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에 살고 있다는 감각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많은 영감을 준다. 뉴스는 역사적 사건이 되고 현상은 미래 전망이 된다. 연일 쏟아지는 미국 대선 후보들의 뉴스 안에서 시대정신을 읽는 것은 그러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미국학을 전공한 경희사이버대 부총장 안병진 교수는 보다 생생한 시대정신을 읽기 위해, 이미 우리에게 닥친 ‘문명적 차원의 변화’를 직접 느끼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버니 샌더스와 도널드 트럼프의 유세 현장을 다녀왔고 “수십 년 간 알고 있던 교과서는 다시 쓰여져야 할 정도로 많이 변화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학자의 시선에 포착된 이 변화의 정체는 무엇인가.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는 단지 다음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대답만은 아니다. 힐러리의 역사, 트럼프의 정체, 오바마의 희귀함 등을 통해 시대의 요구를 따졌다. 미래국가인 미국을 통해 인류가 어떠한 변화를 이루게 될지 여러 방향에서 짚어보았다. 안병진 교수는 “어떤 새로운 문명의 꿈을 이루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누군가 또는 어떤 것이 주인이 될 것이라 예측한다. 이른바 ‘킨포크 세대’, ‘새천년 세대’의 새로운 문법에 집중하고 젊은 싱글 여성의 힘을 확인한다. 화석 경제 기반의 성장주의에 종언을 고하고 생태 시대의 도래를 이야기한다.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겠느냐고 묻는다. 지금 여기에 아주 중요한 질문이, 놓여있는 것이다.
문명적 차원의 변화다
올해 초, 미국 대선 취재차 미국을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미국학자로서 직접 본 현장 풍경은 어땠나요?
올해가 안식년인데요. 마침 미국 대선이 있으니 현장을 목격하는 것이 의미 있겠다 싶어 갔어요. 제 전공이 미국정치거든요. 이번 현장을 보면서 미국이 굉장히 달라지고 있음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던 거죠. 특히 아이오와(Iowa, 미국 중서부 위치)주에서 있던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의 유세라든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의 유세를 보면서 지금까지 수십 년 간 알고 있던 교과서는 다시 쓰여져야 할 정도로 많이 변화되었다는 느낌을 가졌어요.
책에서 무엇보다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거든요. 이에 더해 ‘제대로 된 질문이 필요’하다고도 적었고요. 엄청난 변화 앞에 선 지금, 반드시 해야 할 질문은 무엇인가요?
트럼프나 샌더스, 도저히 보통의 설명의 틀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 현상이 도대체 어떤 지층 밑에서 무엇이 변하기에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벌어지고 있는가, 이런 질문이죠. 또 하나는 이렇게 극단적이 현상이 벌어지는 동시에 중도적인 사람에 불과한 오바마는 어떻게 레임덕도 없이 인기를 끌고 있는가, 하는 것이고요. 한 시대에 전혀 함께 조화될 수 없는 현상들이 이루어지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이런 질문들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했어요. 그냥 이번 미국 대선에서 누가 이길까, 미국이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니까 그런가, 이런 정도를 넘어선 질문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제대로 질문을 던지는 속에서 제대로 된 해답이 나올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을 ‘세계사적 전환기’라고도 하셨잖아요.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말씀처럼 단순히 다음 미국 대통령이 누구냐, 하는 질문을 뛰어넘는 질문이 필요할 거예요.
흔히 대선 시즌에 민주당은 좀 더 정부 개입이 많아야 한다, 공화당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 이런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지금은 그것을 넘어서야 해요. 건국 초기부터 우리가 알았던 미국이라는 나라의 틀 즉, 경제, 정치, 문화 등 많은 부분에서 일어나는 급격한 변화와 징후들 속에서 대선을 바라봐야 한다는 거죠. 그 점에서 이제 ‘문명적 차원의 변화다’라고 얘기를 한 거예요. 이것은 우리나라 시민들한테도 납득될 수 있는 부분이죠. 옛날 같았으면 속된 말로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했겠지만 알파고 사태가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시민들에게도 뭔가 느낌이 있는 거죠. 그런 거대한 변화의 한복판에 지금 미국이 있다, 라는 게 제 책의 핵심이자 문제제기입니다.
