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면 경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경제에는 관심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99%를 위한 경제학』의 목차를 보면 생각을 바꿀지 모른다. ‘낮은 곳을 향하는 주류 경제학 이야기’라는 타이틀에 마음이 조금이라도 움직였다면, 목차를 천천히 읽어보자.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질까, 내 편견이 이루어지는 나라, 조금만 더 참으면 행복해질까, 분노마저 포기할 것인가, 왜 갑의 편을 드는가, 갑이 되고 싶은 무력한 을들에게” 등 경제학자 김재수가 선택한 단어들은 대학 강단에서만 통하는 말이 아니다. 한편 저자는 “왜 한국의 경제학자들이 전반적으로 보수적이고 친기업적인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경제학자들이 왜 갑의 편에 더 많이 서느냐”고 묻는다. 1%의 경제학만 지켜봤던 독자들은 흠씬 놀란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는지, 합리적인 소비는 가능한지, 대기업의 갑질을 끊을 수 있는지, 알게 되고 고민하게 된다.
『99%를 위한 경제학』의 저자 김재수는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인디애나-퍼듀 대학교(IUPUI)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며 밥벌이 하고 있다. 갑을 사이의 계약과 차별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두 아이의 아빠이고, 사랑 주는 아내의 남편이며, 일용직 건설 노동자인 아버지와 그의 아내로 평생 가난한 어머니의 아들이다.
디자이너를 울린 경제학자의 책
첫 책입니다. 상당히 혼란한 시국에 출간되어 홍보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독자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책을 내신 소감은 어떠신지요?
작고 하찮은 책을 읽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석학들과 필력이 출중한 분들의 책이 넘쳐나는데, 제 학문적 성과는 작고 글솜씨는 하찮습니다. 책을 쓴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는데, 김진형 생각의힘 편집장님의 격려가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류경제학의 언어와 방법”을 갖추었지만 “저항의 결기”를 담고 “낮은 자리에 거하는 이들을” 향하는 “따뜻한 책”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셨거든요. 부족하지만 흉내라도 내보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썼습니다.
가장 보수적인 신문과 가장 진보적인 신문에서 동시에 머릿기사로 서평을 실었습니다. 우리나라 출판계에선 낯선 일이지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책의 2장은 경제학적 사고방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비용편익분석으로 최적을 찾는다”는 의미는 세상을 이분법과 직선적 평가에 가두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보수와 진보의 틀에 갇히지 않는 것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모두 서평을 실어준 것이 참 감사합니다. 두 신문이 주목한 대목이 거의 비슷합니다. 시장과 기업은 동의어가 아니고, 시장경제는 기업하기 좋은 시스템이 아니라 기업이 경쟁하는 시스템이라고 이야기한 지점입니다. 보수와 진보 모두가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 같습니다.
제목이 ‘99%를 위한 경제학’인데요. 그렇다면 ‘1%를 위한 경제학’은 무엇인지요?
노골적으로 1%의 편을 드는 경제학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바로 낙수이론(trickle-down economics)입니다. 기업과 부유층 들에게 감세를 해주면, 이들의 소비가 경제의 중하층부로 전달되어 경제가 성장하고 모두가 잘 살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아마도 대다수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증거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책에서 지적하는 것들은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주류 경제학의 건실한 논리는 1%대 99%와 같은 구분을 하지 않습니다. ‘100%를 위한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저는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을 가치중립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비틀어진 경기장에서 유지되는 가치중립성이야 말로 1%를 위한 경제학으로 왜곡되기 쉽습니다. 책의 여러 곳에서 어떻게 이런 식의 왜곡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경제학이 추구하는 가치인 효율성 개념은 가치중립성이라는 명목 하에 분배의 문제를 경시하고, 기존의 기득권을 보장하며, 힘을 가진 이들에 의해 왜곡되는 현실을 수용합니다. 또한 최적에 집착하는 경제학은 불완전성을 고치기 위해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인 상황을 추구하다가 실현 가능한 대안 중의 최선이라 할 수 있는 차선을 거부하는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최저임금제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환경 및 안전 규제가 경제성장을 저해한다고 해서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상황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수학과 통계학으로 가득한 경제 분석 방식은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격하지만, 동시에 연구자들과 정책담당자로 하여금 본인들이 원하지 않는 비인간적 의사결정을 하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디자이너를 울린 경제학자의 책’이란 홍보 문안이 인상적이었어요. 경제학자의 글이 이렇게 따뜻해도 되나 싶어요.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분들이 그리 읽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특히 에필로그를 읽고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냥 제 못난 이야기를 쓴 것뿐입니다. 김진형 편집장님이 제게 보낸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종종 등장하는 자기 고백의 서사는 독자들의 경계를 허물어뜨립니다.” 질문만 던지고 마땅한 대답도 내놓지 못하는 고백이 담길 때마다, 너그러운 독자들께서 따뜻하게 이해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책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99%를 위한 경제학’이란 어떤 책인지요? 어떤 독자들이 읽어야 할까요?
