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9살에 가정이 몰락한 후 불량소년이 되어 방황했고 이후 자위대 입대, 패션 부티크 운영, 다단계 판매 등 다채로운 직업에 종사했다. '몰락한 명문가의 아이가 소설가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글을 읽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1991년 36세의 늦은 나이에 「빼앗기고 참는가(とられてたまるか!)」로 데뷔하고, 1995년 『지하철』로 ‘요시카와에이지문학상’ 신인상, 1997년 『철도원』으로 ‘나오키상’, 2000년 『칼에 지다』로 ‘시바타렌자부로상’, 2007년 『오하라메시마세』로 ‘시바료타로상’, 2008년 『중원의 무지개』로 ‘요시카와에이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은 ‘재미있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 한번 손에 잡고 되면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1960년대 프랑스의 누보 로망 이후 소설가들은 자신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거리의 이야기꾼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거부해 왔다. 오히려 ‘글쓰기가 무엇인가’, ‘소설의 운명은 무엇인가’와 같은 심각한 주제를 가지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많은 형식적 실험들이 이루어졌고 기존의 서사 구조를 파괴하는 기술 양식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와 서구의 근대라는 특수한 시대가 가지는 관련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무성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이후 많은 소설가들이 소설의 본질을 묻는 질문을 가지고 소설을 써오고 있다. 그것은 자기 의식에 대한 비서사적 묘사이거나 사소설 또는 다른 장르와의 결합 등의 형식적 실험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소설은 더 이상 서사 문학이기를 멈추었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들은 이러한 흐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근대 이후 일본 소설의 주된 경향이 사소설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사다 지로의 소설들은 사소설적 양식에서도 벗어나 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손자에게 들려주는 할아버지처럼 소설을 쓴다. 오랜 기간 방황하며 얻게 된 평범하지 않은 경험을 밑천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 야쿠자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인지, 작품 속에 야쿠자가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주요 저서로는 『철도원』, 『천국까지 100마일』, 『창궁의 묘성』, 『프리즌 호텔』, 『지하철』, 『낯선 아내에게』, 『활동사진의 여자』, 『장미 도둑』, 『파리로 가다』, 『칼에 지다』, 『오 마이 갓』, 『월하의 연인』,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슈샨 보이』, 『셰헤라자드』,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중원의 무지개』, 『가스미초 이야기』, 『온기, 마음이 머무는』 등 다수가 있다.
아사다 지로 작가의 대표작
철도원
아사다 지로 저/양윤옥 역 | 문학동네
아사다 지로의 첫 소설집인 『철도원』은 1997년에 출간된 이래로 140만 명이 넘는 독자들을 슬픔과 감동에 젖게 했다. '제117회 나오키상' 수상은 이 소설집에 대한 문학적 보증이 되었다. 책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 중에서 「철도원」과 「러브 레터」 두 편이 영화화되었고(「러브 레터」는 영화 <파이란>의 원작이다), 「츠노하즈에서」와 「백중맞이」는 텔레비전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이는 '나오키상' 제정 이래 최초이자 단일 소설집으로는 가장 많은 작품이 영상화된 이례적인 기록이기도 하다. 영화 <철도원>은 199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철도원』에서 작가는 다양한 과거와 상처를 지닌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낯설고 생경한 관념 대신 구체적인 직업 묘사나 소설 공간의 현장성을 바탕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보통사람이 겪기 마련인 흔한 시련과 좌절, 그 속에서 키우는 사랑과 희망의 불씨 위로 시선을 드리우며, 절제된 슬픔의 감정으로 기분 좋은 사람의 훈기를 배어나게 만드는 소설집이다.
프리즌 호텔
아사다 지로 저/양억관 역 | 문학동네
'호텔'이라는 특수한 장소를 배경으로 삼아 그곳에 모이는 여러 인간군상을 특유의 철학과 유머로 그려낸 작품이다. 발표 직후 예상치 못한 열광적인 호응을 얻어 애당초 한 권으로 끝날 계획이었던 것이 계절별 타이틀을 달아 총 4권까지 이어지는 시리즈물이 되었고, 이후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모았다. 야쿠자, 범죄자, 도박꾼 등 갖가지 반사회적인 인물들이 중심역할을 맡아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소설이나, 평범하다 못해 비루하기 그지없는 인생 속에서 재치와 감동을 찾아내는 아사다 지로의 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프리즌 호텔』은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 인생에 지쳐 휴식처를 찾아온 그들의 삶을 감싸 안으며 때로는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왁자지껄한 소동으로, 때로는 콧등이 시큰거리는 감동으로 며칠간의 꿈같은 휴식을 선사한다.