대전환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아닌데요. 이와 같은 문명사적 전환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궁금하거든요.
1970년대 말에 더 이상 기존의 화석 경제에 기반한 성장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었거든요. 우리가 흔히 아는 GDP라는 지수가 아니라 다른 형태로 한 사회의 발전을 측정하는 대안적 지표들이 그 당시 개발되기 시작했어요. 1978년만 하더라도 미국은 더 이상 기존 방식의 성장을 하지 않게 된 거죠. 당시 많은 환경 운동가들이나 로마 클럽(Club of Rome, 1968년 결성한 서유럽의 과학자, 경제학자, 교육자, 경영자 등으로 구성된 민간단체) 같은 세계적인 지성들은 성장의 한계를 인지했거든요. 그 경고에 대해 풀뿌리 차원에서는 여러 대안들이 있었어요. 2008년 이후 비로소 기존 미국식 모델이 망가졌다는 것이 극명해지니까 그때부터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된 거예요. 1978년부터 씨앗이 싹텄다고 보면 되겠죠.
그런 담론이 정치에 스며들어 정치 구호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참 오래 걸리네요.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의 에피소드가 그것인데요. 1995년경 힐러리는 그런 ‘의미의 정치’와 같은 문제의식에 집중해보려고 했어요. 그러나 시대정신이 뒷받침을 못해준 거죠. 당시는 신자유주의, 시장의 자유, 정부의 축소, 이런 시대였으니까요. 생태니 환경이니 하는 것은 완전히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렸죠. 오바마가 운이 좋았던 건 그 점이에요. 이제는 기존의 모델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반성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거든요. 오바마 시기에는 각 도시에서 굉장히 새로운 실험들이 부흥을 했어요.
그만큼 정치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상상력이고요.
그럼요, 정치가의 핵심 덕목은 시대정신이거든요. 지금 시민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가, 시민에게 어떤 새로운 문명의 꿈을 이루게 할 것인가, 이런 것인데요. 그 점에서 오바마는 그런 상상력, 시대정신에 대한 이해를 정확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죠.
분노와 감성 정치의 시대
오늘도 힐러리의 부자증세 공약 뉴스가 있었어요. 힐러리의 대선 승리를 아주 조심스럽게 점치기도 하셨죠. 한편 책에서는 힐러리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평가하고 있거든요. 불운하다고도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미국이나 한국의 시민들은 아무래도 언론을 통해 정치가를 평가하게 되잖아요? 그러다보니 언론에서 본 힐러리의 모습, 차갑고 냉혹한 권력주의적인 모습으로 그를 인식하는 거죠. 하지만 그것은 수십 년 간 이어져온 미국 극우세력의 클린턴 가문에 대한 집중적 공격 영향이 커요. 그런 점에서 불행한 후보라고 한 거예요. 한편 힐러리는 현실 정치가이고 권력을 잡아야 꿈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 정치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죠. 국가 안보의 보수화, 금융 중심의 시장력 증가 등 당시의 시대정신에 적응해야 했어요. 1992년 남편 빌 클린턴(Bill Clinton)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임기 동안에도 어느 정도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했거든요. 원래 힐러리가 갖고 있던 원대한 꿈, 미래에 대한 비전은 현실 제도권에서 살아남는다는 목표에 좀 더 집중하다보니 보여줄 기회가 없었고요. 지금에 와서 힐러리는 양극화에 대한 책임론을 피할 수 없게 됐죠. 또한 오바마와 같은 영감을 잘 못 던지고 있고요.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조금 지루해 보이고, 이런 이미지가 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것을 극복하면, 다시 미국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대한 꿈이나 가슴 설레게 할 것들을 회복한다면 힐러리는 대선에서 굉장히 쉽게 이길 수 있을 거예요.
