 할 때면 한국의 오페라, 한국의 뮤지컬이라고 하는데, 오페라나 뮤지컬은 따로 설명하지 않잖아요. 우리나라에서 우리의 것을 하고 있는데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게 좀 서글프고 억울할 때가 있어요.”
우리 소리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선입관은 어떨까요? 아래 영상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죠!
오페라나 뮤지컬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우리 소리. 이소연 씨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아버지가 소리를 좋아하셔서 인간문화재 송순섭 선생님께 판소리를 먼저 배우셨고, 저도 배우게 됐어요. 사실 어렸을 때는 일반적이지 않다는 게 싫기도 했어요. 친구들이 특이하게 생각하고, 수업 시간에 자꾸 시키는 것도 싫었고요. 목소리도 지금보다 더 허스키했거든요. 그래서 중학교 때 그만 뒀는데, 1년 만에 다시 찾게 되더라고요. 그 뒤로는 점점 더 좋아하게 됐어요.”
그러면 소리꾼의 삶을 다룬 뮤지컬 <서편제>는 더 애정이 가겠는데요?
“네, 대사 한 구절 한 구절 제 소리 인생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아요. 얼마 전에 런을 돌았는데 ‘소리가 무엇이기에 내가 여기까지 왔나’라는 유봉의 말이 심장에 꽂히더라고요. 그럼에도 소리길을 따라 흘러가고 있는 송화의 모습이 제 모습에 투영되면서 동화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아리랑>은 초연 때부터 참여해서 같이 만들어간 면도 있고, 그 안에서는 소리를 가장 잘 하셨을 테지만, <서편제>는 소리꾼의 이야기이나 특히 송화 역의 이자람, 차지연 씨의 경우 초연 때부터 참여했던 배우들이라 부담될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아리랑>의 차옥비는 만들어간 부분이 많아요. 또 소리꾼이 저 혼자이다 보니 비교 대상도 없었어요. 그런데 <서편제>는 올해로 4번째 공연을 하는 분들과 함께 하다 보니 굉장히 부담이 커요. 그렇지만 제가 소리꾼으로 살아온 인생을 송화의 모습을 통해 진정성 있게 드러낸다면 또 다른 모습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버지 유봉과의 호흡도 굉장히 중요할 텐데, 두 배우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죠?
“많이 다르더라고요. 서범석 선배님은 엄하고 소리를 위해서 곧게 길을 가는 집념이 강한 아버지예요. 단호하고 선생님 같은 아버지. 반면 이정열 선배님은 혼내기도 하지만 다독이기도 하는 더 다정한 아버지 같은 느낌이 들어요.”
소리는 한이 있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누구나 한은 있겠죠(웃음). 이 길에 들어서서 한이 생겼을 수도 있고.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한이 더 깊은 것 같아요. 흔히 타고나야 한다고 하잖아요. 타고난 목소리를 가지고 거기에 노력을 붙여야 하는데, 더 이상 얻을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는 한도 있고 그래요.”
스타 국악인들도 많잖아요. 그 유명세가 대중에게 국악을 알리고 더 친숙하게 만드는 다리가 되기도 하는데, 이소연 씨는 소리꾼으로서 꿈이나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다채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이 배우로서, 소리꾼으로서도 좋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다양한 소리, 다양한 면모를 보여드리기 위해서 열린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으니까 관객 여러분도 열린 마음으로 ‘송화’를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판소리가 1인 드라마잖아요. 그걸 좀 확장해서 언젠가는 저만의 모노드라마, 1인 판소리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가 무엇인지는 아직 찾고 있는 중이지만요.”
어렸을 때부터 우리 소리만 하다 30대에 뮤지컬을 접한 이소연 씨는 굉장히 화려하고 역동적인 무대가 인상적이라고 했습니다. 배우들이 높은 굽을 신고 그렇게 춤을 잘 추는 것도 신기했다고요. 에너지도 다르고, 박자나 호흡도 다른 만큼 한껏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뮤지컬과 창극. 하지만 사람이 사람 이야기를 하는 무대라는 점은 같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소연 씨를 통해 뮤지컬과 국악 역시 이렇게 접점을 찾은 게 아닐까 합니다. 이소연 씨가 새롭게 합류한 뮤지컬 <서편제>는 8월 30일부터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됩니다. 소리 외길을 걸어온 그녀가 창극이 아닌 뮤지컬 무대에서 연기할 소리꾼 송화는 어떤 모습일지 직접 확인해 보시죠!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oscal
2017.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