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서 고생은 사서 고생?!
옛말에 ‘등 따습고 배부르면 장땡’이라는 말이 있다. 기분 좋게 드러누울 수 있는 따뜻한 공간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있다면, 마음은 절로 평온하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의미다.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등이 따습지가 않아 문제다. 주거비는 날로 치솟고 있고 안정적으로 몇 년간 한 동네에 정을 붙이고 살아가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 선거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청년들이 많다고 한다. 정치에 무관심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4년 후에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계속 살고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평소에 보헤미안이나 노마드적 삶을 추구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사 가고 싶지 않지만 전세금 인상을 감당하지 못해서, 올린 월세를 낼 형편이 되지 못해 그런 것이니 속이 상할 뿐이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 추세는 전세가 줄어들고 대부분 월세 위주로 부동산 임대 시장이 재편되었고, 특히 원룸이나 소형 아파트와 같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주택은 더욱 뚜렷해졌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고 한때는 반지하방에서 곰팡이 눅눅한 방에도 사는 거라고 통과의례라고 말하기에는 주거빈곤의 문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많지 않은 월급에서 매달 월세로 수십 만원을 지출하고 나면 진짜 남는 게 없고, 저축은 언감생심이다. 그러니 더 먼 장래에 대한 계획은 꿈도 꾸지 못한다. 결혼, 출산, 내 집 마련과 같은 이전 세대가 20-30대로 넘어가면서 갔던 인생의 길을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는 청춘이 대다수다. 실제로 최근 발표한 통계를 봐도 초혼 연령이 여성이 처음으로 30세를 넘어섰고, 남성은 30대 중반을 바라보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두 사람 몸을 누일 작은 공간을 마련하지 못한다는 현실적인 이슈도 큰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꼭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동아시아 전역의 청년들의 삶의 현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스핏츠라는 독립언론 단체의 ‘청춘의 집’ 프로젝트 팀이 타이완, 홍콩, 일본의 청년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주거현황을 탐사 보도하여 책으로 낸 『청년, 난민이 되다』는 우리나라만 특히 청년의 주거상황이 나쁜 줄 알았는데, 공통적인 현상이고 다른 나라의 젊은이들은 더 열악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다.
타이완, 일본의 청년은 어떠한가
먼저 타이완이다. 타이베이의 최고가 아파트가 있는 디바오 지구의 아파트 가격은 2015년 2월 기준 평당 5억 6천만 원이고, 한 달 관리비는 1천2백만 원 이상이 나온다고 한다. 타이베이의 소득대비 집값지수 즉 PIR은 16인데 이는 16년치 소득을 한 푼도 안쓰고 모아야 중간가격의 주택을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참고로 서울은 8.4, 한국은 5.2라고 한다. 한국만 미친 부동산인줄 알았는데, 제대로 미친 나라가 멀지 않은 이웃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청년을 포함한 저소득층은 타이베이에 둥지를 틀지 못하고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었는데, 정부가 지어서 불하한 정건 주택이란 8~12평 규모의 주택은 시간이 지나면서 특이한 외모로 변했다.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 사이에 컨테이너 박스를 붙이고 그 사이에 임시벽을 만드는 방식으로 확장개조를 한 건물들이 줄을 지어 있게 만들었다. 만일 이런 곳에 살지 않고 타이페이에 살고 싶다면 아파트 하나를 서너 개, 많게는 일 곱 개로 나눠서 각자를 임대하는 ‘타오팡’에 살아야 한다. 매달 적지 않은 월세를 현금으로 내고, 얇은 가벽으로 나뉘어서 TV소리, 아이울음소리를 견디면서 사는 등 프라이버시는 존재하지 않는 곳에 살아가고 있다.
일본은 어떠한가, 아예 집이 없어 맥도날드 같은 24시간 패스트푸드점에서 음료를 하나 시키고 버티는 ‘마쿠도 난민’도 있고, 우리의 피시방과 같은 넷카페에서 지내는 사람도 많다. 이들 중 20대가 27%, 50대가 23%로 두 주류를 이루는데, 20대는 불안정한 고용으로 안정적인 소득이 없고, 50대는 은퇴 이후 안정적 소득이 없는 노후난민이다. 넷카페를 저자가 이용을 직접 해보았다. 하루 이용료 2천엔 정도로 1평남짓의 작은 방을 빌리고 몸을 누일 수 있는데, 내일은 또 어디서 눈을 붙일지 알 수 없다.
타이완, 홍콩, 일본, 한국의 청년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주거가 불안정하니 삶이 불안정’하고 이런 상태라면 나아지리라는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도 비정규직, 가족이란 안정된 네트워크도 멀리 떨어져있거나 각자 생존하느라 허덕이고, 잠자리도 불안정하다. 일본의 한 젊은이는 “파견사원의 경우 3개월마다 일을 바꾸는데 그러면 일하는 지역이 바뀌고 3개월마다 이사를 해야 하니 짐을 많이 가질 수 없습니다. 항상 박스 하나로 살아가게 됩니다”라고 토로한다. 이웃과 유대감,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싶어도 불가능한 현실이다.
처음으로 ‘우리 동네’라고 부를 만한 곳을 찾다
청년의 주거문제는 ‘노력이 부족해서’로 치환할 일이 아니다. 저자는 ‘반지하방에 살던 친구가 해가 드는 2층을 이사를 했을 때 생활패턴도 바뀌고 우울도 나아졌다’는 예를 들면서 삶의 안정성과 주거환경이 우리의 삶에 분명한 영향을 미치며 삶을 담는 그릇으로 기능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최근 한국에서 사회적 노력인 달팽이집협동조합의 공유주거 시설 ‘달팽이집’, 서울소셜스탠다드의 ‘공동체주택시나리오’를 소개하며 공유주거가 현재의 상황에 실현 가능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공동체 생활 속에서 주거 안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고, 함께 거주하는 이들이 일종의 든든한 네트워크로 기능한다. 처음으로 ‘우리 동네’라고 부를 만한 곳을 찾은 것 같다는 후기를 볼 수 있었다.
우리의 삶을 안정적으로 만들어 심리적 평온함 속에 살기 위한 기본 전제가 ‘주거’에서부터 찾아야 할 시기다. 특히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독립을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을 위해서는 이는 꼭 필요한 기본전제다. 알아서 자기 능력껏 살 곳을 찾아야 하는 것이라는 말은 이제 그만하자. 법으로, 제도로 보호하고 제공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집을 쉽게 소유할 수 있게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근본적인 제공이 우선되어야 한다.
맘 편히 등을 대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그 안에서 안정을 얻고, 여기는 ‘우리 동네’라고 여기며 정을 붙이고 살 수 있는 곳을 갖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래야 삶이 안정이 되고, 현재와 미래에 대한 낙관적이고 건강한 기대와 실행을 할 여유를 가질 수 있다. ‘헬조선’이라 부르며 좌절하는 청년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 중 하나는 그런 면에서 주거권이라는 점을 『청년, 난민이 되다』는 절절히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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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난민 되다정여울 저 | 민음사
집은 꿈도 꾸지 못하고, 방 한 칸 마련하는 것조차 버거운 청년 세대가 도래했다. 20대 독립 언론 미스핏츠는 그 답을 직접 찾기로 했다. 2015년 초 타이완, 홍콩, 일본으로 떠났다. 그곳 청년들의 집을 찾아갔고 이들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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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iuiu22
2016.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