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가 타락하려고 사람 죽이는 이야기
진지하지 않으면 옳지 않은 걸까, 유치하면 큰일 나는 걸까, 전자책은 격이 떨어지는 걸까. 로맨스, BL, GL, 판타지, 무협, 다 재미있어 읽는 소설입니다. 재미가 있으면 의미도 있습니다.
글ㆍ사진 피커북
2017.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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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인사동에서 찍은 천사 날개 이벤트 사진

 

『홈즈가 보낸 편지』, 『트위터 탐정 설록수』, 『몽유도원기』, 등에 이어 제1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붉은 소파』까지, 역사적 사건과 다채로운 소재를 결합해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 조영주가 오리지널 전자책 『타락할래! 천사와 악마의 따분한 나날들』을 발표했다.


『타락할래! 천사와 악마의 따분한 나날들』은 가벼운 농담처럼 시작해 서서히 묵직해지는 느낌입니다. 세계문학상 수상 후 작품의 세계관이나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고 들었는데요.

 

작년 세계문학상 수상 후 여러 선생님들을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후광 정유정 작가님이라고 혼자 부르는 정유정 작가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수상식 뒤풀이에서 정유정 작가님과 고기를 구워 먹으며 다음 작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뭘 쓸 거냐고 물으시기에 씩씩하게 답했습니다. “천사가 타락하려고 사람 죽이는 이야기를 출간할 겁니다!

 

진지했던 분위기가 빵 터졌죠. 정유정 작가님께서 염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소설은 늘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고요. 7년의 밤 적으실 당시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당선작보다 다음 작품이 더 중요하다”는 조언을 해주셨죠. 이후, 후광을 직사광선으로 받았으니 무릎 꿇고 공부를 해서 좋은 소설을 만들어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괴테의 충격 폭로 르포 『파우스트』부터 시작해서 『성경』, 『수비의 기술』, 『성스러운 검은 밤』 등 BL코드의 소설을 비롯해 만화 『흑집사』, 웹툰 『프린스의 왕자』 등을 꼼꼼히 살폈습니다. 또 인터넷에서 인기리 연재 후 전자책으로 출간된 국내 BL소설들도 훑었고요. 특히 순정식당님의 BL소설 『캔디맨』을 조아라 사이트에서 보고 마음에 들어서, 전자책 외에 따로 작가가 직접 제작한 종이책을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잠깐,  『파우스트』가 괴테의 충격 폭로 르포라고요?
 
어디까지나 소설 속 주인공 천사의 입장에서 볼 때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기쁨의 천사 희는 괴테가 『파우스트』를 발표하기 전까지는 가끔 인간과 씨름을 하거나, 악마와 인간의 영혼을 건 내기를 하는 일도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괴테가 이 충격 폭로 르포를 발표한 후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지극히 노여워 내기를 금지하죠. 천사 희는 씨름마저 못하자 따분한 천국 생활을 견디다 못해 타락을 하기로 마음먹고 이름 없는 하급악마를 찾아갑니다. 이후, 하급악마와 편을 먹고 타락을 꾀하죠. 그래서 제목이 『타락할래! 천사와 악마의 따분한 나날들』입니다.

 

소설에 보면, 이름 없는 하급악마가 천사의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악마의 독특한 승급제도 탓이라고 나옵니다. (“악마를 현대의 회사로 따지자면, 예를 들어 ‘주식회사 악마 컴퍼니’란 곳이 있다면, 그 곳의 승급제도는 다음과 같다. “대략 천 명 정도의 인간 영혼을 모으면 악마에게 이름이 생긴다. 대략 만 명 정도의 인간 영혼을 모으면 성이 생긴다. 대략 십만 명 정도의 인간 영혼을 모으면 진급의 가능성이 생긴다. 단, 본래 직급의 악마가 ‘일신상의 이유’로 퇴직할 경우에 한하여. 악마가 지상에 현신했을 경우에만 해당하는 제도다. 악마가 지옥으로 돌아오게 될 경우, 모든 등급은 초기화된다.”) 이외에도 “천사들의 핸드폰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천사의 나팔소리 옵션”, “카카오톡의 원조는 엔젤톡”, “천사의 술주정 흔적 성흔” “키스는 단순한 영양보충” 등 천사와 관련한 상당히 구체적인 설정이 나옵니다. 오랜 시간 구상했을 것 같은 세계관인데요, 사실 모두 즉흥적인 설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시작 자체는 한 장의 이미지였다고요.
 
2015년 5월, 제 1회 예스24 e연재 공모전 ‘이야기 그리는 작가’가 시작되었을 당시 제시된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얼결에 적게 됐죠. 처음 공모전 시작 당시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때엔 이미 『붉은 소파』를 쓰고 있던 중이라 약간 넋이 나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3장 ‘이중노출’까지 쓰고 나서 전개가 막혀버리자 여유 시간이 생겼습니다. 뭘 할까 하다가 가벼운 마음으로 공모전 사이트에 접속했다가, 마지막 네 번째 그림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거, 붉은 소파였거든요. 쓰고 있던 소설과 이미지가 부합해서 한참 들여다보자니 충동적으로 제목이 떠오르더라고요. 『타락할래! 천사와 악마의 따분한 나날들』. 가벼운 마음으로 A4 열 장을 하루 만에 써서 공모전 예심에 보냈습니다. 설마 그게 본선에 오를 줄 예상하지 못했고요. 이후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제 워너비였던 꽃미남 악마들도 대거 등장시키고,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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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 24 제 1 회 e연재 공모전 ‘이야기 그리는 작가’가 진행 중이었을 당시 선택한 그림.

