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그리 달갑게 다가오지도, 반갑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조시 틸먼의 눈에 들어오는 이 세계는 아직도 우스꽝스럽고 또 어리석다. 일상을 감싸고 있는 온갖 문화양식,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미래를 환하게 밝히는 과학기술과 엔터테인먼트, 인간관계 속의 갈등과 반목, 이제는 인류가 문제로 마주하고 있는 자연환경에다, 언젠가 끔찍한 종언으로 마무리될 이 사바의 미래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요소들은 아티스트의 독백 속에서 의문과 결손, 냉소, 허무 그리고 비관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조시 틸먼의 언어는 차갑다. 75분의 러닝 타임을 빼곡히 장식하는 다채로운 어휘와 알레고리와 단상은 표현의 미를 풍성하게 끌어낸다기보다는, 아티스트의 차디찬 고찰을 더욱 구체화하고 심화한다는 데에 제 존재가치를 두는 듯하다.
작품의 막을 올리는 「Pure comedy」에 조시 틸먼의 냉혹한 코미디가 집약돼 있다. 콘셉트 앨범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심지어 날카로운 시선은 미래를 극단으로 보내길 꺼리질 않는다. 「In twenty years or so」에서 인류의 과학이 비참한 최후를 향해 간다고 말하는 조시 틸먼은 이에 앞선 「Things it would have been helpful to know before the revolution」에서는 오늘날의 시스템을 기어이 끌어내리고서 수렵과 채집의 원시시대를 우리가 살던 푸른 구슬에 재탄생시켰다. 현대 문명의 붕괴. 끔찍하게 굴러가는 세계에 찍는 마침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비관의 끝자락에서 아티스트의 시를 잘 살필 필요가 있다. 자신의 시어 뭉치 속에서 끝으로 치닫는 세계에 조시 틸먼은 결국 다시 한 번 손을 내민다.
여기에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훌륭한 장치 설정으로 조시 틸먼은 한 앨범에 인상적인 모먼트를 수차례 만들어 낸다. 경쾌한 피아노 팝 위에 관현악이 주는 넉넉한 질량감을 덧댄 「Total entertainment forever」와 비틀즈의 「A day in the life」처럼 전위적인 관현악 포르타멘토로 환기하는 「Things it would have been helpful to know before the revolution」에서부터, 곡 말미에 놓인 한 사람의 죽음에 가스펠 풍 보컬 코러스를 동원한 「Ballad of the dying man」, 차분한 분위기와 널찍한 사운드 스케이프 속에서 갖은 소리의 콜라주로 몽환을 일으키는 「Birdie」, 단출한 보컬과 멜로디가 반복되는 13분의 러닝 타임의 후경을 현악 파트가 다채롭게 끌고 가는 「Leaving LA」, 아방가르드한 스트링이 곡을 주도하는 「Two widly different perspective」에 이르는 여러 곡들이 멋진 결과물로서 작품을 빛낸다. 점층적으로 사운드 규모를 키워가며 곡에 어린 조시 틸먼의 비애를 넓게 퍼뜨리는 「Pure Comedy」는 물론 말할 것도 없는,
조시 틸먼의 번민은 찬란하다. 후회를 손에 쥔 어제와 우습게 무너져가는 오늘과 무섭게 조각 나버릴 내일이 머릿속을 횡행한다. 그러나 이 혼란의 태초에는 좀 더 나은 무언가를 향한 바람이 존재하고 혼란의 종국에는 대단한 시와 노래와 음악이 놓여 있다. 이 모든 것이 한 데 섞이며
이수호 (howard19@naver.com)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