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작품과의 차이가 조금은 있다. 가벼운 기타 사운드가 공간의 전면과 후면을 가리지 않고 곡들 전반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한정된 편곡 자원에서 이끌어냈던 풍성함은 다소 줄었다. 그 때문에
리메이크 작품이다 보니 결국 아티스트가 어떻게 곡을 해석해냈느냐에 해석의 초점이 모인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이 앨범은 실로 높은 점수를 가져간다. 음반에서 프랭크 시나트라 (혹은 그 무렵의 스탠더드 팝, 재즈 아티스트들)의 컬러는 완벽히 지워진다. 여기에는 온전히 밥 딜런만이 서 있다. 오케스트라가 만들어준 스케일 큰 무대를,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빛을, 쓸쓸한 멜로디를, 그 안에서 구성된 주인공의 역할을 마치 당연히 자기 것인 양 여기며 프랭크 시나트라가 노래했던 것과는 달리 밥 딜런은 기타도 멀찍이, 스틸 페달 기타도 멀찍이, 드럼도 저 멀찍이 세워둔 채 무심하게 노래한다. 빈틈없이 사운드가 들어찼던 옛 악보를 넘기고 아티스트는 개개의 악기와 악기, 보컬 사이에 고요함과 황량함이 그득한, 다른 스타일을 빚어낸다. 밥 딜런의 「On a little street in Singapore」, 「Melancholy mood」, 「That old black magic」은 그렇게 완성된다. 일체의 동요 없이 마른 듯한 감정으로, 노래의 한가운데로부터 조금은 떨어진 위치에서 차분하게 곡에 시선을 던지는 모습을 천천히 들여다보자.
익히 알고 있던 스탠다드 팝 특유의 웅장한 분위기와는 다른 장엄한 분위기가 다가온다. 대규모의 관현악 소리는 더 이상 우리를 압도하지 못한다. 이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니. 그러나 이번에는 여러 악기가 대거 빠진, 곳곳의 빈자리가 우리를 압도한다. 점차 흐릿하게 공간 속으로 사라져 가는 음들의 움직임을 인지하면서부터 적막감이 생겨나고, 러닝 타임을 차례로 이어받아 가는 곡들을 계속 마주하면서 적막감의 연속에 진하게 스며든다. 이는 거부하기 어려운 매력이다. 조금은 어색하고 생소하고 낯선, 그러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하는 이러한 매력을 밥 딜런은 재해석들이 지층처럼 수 겹 쌓인 스탠다드 팝 넘버들로부터 새롭게 이끌어냈다. 노련한 싱어송라이터에게는 원형에의 무자비한 해체와 무분별한 접합이 필요치 않다. 남다른 시각이 또 하나의 멋진 음반을 만들어냈다.
2016/05 이수호 (howard19@naver.com)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