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다시 읽기
김광석은 영혼의 가수가 아니에요. 김광석은 혼과 몸 모두를 전인격적으로 투척하는 가수였어요. 결국 ‘사람이다’라는 것이죠. 영혼은 사람이 아닙니다. 얼과 몸이 전인격적인 투척의 상태가 됐을 때 진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죠. 저는 김광석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글ㆍ사진 지예원
2016.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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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6일은 김광석의 20주기였다. 책 『김광석 우리 삶의 노래』는 원래 그날에 맞춰 나오기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예정일을 넘기고 1월 말이 돼서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문화철학자 김용석 교수는 이 책을 쓰면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다고 입을 뗐다. 

 

“사실 처음에는 이 책을 써도 될 자격이 나에게 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쓰면서도 몇 번이나 접으려고 했어요. 그래도 한번 시작한 것이니까 끝까지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원래는 20주기에 맞춰서 내려고 했는데 마지막에 3주 이상 퇴고를 더 했습니다. 제 마음에 완전히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일반적으로 어려운 철학 이론을 용이하게 설명하기 위해 대중문화의 산물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김광석을 이용해서 철학적 이론을 설명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인문학자들은 고전을 경전으로 생각하고 떠받듭니다. 하지만 저에게 고전은 전적으로 수단입니다. 따라서 제가 이전에 고전을 활용해서 철학책을 썼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물론 쓰는 것도 쉬웠죠. 그런데 김광석을 수단으로 삼아서 철학을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김광석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욱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그를 복잡하게 했다. 그가 단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김용석 교수는 김광석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김광석이 주로 활동했던 80년대 중반부터 96년까지 그는 외국에 있었다.

 

“그 시기에는 외부와 완전히 단절하고 살았기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 후에 한국에 들어왔는데, 서태지가 ‘안압지’ 같은 어떤 명소 이름인 줄 알았을 정도였어요. 그만큼 한국 대중가요에 대해 완전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간혹 김광석 노래를 듣기도 했지만 갑자기 그 사람에 대해 글을 쓰자니 힘들더군요. 3년 전에 출판사로부터 김광석에 대한 책을 내보자는 부탁을 받았는데, 아직은 내가 이것을 책으로 쓸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직 김광석에 대해 글을 쓸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찾은 묘수가 바로 철학 전문지에 기고하는 것이었다. 김용석 교수는 글을 쓰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철학은 시와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노랫말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결국 접었다. 진짜 김광석의 음악을 알기 위해서는 그의 음악세계에 바로 접근해야만 했다. 그는 음악을 몇 번이고 계속해서 들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 실마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김광석은 똑같은 노랫말을 자기가 부르면서 재해석해요. 그래서 김광석의 라이브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의 라이브는 그 순간이 전부예요. 그는 매번 그게 전부인 것처럼 불렀어요. 그런 생각이 드니까 글이 팍팍 나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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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우리 삶의 노래를 부르다

 

『김광석 우리 삶의 노래』는 원래 『철학과 현실』에 기고한 분량의 3배쯤 된다. 책을 출간하게 되면서 그는 그 글들을 거의 다 재조직하거나 다시 썼다고 밝혔다. 이 책의 서문에서 김용석 교수는 김광석을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눠서 설명했다. 그 중 첫 번째로 김광석은 ‘가수’였다며 그는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이 말이 당연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그러니까 이 사람은 노래를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일정한 문화 지형에서 무언가가 대세를 이루는 것은 안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양성이 상실되기 때문입니다. 다양성이 없다는 것은 대중문화의 취약점입니다. 다양성이 없으면 생명력이 사라져요.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다양성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분야에서든 다양성이 유지돼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대중문화의 다양성이 소실되려고 한다거나 소실돼버리면 큰 문제입니다. 진짜 노래를 위해 살았던 사람, 노래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깨닫고 실천했던 사람이 김광석이었습니다.”

 

그는 김광석이야말로 ‘가수답다’라는 말을 해도 될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실 ‘-답다’라는 말은 아주 중요한 철학적 주제이며, 윤리학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사람답다면 그것은 굉장히 대단한 일인 것이다. 김용석 교수는 김광석에 대해 탐구하며 그의 삶 자체가 철학적 주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어서 두 번째로 그가 본 김광석은 ‘노래하는 노동자’였다. 그는 김광석이 노동의 의미를 알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자기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은 노동의 의미를 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광석이 활동한 기간은 10년밖에 안 된다. 그중에서도 솔로로 활동한 기간은 거의 6년 남짓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라이브 공연을 1000회나 했다. 김용석 교수는 그 사실이 바로 그것을 뒷받침하는 사례라고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김광석은 ‘사람’이었다. 김광석은 사람들 속에서 우리 삶의 노래를 불렀다. 그가 책 제목을 『김광석 우리 삶의 노래』라고 지은 이유 역시 그것 때문이었다.

