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단정짓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현재를 단정해선 안 된다. 염려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후회하면서 다음 발을 내딛어야 한다. 선량함을 믿으면서.
글ㆍ사진 김중혁(소설가)
2016.05.18
작게
크게

1.jpg

 

열일곱 번째 문제

 

<문제>

 

다음은 장 자끄 상뻬가 자신의 유년기를 추억하는 책 『상뻬의 어린 시절』에 나오는 인터뷰입니다. <텔레라마> 편집장 겸 대표인 마르크 르카르팡티에와의 인터뷰 중 빈칸에 어울리는 말을 골라보세요. (마르크 르카르팡티에는 L로, 장 자끄 상뻬는 S로 표기합니다.)

 

L: 어린 시절, 아니 청소년 시절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사람은 어른이 되어도 어렸을 때 됨됨이를 그대로 간직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S: 그런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한답니까? 난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경계합니다. 정말이지 단정적인 사람들을 대단히 경계해요.


L: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나는 그런 사람들을 대단히 경계한다고 믿는다”고요. “나는 ~라고 믿는다.”, 곧 확신 부재가 당신이 즐겨 쓰는 표현이지 않습니까?


S: “내가 보기에 ~것 같다”를 자주 쓰죠.

 

… (중략)…

 

S: 나를 황홀하게 만든 사람이 있었긴 하지요. 바실리 그로스만이라는 작가인데 『삶과 운명』이라는 책을 썼어요. 구 소련의 작가 협회로부터 핍박을 당하던 무렵에 쓴 책인데, 그는 그 책이 언젠가 출판되리라는 걸 몰랐죠. 그 책에서 나치 치하나 스탈린 체제하에서 수많은 이들이 겪었던, 비극적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삶의 조건을 묘사하면서 그는 단 한 가지, 선량함을 굳게 믿는다고, 선량함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고 결론짓습니다.

 

L: 선량함을 믿습니까?


S: 네, 네, 그래요. 난 정말로 선량함을 믿어요.


L: 인간들이 선하다고 믿는단 말이죠?


S: (    문제    )

 

1) 솔직히 말하죠. 안 믿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선량함을 믿고 싶은 순간들이 분명히 생기게 마련이죠.
2)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마르크는 선량함을 믿지 않나 보군요. 왜 그래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3) 인간들이 선하지 않더라도 선량함은 분명 존재하며, 그걸 제대로 붙잡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4) 믿는 것과 행하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입니다. 선량함을 믿는다고 해서 반드시 선량하게 살아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제가 무슨 개소리를 하고 있죠?
5) 대한민국에는 미스코리아 대회가 열리는데요, 1위를 진리라고 부르고, 2위를 선함이라고, 3위를 아름다움이라고 부릅니다. 이상한 얘깁니다. 제 생각에 1위에게 선을 주어야 합니다.

 

 

<해설>

 

바실리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은 세계적으로 가장 위대한 전쟁소설 가운데 하나로 불린다. 『삶과 운명』에는 2차 세계대전 중 전체주의 사회에서 전쟁을 겪으며 생존해야 했던 한 인간의 비극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고 한다. 그로스만은 『삶과 운명』을 1950년부터 1960년에 이르기까지 10년에 걸쳐 집필했지만, 장 자끄 상뻬의 말처럼 자신의 작품이 출판되는 것은 보지 못했다. 1961년, KGB로부터 전체 작품을 압수당했고, 1964년에 작가는 세상을 떠나게 된다. 1980년 스위스에서 친구가 가지고 있던 복사본이 최초로 공개됐을 때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20세기의 <전쟁과 평화>라는 수식을 얻게 됐다. 한국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작품이라 어떤 내용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장 자끄 상뻬가 인용한 “그는 단 한 가지, 선량함을 굳게 믿”었고, “선량함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고 결론”지었다는 문장만으로도 읽고 싶어지는 작품이다. 해금된 작품에 대한 환호는 최근 국내에서 소개된 엠마뉘엘 카레르의 소설 『리모노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동안 엘리트 지식인들만 사미즈다트 형태로 혹은 해외에서 밀반입해 읽던 책들을 1988년부터 일반 대중도 읽을 수 있게 되자 소련 전역이 독서 광풍에 휩싸였다. 그동안 금서로 분류되었던 책들이 매주 새로 출간되었다. 막대한 부수를 인쇄해도 금세 동이 났다. 책을 사기 위해 사람들은 새벽부터 가판대 앞에 길게 줄을 섰고,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심지어 길을 걸으면서도 마치 전투를 치르듯 홀린 사람처럼 책을 읽었다. 한 주는 모스크바 전체가 『닥터 지바고』만 읽고 그 얘기만 하고, 다음 주는 바실리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 그 다음 주는 오웰의 『1984년』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사기 저하를 두려워해 진실을 함구하던 서구의 모든 공산당의 길동무들로부터 CIA의 스파이라는 멸시를 받으며 60년대 초반부터 집단화와 숙청의 역사를 연구한 영국 출신의 위대한 선지자 로버트 콘퀘스트의 저술에 열광했다.”

