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문자로 이루어진 실험적 사운드, 본 이베어
쉽게 다가서기 힘든 과도기적인 성격은 전작의 맥을 잇는 기조들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명확히 들어서는 선율의 진행은 전작들보다 인상적이다.
글ㆍ사진 이즘
201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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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특수문자들이 동원된 해괴망측한 트랙들의 겉옷, 그 속살에서 마주한 낯설고 실험적인 사운드. 급진적으로 변한 사운드의 질감에서 에이펙스 트윈(Aphex Twin), 라디오헤드(Radiohead)와 같은 선구적인 뮤지션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글리치 사운드와 왜곡된 음성, 그리고 날카로운 보컬 샘플들이 뒤얽히는 두 번째 트랙 「10 d E A T h b R E a s T 캡처.JPG」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22, A Million>의 당황스러운 변화는 본 이베어의 전작들과 볼케이노 콰이어(Volcano Choir)의 음반들, 즉 저스틴 버논(Justin Vernon)의 디스코그래피와 5년간의 휴식기 동안 그가 협업했던 아티스트들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음반에 적극적으로 사용된 샘플링 기법에선 당시 함께 작업했던 카니예 웨스트가 떠오른다. 음반을 제작할 당시 기타보다 샘플러를 적극 사용했다는 증언처럼 달라진 작곡 방식은 음반 도처에 반영되었다. 보컬 샘플이 반복되는 「22 (OVER S∞∞N)」과 온갖 중얼거림이 삽입된 「21 M캡처2.JPGN WATER」 등의 트랙들은 기존의 본 이베어가 선보인 포크의 작법이 아닌, 따로 녹음한 샘플들을 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얻어진 연속된 화음이다. 여러 도형들과 그림들로 장식된 음반의 커버와 베이퍼웨이브(Vaporwave)류의 뮤직비디오들 또한 <22, A Million>의 성질을 나타내고 있는 요소이다.

 

음성의 피치를 변화하는데 사용된 오토튠과 관련되어 우선적으로 상기되는 것은 EP 의 수록곡이자 칸예 웨스트의 「Lost in the world」에 삽입된 곡으로 더욱 유명한 「Woods」이다. 다양한 피치의 음성을 오버 더빙한 발라드 트랙 「715 - CRΣΣKS」는 오토튠과 샘플러만으로 만들어진 「Woods」의 작법과 동일하다. 이는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의 음악의 특징인 전자음악의 요소들과 보코더를 덧입은 보컬과의 형식미에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22, A Million>의 암묵적인 크레딧 중, 가장 크게 다가오는 이름은 '본 이베어'다. 의 역동성과 서정성은 「715 - CRΣΣKS」와 「29 #Strafford APTS」의 멜로디에 고스란히 스며들었고, 에서의 관악기의 특출한 운용은 「8 (circle) 」과 「____45_____」에서 재출현한다. 본 이베어 특유의 섬세함 또한 여전하다. 다만 동시대의 진취적인 음악들의 요소들을 이곳저곳 붙여놓은 거추장스러운 외피를 입었을 뿐.

 

분명 낯선 음반이다. 일반적인 궤에서 벗어난, 파편화된 단어들과 문장들로 구성된 가사는 더욱 낯설다. 그러나 음반엔 접근성을 높이는 친숙한 요소들이 존재한다. 쉽게 다가서기 힘든 과도기적인 성격은 전작의 맥을 잇는 기조들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명확히 들어서는 선율의 진행은 전작들보다 인상적이다. 특히 음반의 끝을 장식하는 「00000 Million」은 현재의 본 이베어가 실험성을 좇는 밴드로 완전히 돌아서지 않음을 나타내는 트랙이다. 방향성은 모호하지만, 따스함은 여전하다.


이택용(naiveplante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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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