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
<키다리 아저씨>가 돌아왔다. 지난 해 가을 초연된 이후 연일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매진 행렬을 거듭했던 바로 그 <키다리 아저씨> 말이다. 기자 역시 지난 해 예매를 하려 했으나, 클릭한 날짜마다 족족 매진이라는 단어만 떠 아쉬움을 삼킨 기억이 있다. 탄탄한 스토리와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호흡, 고전을 사랑스럽게 재 해석한 뛰어난 연출력 등을 인정 받은 <키다리 아저씨>는 채 1년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 한 번 관객들 앞에 찾아왔다.
<키다리 아저씨>는 1912년 쓰여진 진 웹스터의 원작 소설 <키다리 아저씨>와 전개가 동일하다. 소설이 주인공인 제루샤가 자신을 후원해주는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뮤지컬 역시 제루샤가 관객들에게 자신의 편지를 대사를 통해 말해주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작품의 등장인물도 제루샤와 키다리 아저씨 단 두 명뿐이다. 무대 장치 역시 변화가 없다. 한쪽은 책으로 가득 채워진 키다리 아저씨의 서재로 꾸며 그곳에서 제루샤의 편지를 읽으며 다양한 감정 변화를 겪는 그의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고정된 무대에서 제루샤는 약간의 소품 변화와 대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달라진 배경을 설명하고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전달해준다.
두 사람은 각자의 이야기를 관객들을 향해서만 전달하다 후반에 이르러서야 함께 대사를 주고 받는다.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구성이지만 제루샤의 사랑스럽고 발랄한 모습과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설레 하는 순수한 펜들턴(극 중 키다리 아저씨의 본명)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교차시키며 집중력을 흐트러뜨리지 않게 하고 관객들이 두 사람에게 빠져들게 만든다.
<키다리 아저씨>는 '레 미제라블'로 토니어워즈 최고 연출상을 수상한 존 캐어드만의 작품이다. 2009년 미국에서 초연된 이후 일본, 영국, 캐나다 등 전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었다. <키다리 아저씨>의 작사, 작곡을 맡은 폴 고든은 이 작품으로 토니어워즈 최고 작곡?작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실력을 검증 받은 제작진들의 손에서 탄생한 <키다리 아저씨>는 원작을 뛰어 넘을 만큼 완벽한 뮤지컬로 재 탄생했다.
극 중에서 두 사람은 오직 편지를 통해서만 우정을 쌓아간다. 물론 제비스 펜들턴이라는 진짜 모습으로 만나기도 하지만, 키다리 아저씨와 제루샤의 관계는 '편지'로 이어지고 유지된다. 편지를 써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편지 안에 그 사람을 생각하며 꾹꾹 담아낸 진심을, 그 사람이 보낼 답장을 기다리며 느끼는 설렘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키다리 아저씨>는 관객들에게 바로 그 편지라는 아날로그적인 소재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감성을 오롯이 전달한다. 두 사람만 비밀스럽게 주고 받은 그 편지를 함께 읽어가다 보면 어느 새 나도 모르는 미소가 얼굴에 그려지고, 온 몸 가득 행복함을 느끼게 된다. <키다리 아저씨>는 이처럼 별 다른 사건도 나쁜 사람도 없는, 한 없이 맑고 ‘착한’ 작품이다.
지난 해 초연을 아쉽게 놓친 사람이라면 이번에는 꼭! 7월 23일까지 대명문화공장으로 찾아가보시길. 머릿속으로만 상상해왔던 제루샤와 키다리 아저씨가 눈 앞에서 보여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는 생각보다 더 따뜻하고 더 포근하게 마음을 감싸 안아 줄 것이다.
임수빈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