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의 부모지만 부부 사이는 아닌 남녀. 학창 시절에 만나 5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남녀가 목요일마다 만나 역사, 비겁함, 죽음 등의 주제로 토론을 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 이야기입니다. 말이 좋아 토론이지, 국제분쟁 전문기자 연옥과 저명한 역사학자 정민은 그렇게 다시 만나 결국은 오랜 세월 묵혀둔 복잡 미묘한 감정을 쏟아내는데요. 딱 들어도 무척 세 보이는 연옥 역에 배우 윤유선 씨가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의외의 캐릭터로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윤유선 씨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오래 전부터 연극을 하고 싶어서 주위에 소문을 내고 다녔어요. 연기적인 갈증이라고 할까. 저를 좀 더 채우고 훈련하고 싶었거든요. 오랜만에 긴장하고 있어요(웃음).”
11년 만에 참여하는 연극이라고 들었습니다. 특별히 <그와 그녀의 목요일>을 선택한 이유가 있겠죠?
“연극을 하고는 싶었지만, 기존 드라마에서 해왔던 인물과 비슷한 캐릭터만 들어와서 피했어요. 그런데 이 작품은 아주 재밌고, 모던하고 세련되게 잘 만들어졌더라고요. 저희 나이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랑이야기잖아요.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인생, 자식에 대한 사랑, 또 20대에서 40~50대의 사랑까지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작품이라서 공감했고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른 드라마보다 우선적으로 선택했어요(웃음).”
말씀하신 것처럼 주로 현모양처, 유순한 이미지의 인물을 많이 연기하셨잖아요. 연옥은 어떤 캐릭터인가요?
“대부분 좋은 엄마, 착한 딸을 연기했죠. 연옥은 일에 대한 욕구가 크고, 제가 주로 맡았던 헌신하는 엄마이기보다는 자기가 더 중요하고, 일과 명예, 자아가 매우 중요한 여자예요. 어린 시절에 충족되지 못했던 욕구와 상처들로 자기를 지나치게 보호하는 인물이라 그것 때문에 오히려 사랑을 더 못 나누고 외롭죠. 어떤 면에서는 우리 모두에게 그런 모습이 있으니까 더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예요.”
연옥이 은퇴한 국제분쟁 전문기자잖아요. 이런 직업군의 인물도 처음이시죠(웃음)?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그렇죠, 저는 주로 일 안 하는 엄마, 사극에서는 왕후일 때가 많았으니까(웃음). 친절한 캐릭터가 아니라서 초반에는 말투나 그런 것들이 좀 어색했는데, 다른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어서 도전한 거라 재밌어요. 캐릭터도 캐릭터지만 극중 방백이 많아요. 저는 그게 어색해요.”
캐릭터로 봤을 때는 겉으로는 강한데 속은 여린 여자라서, 함께 캐스팅된 진경 씨가 드라마 등에서 봐왔던 이미지와는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맞아요, 경이가 훨씬 더 어울리는 캐릭터고, 예전에 배종옥 언니도 어울렸죠. 그런데 저는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에 도전하는 데 매력이 있을 테고, 보시는 분들은 경이랑 제가 많이 다르니까 또 재밌을 것 같아요.”
배우 중에 작품을 통해 주로 접하게 되는 캐릭터와 실제 성격은 다른 분들이 많던데, 실제 성격은 어떠세요?
“아주 같거나 또 아주 다르지도 않아요. 어떤 점은 제 안에 있으니까 그렇게 표현을 하겠죠? 확실한 건 맡아왔던 인물만큼 착하거나 인내심이 많지는 않아요. 드라마에서 평소에 맡는 캐릭터보다는 할 말 하는 스타일이에요. 가끔 선생님들이나 가까운 사람들은 ‘윤다르크’라고, 유관순을 제가 연기해야 한다고 말씀하세요(웃음).”
극에서 20대부터 50대까지 돌아보게 되잖아요. 실제로 옛날 생각도 많이 나겠는데요.
“그렇죠, 저도 어렸을 때는 연옥이처럼 비아냥거리고 독설을 하는 편이었거든요. 자기주장 강하고, 말로 지고 싶지 않은 캐릭터였으니까. 그런데 나이 들어가면서는 안 그러려고 하죠. 작품을 준비하면서도 ‘이렇게 독설을 내뱉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연옥이도 좀 덜 했으면 정민이랑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워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사랑하는 사이에서 자존심 때문에 상처주고. 연옥이는 그걸 끝까지 내려놓지 못해서 안쓰럽고 가련한, 외로운 인물이거든요. 상처 주지 않고 지는 게 사실은 더 사랑하고 아껴주는 건데.”
2인극에 가까워서 상대배우와의 호흡이 중요할 텐데, 초반에는 ‘윤유선-성기윤’, ‘진경-조한철’로 페어가 정해진 것 같아요?
“이 페어로 많이 연습해서 이렇게 쭉 가자는 얘기도 있었는데, 저는 바꾸자고 했어요. 연극인데 상대가 바뀌는 재미도 있어야죠(웃음). 기윤 씨는 나이스하고 댄디한 모범생 느낌이고, 한철 씨는 아주 유머러스하고 개구쟁이 같거든요. 연극은 이런 게 정말 매력적인 것 같아요. 한 번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한 인물을 이렇게 저렇게 연기해볼 수 있고, 만나는 상대에 따라서도 다르잖아요.”
앞으로도 연극 무대에서 자주 뵐 수 있을까요? 연기에서 예능까지 요즘 배우들이 할 수 있는 영역이 확대됐는데, 또 각각 트렌드가 있다 보니 맞춰가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제가 제작을 하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는 많이 고민하죠. 예전에는 연속극에 삶이 묻어나는 서정적인 작품이 많았는데 요즘은 스토리가 너무 세죠. ‘응답하라’ 시리즈가 예전 연속극 스토리잖아요. 사람들은 그런 작품을 기다릴 것 같아요. 연극은 그런 감성의 작품이 많으니까 좋은 작품으로 무대에 많이 서보고 싶어요.”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서는 거니까 이런 질문 우습지만, 마지막으로 각오 한 말씀 들어볼까요(웃음)?
“제가 어릴 때 시작해서 흑백TV 시절부터 연기를 했거든요(웃음). 그때는 학교 다니듯이 연기를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모험을 많이 못 해봤어요. 사실 다른 재주도 별로 없는데 감사한 거죠. 하지만 경력이 많다고 연기를 잘하는 건 아니니까 책임감도 더 생겨요. 나이 들수록 하던 역할에 익숙해지면 그것만 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고 싶지는 않아요. 이 테두리 안에서는 지금이라도 이런저런 도전을 해보고 싶어요. 이번에 연극을 선택한 것도 제가 배우로서 더 만족할 수 있는 걸 찾았던 거고요. 오시는 분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열심히 해야죠. 함께 공감할 수 있도록 좀 더 애쓰고 있고요(웃음).”
인터뷰 내내 역시 많이 웃고 편안한 느낌으로 말씀을 이어간 윤유선 씨. 하지만 자신의 뜻은 명확하게 전달하신 것 같네요(웃음). 인터뷰는 오후 6시를 훌쩍 넘겨 끝났지만 다시 연습실로 가는 윤유선 씨를 바라보며 그녀가 무대에서 어떻게 변할지, 윤유선이 표현하는 연옥은 어떤 모습일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윤유선 씨를 비롯해 진경, 성기윤, 조한철 씨가 오랜 연기 내공을 뿜어낼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은 6월 27일부터 8월 20일까지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2관에서 공연됩니다. 연옥과 정민을 통해 각자의 솔직한 마음을 들여다보시죠!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