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자식을 크게 키울 수 있을까
아버지의 자리가 사라진 시대는 위태롭기 짝이 없어요. 아버지가 가정과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조선시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의 마음이 절로 훈훈해질 것입니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16.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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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버지들 가정에서 ‘왕따’라고 느끼니 몹시 외롭다. 월급을 가져다주는 일 외에 가정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니 정체성이 혼란스럽다. 아버지가 사라진 시대, 아버지한테서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도 손해가 크다.


역사학자 백승종은 이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조선시대 12명 아버지들의 삶을 살펴보았다. 500년 전 지금과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산 아버지들의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줄 수 있을까. 놀랍게도 그 시대 아버지들은 우리가 짐작하듯 권위적이거나 엄격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자식에게 무한한 존경을 받고,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세상의 평판을 들을 만한 ‘아버지다움’이 있었다. 우리가 지금 배워야 할 진정한 아버지다움이 무엇인지 저자 백승종 교수에게 들어보자.

 

조선시대 하면 유교, 유교 하면 가부장제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러나 성별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을 존중했다는 내용을 읽자니 우리가 조선시대 사람들을 오해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조선시대의 아버지 이야기를 책으로 내신 이유는 뭘까요?


맞습니다. 그런 오해가 없지 않았지요. 사실 가부장적 사고라고 하는 것은 전근대사회의 보편적 특성입니다. 유교 경전도 그렇습니다만, 특히 <구약 성경>이나 <코란>은 가부장제도의 이상을 담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한발 더 깊이’ 들어가 보기를 원했습니다.


실제로 조선시대의 사회를 움직인 아버지들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에게는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점들이 많았어요. 저도 그렇습니다만, 이 시대 아버지들은 정체성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이 많아요. 그런 점에서 제가 만난 12명의 조선시대 아버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매력적이라고 봐요. 그들은 우리가 추상적으로 알고 있듯이 엄격하거나 일방적으로 권위를 부리지 않았어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했지요. 책을 보시면 놀라운 대목을 많이 발견하실 겁니다. 또 그들이 애써 추구한 인생의 가치는 지금도 유효한 것이 많습니다. 그분들의 삶은 제 가슴에 아릿한 울림을 주었지요. 독자들도 이 아버지들의 삶을 보면서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성찰할 기회를 갖기를 바랍니다.


전통적으로 자식들은 아버지로부터 사회 및 인간과 관계하는 방법을 비롯해 삶에 필수적인 다양한 지혜를 배워왔지요. ‘아버지의 부재’라고 하는 오늘날의 보편적 현상은 그런 점에서 정말 유감입니다. 아버지에게서 배울 기회를 놓친다면 온전한 인간으로 성숙하는 데 엄청난 손실이 따르지요. 아버지의 자리가 사라진 시대는 위태롭기 짝이 없어요. 아버지가 가정과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조선시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의 마음이 절로 훈훈해질 것입니다.

 

‘충(忠)’을‘자신을 포함한 일체의 사물에 진심을 다하는 것’으로 말씀하신 게 인상 깊었습니다. 보통 ‘충’은 신하가 임금에게 하는 도리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조선시대 아버지들이 구하려고 했던 ‘충’은 무엇일까요?


충성을 바친다는 것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요.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이 아들에게 들려준 말씀이 기억나시는지요. 내가 충성을 바칠 최고의 대상은 백성이다, 다음은 나라이다. 임금은 그 다음일 뿐이다. 이 대사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안 나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보기에 그 말은 이순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한 것이지요.


사실은 <맹자>에 바로 그런 말이 나옵니다. 이른바 ‘4서 3경’ 곧 유교 경전을 관통하는 사상이 바로 그것이지요. 임금보다는 왕조가, 왕조보다는 백성이 더 소중하다는 것인데요. 한발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유교적 교양을 추구하는 선비들에게는 “나”가 제일 중요한 충성의 대상이었습니다. 군자가 되려면 결코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되는 것이었어요. 진심을 다해 자신에게 정성을 다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야 했어요. 자신에게 정직하고자 하는 사람이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소신을 접거나 불의와 타협하기는 어렵겠지요. 그랬기에, 조광조는 중종에게 ‘근독(謹獨)’, 곧 홀로 있을 때를 삼가라고 주문했지요. 제가 이 책에서 만난 김집 같은 학자는 호를 신독재(愼獨齋)라 하여,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는 호를 쓰기도 했지요. 이러한 사고의 연장선상에서 훗날 동학의 스승들은, 자신을 비롯하여 뭇 사람과 사물을 하늘처럼 받드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지요.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에 국한하지 않고 정약용이 천주교를 받아들인 과정이라든지, 영조와 정조가 처한 정치적 상황 등 역사적인 배경이 소개됩니다. 아버지 자신이 훌륭한 경우도 있었겠지만, 시대 상황이 부모 자식 관계에 영향을 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조선 시대의 특정한 상황 때문에 아버지상이 현재와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시대 상황에 따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바뀝니다. 시대 상황뿐만이 아니지요. 같은 시대라도 개개인의 처지에 따라서 많은 차이가 있어요. 엄밀한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가 다른 처지요, 다른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처지에 완벽하게 일치하는 과거의 경험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일은 하나의 참고사항일 따름이지요.