 

★ 타락할래! 의 꽃미남 악마 캐릭터 표 ☆

 

 이찬 

 큰 개를 끌고 다니는 이름 없는 백수 악마. 원빈의 리즈 시절을 생각하며 만들었다. 원빈은 드라마 <프로포즈>에서 김희선 옆집 사는 큰 개 키우는 말 못하는 남자로 데뷔했었다.

 메피스토 

 밤에만 여는 카페 ‘악마의 유혹’ 주인장. 카누 선전하는 공유를 떠올리며 만든 캐릭터. 한참 작업하던 중 드라마 <도깨비>가 방영된다기에 뭔가 인연이라며 혼자 좋아했다. 이후, 프롤로그에 공유를 언급함.

 미카엘

 미용실 ‘헤븐’의 헤어드레서 악마. 허리까지 오는 치렁치렁한 금발이 트레이드 마크. 신성우 리즈 시절(별명 테리우스)를 떠올리며 설정.

 케르베로스

 지옥의 수문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일본 아이돌 코이케 텟페이의 원정팬인 관계로 “우리 텟페이”를 자주 육성으로 많이 듣다 보니 왠지 정이 가서 모델로 삼았다.

 

대구의 ‘김광석 다시 그리기 거리’와 게스트하우스 ‘유리’, 강남 악마들의 아지트인 밤에만 여는 카페 ‘악마의 유혹’을 비롯해 카페 안에 존재하는 ‘정신과 시간의 방’, 천사장 미카엘이 근무하는 미용실 ‘헤븐’과 같은 공간은 무척 생생합니다. 모델이 된 공간이 있나요?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9호선 언주역부터 7호선 학동역까지 이어지는 고갯길 구간입니다. 이 주변엔 유흥업소나 그 관련 업종 가게들이 꽤 있습니다. 저는 이 동네에서 2014년 9월부터 약 2년간 바리스타로 근무하며 흥미로운 상황이나 사람들을 많이 목격할 수 있었죠. 아이돌 연습생부터 시작해 호스티스, 호스트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곳이라면 사람이 아닌 악마라던가 천사, 저승사자, 뱀파이어 같은 존재가 한둘쯤 섞여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바리스타로 근무하시던 중 (악마를) 만난 적은 없으시고요.

 

만났다면 저도 영혼을 뺏겨 악마가 됐겠죠. 악마는 ‘언약의 키스’로 영혼을 빼앗으니깐요. “인간이 줄 수 없는 쾌락을 주노니, 순수하기 짝이 없는 그 영혼을 나에게 바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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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표지를 휴대폰 배경으로 깔았다. 뒷 배경은 현재 적는 소설 『세계의 문』과 함께 작업 중인 그림의 일부분.

 

『타락할래! 천사와 악마의 따분한 나날들』은 괴테의 『파우스트』를 기반으로 한 소설인 만큼, 스스로 말씀하신 것처럼 꼭 병맛에 BL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작가님은 수정하면서 BL코드를 강화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여성향 소설을 방향성으로 잡은 계기가 있다면요?

 

탐정 브라운 신부 시리즈를 집필했으며, 훗날 자신 역시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했던 G. K. 체스터튼은, 그의 저서 『못생긴 것들에 대한 옹호』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근엄해지기는 너무도 쉽다. 실없어지기는 너무도 어렵다.”
 
작년 상을 타고 나서 다양한 분야와 지역, 연령대의 사람들을 말 그대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만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간혹 “추리소설? (풋) ‘그런 걸’ 쓰신다고요?” 하고 면전에 대고 비웃는 일이라던가, 다른 소설들에 대한 혐오 댓글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웹소설은 소설이 아니잖아” “로맨스는 장르가 아니지” “BL소설을 읽는 건 창피한 일” “전자책은 격이 떨어져”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댓글로 적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문학적으로 큰 상을 받은 소설에서 비슷한 코드의 이야기가 나오면 격찬하는 모습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상반된 모습을 반복해서 보자니 의문이 생겼습니다.

 

진지하지 않으면 옳지 않은 걸까, 유치하면 큰일 나는 걸까, 전자책은 격이 떨어지는 걸까. 로맨스, BL, GL, 판타지, 무협, 다 재미있어 읽는 소설입니다. 재미가 있으면 의미도 있습니다(출판사 북스피어의 모토 패러디). 저는 일부 경직된 시선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기 위해서라도 ‘그런 걸’ 써보기로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방식대로 병맛 미스터리 BL소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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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쵸비츠』 코스프레 사진


끝으로 작가님이 생각하는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추리소설만의 매력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남에게 토로할 수 없는 피해자의 입장에 서게 됩니다. 훗날 그 상황에서 빠져나더라도 기억은 깊숙이 가라앉을 뿐, 사라지지 않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경험은 그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릴 수도 있습니다. 가끔 어떤 기억은 사람의 내부에서 오랜 시간 침전되어 훗날 죽음에 이르게 하거든요. 저 역시 어린 시절이 만만치 않았고. (<채널예스> 칼럼 ‘조영주의 성공한 덕후’ 시리즈 중 ‘내가 덕후가 된 까닭’ 참조)

 

추리소설, 혹은 범죄 소설이라는 장르의 역할은 이러한 개인의 내적 경험을 정화시키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끝끝내 다다른 결말에 따라붙는 카타르시스, 화해와 용서, 정의가 바로 서는 순간 들리는 “살아도 괜찮다”는 구원의 속삭임. 그게 바로 제가 쓰는 장르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그 매력에 반해 지금껏 쓰고 있습니다만, 갈 길이 먼 관계로 꾸준히 덕질을 하고 있지요.


 

 

타락할래! 천사와 악마의 따분한 나날들조영주 저 | 피커북
괴테의 <파우스트>와 꽃미남 악마가 만난다면? 타락하고 싶은 ‘기쁨의 천사’와 그녀를 타락시키고픈 ‘하급악마’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천사와 악마의 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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