시민들은 정치가를 평가하는 데 인색해요. 정치가가 놓인 어려운 조건을 균형 있게 봐야 하거든요. 그 점에서 힐러리는 우리가 고정 관념으로 갖고 있던 모습에서 벗어나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힐러리 이야기가 나왔으니 트럼프 이야기도 바로 해야 할 것 같아요. 트럼프를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공화당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후보라고 평가하셨잖아요.
그것이 한국에서 주목하지 못한 측면일 거예요. 굉장히 중요한 질문인데요. 한국에서는 트럼프는 갑자기 돌출적으로 나온 어떤 이단적인 사람이라고만 보는 것 같아요. 물론 그런 측면도 있지만 제가 책에서도 지적한 핵심은 이거예요. 트럼프는 공화당이 1995년 이후 본격적으로 보여준 극단적인 우경화의 발현이라는 거죠. 공화당은 이민 이슈나 동성애를 비롯한 사회적 이슈에 있어 극단적으로 말해왔거든요. 여성에 대해서 심지어는 강간이나 다른 불행한 사건으로 인한 낙태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다거나 하는 식이었어요. 과거 온건했던 합리성의 공화당이 아니라 극단성의 흐름이 95년 이후 공화당을 지배하게 되는데요. 그 추세가 계속 진화되다보니 이제는 더 막말을 하고 더 극단화하는 후보를 수용할 수 있는 조건까지 가버린 거죠. 그 점에서 트럼프는 예외가 아니라 공화당이 95년 이후 추구해온 노선의 완성판이다, 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양극화가 심해지고 삶이 어려워지면서 훨씬 더 공격적인 언사가 수용되는 거잖아요. 차마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트럼프는 할 수 있게 된 거죠. 이런 변화가 시사하는 점이 굉장히 많아요.
공화당이 강경보수로 진화해나간 정점에 바로 트럼프가 있는 건데요. 그간 보수든 진보든 기존 제도권 정치는 소위 말하는 ‘아웃사이더’들을 외면하는 모습이었어요. 바로 이 ‘아웃사이더’들이 샌더스를 통하든 트럼프를 통하든 분노라는 것을 여과 없이 표출할 수 있었죠. 이들은 그런 감정적인 정치가에게 아무래도 쏠려갈 수밖에 없었어요. 한국에서 성남의 이재명 시장이 그렇게 인기를 끄는 것도 비슷한 원리인 거죠. 지금 시대는 전 세계적으로 합리주의, 지성주의, 타협이라는 것의 미덕을 믿는 정치의 시대가 아니에요. 그야말로 극단주의, 분노와 감성의 정치, 타협보다는 전투성을 믿는 시대로 전 세계가 진입한 거죠.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기존 어느 엘리트도 풀지 못한 문제에 대한 반응인 거예요. 결국 ‘아메리칸 드림’은 무너졌으니까요. 한국의 ‘코리아 드림’이 무너진 것처럼요.
세계적인 현상이라면 더욱 무게감이 큰데요. 분노와 감성의 정치라는 게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이 더 많잖아요. 사회가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길게 보면 역사라는 건 더 좋은 문명으로 나아간다고 보고요. 세계화의 과정에서 지나치게 엘리트주의로 가다보니까 그에 대한 반작용이 일어나는 건데요. 그러나 이 반작용을 거치면서 기존 엘리트들은 반성하게 되고, 조금 더 변화된 모습을 보이게 될 거예요. 다만 힐러리 시대의 변화된 모습이라는 건 그렇게까지 약한 자들에게 인간적인 사회이진 않을 것 같아요. 좀 더 세련된 기업의 지배라고 할까요? 그런 방향으로 갈 것 같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조건보다는 조금씩 역사가 진화해 나가겠죠.
