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상이 어렵고 미래가 불확실할 때마다 사람들은 과거에서 미래를 보겠다는 마음으로 역사를 찾았다. 과연 인간은 삶을 어떻게 혁신했으며 세계를 움직인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오늘날 세계사를 판가름한 결정적인 문명의 사건을 보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
2015년 건명원에서 진행한 다섯 차례의 역사 강의를 묶은 『그해, 역사가 바뀌다』에서는 서울대 주경철 교수가 ‘역사’라는 틀로 문명을 크게 바라보고자 했다. 인간사를 큰 차원에서 이해하다 보면 우리의 어제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이해하는 눈이 생기고, 나아가 미래세대의 내일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당위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건명원은 창의적 리더와 인재육성을 위해 20대 청년을 선발해 1년 동안 다양한 강의를 제공하는 교육 단체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조국이 더는 이런 후진적 비극을 겪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두양문화재단 오정택 이사장이 사재를 출연해 설립했다. 취지에 공감하고 참여한 주경철 교수는 『대항해시대』, 『마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등 문명의 형성과 미래를 탐구하는 활발한 저서 활동을 펼치는 역사가이자, 선생이자, 저술가이다.
어떻게 역사를 볼 것인가
건명원 강의가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처음 수업을 제안받았을 때 어떠셨어요?
강의를 책으로 내자고 기획해서 처음부터 녹취하고 풀어냈어요. 건명원 교수 중에서도 주도하는 분이 있어서 저는 시키는 대로 했어요. (웃음) 배철현 선생이 먼저 건명원 아이디어를 내고 만들어 가면서 역사학 교수도 한 명 있어야 할 것 같으니 같이 하자고 제안하더군요. 이야기 들어보니 뜻이 좋아서 동의했죠.
건명원은 ‘창의적 리더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기관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미래 세대를 길러낸다는 관점에 동의하셨던 건가요?
창의력은 여러 키워드 중 하나일 거예요. 미래 세대를 위해, 한국의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학교 정규 교육 과정과는 별개로 젊은 사람을 모아 새로운 펌프질을 하고 이 사람들이 나름대로 훌륭한 일을 하게 해 보자는 전체 계획에 동의한 거죠.
총 5개의 부문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콜럼버스를 통해 근대 유럽인들의 ‘심성’을 보고자 했는데요. 같은 주제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라는 책을 내신 적도 있으세요.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람인가요?
처음에는 근대사에서도 유럽 내부를 공부하다가 유럽 역사나 문명이 어떻게 다른 문명과 만나는가에 관심이 생겼어요. 가장 큰 문제의식은 ‘왜 중국이 유럽으로 안 가고 유럽이 바다를 건너 먼 데를 가게 된 걸까’였어요. 왜 유럽이 그렇게 다이나믹하고 적극적인 걸까? 그냥 일반적으로 힘이 강해져서 퍼져나간 게 아닌 것 같아요. 사람들이 뭔가를 할 때는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충동하는 기제가 있어야 할 것 아니에요. 문명 차원에서도 그런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봤어요. 그때 샘플로 눈에 띈 인물이 콜럼버스에요.
문명 전체를 보기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만의 독특성도 있어요. 한 인물의 행동만으로 전체적인 역사의 추동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 인물로 어떻게 당대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을 법한 집단적인 멘탈리티를 아는지 설명이 필요한 거죠. 제인 구달이 침팬지를 연구할 때 한 가지 방법은 침팬지 사회를 먼 데서 관찰하는 거예요. 많은 걸 얻죠. 하지만 멀리 봐서 볼 수 있는 것이 있고 못 보는 게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침팬지 연구에서도 다 이름을 붙여서 개체를 정해요. 개체마다 전쟁할 수도 있고, 고기를 먹을 수도 있어요. 그 개체에 대해서 아는 것이 다른 모두가 가진 속성일 수 있고 어떻게 특성이 어우러져서 어떤 사회를 유도하는지 알 수 있잖아요. 역사학도 그래요. 한 사회 전체를 조망해서 얻어내는 게 있고 앵글을 좁혀 한 인간을 들여다봐서 이 시대 인간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내는 방법이 있죠. 현미경의 역사가 있고 망원경의 역사가 있는 거예요.
