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업 종사자 99.9%가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조명.
일단 테이프를 과거로 빨리 감아볼까요? 어찌어찌 인테리어 업체와 계약을 하고 공사에 들어갑니다. 아이템에 대한 상의가 끝나면 도면을 가지고 옵니다. 처음 하는 분들은 백 번 봐도 잘 모를 수밖에 없죠. 뭐가 보여야 말이죠. 도면을 그려 온 디자이너도 나중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100%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 말 그대로 ‘블루 프린트’, 청사진에 지나지 않습니다.
외식업을 직접 운영해본 디자인 업체라면 모를까 주방과 홀 스태프들의 동선까지 완벽하게 고려한 인테리어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100명의 손님이 올 때와 500명의 손님이 들이닥칠 때의 각기 다른 상황을 예측하고 계산할 줄 아는 천재가 이 바닥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암튼 인테리어 업체가 도면과 같이 제공한 조감도 덕분에 ‘감’을 잡을 수는 있습니다. 출입구는 어디에 두고, 천장 색깔은 뭘로 하고, 벽지는 어떤 질감이고, 바닥재는 어떤 걸 사용할지 상의합니다. 다행히 샘플이 있어서 이해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결정은 쉽지 않죠.
적게는 몇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까지 드는 게 인테리어. 이 비용을 전부 내가 지불해야 한다니.... 며칠 더 고민해보겠다며 업체 직원을 돌려보냅니다. 이제 주위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합니다. 도면을 보여주면서 마치 본인이 전문가라도 되는 듯 설득을 시작합니다. 사실은 자기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서, 더 정확히는 확신을 얻고 싶어서일 겁니다. 그렇게 지인들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합니다. 아니, ‘구한다’가 아니라 ‘이끌어낸다’는 표현이 더 맞겠네요.
왱왱 소리와 수북한 먼지가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면 어느새 번듯한 가게 모양새가 갖춰집니다. 이때쯤 인테리어 담당자가 또 한 번 결재를 받으러 옵니다. 이번엔 두툼한 조명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어찌나 종류가 많은지 결정 장애와 맞닥뜨립니다. 가격은 착하면서 고급스러운 조명을 찾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두고 싶다는 의지는 처참히 무너집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
많은 분들이 조명 갓을 고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면서 조명의 색온도에는 촉각을 세우지 않습니다. 아무리 인테리어가 훌륭해도 가게 분위기를 좌우하는 색온도가 튀면 말짱 도루묵인데 말이죠. 전문 용어가 나왔으니 간단하게 설명을 좀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색온도(color temperature, 色溫度) : 완전 방사체(흑체)의 분광 복사율 곡선으로 흑체의 온도. 절대 온도인 273℃와 그 흑체의 섭씨온도를 합친 색광의 절대 온도이다. 표시 단위로 K(켈빈Kelvin)를 사용한다. 완전 방사체인 흑체는 열을 가하면 금속과 같이 달궈지면서 붉은색을 띠다가 점차 밝은 흰색을 띠게 된다. 흑체는 속이 빈 뜨거운 공과 같으며 분광 에너지 분포가 물질의 구성이 아닌 온도에 의존하는 특징이 있다. 색온도는 온도가 높아지면 푸른색, 낮아지면 붉은색을 띤다. (박연선, 『COLOR 색채용어사전』, 2007)
우리는 간단히 켈빈이 높으면 푸른색, 낮으면 붉은색이라고 암기하고 넘어가면 되겠습니다. 켈빈이 높은 사진과 낮은 사진을 하나씩 볼까요. 켈빈이 높으면 차가운 분위기가 납니다. 같은 공간이라도 색온도가 높은 조명을 사용하면 시원하고, 차갑고, 서늘한 공기를 연출합니다. 이 공간에 담긴 피사체는 사람이든 요리든 스마트하고 치밀해 보입니다. 반면 색온도가 낮으면 따스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따듯하고 아늑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죠. 이게 바로 켈빈의 비밀입니다.
