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알게 된 사람과 통화할 때, 박준의 첫 인사는 “시 쓰는 박준입니다”다. 시인이라는 걸 상대가 알지만 굳이 또 한 번 밝히는 건, 공손을 표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산문을 쓰더라도 자신의 정체성은 ‘시’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인사이기도 하다. 박준은 책에 친필 사인을 할 때 “울어요. 우리”라는 글귀를 꼭 쓴다.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울면 뭐 어때요?”라는 속내의 줄임말이다. 박준이 두 번째 책을 냈다. 2012년에 펴낸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 이후, 5년 만이다. 두 번째 시집을 낼 줄 알았는데 산문집이다. 1주일 만에 3쇄를 찍은 책의 제목은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은 이번 책을 두고 “앨범으로 따지면 1.5집의 개념”이라고 말했다. 시와 산문을 연결하는 다리 같은 책을 만들고 싶었단다. 덕분에 독자들은 산문 사이에 녹아 든 시를 만날 수 있게 됐다. 박준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한 문장 정도의 말을 기억하려 애쓴다. 서두르지도 에두르지도 않는 게 그의 말버릇이다. 박준은 말한다.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게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19쪽)
누군가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됐다면 행운아다. 사람 때문에 몸살이나 감기를 앓던 중이라면, 이 책은 해열제가 될지도 모른다.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라는 시인의 말은 지금 세상과는 좀체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더 듣고 싶은 시인 박준의 이야기. 지난 7월 7일, 한참 비가 내리다 잠깐 맑아진 한낮에 박준을 만났다.
난 왜 이렇게 우는 이야기를 많이 할까
두 번째 시집이 나올 줄 알았는데 산문이에요. 소감을 물어도 될까요?
되게 부끄러워요. 책을 낼 때는 부끄러운 감정이 동반할 수밖에 없는데, 산문은 더 부끄럽더라고요. 시에는 화자라는 장치가 있잖아요. 소설로 치면 주인공이요. 걱정인형처럼 저를 대신할 누군가를 만들어놓고 쓰는데, 산문은 정말 맨 얼굴로 나서는 거니까요. 타인에게 말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내 내밀한 이야기를 할 때의 부끄러움이 크게 다가왔어요.
그럼 리뷰를 찾아보시긴 어려우시겠어요.
보긴 보는데 빠르게 봐요. 비평적인 글들은 좀 오래 보고, 칭찬해주는 글은 눈을 질끈 감고 봐요. 물론 좋은 마음으로요.
첫 시집도 그렇고 제목이 길어요. 제목만으로도 읽히는 감정이 있어요.
김민정 시인이 초고를 읽고 나서 지어준 제목이에요. 원고를 한 번 쑥 읽더니 뽑아주더라고요. 의심하지 않았어요. 첫 시집도 그랬고요. 책 제목은 제목 자체만으로도 매력이 있어야 하지만, 상품으로써의 가치도 생각해야 하잖아요. 가장 많이 고려한 건, 60꼭지의 산문을 관통할 수 있는 하나의 보자기 같은 말이어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가제가 따로 있었나요?
‘박준 산문집’이었어요. (웃음) 예전에 이문재 시인님의 산문집 제목이 『이문재 산문집』이었어요. 호미에서 나왔던 책인데 제목이 심플하고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런데 3년 만에 제목을 바꿔서 개정판을 내셨어요.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로. 개정판 서문을 보니, 본인이 약간 건방졌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멋을 안 부리면서 가장 멋을 부렸다”고. 제가 초판 제목이 너무 좋았다고 말씀 드리니, “책 제목에 자기 이름을 넣는 건 자살 행위”라고 하셨어요. 농담조로요. (웃음)
실천문학사에서도 계셨고 지금 창비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계세요. 첫 시집이 2012년 12월에 나왔으니까, 이번 산문집은 편집자로서의 경력이 꽤 생긴 후 펴낸 책입니다. 저자로서, 편집자로서 양가감정을 갖고 책을 준비하셨을 것 같아요.
