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몬드 레벡
유니버설발레단은 지난 6월 8일~10일 예술의 전당 CJ 토월극장에서 이리 킬리안의
직접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번 작품은 어떤 과정으로 한국 초연을 하게 되었나요?
2014년 도쿄시티발레단과 작업 중, 일본으로 유니버설 발레단이 스페셜 갈라 공연을 왔었습니다. 당시 나의 몇 작품을 본 문훈숙 단장이 안무 제안을 했었고, UBC와 계속 연락 끝에 작년에는 나의 작품 <엘리제>를 단원들에게 가르치는 워크샵 차 방한했었고요. 이번에는 한국에서 신작을 하게 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유니버설발레단 혹은 한국에 끌린 이유가 있나요?
첫 번째로, 제가 일본, 타이완, 홍콩 등 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할 때, 유니버설발레단(UBC)이 꽤 저명하다고 인식하게 되었고, 그만큼 무용수 기량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일본에서 UBC의 클래식과 모던발레를 겸하는 스타일의 공연을 보고 흥미를 가지게 되었어요. 보통 클래식만 잘하거나 모던발레만 잘하는 단체로 구분되는데 두 형식을 겸하는 단체는 드물기 때문입니다.
출처 : 2017-White-Sleep-ⓒUniversal-Ballet
이 작품은 ‘잊혀지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 모티브는 할머니의 심한 치매였고, 이로 인해 ‘망각’이라는 키워드가 주제가 되었습니다. 삶의 여정에도 해가 뜨는 시점이 있고, 지는 시점이 있는데 그것이 마치 기억하려고 노력하지만 더 이상 기억이 안 나는 순간과 오버랩 됐습니다. 어떨 때는 잊는 것보다 기억하는 게 어렵고, 반대로 기억하는 것보다 잊는 게 어려운 시점이 있는데 이 두 가지가 제 머릿속에 있었어요.
작품 준비 기간은 어느 정도인가요?
이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는 몇 년 전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본격적 창작은 10개월 정도 됐는데요. 편집 없이 음악을 통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음악 선정 기간이 짧았고, 유니버설 발레단 사무국 측에서 공연이 올라가기까지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기억이라는 의미는 저마다 다르지만, 당신에게 기억은 긍정적인가요, 부정적인가요?
‘기억’ 자체는 내게 긍정적인 의미입니다. 제가 올리는 작품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의미에서 해석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예컨대 치매에 걸린 사람 은 본인이 치매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주변 사람들조차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죠. 그렇지만 막상 모든 것을 잊고 나면, 나쁜 기억조차 지워진, 본인만의 평화를 찾는 거 같았습니다.
잊는다는 게 암흑이 되는 게 맞는 건지, 백지의 상태인지 상상해봤는데, 시각 장애인이 앞이 안 보인다는 게 하얗다는 이미지가 그려졌습니다. 텅 비어있지만 연기가 낀 느낌이었는데, 하얗게 안개 낀 잠을 자는 이미지에서 착안했어요.
최근 시각장애인에 대한 리서치를 했다고 들었어요. 핸디캡을 가진 사람 들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있나요?
발레라는 세계가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없는 자기 관리를 보여주고, 퍼펙트 한 세계에 살아남고자 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그들과 반대로 핸디캡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었어요.
무용수들에게 요구했던 움직임 스타일이 있다면요?
‘연기‘처럼 흐르고 나가는 느낌의 동작들을 요구했습니다. 포인트 동작으로는 주역무용수가 앞으로 나가려고 할 때 뒤에서 군무진들이 끌어내는 모습인데요. 잃어버리는 시점에 대한 고민을 담았는데, 기억해내려는데 잊혀져 가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작품의 마지막 씬이 첫 번째 씬과 똑같은데, 모든 기억을 잊어버려서 편안해진 상태를 나타내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전막이 아닌 20품의 소품이어서, 집약적으로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출처 : 2017-White-Sleep-ⓒUniversal-Ballet
모던발레에 토슈즈를 신었던 게 인상적인데요.
무용수들이 토슈즈 위에 있을 때 가장 불안하거든요. 그 느낌을 계속 세우고 무너지는 ’잊혀짐‘의 느낌으로 나타내고 싶었어요.
테크닉의 전달이 관객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바이올린을 켤 줄 알아야 심포니에 들어가고, 글자를 알아야 노트를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의 컨템포러리 발레가 실험적이긴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기본적으로 테크닉이라는 것은 베이스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왜냐하면 테크닉 자체도 하나의 표현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본인만의 안무 스타일은 무엇일까요?
안무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관객들에게 말하고 싶은 스토리를 얼마나 잘 전달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또, 내 작품이지만 각각 다른 스타일로 보였으면 좋겠고, 유기적인 움직임을 선호해요. 어떤 하나의 스타일에 갇히기 보다는 무용수들처럼 많은 것들을 습득한 게 녹아져 있는 작품이 좋거든요.
츨처 : 2017-White-Sleep-ⓒUniversal-Ballet
요즘 유럽 컨템포러리 발레는 실험 정신이 강한 것 같은데요. 스토리 위주의 작품을 선호하시나요?
맞아요. 유럽의 트렌디한 작품들 중 대개가 추상적인 경향이 있다고 봐요, 저는 감정 선을 건드리는 이해가 쉬운 주제의 스토리를 추구하고요.
독일 내에서는 창작 발레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인가요?
독일 관객들은 클래식이든 모던이든 전막 발레를 좋아합니다. 클래식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작품들이 많기 때문에, 당연히 수요도가 높을 수밖에 없죠. 근데 안무가 티켓 세일즈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안무를 창작하기 정말 좋은 환경입니다.
관객 수에 대한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는 안무가, 그 자세가 부럽습니다. 티켓세일즈를 전혀 생각하지 않나요?
관객 수보다 작품을 본 관객들을 교육할 수 있고, 생각을 깨우치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정부, 극장에서도 고정적인 작품보다는 다소 평판이 안 좋더라도 창작품을 내놓기를 독려합니다.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요?
유럽과 한국의 시즌 개념이 다른데, 독일에서의 시즌은 현재 다 끝난 상태에요. 독일로 돌아가면, 도르트문트 주니어컴퍼니(NRW Juniorballet Dortmund)의 18세~22세의 학생들을 데리고 다음 시즌 준비를 할 예정입니다. 그들이 프로무용단에 들어가기 이전의 기반을 다질 수 있는 중요한 시기를 제가 지도해야 할 역할이 남아있네요.
글 윤단비(click_dance@naver.com)
춤과사람들
월간 <춤과사람들>은 무용계 이슈와 무용계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전문잡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