칼에 지다
아사다 지로 저/양윤옥 역 | 북하우스
구상에서 집필까지 무려 20년이 걸린 대작. 일본에서는 1998년에서 2000년 사이 <문예춘추>에 연재되었다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아사다 지로 작가정신의 정수가 담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13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제13회 시바타렌자부로상'을 수상했다. '제27회 일본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동명 영화(한국 개봉 제목은 <바람의 검 신선조>)의 원작이기도 하다. 아사다 지로는 생생한 묘사를 위해 주인공 요시무라 간이치로의 고향으로 설정된 모리오카(오늘날의 이와테 현)를 봄, 여름, 가을, 겨울 별로 답사하여 자연경관의 변화와 유적지를 살피고 사투리를 배우는 한편, 전투 상황을 실감나게 그려내기 위해 1860년대 교토와 오사카의 고지도까지 살펴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칼에 지다』가 대하 역사소설로서의 면모를 갖는 이유다. 그러나 작품은 단순한 역사소설에만 그치지 않는다. 비록 칼과 무사 이야기라는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아사다 지로의 작품들 바탕에 흐르는 공통된 정서, 즉 생존경쟁에서 떠밀려난 존재와 주류에서 소외된 집단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무한한 애정이 글 전체에 살아 숨 쉰다. 그야말로 아사다 지로다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지하철
아사다 지로 저/정태원 역 | 문학동네
일에 시달리고, 가족의 갈등을 안고, 인생에 몹시 지친 중년의 샐러리맨이 체험하는 시간여행 이야기이다. 『지하철』의 주인공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증오하고 경멸하던 아버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을 잃고, 앞으로도 자신의 의지와 발로 살아갈 것이란 것을 확신한다. '1995년 요시카와에이지문학상' 신인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당시 자신의 과거경험을 소재로 한 피카레스크 소설을 주로 발표하고 있던 아사다 지로에게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해준 작품이다. '시간여행'이라는 고전적인 소재를 통해 점점 잊혀져 가는 가족의 의미, 거대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독과 방황, 시대의 파도에 맞서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 노력하는 인간군상이 특유의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져 있다. 이후 『철도원』, 『장미 도둑』 등으로 이어지는 대표작들의 토대가 된 소설로, 아사다 지로의 초기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이 마법 같은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점점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건넨다.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
아사다 지로 저/이선희 역 | 창해(새우와 고래)
2001년부터 2년여 동안 일본의 <아사히신문>에 연재되며 큰 인기를 끌었고 2002년에 단행본으로 처음 선을 보였다. 일본 독자들의 폭발적 반응을 업고 2003년 연극무대에 올랐고, 2006년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2009년 TV드라마로 만들어져 12.5%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한국어판은 2004년에 『안녕, 내 소중한 사람』으로 소개되었다가 원제인 『쓰바키야마 과장의 7일간』으로 2008년 개정판이 나왔다. 2016년에 2월 24일부터 4월 14일까지 <돌아와요 아저씨>라는 제목의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되기도 했다. 주인공 쓰바키야마는 백화점 여성복 판매부서에서 만년과장으로 일하는 평범한 중년남성이다. 갑작스런 뇌일혈로 숨을 거둔 그의 영혼은 의리파 조폭두목 다케다, 친부모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야 한다는 7살 소년 렌 짱과 함께 사흘 동안의 환생을 허용 받는다.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중유청으로부터 이승에서 꼭 확인하거나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단, 생전의 모습과 동떨어진 인물로 등장해야 하며 '시간엄수, 복수 금지, 정체의 비밀유지'라는 세 가지 조건을 지켜야 한다. 마침내 쓰바키야마 과장은 빼어난 몸매의 젊은 미인으로, 다케다는 중후한 인품을 갖춘 중진 변호사로, 렌 짱은 총명한 소녀로 환생한다. 이들이 죽기 전 이승에서 풀지 못한 숙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쫓아가다 보면 때로는 눈물을, 때로는 폭소를 터뜨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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