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우리동네 예체능>은 무엇인가?
뻔한 선택으로 회귀한다는 비판을 감수해가면서도 확실하게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전장으로, 어드밴티지를 쥘 수 있는 필드로 이동하라는 건 이런 의미다. 승산이 없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계속 소모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싸움의 양상을 바꾸는 것은 점점 요원해진다. 과감하게, 잘 할 수 있는 일들 위주로 전장을 재구성하라.
글ㆍ사진 이승한(TV 칼럼니스트)
2016.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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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도전’이 <무한도전>으로 부활하기까지 - 당신의 전장은 당신이 결정해라 (1) 에서 이어집니다.)

 

 

물론 기껏 새로 도전한 분야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자신이 어드밴티지를 쥘 수 있는 전장으로 되돌아 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은 아니다. 당장 도전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쓰라린 일이고, 모양새도 자칫 후퇴처럼 보이기 쉽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스티브 잡스가 복귀한 직후의 애플이 딱 그런 모양이었다. 1997년만 해도 애플의 라인업은 화려하다 못해 번잡했다. 파워 매킨토시 4종, 매킨토시 20주년 기념판, 파워북 3종, PDA  뉴튼 메시지 패드, 교육용 PDA 이메이트 300, 애플 프린터, 디지털 카메라인 애플 퀵테이크, 게이밍 콘솔인 애플 피핀까지. 자기들이 내쫓았던 창업주인 스티브 잡스를 다시 불러와야 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었던 주제에 제품군은 지나치게 넓었다. 잡스는 돌아오자마자 기존의 제품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뉴튼과 이메이트가 사라지며 PDA 카테고리가 통째로 날아갔고, 애플 퀵테이크와 애플 피핀이 사라지며 디지털 가전 라인이 날아갔다.

 

얼핏 초라한 행보처럼 보이지만 애플은 이 과격한 구조조정 덕에 간신히 파산을 면하고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지나치게 많은 제품군에 손을 댔으면서 어느 한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상황, 재정비를 하려면 애플이 가장 잘 할 줄 아는 것만 주력으로 남기고 나머지 여력을 회수해 와야 했던 것이다. 잡스가 남긴 카테고리는 크게 세 개였다. 일체형 컴퓨터 아이맥 G3. 워크스테이션인 파워맥 G3. 랩톱 파워북 G3. 2001년 아이팟을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모바일 디바이스 기업으로의 변화를 시작하기 전까지 3년간, 잡스의 애플은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컴퓨터 제품군에만 매달리며 기초체력을 다졌다. 잡스가 생전에 아이폰과 아이팟의 화면 크기 다변화에 반대해왔던 것, 잡스 사후에야 디스플레이 크기에 따른 제품군 확장이 이뤄진 건 이런 과거의 영향이 컸다. 확실하게 압도적 우위를 지닌 전장이 아닌 곳으로 무리하게 진출했다가 회사 간판을 내릴 뻔 했던 아찔한 기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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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가장 잘 아는 일체형 컴퓨터 매킨토시의 DNA를 물려받은 아이맥에만 무섭게 집중했던
1998년의 애플. 이것이 파산 직전까지 갔던 애플 부활의 신호탄이었다.
iMac ⓒApple Inc. 1998

 

 

잘 모르겠을 땐 확실한 전장 하나만 남겨라

 

2011년 세금 과소납부 문제로 진행하던 프로그램들에서 일제 하차했다가 2012년 복귀한 강호동 또한 비슷한 경로를 걸었다. 방송 데뷔 이후 한번도 이미지 추락이나 부진을 겪어본 적이 없었던 강호동에게 2011년의 잠정 은퇴는 처음 겪어보는 거대한 실패였고, 그 탓에 자신감을 잃은 그는 복귀 이후에도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도덕적인 부분에서 자신감을 잃으니 사람들의 눈치를 보게 되고, 눈치를 보니 게스트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수 없었다. 안 그래도 공격적인 질문이 점점 줄어들어 잔잔한 토크쇼로 변해가던 MBC <황금어장 - 무릎팍 도사>는, 복귀 이후엔 정말 이렇다 할 각이 없는 쇼가 되었다가 끝내 1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폐지됐다. ‘명언 중독’이면서도 유식한 이미지는 아니던 그의 이미지를 활용해 보려 했던 책 권장 토크쇼 KBS 2TV <달빛 프린스> 또한 산만한 구성과 포인트 없는 토크로 실패했고, SBS에서 야심 차게 시작한 <맨발의 친구들> 또한 지나치게 많은 멤버 수와 명확하지 않은 방향성 탓에 이렇다 할 콘셉트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가 금세 종영됐다.