어떤 작가는 편집자의 의견을 전혀 수용하지 않고 본인의 신념으로 책을 내지만, 또 어떤 작가는 편집자가 개입하는 걸 원해요. 충분한 자리를 만들어주는 거죠. 저는 후자인 것 같아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충실히 듣고 그들이 주도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열어둬요. 제가 신념이 있고 혜안이 넓다면 혼자 결정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그리고 아무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고민하는 게 좋잖아요. 책은 작가가 혼자 만들 수 있지만 혼자 만드는 건 아니에요. 저는 감사하게도 좋은 편집자를 만났지만 한편으로는 출판 시장을 너무 잘 아니까요. 늘 밝은 주제만 있는 세계가 아니니까 작가로서 편집자로서 갖는 회의도 많아요. 너무 잘 아니까 오히려 걱정이 많죠.
산문집이 예약 판매를 하는 건 조금 흔치 않죠? 초판을 1만 부 찍었다고 들었어요. 1주일만에 3쇄를 찍었고.
1만 부를 찍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 1만 부가 무슨 멍멍이 이름도 아닌데’ 걱정했어요. 두려움도 컸고요. ‘예판’이라는 것도 제겐 너무 낯선 거예요.
표지 그림이 퍽 인상적입니다. 영국에서 활동 중인 기드온 루빈의 작품인데,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예요.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니 얼굴 속 이목구비를 그리지 않더군요. 이 작품 제목도 「Untitled」입니다.
사실 반대했던 작품이에요. 작가가 이렇게 책 디자인에 개입해도 되나? 싶게 많이 반대했어요. (웃음)
왜요?
제 정서랑 너무 닮아 있어서요. 그림 자체는 너무 좋지만, 제 이야기랑 너무 거리가 가까워서요. 그런데 결국 편집자가 이겼어요. (웃음) 정말 이 그림은 피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잘했다, 싶어요. 그림의 두 주인공이 표정이 없잖아요. 두 사람의 관계도 모르겠고요. 연인인지 남매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많은 그림 같아요. 정적이지만 동시에 굉장히 동적이기도 하고. 또 그림 뒤에 두 노부부가 있는데, 이들의 미래인지 도저히 될 수 없는 미래인지. 물음이 많은 작품이에요.
독자 입장으로 보면 좋은 선택이지 않았나 싶어요. 우선 되게 궁금해지거든요. 이 작품에 어떤 글이 실렸길래 이런 그림을 표지로 썼나, 하고요.
미감이 조금이라도 있는 분들은 다들 좋아하시더라고요. 표정이 없어 무섭다는 분들도 계시고요. (웃음)
산문집 제목을 자꾸 읽게 돼요. 뒷말을 보태고 싶기도 하고요. 책을 보면 ‘울음과 숨’, ‘울음’, ‘그만 울고, 아버지’ 등 운다는 감정, 울음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요. 이러다 울보 시인이 되는 건, 아닐는지요.
저도 어떤 경계를 생각하는데요. 맨날 추억을 파는 것도 아니고, 난 왜 이렇게 우는 이야기를 많이 할까. 그런데 제 고질적인 특징인 것 같아요.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뭐 하나 오래 담아두고. 과거에 얽매이는 건 좋지 않겠지만 오래 품고 사는 것에 장점도 있어요. 현재를 살 때 기쁜 순간은 오래 기억하려고 하거든요. 또 반대로 더 빈번하게 일어난 슬픔은 현재진행형 같으니까 아쉬운 감정이 따라붙어요. 회상을 많이 하는 편이라 어쩌면 이런 글이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요. 억지로 없애고 싶진 않으니까요. 그러면 좀 이상할 것 같기도 하고ㆍㆍㆍ. 그래서 본의 아니게 그런 것들이 보여진 것 같아요.
음식에 관한 이야기도 많아요. 식도락가는 아니실 것 같았는데 지방에 가면 제철음식을 꼭 먹어보신다고요. 저는 순대 이야기가 인상 깊었는데 이제 간이랑 허파는 잘 못 먹을 것 같아요.