 

“김광석은 사람들을 위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사람은 우리 음악 역사에 있어서 지대한 공헌을 했어요. 뛰어난 노래도 많이 남겼지만, 진짜 공헌은 ‘다시 부르기’였죠. 『김광석 다시 부르기』가 2집까지 나와있습니다. 저는 이 ‘다시 부르기’가 김광석의 음악세계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봐요. 여러분은 다시 부르기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요즘은 ‘김광석 다시 부르기’가 김광석의 노래를 다시 부르는 것이라고 많이들 알고 계신 것 같아요. 하지만 공식적으로 이것은 김광석이 다시 부른 노래를 의미합니다.”

 

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 중 첫 번째는 김광석이 자기 이전의 선배 가수들이 부른, 대중화되지 않은 노래를 다시 불러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인기 있는 노래로 만든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것이 「이등병의 편지」다. 김용석 교수는 이 노래가 최백호의 「입영전야」나,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와 같은 비슷한 소재의 노래들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김광석의 노래는 다른 노래들과 달리 보편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김광석의 능력은 어떤 특별한 소재를 보편화시키는 데 있었다.

 

“두 번째 경우는 김광석이 자신의 노래를 자기가 다시 부른 것입니다. 다시 부르기 1집에서 김광석은 기존에 발표했던 자기 노래들을 다시 불렀습니다. 다시 부른 노래들은 예전 노래와 느낌이 달라요. 다시 공부하고, 재해석해서 부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김광석이 노래 사냥꾼이었다고 생각해요. 기존에 있던 것들을 기가 막히게 잡아서 다시 해석했으니까요. 그는 마치 사냥개처럼 좋은 곡의 냄새를 잘 맡았던 것 같아요. 탐구 정신이 없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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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낭만에 대하여

 

이어서 그는 무대에 설치된 큰 스크린으로 김광석의 대표곡 중 하나인 「사랑했지만」의 라이브 영상을 재생했다. 그리고 같은 곡을 리메이크한 외국 가수 두 명의 노래도 연달아 들려줬다. 그는 김광석을 관통하고 있는 몇 가지 키워드 중 ‘낭만’이라는 주제를 꺼내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김광석이 96년에 죽고, 불과 3년 만에 팀 데이비스라는 가수가 이 노래를 편곡해서 불렀습니다. 그리고 2014년에 스웨덴 가수인 안드레아 샌드런드도 이 노래를 영어로 불렀죠. 저는 이 노래를 글 쓰면서 수없이 들었는데요. 이 노래를 다시 들려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의 노래를 비교하기 전까지 저는 글 쓰는 것을 포기하려고 했어요.”

 

그는 김광석이 부른 노래와 다른 사람들이 부른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돌파구를 찾았다. 실마리를 찾자, 글이 일필휘지로 써졌다. 김광석에게는 분명히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방금 이 세 노래를 들어보셔서 아시겠지만 느낌이 다 다르죠. 제가 음악평론가는 아니지만 평을 한다면 팀 데이비스는 성량이 풍부한 사람은 아닙니다. 노래 가사는 약간만 변형하고 거의 직역했어요. 이 사람의 노래를 들으면서 너무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떠나려다가도 뒤돌아서 다시 매달릴 것만 같아요. 굉장히 감상적이고 신파적이죠. 김광석은 주로 슬픈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들으면 단순히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안드레아 샌드런드는 이 사람보다 노래를 훨씬 잘하지만 그래도 김광석이 부른 느낌과는 달라요. 김경호씨, 최승렬씨가 부른 「사랑했지만」도 들었는데 구분점이 딱 한군데 있더군요. 김광석은 마지막에 하이 피치 부분을 부를 때 입을 벌리지 않아요. 다문 입에서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김광석의 노래에는 고통의 감정이 다 보여요. 이것은 단지 슬픈 것이 아니라 고통, 아픔이 있다는 것이죠. 여기서 제가 화두를 얻었어요.”

 