다시 인테리어와 조명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인테리어 담당자의 설명이 크게 와닿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두 가지를 다 보고 나서 판단하고 싶다고 할 수도 없고…. 눈 딱 감고 결정권을 넘깁니다.
“전문가들이 알아서 잘 해주세요.”
하지만 제아무리 훌륭한 전문가도 하절기와 동절기 메뉴의 분위기까지 맞춰주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볼까요. 많이 남는다고 해서 ‘막국수’라는 아이템을 결정했습니다. 당연히 그 전문가는 켈빈이 높은 조명을 사용할 겁니다. 시원하다 못해 ‘씨원한’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자연스레 이가 시릴 정도로 ‘쨍’한 육수를 들이켜기 위해 행인들이 가게 문턱을 넘겠죠. 좋습니다. 매출이 오르고 수익이 극대화될 것입니다. 헌데 이 효자가 10월을 넘어서자마자 슬슬 배신을 하기 시작합니다.
기온과 색온도의 상관관계는 의외로 복잡하고 치명적입니다. 날이 서늘해진다. 바람이 불고 온도가 뚝 떨어집니다. 몸이 으슬으슬해집니다. 수술실처럼 냉랭한 막국수 집에 손님이 들 리 만무하죠. 기온이 떨어지는 만큼 손님 수도 떨어집니다. 주인은 울상이 되기 마련. 그런데도 동절기 메뉴로 뭘 낼까만 고민합니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는 거죠.
수술실 밖에 아무리 회복실이나 안정실이라고 적어놓아도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건 바로 조명 때문입니다. 서슬 퍼런 조명이 버티고 서 있는데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죠. 이 사실을 모르는 외식업주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아무리 ‘만둣국, 황태국, 김치전골, 철판보쌈 개시’라고 적어봤자 소용없습니다. 글자로 설득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몸을 녹일 수 있는 뜨끈한 조명이 없으면 손님도 발길을 끊는 거죠.
조명을 다룰 수 있다는 건 묘수 중의 묘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히 제안합니다. 켈빈이 높은 전구와 낮은 전구를 모두 준비해두십시오. 계절을 타지 않는 아이템이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많은 업주들이 동절기와 하절기의 매출 차이 때문에 고민합니다. 장사 안 된다고 손님 탓, 경기 탓, 연휴 탓하지 말고 과감히 조명을 바꿔보세요. 이렇게 재미난 아이디어도 없습니다. 정기적으로 전구와 갓도 청소할 수 있으니까 말이죠.
인간의 심리는 오묘합니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무진 애를 씁니다. 추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하지방을 축적합니다. 반면 더위를 이기기 위해 체온을 스스로 조절하죠. 땀이 나는 이유입니다. 뇌는 오로지 나를 위해 24시간을 계산하고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당연히 한겨울에는 수술실 같은 분위기의 매장에 들어가는 걸 막습니다. 또 한여름에 뜨끈하고 끈적이는 업소에 가는 걸 방해합니다.
최고의 음식을 만드는 건 기본.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 만든 음식을 최대한 많은 고객에게 선보이고 싶다면 기온에 맞는 분위기를 만드는 겁니다. 그게 살아남을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장사는 전략이다김유진 저 | 쌤앤파커스
《장사는 전략이다》는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장점과 비기(秘技)에 ‘전략’을 더해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김유진만의 절대 노하우를 제공한다.
김유진
김유진제작소 대표, 국내 최초의 외식업 매니저, 맛집 조련사, 푸드 칼럼니스트. 25년간 음식 관련 프로그램을 제작해왔고, 15년간 외식업체 컨설팅으로 성공시킨 레스토랑만 300곳 이상, 300만 명이 그의 강연을 찾아 성공 노하우를 배워갔다. 국립중앙박물관 식음료 총괄 컨설턴트를 지냈고, <찾아라! 맛있는 TV>, <이영돈의 먹거리 X 파일>, <생생정보통>, <굿모닝 대한민국> 등의 프로그램에서 검증단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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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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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