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지식총서 가운데 『우리 헌법 이야기』나 『헌법 재판 이야기』는 헌법 조문을 최소화하고 헌법 정신이나 재판 사례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책 두께도 『지금 다시, 헌법』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얇다. 『만화로 배우는 헌법 판례 120』은 판례마다 4컷 만화를 넣어 만화만 읽어도 헌법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쟁점이 될 수 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두 얼굴의 헌법』은 사료와 증언으로 보는 제헌의회의 풍경으로, ‘헌법 창세기’의 모습을 드라마처럼 읽을 수 있다. 『헌법의 발견』은 ‘인문학, 시민 교과서 헌법을 발견하다’라는 부제처럼, 헌법 조문을 인문학적 배경과 의견을 통해 제시했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해당하는 제39조까지 다뤘다.
사실 헌법에 대한 여러 책들 가운데에서 『지금 다시, 헌법』은 구성 면에서 법 해설서에 가장 가깝다. 전문, 총강, 130개 조의 조문과 부칙까지 헌법 본문과 본문 해설을 꾸준히 반복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지루할 만한 구성이다. 그래도 한 권을 뽑는다면 이 책이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무심코 동의한 온라인 서비스 약관들이 떠올랐다. 헌법은 동의해놓고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약관과 같았다. 한 번 읽을 때 빠짐 없이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이 내게 약속한 것들이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지금 다시, 헌법』은 2009년 같은 저자들의 책 『안녕 헌법』을 다듬어서 다시 펴냈다. 펴낸 날은 2016년 11월이지만,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2016년 6월까지 헌법과 법률의 변화가 반영돼있다. 고작 7년이지만 그동안 추가된 판례도 여러 건 있다. 예를 들어 2009년 헌법재판소가 야간의 옥외집회 금지 부분을 입법 개선하도록 촉구한 건이 있다. 이는 2016년에도 법 개정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한 달 동안 평균 150건 이상의 헌법소원, 위헌법률 소송을 접수하고 심사한다. 헌법과 헌법재판소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의 헌법재판소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헌법재판소 자체가 헌법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 헌법 개정이 1987년에 이뤄졌다. 헌법재판소가 1962년에 폐지된 이래 25년만의 일이었다. 25년 동안 위헌법률심사를 대법원이 담당했고 헌법위원회는 ‘자칭 원로들이 모여 바둑이나 두는 곳’이었다고 한다.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받고 있고, 역사상 가장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2017년은 헌법재판소가 법적 근거를 갖게 된 지 딱 30년째라는 게 의미심장하다.
이번 겨울을 뜨겁게 달군 대통령 탄핵과정과 직접 관련된 헌법 조항은 세 줄에 불과하다.
(국회) 제65조
2. (전략) 다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 제84조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헌법재판소) 제113조
1. 헌법재판소에서 법률의 위헌결정, 탄핵의 결정, 정당해산의 결정 또는 헌법소원에 관한 인용결정을 할 때에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간단하고 명확하다. 국회, 대통령, 헌법재판소에 카드를 한 장씩 나눠주고 벌이는 게임의 규칙처럼 보인다. 제65조 탄핵소추에 대해서 이 책의 저자들은 이렇게 해설을 달았다.
탄彈은 따진다는 말이고, 핵劾은 캐묻거나 죄상을 조사한다는 뜻이다. 보통 사전적 의미로 탄핵은 잘못을 조사하여 책임을 묻는 일이다. 거기에 바탕한 헌법적 의미의 탄핵이란, 공직으로부터의 추방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국민을 대표한 국회가 고급 공무원을 추방하는 제도가 탄핵이다. 고급 공무원에 한정하기에, 보통의 징계 절차와는 다르다.