콜럼버스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무나 그렇게 들여다본다고 잘 보이지 않아요. 200년 후에 역사가가 나를 통해 역사를 본다면 너무 일반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 사회를 잘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반대로 너무 이상한 광인을 들여다본다면 다른 인물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잘 볼 수 없어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기 제일 좋은 사람은 특이한 인간이에요. 그런 인간을 연구한 사례가 『치즈와 구더기』인데, 미시사 쪽 고전이죠. 그 방법을 모범사례로 삼아서 역사의 흐름에 있으면서도 특이한 인간을 보면 이 사람이 어떤 맥락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있죠.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가서는 조금 더 거시적으로 보는 느낌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산업혁명 직전 일어난 근면혁명이 재밌었는데요. 한국 사회에서 아직 근면함을 척도로 삼는데, 이런 방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근면혁명에 우리가 일상용어로 쓰는 ‘근면’이라는 친숙한 용어를 쓰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숙한 개념은 아니에요. 물론 근면혁명이 사람이 근면함으로서 혁명했다는 점에서 통하지만 그렇다고 도덕적인 의미로 열심히 일하면 잘 살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죠. 산업혁명 이전에 사회에서는 인구가 늘었다 줄었다 했어요. 쉽게 인구가 줄었다고 얘기할 게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었다는 뜻이죠. 이런 파국을 막아야 하는데, 막는 방법이 사실 별거 없거든요. 토지를 늘리고 같은 땅에 더 많은 사람을 집어넣는 방법밖에 없어요. 근면혁명은 그 사회가 어쩔 수 없이 구조적으로 겪는 문제에 대해 마지막에서 두 번째 해결책으로 택한 전략이었던 셈입니다.
환경과 ‘인류세’에 관한 내용이 세 번째입니다. 기계 과학의 발전이 환경을 개선하거나 덜 파괴한다고 보는 쪽이신가요?
섣불리 이야기할 수는 없는데,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기계화되고 환경 파괴가 이뤄지면서 긍정적인 효과가 쌓이는 이면에 엄청난 폐해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인지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해요. 그래야 대비하잖아요. 인문학이든 과학이든 양면의 가능성이 있고 그게 중요하다는 걸 공유하면 해결책의 가능성이 있겠죠. 인문학자가 어찌 보면 단순해요. 파괴할 힘은 다시 말하면 개선할 수 있는 힘도 그 안에 있다는 게 더 우선 아니겠어요? 그래서 그 안에서 우리가 저지른 일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용하는 힘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봐요.
책 말미에 학생들과 한 질문과 대답이 실려 있어요. 마지막에 미래를 낙관하는 이유로 식자율과 피임률을 들어주셨는데요.
근대에서 유럽이 발달한 현상을 보면 결국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일궈낼 수 있다는 감각이 있어야 해요. 그걸 읽어낼 수 있는 게 자기 몸에 대해서, 자기 영혼과 주변세계와의 관계에 대해서 얼마나 잘 대응하고 주체적으로 해나가는지를 보는 것이거든요. 피임률은 그 사회에서 여자가 자기 삶을 디자인하는 지표였고, 조금 넓은 의미에서 세상을 얼마나 파악하는지 보여주는 게 식자율이죠. 문맹의 사회와 소설책이라도 몇 권 보고 대화가 이루어지는 사회하고는 달라요. 식자율과 피임률이 개선된다는 게 십 년 내에 세계평화가 온다는 건 아니에요. 긴 시간에 걸쳐서 뭔가 개선될 것 같다는 희망 섞인 주장에 가까워요.
강의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우리 한 번 큰 시각을 가져 보자는 거죠. 일단 큰 차원에서 일부러라도 미래 예측을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작은 차원이 안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그건 다른 기회가 많으니까요. 그런 점을 강조하기 위해 책에는 ‘인류의 결정적 변곡점’으로 튀게 썼는데, 실제 의미하는 건 진짜 특정한 해에 역사가 바뀌었다는 게 아니라 크게 봤을 때 상징적인 사건들이 있다는 의미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강의
학교 강의와 건명원 강의 간에 차이가 있나요?