 

다른 묘사보다 책을 갈구하고 전투를 치르듯 책을 읽는 사람들의 풍경이 눈에 선하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이었을까. 해금된 책을 읽으며 사람들은 서로의 선량함을 믿고 싶어했을 것이다. 선량함을 굳게 믿었다는 바실리 그로스만의 일화를 읽고 나니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1.jpg 2.jpg 3.jpg 4.jpg

 

“어린 시절에 간직했던 아름답고 신성한 추억이 가장 훌륭한 교육이 될 겁니다. 그런 추억들 중에 단 하나만이라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남게 된다면, 그 추억은 언젠가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어쩌면 우리는 악당이 될지도 모릅니다. 나쁜 일을 피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엄숙한 인간의 눈물마저 조소하게 될지 모릅니다. 꼴랴가 조금 전에 “모든 사람을 위해서 고난 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지만, 어쩌면 그런 사람에게까지 심술궂은 조소를 보내게 될지 모릅니다. 물론, 그런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설령 그런 악한이 된다고 하더라도, 가장 냉소적이고 잔인한 인간이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이렇게 함께 모여 일류사를 묻어준 일과, 그가 죽기 전에 베풀었던 사랑과, 이렇게 큰 바위 옆에서 우의를 나누던 일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최소한 이 순간만은 착하고 훌륭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마음속에서는 비웃지 못할 겁니다. 또한 아름다운 이 추억이 우리를 커다란 악으로부터 지켜 줄 겁니다. 그리고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그래, 나는 그때 착하고 용감했으며 명예로운 사람이었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겁니다. 속으로야 코웃음치는 것쯤은 괜찮겠죠. 원래 인간이란 착하고 훌륭한 것을 비웃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으니까요.”

 

마치 장 자크 상뻬와 도스토예프스키가 함께 읽어주는 내용 같다. 상뻬의 신나는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저런 상념에 빠질 때가 많다. 우리는 이미 악당이 되어 있지만, 찌들 만큼 찌들어 있지만, 아름다운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우리를 거대한 악으로부터 지켜줄 때가 많지 않은가. 더 처참한 나락으로 빠지는 것을 막아주고 있지 않은가.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악당은 진짜 악당이다. 소년 같은 마음을 잃어버린 남자는 얼마나 누추해 보이며, 소녀의 수줍음을 잃어버린 여자는 얼마나 경박해 보이는지 모른다. 초심이라는 말 대신 소년심, 소녀심을 쓰면 좋겠다. 장 자끄 상뻬가 무조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미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마르크 르카르팡티에와의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덧붙였다.

 

"안심이 되는 건 말이죠, 이제까지 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죠. 과거에 무언가를 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나는 앞으로 할 일만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걸 꼭 해야지, 라고 생각하는데, 그때의 <이것>은 나도 알 수 없는 겁니다. 내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난 무얼 할까? 그건 무슨 의미일까? 그렇게 할 가치가 있는 걸까?"

 

소년의 마음을 추억한다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소년의 마음을 잃어버린 남자가 무기력하고 정체되어 있다면, 소년의 마음을 가진 남자는 앞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염려하고 걱정한다. 호기심 어린 얼굴로 계속 걸어간다.

 

문제를 풀어보자. 답은 3번이다. 인간이 착하게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은 착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태어나지만 어떤 사람은 선량함을 붙들고, 어떤 사람은 악의 매력에 깊이 빠진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붙잡아야 한다. 매 순간 우리의 삶을 선택해야 한다. 장 자끄 상뻬가 ‘내가 보기에 ~것 같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의 현재를 단정해선 안 된다. 염려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후회하면서 다음 발을 내딛어야 한다. 선량함을 믿으면서. 


 

 

img_book_bot.jpg

상빼의 어린 시절절장 자끄 상뻬 저/양영란 역 | 미메시스
따뜻한 화풍과 재치 있는 유머로 인간의 삶을 경쾌하게 그려내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삽화가 장 자끄 상뻬. 이 책은 그가 회상하는 유년기의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들어 볼 수 있는 인터뷰집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장 자끄 상뻬 #상뻬의 어린 시절 #삶과 운명 #바실리 그로스만 #김중혁
13의 댓글
User Avatar