각 나라마다 사정에 따라 탄핵제도의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대통령을 포함한 최고급 공무원들을 탄핵할 수 있는 권한의 근거는 이론상 두 가지에서 찾는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그것이다. 고급 공무원에게 결정적 책임을 물을 일이 있으면 주권자인 국민에게 심판할 권한이 있다. 그런데 모든 국민이 책임을 묻는 투표를 할 수 없으므로, 대의기관인 국회에 맡긴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이다. 그런가 하면 고급 공무원들은 솔선하여 헌법과 법률을 지켜야 한다. 그들이 중대한 위헌, 위법 행위를 저지를 경우 엄정히 책임을 추궁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헌법을 수호하고 법치주의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엔 사법부에 그 심판을 맡길 수 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아무리 오래 토론을 해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는 것도 상식이다. 그럴 때엔 미리 규칙을 정해두는 것이 이제까지 사람이 발견해낸 최선의 방법이다. 헌법이 최고 권력자로 규정한 대통령을 공직에서 추방하는 방법을 같은 지면에 정해놓은 것이야말로 헌법이 지닌 완결성이다. 1948년 7월 17일 제헌절 이후 우리가 해온 노력이 130개 조항에 고스란히 담겼다. 법 해설서처럼 딱딱해 보이는 책이 재미있는 이유가 이런 노력 때문이라 짐작한다.
또, 대통령, 국회, 헌법재판소와 같은 ‘나랏일’뿐 아니라 대한민국에 속한 국민들이 생활에서 겪었던 다툼들을 헌법이 어떻게 풀었는지 살펴볼 수도 있다. 나이가 어린 응시자를 우선 입학하도록 했던 대학 입학 전형이 평등권에 반하는 것으로 판명 받았다. 법이 정한 최저 근로조건 이하로 조건을 낮출 수 없도록 판단한 것도 헌법에 근거한 것이었다. 조항마다 해설에 실제 판례를 넣어 우리와 헌법의 관계를 밝힌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전문부터 부칙까지 모두 예외 없이 반말로 쓴 헌법에서 유일하게 공손한 말투로 작성된 조항이 하나 있었다. 딱 한 문장으로, 대통령의 취임 선서 조항이다. 이 겨울엔 몇 차례 읽어보게 된다.
제69조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여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만화로 배우는 헌법 판례 120
김재호 지음 | 김영란 그림 | 박문각
이 책은 수험서이다. 시험에 준비하기 위해서 만든 책인데 의외로 재미 있다. 모든 판례는 4컷 만화와 해설로 구성돼있다. 만화로 보니 사건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해설은 다시 해당 헌법 조문을 보여주는 '조문보기'와 '사건 개요', '판결 요지', '해설'로 구성된다. 기출 문제까지 있어서 은근히 승부욕을 자극한다. 목차만 봐도 내용이 궁금해지는 책이다. 목차는 이렇다. 초기 배아 폐기 사건, 일반 사병 이라크 파병 위헌확인 사건, 간통죄 위헌 확인 사건, 좌석안전띠 미착용 사건, 인터넷게시판 본인확인조치 위헌확인 사건, 백화점 셔틀버스 운행금지 사건 등등.
우리 헌법 이야기
오호택 저 | 살림출판사
독자에게 헌법은 크게 둘로 나뉜다. 모호한 구석이 있으면서도 곱씹어볼 만한 앞부분과 이런저런 규칙을 나열해놓은 뒷부분이다. 국민의 권리, 국회, 정부, 대통령 부분까지는 읽을 만한데 행정부, 법원부터 경제에 이르기까지는 책을 내려놓기 일쑤다. 이를 헌법 본문보다 얇은 90여 페이지로 줄였다. 우리의 대통령제를 이렇게 정리했다. '우리 나라 대통령제는 미국식을 기본으로 하되 의원내각제적인 요소도 일부 가미된 형태이다. 국회의 동의를 얻어 국무총리를 임명하는 것,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직할 수 있다거나 정부가 법률안 제출권을 가지는 것 등이 그런 요소이다.'
이금주(서점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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