건명원에서 완전히 새로운 별개의 지식을 배우는 건 아니에요. 같은 내용 가지고 학교에서 강의도 하고요. 다만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뜻에 동의하고 왔다는 게 참 중요해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출발했느냐가 중요한 거죠. 표현을 빌리자면 건명원에서는 사고의 근육을 단련해주는 거예요. 느슨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약간의 하드 트레이닝을 해서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거죠. 최종적으로는 자기가 어떤 사고방식을 택할 것인지, 사고 폭을 넓힐 것인지 배워요. 엔지니어, 법률가, 정치인을 키우겠다는 게 아니라 뭘 하든지 탄탄한 사고 능력을 키워서 내보내면 그중에는 큰일을 하는 사람도 있겠고, 그저 자기가 행복한 사람도 있을 거예요. 길게 보면 다 좋은 효과를 내리라는 순진무구한 희망으로 몇 년이고 계속 좋은 인재를 키우자는 거죠.
라틴어와 한문을 배운다고 들었는데,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운다는 프로그램에서 암기 과목이 많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찬반이 있을 거예요. 저는 대체로 찬성에 가까워요. 첫 번째로 기본 취지에는 적극적으로 동의해요. 창의력이라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하는 데 아니에요. 기존에 가진 걸 잘 엮어내는 게 창의력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기본적인 고전을 알아야 한다는 취지예요. 또 하나는 언어를 안다는 게 또 다른 세계의 맛을 보는 건데, 고전 텍스트를 읽고 외우게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생겨나는 뭔가가 있을 거예요. 살짝 맛봐서는 잘 모르니까 1년 동안 지지고 볶고 외우는 경험을 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고전어를 학생들에게 경험해보게 한다는 건 찬성이에요. 창의성을 키워주는 게 꼭 창의적인 방법이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어요. 비창의적인 방법으로 창의적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른 선생님 수업도 듣는 편이세요?
첫해에는 시간이 되는대로 매일 갔어요. 좋은 교수들을 모셔다가 빡빡하게 강의하기 때문에 일 년 동안 잘 들어두면 많은 책을 읽은 것과 마찬가지예요. 강의해서 권하는 책을 봐도 도움이 많이 되죠.
다른 인터뷰에서 건명원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아직 졸업생이 안 나와서 대답을 못 해주겠다고 하셨는데, 졸업생이 나온 이후니, 어떻게 될 것 같나요?
아직 두 회밖에 졸업을 안 해서 모르겠다는 게 답인데(웃음),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으니 말을 해야겠죠. 강의 몇 개 들었다고 사람이 확 바뀌거나 그러진 않잖아요. 이걸 씨앗으로 삼아서 또 배우고 일하면서 더 큰 그릇이 되리라는 기대로 하기 때문에 졸업생들을 보면서 역시 이 친구들은 뭔가 되겠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중 몇 명은 많이 성숙해졌다 하는 학생들이 있어요. 하지만 눈에 안 보이는 학생이 더 좋은 일을 할지도 몰라요. 속으로 익어가고 있을 수도 있는 거고요. 아니면 부작용으로 잘난 척만 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죠.
건명원 2기 이후 과학 분야 강의가 추가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통섭을 목적으로 하고 계시다고 생각도 들고요.
딱히 목표로 통섭을 내세우기보다는, 정하웅 선생이나 김대식 선생은 이미 통섭을 하는 사람들이거든요. 뇌를 연구하는 건 다른 이공계와는 조금 다르니까요. 흔히 말하는 통섭, 통합을 은연 중에 하는 거죠.
대학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
현재 대학 학제가 유연하진 않잖아요. 이전에 자율전공학부로 대학에서도 학제 간 교류 실험을 한 적이 있을 텐데, 비슷한 목적에서 시작한 건가요?
기본 철학은 비슷할 거예요. 실제로 문과로 들어온 학생이 이과 과목을 해 보고 이과 학생은 문과를 해보는 경우는 있어요. 강요는 안 해요. 통섭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대학이 몇십 년 동안 학제로 진행한 결과가 너무 과 위주로만 되다 보니 문제가 있다, 주체적으로 스스로 디자인하면서 공부해보라고 하는 게 주된 목적이었죠.
인문학의 위기라고 합니다. 인문학 관련 과를 폐쇄하는 대학도 많고요. 자본주의를 배격하는 입장은 아니시겠지만, 학문의 수익성을 재단하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은 없으신가요?