‘99%를 위한 경제학’은 제가 가르치는 미시경제학의 강의안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요, 미시경제학 개념들을 99%의 시선과 을의 관점으로 설명해 보고 싶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장은 갑을관계, 노오력, 헬조선, N포세대, 불평등으로 표현되는 우리의 시대상을 행동경제학 연구를 통해 조명해 봅니다. 2장은 경제학적 사고방식이 무엇인지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 봅니다. 3장은 시장경제를 설명하고 자본주의를 망가뜨리는 이들이 누구인지 묻고 답해봅니다. 4장은 경제학자들의 생얼을 들여다 보는 연구들을 소개합니다. 추천사를 써주신 이상헌 박사님께서는 이 책에 대해 “1%의 경제학을 뒤집으려는 대담한 시도”“내재적 전복”으로 요약해 주셨고, 유종일 교수님께서는 “더욱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싸움에서 경제학이 중요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어떤 독자들이 읽어야 할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이 책을 가장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은 경제학 수업을 듣고 있는 세상의 모든 대학생들입니다. 교과서가 설명하는 경제학적 사고방식, 수식과 통계를 통해서 접하는 경제학 개념들에 대해서 제가 던지는 질문들에 초청하고 싶습니다.
‘주류 경제학의 언어와 방법론을 준용하지만, 메시지는 비주류적이다’라는 반응들이 있습니다. 집필하실 때부터 이를 염두에 두신 건지요?
책에 담긴 자기소개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한데요, 저는 일용직 건설 노동자인 아버지와 그의 아내로 평생 가난한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렇게 저를 소개하는 이유는 세상의 풍경을 바라보기 위해 제가 서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냥 저의 시선이 드러난 것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지점은 보수의 문법을 이용해서 진보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지적을 해주셨는데요. 주류와 보수의 문법과 비주류와 진보적인 메시지가 닿아 있는 지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소통이 가능하고 점진적 변화를 함께 모색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필요없고, 보수가 지키고자 하는 것과 진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동일한 지점입니다. 바로 이런 지점에서 부터 조금씩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습니다. 시장경제는 가격체계와 신뢰라는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갑니다. 첫번째 바퀴인 가격 체계를 움직이는 동력은 이기심입니다. 이기심이 마음껏 발현되도록 할 때, 시장경제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명제가 불편하게 느껴지거나 반직관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기심을 잘 만족시켜야만 자신의 이기심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 시장경제이기 때문에, 이기심의 경쟁이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가격이라는 바퀴가 이기심에 의해 돌아간다는 사실은 보수에 의해 비교적 잘 이해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바퀴는 신뢰입니다. 계약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가격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시장경제의 영역이 많은데, 이 때 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신뢰입니다. 신뢰라는 바퀴를 돌리는 동력은 불공평한 처사에 대한 분노, 복수심, 처벌입니다. 신뢰게임, 죄수의 딜레마, 최후통첩게임 등 다양한 방식의 실험을 통해 알려진 사실은 처벌의 가능성 때문에 사회적 신뢰가 유지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한국 사회의 기득권과 지배력을 지닌 대기업이 처벌을 받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분노하라”는 메시지는 마치 진보적 목소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시장경제를 굴러가게 하는 바퀴의 동력이기도 합니다. 보수가 함께 외쳐야 할 구호인 것이죠.
하나의 예로 들고 싶은 것은 바로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찾아 처벌하는 것, 대통령의 부재와 컨트롤타워의 무능을 추궁하는 것, 즉 정부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은 정부에게 공공재를 제공하라는 보수적 경제학의 요구입니다. 이것이 진보 진영의 목소리로 축소될 수 없습니다.
이 책은 약자의 편에 서서 분노를 요청하고 저항을 말한다는 면에선 꽤나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보 담론의 비합리성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이 그러한지요?
