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도, 성당 안에 들어가면 그 성스러운 기운에 자못 경건해진다. 평소 도박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도, 카지노에 들어가면 행운에 인생을 걸어보고 싶은 욕망이 끓어오를 때가 있다. 보호자로 왔는데도 병원에 들어서면 긴장감부터 밀려온다. 도대체 공간은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그리 흔들어놓는 것일까?
모든 인간은 인공건축물 안에서 생활하며,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매 순간 공간과 상호작용을 한다. 따라서 공간이 우리 마음에 끼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것은 가장 원초적인 호기심이면서 동시에 가장 실용적인 의문이다. 인공건축물을 설계하고 공간을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공간이 우리 마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해답이 공간 디자인의 가장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신경건축학의 도래
공간이 사람의 마음을 어찌 뒤흔드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한 건 1970년대 무렵이다. 당시에는 환경심리학 또는 건축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탐구를 했다. 1970년대 크게 주목받았던 환경심리학은 환경이 인간의 마음에 끼치는 영향을 행동관찰을 통해 이해하려 애썼다. 공원의 벤치와 가로수 그늘의 위치에 따라 사람들이 공원에서 휴식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놀이터에서 엄마들이 쉬는 공간을 어디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노는 방식도 달라진다.
그 후, 마음을 탐구하는 학문인 심리학이 신경과학을 만나면서, 신경건축학이 나타났다. 신경건축학은 환경심리학이 그동안 탐구해 온 주제들을 뇌 활동까지 측정함으로써 생물학적 토대 위에서 총체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휴대용 뇌파 측정기로 간편하면서도 정확하게 대뇌 활동을 측정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의 뇌에서 벌어지는 인지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사고와 행동을 관찰하면서 공간이 마음에 끼치는 영향을 측정 가능한 것으로 환원할 수 있게 됐고, 학문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2004년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신경과학자들과 건축가들을 중심으로 ‘신경건축학회Academy of Neuroscience for Architecture’가 발족하면서, 이 주제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게 됐다. 건축이 물질을 쌓아올리는 과정을 넘어 마음을 축조하는 과정이라는 철학을 공유하는 학자들이 모여 ‘신경건축학Neuroarchitecture’이라는 우산 아래 연구의 둥지를 튼 것이다.
신경과학자이자 디자인 컨설턴트인 콜린 엘러드는 이 책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에서 공간과 마음의 상호작용이라는 야심찬 질문이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중요한 질문인지 일깨워준다. 그는 건축의 역사가 오랫동안 추구했던, 그러나 대답하지 못했던 것을 21세기에 들어와 탐구하게 된 과정을 추적하면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뇌파를 측정하고, 시선을 모니터링하고, 위치추적장치로 움직임을 파악하면서 답을 향해 다가섰던 학자들의 연구성과를 친절히 소개한다. 아주 일상적인 언어로 말이다. 심리지리학,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가! 이 책 은 행복으로 가는 마음의 지도를 탐색하려는 학자들의 고군분투기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독자들에게 ‘내 공간은 과연 내게 행복을 선사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를 갖게 만든다는 데 있다. 『행복의 건축』에서 알랭 드 보통이 말한 것처럼, “장소가 달라지면 나쁜 쪽이든 좋은 쪽이든 사람도 달라진다.” 건축은 ‘삶을 담아내는 그릇을 축조하는 과정’이기에, 행복한 삶을 설계하는 건축가들에게 ‘우리는 어디에서 가장 행복한가’에 대한 신경과학적 이해는 필수다. 이 책의 독자들은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내 공간을 둘러보고 내 삶의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나의 공간이 얼마나 적절한가를 성찰하게 될 것이다.
공간, 마음을 담아내는 그릇
일례로, 인간은 행복한 순간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한다. 표정이 밝아지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의 분비가 줄어들며, 근육이 이완된다. 욕망이 충분히 채워지고 안전감이 충만하여 이 상태를 유지하려는 노력 외에는 다른 욕망이 없는 상태가 된다. 우리 집에서 나의 세로토닌 공간은 어디일까? 내 방을 어떻게 바꾸어야 세로토닌의 분비가 늘어날까?
애착 형성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얼마나 분비되느냐에 따라 가족의 화목한 정도도 측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제는 행복, 스트레스, 화목 같은 모호하고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개념을 신경과학자들이 측정 가능한 것으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조만간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는 건설사가 우리의 목 뒤에 신경패치를 붙여 세로토닌 분비량을 측정할지 모른다. 다양한 타입의 집 구조를 보여주면서 우리의 반응을 측정하고 최적화된 구조를 소개해 주게 될 것이다. 시선 추적을 통해 어디에 주의를 집중하는지 선호의 반응을 어디서 보이는지도 모니터링하게 될 것이다.
치매 환자들이 거주하는 공간에는 포커게임 테이블이나 오락 기계를 놓기보다, 운동시설을 배치하는 것이 인지기능 발달에 효과적이다. 물론 환자가 물건을 둔 장소를 자주 잊어버리기 때문에 침대 가까운 곳에 물건을 모을 수 있도록 방을 설계하는 일도 중 요하다. 방문에는 그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붙여놓아야 그들이 쉽게 자신의 방을 찾을 수 있다. 신경건축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치매요양원에는 박물관을 연상시킬 만큼 그들의 어린 시절 물건들을 거실에 진열해 놓으라고 권한다. 그들이 기억을 되살리고, 대화에서 어휘수를 현저히 늘리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보육하는 어린이집에는 오감을 자극하는 공간이 필요하다. 태양의 각도에 따라 공간의 빛깔이 달라지고, 안전하게 요리를 해먹을 수 있은 공간이 마련되어야 맛과 향기로 아이들을 자극할 수 있다. 두세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들이 곳곳에 있어야, 그 안에서 또래친구들과 긴밀한 관계 맺기가 늘어난다.
행복의 공간에서 머물고 싶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덮는 책이 아니라, 종종 펼쳐보면서 삶을 돌아보는 친구 같은 책이다. 심리지리학은 건축물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나는 어떤 공간에서 행복하고 창의적이며 안식을 얻는가’를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역세권이나 학군, 투자가치만으로 집과 건물을 바라보지 말고, 공간 속에 놓인 내 안을 들여다보라고 말이다.
심리지리학은 앞으로 갈 길이 먼 ‘도전적인 분야’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경계에선 꽃이 핀다’고 하지 않았던가. 심리학과 신경과학, 건축학과 공간디자인이 만난 심리지리학이 ‘행복한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히고,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며 설계하고, 경험이나 직관이 아닌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벽돌을 올리는 공간학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이 책은 그 과정 어딘가에 놓일 이정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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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콜린 엘러드 저/문희경 역/정재승 감수 | 더퀘스트(길벗)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는 인간이 건축을 통해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을 어떻게 만들었으며, 그 두 공간은 또한 우리를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인간의 다양한 정서를 중심축으로 삼아 흥미진진하게 설명한다. 저자인 콜린 엘러드는 자신의 개인사와 대중의 관심사, 그리고 전문적인 지식을 재치 있게 엮어낸다.
정재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