위기의식을 느끼죠. 당장 대학이 쭈그러들고 제자가 자리 못 잡고 있는 걸 보면 가슴 아파요. 하지만 어제오늘 이야기도 아니고, 사실은 늘 있었던 이야기예요. 얼마나 당대 사람들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냐는 차이가 있어요. 하지만 대학을 운영하고 경영하는 입장에서 수익을 고려하는 건 참 속 좁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나 유럽 명문 대학에는 역사학과 교수가 6, 70명씩 있거든요. 다 돈 들어가는 일이에요. 그렇게 하는 이유가 길게 보면 사회에도, 대학에도 좋은 일이라는 거죠. 역사나 문화를 공부한 학생의 몇 퍼센트가 대학원으로 가겠어요. 다 다른 일 하죠. CEO까지 올라간 사람들이 나중에 봤더니 인문학이 정말 중요하더라는 말을 해요. 인간의 기본 능력, 대화 능력과 판단 능력을 키워줬다는 거죠. 리더는 큰 걸 봐야 하잖아요. 통솔하고 이끌어가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일은 역사학 교육이 제일 잘해요. 대국이 흥망하는 큰 드라마를 같이 보게 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자에게 미래를 묻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역사가 항상 반복되진 않는다고도 말씀해주셨어요.
표면적인 유사함 때문에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 그렇지는 않아요. 반복이 있어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데, 같아 보이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같은 결과가 나오진 않거든요. 미래가 어떻게 되리라 하는 감을 잡을 수는 있지만 예측은 당연히 틀릴 수밖에 없어요. 인간이 지나온 행태를 보면서 인간과 사회가 대략 어떻더라 하는 통찰만 줄 수 있을 거예요. 정말 쓸데없을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영역에서 목소리를 내주는 거죠.
서울대 시흥 캠퍼스 관련해서 최근 점거농성 강제 해산이 일어나기도 했죠. 교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싶거나 이야기해야 할 말씀이 있으신가요?
캠퍼스가 과밀이에요. 그건 누구나 다 알아요. 새로운 학문이 늘어나고 새로운 실험실이 필요하죠. 몸과 마음이 다 자라라면 운동장도 필요할 거예요. 그래서 새로운 캠퍼스를 열어 뭔가 한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에요. 축복 속에 새로운 캠퍼스를 만들어야 하는데, 조바심에서 일을 망친 게 아닌가 싶어요. 총장님도 큰 계획과 철학을 가지고 캠퍼스가 필요하다고 설득하고, 교수와 학생이 참여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논의하는 과정이 순조로웠다면 좋았겠죠. 말처럼 쉬운 게 아니겠지만, 그러라고 있는 대표 자리잖아요.
학생들도 안타까워요. 이미 다 계약하고 돈이 몰려 있는데 막무가내로 자본주의 투기라면서 무작정 백지화하라고 하면 안 되잖아요. 개인적으로 이야기해 보면 다 캠퍼스의 필요성을 절감하는데, 학생들끼리 모여 있으면 무조건 반대만 해요. 요새 왜 이러는 걸까 생각하고 있어요. 진짜 용기는 싸우려고 나가서 자기 잘못을 승인하는 게 진짜 큰 용기거든요. 양쪽 다 남은 거라고는 악밖에 없어진 것 같아요. 비감하고 있어요.
대학사회에서의 인문학부 축소와는 별개로 사회에서는 인문학 열풍이라고 해도 될 정도예요. ‘인문학’을 제목으로 단 책도 쏟아져 나오고요. 최근에는 방송에서 인문학을 주제로 강의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죠. 인문학 강연 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려는 합니다. 그것 자체가 나쁘진 않아요. 잘 운영되면 좋겠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자기 내면에서 찾아야 하거든요. 제일 좋은 방법은 진득하게 앉아서 책을 읽는 거죠.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면서 오래 사유해야 하는데 누군가가 이 책은 뭐가 중요하고 어떤 구절을 보라고 요약하면 그 자리에서 소화되고 끝나요. 비유하자면 패키지여행과 자기가 직접 계획한 여행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패키지여행으로 다녀오면 어디가 어디였는지 가물가물해지지만, 자기가 기획하고 자료 조사하면서 찬찬히 보고 가면 훨씬 마음에 남는 게 많겠죠.