진보적 포퓰리즘에 대한 저의 문제의식을 이곳 저곳에 담았습니다.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은 대체로 나쁜 사람들을 물리치고, 좋은 사람들이 정치 권력을 가지면 세상이 변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제 해결 방식은 법을 바꾸고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것이구요. 하지만 경제학에서 항상 사용하는 ‘균형’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면 왜 경제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종종 진보의 주장을 더 매섭게 비판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균형이 담고 있는 의미는 세상이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단하게 제시되는 해결책이 많은 문제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보적 포퓰리즘이 이런 점들을 쉽게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진보적 지식인들이 자본주의 또는 시장경제를 자주 비판하는데, 이들의 비판은 거의 항상 시장실패에 대한 것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시장과 시장실패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시장실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진보적 지식인들이 이러한 구분을 하지 않고, 시장실패 상황을 말하면서 시장경제를 비판하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설명을 위해 조금 과장된 비유를 들자면, 현대인들이 스마트폰 사용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쏟는 점을 지적하면서 스마트폰 자체를 비판하고 아예 사용하지 말자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책에 박근혜 대통령이 자주 등장합니다. 동시에 매섭게 비판합니다. 경제학자로서 현 시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요?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국방부 불온서적 리스트에 선정되고 싶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출간이 되자 마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식물정부가 되어버렸습니다. 좀 어색하고 멋쩍은 모양새처럼 느껴집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겠지만, 경제학자로서는 미르, K스포츠 재단에 막대한 자금을 출연한 대기업들의 책임을 무겁게 보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들은 정권에 밉보이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며 피해자의 논리를 펼칩니다. 이번 사건만 보면 그럴 듯하지만, 이런 식의 일들은 항상 반복됩니다. 이런 점에서 정치적 힘과 기업의 결탁은 가해자-피해자 구도로만 볼 수 없고 공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는 정실자본주의의 민낯입니다. 시장지배력이 큰 기업들은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것으로 경쟁하기보다 정부의 힘에 기대어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인센티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업과 정치가 공생하는 것이 바로 정실자본주의입니다. 저는 정실자본주의야 말로 시장경제의 최대의 적 아니냐고 묻고 싶습니다.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는 지배력있는 기업에게 책임을 지우고 있음을 설명합니다. 이는 영화 <내부자들>이 제시한 통찰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의 특성상 과장되게 그려낸 면이 있지만, 정실자본주의의 갑은 기업이고 을이 정치인들입니다. 실제로 누가 더 많은 이득을 보았고, 누가 처벌도 받지 않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경제학자의 엄밀함이 느껴지다가도 어떤 부분에선 갑자기 저자의 자학하는 부분을 읽으며 많이 웃었습니다. 경제학의 엄밀함이 통용되지 않는 일상의 삶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경제학자라고 하면 조금 차갑고, 엄격한 이미지라는 편견을 가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 모두는 실수 투성이의 사람들이죠. 스스로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편견에 대한 저항이기도 합니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내용들이 책으로 만들어지면서 잘 다듬어지고 더 풍성해진 것 같아요. 프롤로그에 페이스북 친구들의 공이라고 쓰셨습니다.
제가 수업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지인들이 즐겁게 읽어주었습니다. 댓글도 많이 달아주었구요. 사실 관계가 틀린 것도 바로 잡아 주기도 했고, 좋은 예를 소개해 주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인권 감수성이 부족했던 표현 방식들이 한두 군데 있었는데, 이를 지적해 준 분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책 곳곳에 지인들과 페친들의 목소리가 숨어 있습니다.
멀리 미국에 계신데,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지요?
다들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여러 경제학 연구에 따르면, 1인당 국민소득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그 이상의 소득 증가가 행복을 느끼는 정도를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대체로 1만 5,000달러에서 2만 달러 사이가 분기점이라고 하는데요. 그 이상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방식 하나는 상대적 비교에서 비롯됩니다. 갑을 관계를 만들고 지위를 과시하는 소비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분배의 형평성이 전체 국민의 행복과 삶의 질을 증진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많이 있습니다. 승자독식사회를 만들어 행복 쟁취 경쟁을 펼칠 것인지, 다 함께 조금씩 더 행복해지기 위해 연대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다들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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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를 위한 경제학김재수 저 | 생각의힘
이 책은 세상일들을 엮어 가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이어간다. 특히 ‘1%의 경제학’의 전복을 꾀하는 지점에선 자기 고백적 서사가 자리 잡고 있으며, ‘99%의 경제학’을 도모하는 지점에선 경제학적 반골 정신이 타협 없이 발현된다. 저자는 끊임없이 저항의 결기를 다지며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가슴의 통찰을 풀어내고 있다.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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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uiu22
2016.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