예를 들어 지금 미국에서 기본 소득이라는 것이 화두가 되고, 최저임금 15달러를 힐러리 진영이 받아들였다는 것, 이것은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기존 힐러리 진영 같은 중도적인 사람들은 한 시간에 15달러라는 그런 엄청난 임금 상승은 거의 상상할 수도 없었어요. 그런 점에서는 진화죠.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렇다고 해서 다수 약자들의 삶의 질이 월등하게 나아질 수 있을까요? 어쩌면 기업들이 베푸는 혜택, 보다 많은 드라마를 보고, 보다 많은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고, 이런 것 속에서 어쩌면 더 많은 인간 소외가 벌어질 수도 있을 거예요. 어쨌든 이 과정도 길게 보면 다시 극복할 계기가 발견되지 않을까 해요. 저는 길게 보면 낙관적, 짧게 보면 굉장히 비관적이에요. 짧게 2050년에서 2070년 정도까지는 비관적이죠.
새천년 세대의 엄청난 가능성
잡지 <킨포크>나 싱글여성들이 미국 진보주의의 약진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진단도 했어요.
한국 사회도 몇 년 전부터 쿨한 카페 같은 곳에 가면 당연히 <킨포크> 같은 게 꽂혀 있죠. 우리 젊은이들한테도 그것이 크게 어필해요. 요즘에는 여행을 위해 애써 돈을 모으고 하는 어려운 조건인데도 돈의 70%를 포틀랜드 에이스 호텔 같은 데서 쓰는 젊은이들이 있어요. 저희 세대, 소위 486세대와는 문화적 감수성이 완전히 다른 겁니다. <킨포크>라는 잡지가 상징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우정이나 돈, 요리에 대한 태도처럼 모든 삶의 태도에 있어서 이전 세대와는 다른 라이프 스타일이에요. 정치라는 건 삶의 태도, 스타일의 문제거든요. 이런 점에서 이것은 정치의 문법을 완전히 바꾸는 거죠. 오늘날 캘리포니아 등에 있는 리버럴 정치인들은 탄소세나 GMO문제, 이런 것을 의제로 삼거든요. 지금 젊은 세대들, 특히 그 중심에서 여성들의 힘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거예요. 미국도, 한국도 이 세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정치가가 나타난다면 이 정치가는 굉장한 힘을 얻을 겁니다.
전혀 다른 시대정신을 가진 정치가가 필요하다는 거군요.
지난 번 ‘안철수 현상’때 안철수가 그런 것을 약간 보여줬어요. 그러나 이 사람은 킨포크적 정치관과는 다르죠. 어떤 의미에서는 20세기적 정치인이에요. 어쨌든 그런 점에서 한국도 가능성이 있고요. 일단은 미국이 먼저 이런 굉장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미국은 언제나 미래국가라서 항상 먼저 보여주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것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미국을 중심으로 다뤘지만 뒤에 수록한 보론에서는 한국 상황도 같은 맥락에서 진단을 했거든요. 지난 4월의 총선 결과나 필리버스터 정국 등을 언급하면서 ‘새천년 세대’의 가능성을 이야기했죠.
미국의 킨포크 세대, 한국의 새천년 세대들은 ‘꼰대스러움’을 굉장히 못 참아요. 일단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매력적이어야 하고요. 문화적 문법이 완전히 달라요. 이 세대들은 현 정부의 정치나 꼰대스러움을 싫어하죠. 현 정부뿐 아니라 우리 세대처럼 민주화 운동을 했던 세대들도 썩 달가워하지 않거든요. 민주화 세대도 가르치려고 하면서 정작 자기들의 이익이 걸린 것은 유지하려고 하니까요. 새천년 세대와 연대하려는 척 하다가 진짜 중요한 회의에 자기들만 들어가고(웃음) 이런 거죠. 상대적이지만 그것도 기득권인 거예요.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보여줬듯이 새천년 세대가 더 이상 잠자는 거인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이제 이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해요. 필리버스터를 해보면서 일부지만 우리가 정치에 목소리를 낼 수가 있구나, 하는 경험을 한 거죠. 사람은 이런 정치적 경험을 통해 성장합니다. 이런 경험이 앞으로 굉장히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라고 생각해요. 차기 대선 혹은 그 대선 이후에 굉장히 좋은 한국 사회의 변화 동력이 될 거예요. 단, 중요한 건 미국과 달리 안타깝게도 저희 세대의 연합군이 너무 적어요.