좋은 책을 쓰는 게 영향력이 가장 크다
비서구권에서 나고 자라서 서구권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새로운 시각이 있을 것 같아요. 스스로 주류에서 비껴난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편인가요?
콜럼버스를 신비주의자라고 해석했던 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이미 그런 연구가 나오고 있죠. 제가 제일 먼저 어떤 결과를 학계에 보고할 기회는 별로 없어요. 역사학은 사료를 봐야 하는데, 사료는 다 서양에 있으니까요. 그래도 관점을 그대로 수입하는 게 아니라 나름의 해석을 덧붙이다 보면 아무래도 주류 시각과는 다르겠죠. 서 있는 위치에서 보게 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중국 학자들은 정말 중국 중심적이에요. 중국 황제의 은덕을 전세계에 펼쳤다는 기록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헛된 수사라고 하고 말지만, 중국 학자들은 사실로 받아들인다든지요. 지역마다 성격이 달라요.
학부 전공이었던 경제학이 연구에 도움이 되거나 영향을 끼친 게 있나요?
있겠죠? 글을 보고 사람들이 가끔 학부 때부터 인문학만 하는 학자들과는 다른 점이 보인다고 이야기는 해요. 무엇보다 사회과학적인 사고 방식이 인문학을 하는 사이마다 작용하고 있나보다고 생각해요. 학부 때 나라를 구하느라 공부는 안 했지만(웃음), 그래도 한창때 공부한 게 남아 있겠죠.
어떤 연구 내용이 생기면 먼저 대학원에서 교육하고 소화가 된 후에 교양 과목, 거기에서도 소화가 된다면 그다음에야 글로 쓴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연구에서 가장 첨단을 보기 위해서는 첨단의 차원에서 이야기해야 하는 거고, 그걸 그대로 가져오는 게 아니라 학부 수업에 맞는 틀로 몇 가지를 녹여 보는 거죠. 글쓰기는 또 그대로 가져오는 게 아니라 녹여낸 것 중 좋은 걸 쉽게 집어넣어서 푸는 거고요.
글도 많이 쓰시고 책도 많이 내셨잖아요. 선생의 자리와 작가의 자리, 연구자의 자리 중 어느 게 제일 잘 맞는다고 느끼세요?
시간에 따라 좀 바뀌어요. 글쓰기가 예전에는 비중이 작았거든요. 많이 쓰지만 저에게 정말 중요한 건 교육이라는 의식을 꽤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우리 아이들을 잘 키우고, 연구는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글도 써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좋은 책을 쓰는 게 영향력이 가장 크겠다는 생각을 해요. 좋은 책이라는 건 오랫동안 공들인 책인데, 역시 사람들이 알아보더라고요. 굳이 나눌 수는 없는 문제지만, 연구와 교육과 글 세 분야가 잘 연관되는 게 이상적으로는 가장 좋죠.
같이 강의하는 배철현 선생님이 다른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을 위해서 강의할 용의가 있다고 하셨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나라 정치가들이 같은 말을 해도 설득력이 없어요. 정치 테크닉과는 별개예요. 오바마나 메르켈을 보면 기본이 되어 있어서 사람들에게 하고자 하는 바를 소개하는 게 갖춰져 있어요. 반드시 말을 잘한다는 말이 아니라 탄탄한 교육을 받아서 기본을 가지고 사회에 나간다는 거죠. 그런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일하면 훨씬 낫지 않을까, 막연한 이야기지만 그런 생각은 들어요. 그 표현 중 하나가 대통령이 와서 강의를 들으면 좋겠다는 말이었겠죠.
기본을 가진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잘 이해해서 잘 파악하고, 잘 분석하고 좋은 결론을 이끌어내고 그걸 사람들에게 잘 전달해서 이끄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사회 자체가 건강해야 해요. 이런 기본을 공유하고 있어야 얕은 사람이 나오면 허수아비라고 알아채고 탈락시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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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역사가 바뀌다 주경철 저 | 21세기북스
2015년 건명원(建明苑)에서 진행한 다섯 차례의 역사 강의를 묶은 이번 책은 서울대 주경철 교수가 ‘역사’라는 프리즘으로 문명의 오늘을 진단하고 통찰한 결과다. 우리의 내일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선진 인류로서의 책임과 지혜를 발휘하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역사의 결정적 장면으로부터 이끌어낸다.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두드림
2017.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