그런데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우리의 사고가 확장됩니다. 한층 깊어지기도 하지요. 조선시대의 아버지들은 우리에게 유익하고 흥미로운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숙자와 김인후 등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역사적 인물도 보입니다. 간단히 설명해 주시자면.


이분들도 당대에는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은 학자들이었어요. 제자들도 많이 따랐어요. 김숙자는 조선 초기 사림파의 영수로 이름난 점필재 김종직의 아버지이자 스승이었지요. 길재의 수제자이기도 하였고요. 김숙자는 청년시절 이혼한 일이 있었고, 때문에 벼슬길에서 오랫동안 소외되었지요.


하서 김인후는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었던 16세기 최고의 성리학자요, 시인이었어요. 이분은 인종의 동궁시절 스승으로도 유명했고, 기묘사화로 쓰러진 조광조의 복권운동을 처음으로 시작한 것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지요. 그러나 곧 조정을 떠나 시골에 묻혀 학문과 문장을 닦기에 전념했어요. 송강 정철의 스승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여로 모로 탁월한 선비들이 많았어요.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의 우리로서는 그들 가운데 겨우 몇몇의 인물이나 알고 있는 정도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군법을 어기는 부하의 목을 가차 없이 베는 이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너그럽거나 자상한 모습을 보이는데요. 모순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잘 생각해보면 그것이 모순은 아니지요. 장군의 군대는 전쟁 중이었고, 그래서 엄한 기율이 필요했어요. 전쟁 중 군대에서 기강이 흐트러지면 모든 것이 끝이었지요. 사랑(仁)을 토대로 한 가족관계와는 근본적으로 성질이 달랐어요. 한데요. <난중일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순신의 부하 사랑도 대단하였어요. 그는 마치 아버지로서 또는 어머니로서 자식들을 돌보듯 하였습니다. 군사들에게 팥죽을 쑤어 먹이고, 등을 다독이며 흐뭇해하였어요.

 

영조와 사도세자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좋은 일을 행하라고 상대에게 권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잔소리와 격려, 조언과 비난을 구분하기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판단의 중심을 아버지가 아니라, 자식 쪽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아들이나 딸이 보기에 비난으로 들리면, 그건 교육이 아니라 잔소리에 불과한 거지요. 자녀에게 꼭 가르치고 싶은 게 있다면, 부모가 스스로 행하면 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조선의 아버지들이 보여주는 중요한 덕목이지요.   

 

지금 시대의 아버지들이 이 책을 통해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자상하고 따뜻했다는 점이지요. 가령 퇴계 이황은 자식이 잘못을 저질러도 함부로 야단치지 않았어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편지를 썼지요.


둘째, 말로만 훈계하지 않고 몸소 모범을 보였어요. 아버지 정약용은 18년간의 유배 기간 동안 좌절하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여 500권이 넘는 저술을 남겼지요. 그런 모습이 두 아들에게 ‘폐족’의 위기를 헤쳐 나갈 길을 자연스럽게 제시해주었다고 봅니다.


셋째, 자식을 존중하고 예를 다했다는 점도 새롭지요. 아버지 김장생은 아들이 무슨 질문을 하면 병상에 누워 있다가도 몸을 일으켜 앉은 채 대답했거든요. 가까운 부자사이라도 서로에게 예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어요.


이밖에도 배울 점이 참 많지요. 지면 관계상 일일이 다 적을 수 없어 유감입니다.

아버지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른’으로 사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 우리는 어른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어요. 그러니 세상이 혼탁하고 혼란하기 짝이 없지요. 제가 생각하는 아버지다움은 바로 이런 겁니다. 저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어른으로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 책이 하나의 징검다리라도 될 수 있다면 매우 기쁘겠습니다.


 

 

조선의 아버지들백승종 저 | 사우
‘아버지란 무엇인가?’ 아버지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 시대 아버지들을 대신해 역사학자 백승종이 조선시대 12명의 아버지를 만나보았다. 오랫동안 미시사 연구에 몰두해온 저자는 다양한 자료를 섭렵해 면면이 독특한 12명 아버지들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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