거북이

2024.02.16

바실리 그로스만의 Life and fate는 시간상으로는 스탈린그라드 전투가 개시된 이후 42년8~9월부터 43년2월까지의 짧은 시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실제 다루는 시공간은 훨씬 넓고 방대해요.30년대 우크라이나 대기근도 회상을 통해 다루는 식이죠. 유대인 수용소,소련의 굴라그,모스크바의 학계,병원, 고아원 심지어 전쟁의 여파가 미치지 않은 사막 지역까지 방대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는 대하소설이에요.스탈린 치하 소련의 현실을 전혀 미화하지 않고 고통 받는 인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느낌? 유대인 수용소에서 학살 당하는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소련 비밀경찰이 심문하는 장면, 독일군 장교와 포로가 된 소련 장교의 대화 등 뭐라 한마디로 규정 지을 수 없는 깊이를 보여줘요. 스탈린 치하 소련의 실상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 같아요. 2차 대전을 다룬 여러 소설들(젊은 사자들,캐치22, 제5도살장)등은 모두 서부 전선이 배경이라 메인 전장인 독소전쟁을 다룬 소설로는 유일하고 그 수준 또한 남다른데 아마 저자인 바실리 그로스만이 종군 기자로 당시 주요 전투를 모두 직접 참전,목격했기때문이 아닐까해요. 톨스토이만 해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한 세대 후 사람이라 그 전쟁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으니까요.
답글
0
0
User Avatar

tsy81

2016.06.04

선량함을 제대로 붙잡는다... 이거 정말 쉽지 않은데, 특히 곤경에 처했을 때 말이죠.
곤경의 크기를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한지, 선량함의 필요성을 알아채는 게 중요한지.
아니면 둘 다 동시에 본능적으로 알아서 하게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간접 경험이
더 나은 선택을 하게하죠. 바로 책, 그 중에서도 '소설'이요.
제 친구 말로는 소설을 많이 읽으면 사람을 잘 파악한대요. ㅎ 그러거나 말거나 소설을 읽으면
재미 감동 상상을 키우잖아요. 재미를 키우면 즐거운 사람이 될 것이고, 감동을 받으면 분명 착해질 것이고, 상상을 키우면 ? 암튼 그래서 제 얘기는 소년심, 소녀심이 있는 사람은 분명히 소설을 가까이 하는 사람일 것 같아요.
답글
0
0
User Avatar

puppyb

2016.05.29

재미 있을거 같아요. 읽고 싶네요. 작가님 화이팅!
답글
0
0

더 보기

arrow down
Writer Avatar

김중혁(소설가)

소설 쓰고 산문도 쓰고 칼럼도 쓴다. 『스마일』,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뭐라도 되겠지』, 『메이드 인 공장』 등을 썼다.

Writer Avatar

장자크 상페

가냘픈 선과 담담한 채색으로, 절대적인 고립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그리움과 아쉬움을 통해 인간의 고독한 모습을 표현하는 프랑스의 그림 작가. 1932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난 그는 데생 화가이다. 소년 시절 악단에서 연주하는 것을 꿈꾸며 재즈 음악가들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60년 르네 고시니와 함께 『꼬마 니꼴라』를 만들어 대성공을 거두었고, 1962년에 작품집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가 나올 무렵에는 그는 이미 프랑스에서 데생의 1인자가 되었다. 지금까지 30여 권의 작품집들이 발표되었고, 유수한 잡지들에 기고를 하고 있다. 1991년 상뻬가 1960년부터 30여 년간 그려 온 데생과 수채화가 빠삐용 데 자르에서 전시되었을 때 현대 사회에 대해서 사회학 논문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는 평을 들었다. 프랑스 그래픽 미술대상도 수상했다. 산뜻한 그림, 익살스런 유머, 간결한 글로 사랑을 받고 있는 장 자끄 상뻬는 92년 11월 초판이 발간돼 48쇄까지, 99년 신판이 10쇄까지 나오는 등 총 80만부가 팔린 『좀머씨 이야기』의 삽화를 그린 전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정치니 성(性)을 소재로 삼지 않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삼지 않으면서도 성인층에까지 두터운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그의 기본적인 관심은 끊임없이 고독을 생산해 내는 인간과 사회의 모순을 하나의 유머러스하고 깊이 있는 장면으로 포착하는 것으로써 글과 그림이 잘 어울리는 그림 소설들은 아주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프랑스의 「렉스프레스」, 「빠리 마치」 같은 유수한 잡지에 기고할 뿐 아니라 미국 「뉴요커」의 가장 중요한 기고자이다. 그는 이 잡지의 표지만 53점을 그렸다(9년 간의 「뉴요커) 기고는 나중에 『쌍뻬의 뉴욕 기행』이라는 작품집으로 묶여 나왔다). 그는 파리 외에도 뮌헨, 뉴욕, 런던, 잘츠부르크 등 주요 도시에서 데생과 수채화 전시회를 열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랑베르씨』, 『얼굴 빨개지는 아이』, 『가벼운 일탈』, 『아침 일찍』, 『사치와 평온과 쾌락』, 『뉴욕 스케치』, 『여름 휴가』, 『속 깊은 이성 친구』, 『풀리지 않는 몇 개의 신지』, 『라울 따뷔랭』, 『까트린 이야기』, 『거창한 꿈들』, 『각별한 마음』,『상뻬의 어린 시절』 등이 있다. 2022년 8월 11일 목요일, 89세의 나이로 여름 별장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