제가 서울 태생인데, 서울엔 사실 음식이 없어요. 종로김밥, 명동칼국수 정도가 있을까요? 딱히 음식 취향이 생길 수가 없는데, 20대 초반부터 여행을 자주 다녔어요. 특히 지방을 많이 갔는데 음식이 너무 다양한 거예요. 우리나라가 크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사람들이 계절별로 다른 음식을 먹고 사는 게 신기했어요. 회색 같은 서울에 살다가 다양한 음식을 접하니 너무 좋더라고요. 다른 취미에 비해 크게 돈이 들지도 않고요. 제철음식이라는 게 귀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때 많이 나온다는 거잖아요. 값이 많이 나가는 제철음식은 흔치 않죠. 제가 갖고 있는 즐거움 중에 꽤 큰 범위를 차지해서 글에도 자연스럽게 들어간 것 같아요.
시인은 성공해도 삶이 바뀌진 않아요
첫 시집이 사랑을 많이 받았잖아요. 2년 전 인터뷰에서 “좋지만 씁쓸한 느낌도 있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꾸준히 독자들이 찾는 시집인데요.
최근에 생각이 좀 달라졌는데요. 영화로 치면 상업영화, 예술영화가 있듯이 시도 대중적이고 친절한 시가 있는가 하면 전통적인 시, 예술적인 시, 사회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시가 있는 것 같아요. 대중들에게 쉽게 접근해서 시의 계단을 낮추는 작품도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가끔 SNS시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요. 굉장히 고마운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시의 시대였던 1980년대만하더라도 한국 시단에 남은 훌륭한 시인이 있었고, 문학사적으로 한 번도 증명되지 않았지만 독자들을 시로 유입한 대중적인 시인들도 많았어요. 일종의 하이틴 시집이라 불렸는데, 전 이 분들의 문학도 굉장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공존해야 한다는 거예요.
박준의 시는 어떤 목적성이 있을까요?
거칠게 표현하자면, 삶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옮기는 거죠. 시를 쓰게 하는 동력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아무래도 첫 번째 목적은 시를 시답게, 혹은 문학답게, 예술답게 쓰는 일이에요. 반면 시는 시집이라는 상품을 통해 유통되잖아요. 시가 어떻게 읽힐 것을 가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이 시를 많은 독자와 공유할 수 있을까가 두 번째 중요한 목적이에요. 시를 시답게 만드는 첫 번째 목적과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8만 4천 부. 뛰어넘기 힘든 숫자의 시집이 팔렸어요. 첫 시집의 성공, 어쩌면 시인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지 않나요? 세상적인 성공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요.
시집으로서는 팔리기 힘든 부수인 게 맞고,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게 사실에요. 큰 성공을 한 거죠. 우리 사회는 사람이 성공을 하면 삶이 바뀌잖아요. 그런데 시인은 성공해도 삶이 바뀌진 않아요. 인세라는 것도 그래요. 보통 10%를 받잖아요. 시집이 나온 지 5년이 됐으니 연봉으로 계산하면 천 몇 백만 원이에요. 제가 노동을 하지 않으면 생계가 유지 되지 않는 정도죠. 노동을 하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서 그런지, 제 삶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어떻게 생각해보면, 문학이 가진 큰 힘 중 하나가 아무리 성공해도 삶이 달라지지 않는 게 아닐까 싶어요. 언뜻 저주 같지만 가장 큰 축복일지도 몰라요. 삶이 달라지지 않으니 사람도 달라지지 않고. 안하무인이 될 수 없는 거죠. 물론 사람이 좋게 변하면 다행이지만 안 좋게 변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문학은 너무 다행인 게 달라지지 않아요. 제 일상도 그래요. 아침에 지각할까 걱정하면서 헐레벌떡 뛰어나와야 해요. 타인들의 눈치를 보며 관계를 유지하고, 틈이 날 때 시를 써야 하고요. 산문집이 어떻게 잘 팔린다고 해도 전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저는 이게 좋은 것 같아요.