힘을 실어줄 지원군이 필요한데 말이죠.
오바마가 나왔을 때 케네디 가문이나 기존의 엘리트 중에서 조금 더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를 밀어주고, 연합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한국은, 글쎄요. 잘 없죠. 왜냐하면 저희 세대 같은 경우도 이미 세상의 변화에 적응해버렸거든요. 끊임없이 자기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해요. 살아있기 때문에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40대에 이미 꼰대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까 이들 세대가 젊은 세대에 잘 연합해주지는 못하는 거죠. 젊은 세대는 인구학적으로도 불리하거든요. 자본도 불리하죠. 한국에 실리콘밸리 같은 게 있다면 ‘486 세대 필요 없어’ 하겠죠. 물적 토대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요. 한 번 실패하면 그대로 끝이고요. 여러 가지가 불리하죠. 다만 한국은 미국이 따라올 수 없는 무서운 역동성이 있으니까요.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인류의 존망이 걸린 문제
이 책은 미국이라는 시험지를 통해 점쳐본 인류의 ‘빅퓨쳐’로 읽혔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야심차게는 감히 이 책은 서론 정도이고, 이후에 문명에 대해서 한 번 다뤄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제 수준에서 이해할 수 없는, 문명에 대한 굉장한 석학들의 관점을 나름대로 한 번 이해하려고 했던 거예요.(웃음) 말씀하신 것처럼 이 책은 단지 미국이 백인 보수주의 중심에서 히스패닉 중심으로 바뀐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고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까지 포함된 거죠. 2070~2080년 이후, 문명 자체가 완전히 생태적인 문명으로 가느냐, 아니면 여전히 기업에 지배되는 <블레이드 러너>나 <매트릭스>의 세상이 되느냐 하는, 그야말로 인류의 존망이 걸린 문제가 이미 우리에게 닥쳐있다고 하는 엄청난 얘기예요. 세계적인 대가들이 그런 이야기를 지금 심각하게 하고 있거든요. 스티븐 호킹, 재러드 다이아몬드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인류가 천 년 이내에 지구를 떠나야 한다는 스티븐 호킹의 말을 들은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인류에게는 단지 50년 남았을 뿐이라고 말했잖아요. 그런 굉장한 상황이죠. 저는 거창하게는 생태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 속에서 새로운 주체가 생겨야 한다, 새로운 주인, 완전히 다른 사유 구조와 다른 철학, 다른 정치관, 다른 삶의 태도를 가지는 새로운 주인들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죠. 지금은 그런 고민이 본격화되어야 하는 상황이에요.
생태 문명 그리고 우주와의 공존의 미래냐, 아니면 또 다른 우주 제국주의의 미래냐 하는 갈림길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 핵심이겠죠. 인류가 전자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자명할 텐데요. 지금 이런 선택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고 계세요?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사유에 대한 상상력과 감수성이 결여된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겠죠. 결국은 내부의 의식에 혁명이 일어나야 그 속에서 변화를 상상할 텐데요. 지금 정치나 시민사회가 내면세계부터 처절하게 지금껏 살아온 방식을 반성하고 새로운 삶의 태도를 견지하고자 해야 해요. 이런 용기 있는 태도가 사실은 부족하죠. 모든 건 결국 철학에서부터 시작하잖아요. 흔히 정치가 왜 무너졌는가에 대해 개헌이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데요. 근원적으로 가면 문제는 세계관과 철학이에요. 사고의 문법 자체가 어떻게 새로운 문명적 사고가 내면화되는가, 이것이 중요하죠. 그런데 지금 한국의 교육, 정치가들의 수사학의 수준이 그런 게 아니죠. 아주 심각한 문제예요.
칼럼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그런 문제제기를 해오셨잖아요. 그런데도 변화는 더디기만 해요. 이런 현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세요?
