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그림 에세이가 세 권 째라니!
‘재주가 열두 가지면 굶어 죽는다’는 말이 있다. 어느 것 하나에도 집중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열두 가지를 다 손에 쥐고 엉거주춤해서 어찌 밥벌이가 보장되는 일가一家를 이루겠느냐는 의미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로 보면 화가인 내가 책을 내는 것 또한 외도와 다를 게 없어 보이긴 하겠으나, 변명하자면 나는 글을 쓴다기보다 감상자들에게 그림을 해설해주는 ‘친절한 안내서’를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포함한 모든 예술은 생산자가 주인이 아니라 그것을 봐주고 들어주는 소비자가 주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그들만의 리그에서 웃고 떠들기만 할 것이 아니라, 예술을 사랑해주는 이들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그림 에세이를 시작했다. 그런데 벌써 세 권 째라고? 스스로도 놀랍다. 세 권에 실린 그림을 모두 합치면 250여 점 가까이 된다. 이 ‘250’이라는 숫자는 그림들을 일일이 설명해주는 ‘친절한 수동 씨’가 되고 싶은 마음의 깊이와 같다.
‘너는 늙어 봤냐? 나는 젊어봤다’라는 말이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나의 현실인 것이 다소 쓸쓸하지만, 그 어려운 사랑조차도 이미 다 겪어보았으니, 마치 세 번째 어른 동화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시험문제를 내고 답을 알려주듯 그림도 그렇게 풀어 설명하고 싶다. 아니면 나이 지긋한 큰 형님이 어린 막내 동생이나 조카 들에게 읽어주는 어른 동화쯤으로 여겨줘도 좋고.
그림에 글을 하나씩 달 때면 자연스레 그림과 대화하며 그릴 당시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 차분한 시간은 내 자신을 뒤돌아보게 한다. 글쓰기가 주는 소중한 ‘보너스’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닭살스런 말 같지만 간혹 소위 ‘대륙의 실수’ 같은 글이 툭! 나오기도 하는데, 그 희열 또한 만만찮다. 영화 「벤허」를 만든 감독이 완성된 작품을 보고 “신이시여! 정녕 이 영화를 내가 만들었습니까” 하며 스스로 감동했다는 일화처럼, 그림 설명글 중에 드물게나마 나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잘 써진 글이 있더라는 말이다. 그 글들 중 하나인 「동행」은 요즘도 신혼부부의 청첩장에 널리 쓰이고 있단다. 짜릿하고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혹여 그 내용을 궁금해하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아래에 「동행」의 구절을 붙인다.
꽃 같은 그대,
나무 같은 나를 믿고 길을 나서자.
그대는 꽃이라서 10년이면 열 번은 변하겠지만
나는 나무 같아서 그 10년, 내 속에 둥근 나이테로만 남기고 말겠다.
타는 가슴이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길 가는 동안 내가 지치지 않게
그대의 꽃향기 잃지 않으면 고맙겠다.
다시 읽어봐도 내가 쓴 글 같지 않게 신통방통하다.
하여튼 이번 3권도 이런 ‘대륙의 실수(우연히 잘 만들어진 물건을 빗대는 은어)' 같은 글이 몇 개는 더 섞여 있길 바라면서 세 번째 그림 이야기를 시작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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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랑한다면,이수동 저 | 아트북스
꽃잎 하나에 사랑을, 꽃잎 하나에 행복을…….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격렬한 고백 대신, 애틋하고 뭉근하게 우리네 마음을 데워주는 어른을 위한 그림 동화 『다시 사랑한다면,』이 출간됐다. 독자들에게 격려와 위로의 선물을 선사해 큰 사랑을 받은 『토닥토닥 그림편지』 『오늘, 수고했어요』를 잇는 그 세 번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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