편집자로서의 박준은 어떤가요?
텍스트를 보는 신중함은 다른 좋은 편집자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 같고요. 다만 타인의 눈치라고 할까요? 그런 건 조금 잘 보는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가 되게 엄하셨거든요. 어릴 때부터 늘 엄마의 기분을 살폈어요. 이게 약간 습관이 된 것 같아요. 편집자도 저자를 비롯해 책 만드는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하잖아요. ‘내가 이런 말을 할 때, 상대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의식이 좀 큰 편인데 편집 일을 하면서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떤 글을 썼을 때, 독자가 어떻게 느낄까를 생각해보면 이제 조금 보여요. 생활인으로 타인의 눈치를 보는 것, 시인으로 내 문장이 독자에게 어떻게 전해질까를 생각하는 것이 비슷한 일인 것 같아요.
산문집을 보면 노동하는 이야기도 많이 쓰셨어요. 현장에서 입체적인 행위를 할 때 쓰인 글이 더 많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저자가 더 입체적으로 보이기도 했고요. 글쓴이의 상황, 마음을 자꾸만 상상하게 되는 글인 거죠.
시와 산문이 좀 다른 게, 시인은 어떤 현장을 가더라도 구경꾼처럼, 행인처럼 서 있거든요. 예를 들어 용산참사가 일어났다고 하면 현장에서 뭘 하지 않아요. 그냥 물끄러미 보는 거예요. 시는 시공간에 대한 배경을 설명해 보편성을 줄 필요가 없으니까요. 어떤 장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시가 갖고 있는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데, 산문은 달라요. 어떤 현장성이나 장면들이 구체적이어야 해요. 불친절하게 툭 던져놓는 게 아니라 현장에 가는 것부터 시작해요. 시는 무엇을 탁 던진 후 생기는 감흥들을 내면화하면 되지만, 산문은 조금 더 친절할 필요가 있어요. 길을 좀 같이 열어주고 싶었어요.
지인들과 나눈 이야기, 전화, 문자 메시지도 소재로 자주 등장해요. 누구의 이야기도 그냥 훅 지나치지 않는 버릇이 있으신 것 같아요.
평소에 쓸데없는 말들을 잘 기록하는 편이에요. 친밀한 관계에서 주고받는 쓸데없는 말이 굉장히 아름다워서예요. 친밀한 관계일수록 쓸데없는 이야기의 비율이 높아지잖아요.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인 이야기. 가장 아름다운 말들은 여기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예전에 “시를 쓰는 일이 유서를 쓰는 것 같다”고 말했어요. 요즘도 그런 생각이 드시나요?
제가 슬픔을 오래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는데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어떤 사람과는 다시 안 보잖아요. 이 사람과 나눈 이야기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고요. 그것은 누가 죽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더 이상 볼 일이 없기 때문일 텐데요. 그렇다면 정말 ‘순간을 소중하게’라는 당연하고 평범한 말이 십분 이해가 되는 거예요. 어떤 말은 관계가 끝나도 마음속에서 오래 살아남으니까요. 그래서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중요하고, 글쓰기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다 생각해요. 이게 끝일지 모르면 더 잘해야 하잖아요.
지방 도서관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오면, 자주 가시는 듯해요. 어떤 이야기를 주로 하시나요?
시, 혹은 문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해요. 문학이라는 예술이 화려하거나 힘이 세지 않잖아요. 색이나 빛도, 음도 아니고, 크레용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약간의 믿음 같은 것일 수 있는데요. 경제가 가난을 구한다면, 문학은 삶의 마음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나 생각해요. 지방 도서관에 가면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 분들, 평소 책을 읽지 않는 분들도 와계세요. 제가 누군지 모르시지만 누군가 온다고 하니까 오시는 거예요. 그런데 그 곳에 가보면, 어떤 마음가짐이 생겨요. 문학이 힘 없어 보이지만, 여전히 문학이라는 것을 마음에 들이고 사는 사람들이 보여요.