 

복귀를 한 뒤에 오히려 더 위기론이 떠오른 얄궂은 상황, 강호동이 오랜 부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달빛 프린스> 후속으로 편성된 KBS 2TV <우리동네 예체능> 덕분이었다. 강호동과 책이라는 의외의 조합으로 도전한 새로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KBS 예능국은 아예 강호동 하면 떠올릴 법한 뻔한 코드들을 버무려 실패하기 힘든 프로그램을 만들어 냈다. 생활체육 대결이란 형식을 빌어 일반인들과 어울려 노는 포맷, 무슨 프로그램에 던져놔도 기어코 프로그램에 승부의 코드를 집어넣는 집요한 승부욕, 백두장사 7회, 천하장사 5회에 빛나는 압도적인 피지컬, 본인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오른팔인 (초기 멤버) 이수근까지. <우리동네 예체능>은 재봉선 하나까지 강호동이란 사람에게 맞춰 지어낸 맞춤옷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새로운 도전들은 다 실패하고, 기존에 확보해 뒀던 토크쇼 단독 호스트로서의 역량도 예전 같지 않은 순간, 강호동은 잡스의 애플이 그랬듯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원초적인 영역으로 돌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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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변신이나 새로운 시도가 아니라, 강호동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스포츠’의 세계로 더 깊게 들어간 <우리동네 예체능>.
복귀 이후 ‘강호동’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구축해 준 프로그램이다.
<우리동네 예체능> ⓒ한국방송. 2013~2016

 

 

재정비든 체질 개선이든

확실하게 뿌리 내린 중심을 확보해야

 

물론 <우리동네 예체능>이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든가 왕년의 강호동이 누렸던 지위를 복원해 준 것은 아니다. <우리동네 예체능>은 동시간대 경쟁작인 SBS <불타는 청춘>에 시청률 1위를 자주 내주고, 인터넷에서의 화제성 또한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강호동에게 하여금 안정적으로 시청률을 추수하며 한숨 돌리고 태세를 재정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며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SBS <스타킹>이 MC가 아니라 일반인 출연자들이 주인공이 되는 프로그램이란 점을 감안하면, 강호동이 복귀 후 지속적으로 제 존재감을 알릴 수 있었던 창구는 제법 오랫동안 <우리동네 예체능> 하나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인이 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뭐라도 하나 중심으로 고정시켜 두자, 다른 도전을 하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MBC <별바라기>나 KBS 2TV <투명인간> 등의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tvN go <신서유기>나 JTBC <아는 형님>, <쿡가대표> 등의 도전으로 방송 영역과 장르를 조금씩 넓힐 수 있었던 건 언제든 의지할 수 있는 확실한 메인 프로그램인 <우리동네 예체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뻔한 선택으로 회귀한다는 비판을 감수해가면서도 확실하게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전장으로, 어드밴티지를 쥘 수 있는 필드로 이동하라는 건 이런 의미다. 승산이 없는 방향으로 에너지를 계속 소모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싸움의 양상을 바꾸는 것은 점점 요원해진다. 과감하게, 잘 할 수 있는 일들 위주로 전장을 재구성하라. 그 과정을 통해 확실하게 뿌리 내린 중심을 확보해야, 비로소 제 자신을 재정비 하든 체질개선을 하든 뭐라도 해볼 수 있는 여력이 쌓이고 공간이 열린다. 당신의 아이맥, 당신의 <우리동네 예체능>은 무엇인가?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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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