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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시어터 <컨택트>로 무대 도전하는 배우 김규리

대사도 없고 넘버도 없는 뮤지컬 <컨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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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 무대 위에서는 평소의 제가 아니라 관객을 위한 누군가가 나오더라고요. 어떨 때는 에너지 넘치고, 때로는 연약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거만하고. 제가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의 누군가인데, 무대에 서야만 그런 모습이 나와요.

김규리.jpg

 

대사도 없고 넘버도 없는 뮤지컬, 대신 춤은 재즈에서 현대 무용, 발레, 자이브, 스윙까지 원 없이 감상할 수 있는 <컨택트(Contact)>가 개막했습니다. 2000년 토니어워즈 최우수작품상 등을 휩쓴 <컨택트>는 뮤지컬과 무용이 결합된 ‘댄스시어터(Dance Theater)’라는 새로운 장르의 공연으로, 국내에는 지난 2010년 첫선을 보였는데요. 사랑에 관한 세 가지 에피소드를 모두 춤으로 표현하는 작품이다 보니 캐스트 역시 여느 뮤지컬에서는 보기 힘든 춤꾼들로 채워졌습니다. 특히 공연 제목과 같은 3번째 에피소드 <컨택트>의 여주인공 ‘노란 드레스 여인’ 역에는 발레리나 김주원 씨와 함께 배우 김규리 씨가 캐스팅돼 공연 전부터 화제였는데요. <컨택트>로 공연에 처음 도전하는 김규리 씨를 프레스콜이 끝난 뒤 분장실에서 직접 만나봤습니다.  

 

“선생님께 숙제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준비는 잘 못한 것 같고... 그런 기분이에요(웃음).”

 

<컨택트> 첫공을 마친 소감을 물었더니 김규리 씨는 수많은 감정이 섞인 웃음을 토해내며 이렇게 운을 뗐습니다.


“솔직히 많이 두렵고 무서웠죠. 이런 감정들은 연습으로 이겨내야 하는데, 연습할 시간이 많지 않았거든요. 춤뿐만 아니라 공연의 모든 시스템을 알아야 하는데 처음이라 무대가 뭔지도 잘 모르고, 용어도 신기하고, 마킹돼 있는 것도 아직 제대로 못 봐요. 무대 위에서는 다음 동작 하느라 바쁘거든요. 그나마 다행인 게 저는 조명을 받아왔잖아요. 알아서 조명 앞으로 가더라고요(웃음). 아직도 계속 아쉬운 부분만 생각나요.”

 

그래도 김규리 씨 캐스팅 소식에 의아하게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 같은데요. 워낙 춤을 잘 추시잖아요.


“많이 속으셨던 거예요(웃음).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는 전문 댄서였던 파트너들이 제 손을 잡고 춤을 췄기 때문에 저는 힘들지만 버티기만 하면 됐어요. 또 방송에서는 360도 저의 전체적인 모습이 아니라 카메라를 통해 편집된 모습만 보시니까 부족한 부분이 많이 희석됐더라고요. 저는 지금껏 카메라를 봐왔던 사람이니까 그때는 저도 모르게 연기를 했고요(웃음).”

 

과거에 따로 춤을 배운 적이 없나요?


“파트너 손을 놓고 턴을 배운 것도 이번이 처음이고, 이른바 다리를 찢는다고 하죠. 그런 스트레칭도 이번에 처음 해봤어요. 둘째 언니가 안무가라서 춤이 낯설지는 않지만 따로 배운 적은 없거든요. 볼 줄은 알지만, 할 줄은 몰랐던 거죠. 사실 ‘댄싱 위드 더 스타’ 때 제가 그렇게 오래 남을 줄 몰랐어요(웃음).”

 

그럼 <컨택트>에 참여한 건 엄청난 도전이네요. 라이브 무대에서 꽤 오랜 시간 고난위도의 춤을 춰야 하잖아요.


“맞아요, 그런데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컨택트>가 국내에서 7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데, 지금 제가 준비가 안 됐다고 도망가면 언제 또 공연될지 모르는 거죠. 그래서 도전했어요. ‘댄싱 위드 더 스타’를 준비하면서 춤의 매력을 발견했거든요. 한 곡의 안무를 열심히 준비해서 무대 위에서, 관객들 앞에서 보여주는 것... 사실 저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 무대 위에서는 평소의 제가 아니라 관객을 위한 누군가가 나오더라고요. 어떨 때는 에너지 넘치고, 때로는 연약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거만하고. 제가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의 누군가인데, 무대에 서야만 그런 모습이 나와요.”

 

그 정도로 춤에 큰 매력을 느꼈으면 ‘배우가 아니라 무용수가 됐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한 적도 있나요(웃음)?


<컨택트> 준비하면서는 매일 했죠, 기본기가 없으니까(웃음). 어차피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춤을 좀 배워둘 걸 생각은 했어요. 그리고 만약에 춤의 매력을 어렸을 때 알았더라면 춤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고요.”