새로 산 책을 바로 읽는 경우는 드물다고요. 오래된 책을 여러 번 읽는 버릇이 있다고 들었어요.
제가 갖고 있는 독서의 방법은 여행이랑 비슷해요. 한 번 가본 여행지를 계속 가는 것처럼, 책도 마찬가지예요. 여기에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 추천해주는 책들을 보태서 읽죠. 최근에는 의학, 과학 서적을 많이 읽게 돼요. 철학적인 죽음이 아니라 실제적인 죽음을 다룬 책인데요. 일로 읽는 책들은 대개 문학이니까요. 교양으로 공부로는 문학을 많이 읽지만, 즐거워서 읽는 책들을 보면 뜻밖에 다른 분야 책이 많아요.
달라지지 않을 줄 알았지만 그냥 한 거야
시인으로서 말고, 인간 박준으로서요. 어떻게 살고 싶다, 그런 것들이 있나요?
시인이 대단하다는 생각은 당연히 없는데요. 시인이라서 얻는 장점이 하나 있어요. ‘어쨌든 간에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 이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리얼리스트든 모더니스트든,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의 삶이 창작물에 영향을 줘요. 배제하는 방식도 영향을 주는 거니까요. 마음이 황폐하면 글을 못 써요. 비판이 아닌 비난을 한 뒤에 글을 쓰면 좋은 글이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일단 옳은 사람을 살아야 한다, 어떤 방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때론 글로 먼저 질러놓기도 하고요. ‘좋은 삶을 살고 있다’가 아니라,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정을 하면 따라가보려고 노력은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기억나는 문장이 있어요. “다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편지를 더 많이 받고 싶다. 편지는 분노나 미움보다는 애정과 배려에 더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 박준이 살아가고 싶은 모습이라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사실 종이 편지를 자주 쓰진 못해요. 다만 편지 같은 글들을 쓰려고 노력해요. 메일이나 문자, 편지 등의 글쓰기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많이 생각해보고, 건강이나 날씨 이야기도 하게 되고. 이야기의 방식이 부드럽잖아요. 그게 좋아요.
‘세상이 아름다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문제를 생각할 때, 저는 작은 친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게 정말 진리라고 생각하지만 성공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에게는 아닐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도 해요.
말씀하신 것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을 알아보는 것 같아요. 오늘 아침에 제가 문방구에 갔어요. 복사할 것이 많아 잔뜩 들고 갔는데 비에 젖을까 봐 보자기에 싸고 또 비닐로 싸서 들고 갔어요. 종이 규격이 다 제각각이라 복사해주시는 분이 참 번거로우시겠다 생각했는데, 주인 분이 보자마자 아신 것 같았어요. ‘이게 얘한테 지금 소중한 거구나. 조금 바빠도 해줘야겠다.’ 이런 게 편지 같다고 생각했어요. 되게 감사했어요.
두 번째 책, 첫 산문집을 묶으면서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너무 뜨거워서, 너무 강렬해서 못 쓴 이야기들이 많거든요. 그게 아쉽죠. 책이라는 게 독자들에게 가는 거잖아요. 나에게 너무 특별한 경험이라도 보편화하는 지점이 없으면 못 써요. 아무리 강렬한 기억이라도 제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 그 기억과 화해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못 써요. 시간이 대부분 해결해주지만, 시간이 능사가 아닌 일도 있으니까요. 언제쯤 내가 그 기억들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좀 아쉽죠.
어떤 독자들에게 이 책이 가닿으면 좋을까요.
목소리가 작은 사람이요. 실제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내 의견은 분명하지만 그 분명함을 전하지 못해서 그냥 품고 있는 사람이요. 이 책이 그 분들에게 위로나 힘이 될 수는 없겠지만요. 말하지 않고 넘어간 것에 대한 장점도 있거든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달라지지 않는 세상이 분명 존재하잖아요.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는데요. 그럴 때 전 생각해요. ‘달라지지 않을 줄 알았지만 그냥 한 거야’. 달라질 걸 기대하지 않고 하는 일들이 많아졌으면 해요.
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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