좌절감이 크죠. 우리 세대에도 새로운 사고를 꿈꾸는 사람들이 너무 적어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너무 적죠. 압축 성장 과정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우리들도 단지 군사 독재에 반대했던 것이지 로마 클럽처럼 성장의 한계를 고민하고 이런 사람들은 극소수였던 것이죠. 어떻게 보면 우리도 기존 근대 문명 틀 속에서 사고를 했던 거고요. 지금은 그것을 반성하고, 새롭게 나아가야 해요. 그런데 워낙 끊임없이 변화해 나가는 능력이 부족하다보니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어느 순간 꼰대가 된 거죠. 새로운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워낙 적으니까 정치가들도 계속 퇴행적인 모습만 보이는 거고요. 그런 면에서는 비관적이죠. 다음 대선에서 누가 됐든 크게 바뀔 것 같진 않아요. 최소한의 시민교육도 하지 않는 사회에서 대안적인 고민이 나온다? 저는 의문이에요. 한국은 혁명적 수준의 변화가 있어야 해요. 특히 교육은 그렇죠.
대학이라는 공간의 기업화와 그것을 내면화한 학생들의 풍경도 종종 이야기되곤 해요. 새천년 세대에 기대를 말씀하기도 하셨지만 이런 장면을 보면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드는 거예요.
새천년 세대는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을 클릭하고 세계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가능성이 있는데요. 그러나 지적하신 것처럼 시민이 무엇인가 라는 것에 대한 교육을 한 번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상황이죠. 게다가 생존의 조건은 더 어렵게 몰린 상황이고요. 기본소득은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도 큰 화두가 될 텐데요. 기본소득을 내걸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구호를 떠올릴지 모르죠. 그것은 시민으로서 응당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인데 그렇게 생각을 확장하지 못한 거죠. 그런 부분이 아직 한국 사회에는 조금 일천한 거죠. 그건 사실이에요. 대북 문제도 그런데요. 젊은 청년들이 이 문제에 점점 보수화된다고 하더라고요. 그것 역시 시민교육과 연관된 이슈기도 해요. 남과 북의 관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질문을 던져보거나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없으니까요. 이것은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같은 문제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아요. 결국은 모든 게 다 시민으로서의 비판적 질문을 던져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저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그것은 그렇지 않다’고 비판할 수 있겠죠.
기본소득이 한국 사회에도 더 큰 화두가 될까요?
지난 경제민주화 이슈 이후에도 한국 사회는 ‘헬조선’이라는 말처럼 더욱 디스토피아에 가깝게 가고 있죠. 한국 보수들은 시대정신에 대한 포착력이 뛰어나요. 훨씬 더 많은 자본으로 조사하고 하니까요. 내년 대선에서 한국의 보수들이 이기기 쉽지 않은 조건이거든요. 지난 총선 결과도 있고, 젊은이들도 많이 깨어났잖아요. 그리고 현 정부가 여러 문제를 많이 일으켰고요. 이런 상황에서 지난번에 경제민주화로 판을 뒤집었듯이 이번에는 두 가지로 판을 뒤집을 수가 있겠죠. 하나가 사드, 또 하나가 기존 경제민주화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수준의 의제, 기본소득 같은 거예요. 제가 만약 여당의 유력 후보라면 이 문제를 나의 핵심 의제로 삼을 거예요. 지난 대선 때 당시 박근혜 후보가 기초노령연금으로 이슈 선점을 한 것처럼요. 이미 시대가 그렇게 가고 있어요. 미국의 유명한 IT업계의 CEO가 진보적이라서 이런 이야기를 하겠어요? 아니거든요. 시대의 핵심 정신인 거죠. 기본소득은 내년 대선의 굉장한 의제가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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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주인이 바뀐다안병진 저 | 메디치미디어
2016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 정치는 주목을 받고 있다. 변화를 요구하는 샌더스 열풍이 아래로부터 불었고, 트럼프가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다. 대선에서 드러나는 정치 지형의 변동, 주도 세력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는 큰 흐름을 읽는 법을 제시해 미국 정치와 대선의 관전 포인트가 될 정치 해설서이다.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