 

[컨택트]ep3.컨택트(김규리).jpg

 

<컨택트>를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역시 춤인가요?


“가장 힘들었던 건 저와의 싸움이었어요. <컨택트>가 욕심이 나서 참여하기는 했지만 무모한 도전이라는 걸 아니까요.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연습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오후 8시쯤 돼요. 하지만 온통 <컨택트> 생각뿐이라 결국 자정이 지나도록 혼자서 또 몸을 만들고 연습을 했어요. 그렇게 한 달 반을 생활하다보니 매일 몸이 아팠지만, 더 힘든 건 도망가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저와 싸우는 거였어요.”

 

‘노란 드레스 여인’ 역에 김주원 씨와 함께 캐스팅됐는데 이것도 큰 부담이었을 겁니다. 대사 없이 춤으로 모든 걸 표현해야 하는데, 캐릭터는 어떻게 잡았나요?


“춤으로 모든 매력을 드러내야 하는 여자인데, 처음에는 ‘주원 언니의 발끝만큼이라도 가자’가 목표였어요. 언니의 모습이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워 보였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공연을 앞두고는 그동안 준비했던 저에게 다 맡겼어요. 그냥 제가 무대 위에서 되고 싶은 여자, 도발적인 누군가가 나왔던 것 같아요. 사실 ‘노란 드레스 여인’을 했던 전 세계 캐스트는 전문 댄서들이에요. 평생 춤을 춰왔던 사람들이 하는 역할을 춤 맛 좀 본, 기본기 없는 제가 한다는 건 너무 큰 도전이죠. 하지만 저 역시 지금까지 연기를 해오며 살아남았잖아요. 분명히 뭔가가 있을 거예요. 그래서 다른 무용수들이 보여주지 못한 무언가가 거칠어도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제가 표현해야 하는 ‘노란 드레스 여인’일 테고요.”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셨는데,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은 좀 다르죠?


“네, 동료애가 정말 남달라요. 땀을 무척 많이 흘리잖아요. 땀이 서로 섞이면서 불쾌한 게 아니라 끈끈해지는 게 감동적이에요. 공연에서는 상대방을 믿지 않으면 완벽한 내가 될 수 없고요. 무대 위에서도 저희는 알잖아요, 뭔가 시간이나 동작이 조금씩 맞지 않다는 걸. 그런데 배우들끼리 손을 잡거나 눈이 마주쳤을 때 ‘할 수 있어!’라는 게 전해져요. 그럼 마음이 다시 단단해져서 편안하게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요. 그런 에너지와 열기, 치열함 등이 얼마나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럼 김규리 씨를 앞으로 뮤지컬이나 연극 무대에서도 볼 수 있을까요?


“하고 싶어요. 어릴 때부터 연극이나 뮤지컬 제의는 있었는데 무대에서 연기를 재검증 받아야 한다는 게 너무 두려웠어요. 소극장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소극장에서는 배우와 관객이 함께 숨을 쉬잖아요. 하지만 제가 그 무대에 선다면 관객들의 호흡과 시선을 이겨낼 수 있을까, 무대에 대한 공포가 있었어요. <컨택트>는 춤이 기본이 돼야 하는 작품이지만 춤이 제 주특기는 아니라서 오히려 선택이 쉬웠어요. 연기적인 부담감은 없지만 무대는 경험해보는 거니까요. 무대와 많이 친해져서 다른 작품들도 해보고 싶어요.”

 

18일 막공 때는 무대 위 김규리 씨의 모습이 또 달라져 있겠네요?


“네, 지금 맨몸으로 벽을 밀고 있는 느낌인데, 막공 때 즈음에는 공간이 조금이라도 넓어질 거예요. 그러면 그만큼 안으로 들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지 않을까요. 완벽하지는 않지만 김규리만이 가지고 있는 ‘노란 드레스 여인’이 분명히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관객들도 저만의 매력을 발견하면서 <컨택트>라는 작품에 또 컨택트 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고요. 그리고 공연의 여운을 삼켜서 심장으로 느껴보고 싶어요. 그런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어요(웃음).”

 

아직까지는 관객들의 표정도, 객석의 열기도 느낄 겨를이 없다는 김규리 씨. 하지만 그녀는 분명히 무대 위에서 그녀만의 매력으로 관객들과 Contact, 닿고 있을 겁니다. 그렇게 무대, 관객과 친해져서 앞으로 대학로 소극장 무대에서도 김규리 씨를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대사가 거의 없고, 넘버는 전혀 없는 색다른 뮤지컬 <컨택트>는 6월 1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됩니다. 중학생부터 관람이 가능하지만 중학생 자녀나 조카와 함께 보기에는 민망할 수 있습니다. 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비슷한 플롯이라 내용은 뻔히 읽히지만, 덕분에 멋진 춤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유쾌하고 참신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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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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