그는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아도르노가 한 말을 인용했다. ‘고통을 명백히 들춰내고자 하는 욕구가 모든 진실의 조건이다’라는 문장이었다. 풀어서 설명하면, 우리가 고통의 심연까지 가고자 하는 필요성을 느꼈을 때 진실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제가 어느 날 새벽에 다시 이 노래를 듣는데, 노래에서 피 냄새가 나는 거예요. 우리가 김광석 노래를 들을 때 동원하는 감각은 청각입니다. 그리고 비디오를 봤기 때문에 시각도 들어갔죠. 분명 우리는 이 두 가지 감각만으로 노래를 들었는데, 다 듣고 나면 다른 감각까지 흡수해 버리는 거예요. 후각과 미각까지 들어간 것이죠. 그러니까 글이 탁 터지더군요. 핏기 어린 목소리, 피 울음. 입을 거의 벌리지 않고 하이 피치를 그렇게 응집력 있게 부르는 사람은 아주 드뭅니다. 김광석은 「사랑했지만」을 한동안 부르지 않았다고 해요. 노래가 너무 소심하고 소극적인 것 같고, 부정적인 느낌이라서요. 한마디로 너무 쉽게 포기한다는 것이죠. 제가 볼 때는 김광석이 고민한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봅니다. 김광석도 자신의 적지 않은 노래들이 감상적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감상성을 뛰어넘는 노래의 세계를 추구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감상성과 비슷하면서도 아주 다른,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낭만성이다. 사람들이 흔히 이 둘을 혼동할 때가 많다고 김용석 교수는 말했다. 우리는 낭만적이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자주 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그 말을 제대로 된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낭만성, 낭만주의는 서구 역사에서 엄청나게 중요했어요. 그것을 빼고 서구를 이해하기는 힘듭니다. 낭만의 반대말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요. 우리는 그동안 낭만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낭만의 반대편에 있는 것들에 대한 논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예를 들면 ‘정의’가 그렇죠. 그런데 이 정의의 개념은 조화의 개념 없이는 나올 수 없어요. 조화란 모든 요소들이 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공평하게 분배돼 있고, 잘 어울려 있는 것을 뜻합니다. 조화의 미학은 2000년 동안 서구를 지배했어요.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부터 르네상스 말기까지 2000년 동안 조화의 미학에 대해 반기를 들을 수 없었어요. 미학이란 감각으로 얻어지는 것에 대해 논하는 것이죠. 조화란 것은 감각으로 포착해서 그것을 우리 생활의 기준으로 삼으려는 거예요. 조화의 미학과 정의의 개념은 딱 들어맞게 돼 있어요. 정의는 사회의 정치철학자들의 개념을 대표하는 것이었고, 2000년 동안 사람들을 지배해 온 것이죠. 그런데 그것이 부서지기 시작하면서 근대의 영역으로 넘어온 것입니다. 우리는 모더니티의 의미를 모르면 서양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조화를 깨기 시작한 것이죠. 다시 말해, 조화가 현실이 아니라 목표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조화를 이루려면 긴장돼있으면 안 되죠. 김광석이 피 울음을 입 안에 담고 하이 피치를 올릴 때 얼마나 긴장됐겠어요. 엄청난 낭만성이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모던한 거예요.”

 

그렇다면 감상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김용석 교수는 “낭만적인 것은 나의 슬픔과 고통의 심연을 보려는 자의적 노력”이라고 말했다. 단지 머물러 있는 것은 감상이다. 노래 가사를 보면 「사랑했지만」에는 분명히 감상적인 면이 있다. 그런데 가창의 측면에서는 굉장히 낭만적이다.

 

“김광석이 그런 개념을 의식적으로 알지는 않았지만 몸으로 알았어요. 감상과 낭만의 경계를 넘어서기 위한 치열한 노력, 고통.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숭고미가 확 느껴져요. 마음에 오래 남는 것이죠. 그러니까 노랫말로만 접근해서는 김광석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런 시도를 처음에 하려다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노래를 다시 들으며 반성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하면 내가 이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 것이죠. 김광석은 감상성과 낭만성의 경계에서 진짜 고통스럽게 고민했던 사람인 것 같아요. 감상적인 것을 환상적 예술로 승화시키는 것이 낭만입니다. 헤어지면 누구나 가슴 아픈데 거기에 주저앉아 있으면 감상적인 것이죠. 누군가 일으켜 세워주길 바라고 넘어지는 것, 내 슬픔을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감상적인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낭만주의를 감상주의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죠. 센티멘털리즘, 즉 감상주의는 아주 개인적인 것인 반면 낭만주의는 개인적 슬픔에서 극복해 나가려는 공동체주의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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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과 철학하기

 

처음에 김광석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참여하면서 민중가요를 불렀다. 그러다가 그는 단호하게 대중가요의 영역으로 가버렸다. 그 당시 주변 사람들은 김광석을 많이 비판했지만, 김광석은 스스로 고민했던 것이다.

 

“우리는 흔히 참여문학, 참여예술을 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정치, 사회 문제에 참여해야 한다는 얘기겠죠. 그런데 그런 문제에 참여하기 위해 정치, 사회 이데올로기를 표현하는 작품을 하는 것이 과연 예술활동일까요? 그것이 예술 본연의 자세를 지키는 것일까요? 참여예술과 순수예술의 차이점이 바로 거기 있는 것입니다. 그 갈등이 예전부터 계속 있어 왔어요. 그런 점에서 김광석도 고민을 했던 것이죠. 그런데 사람이 그런 갈등 사이에 있으면 대세에 휩쓸리기 쉬워요. 그러니까 민중가요 파트에 남아있기가 쉬웠을 텐데, 김광석은 거기서 뛰쳐나오면서 오히려 민중적 요소를 흡수했다고 봐요. 김광석은 대중가요의 인기 있는 가수가 되려고 하진 않았어요. 다만 피 울음으로 이 세상의 고통을 다 담아서 예술 행위를 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참여라고 생각한 것이죠. 빅토르 위고 역시 그런 고민을 했어요. 위고 자신은 정치에도 실질적으로 참여했어요. 국회에도 갔고요. 그런데 위고가 진정으로 남긴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그가 정치에 참여해서 발언한 것들이 아니라, 장발장이라는 낭만적 영웅이었습니다. 그것이 훨씬 더 보편적인 영향, 정치적 영향을 준 것이죠.”

 

그의 말에 따르면, 민중가요를 핏기 있게 부르는 것은 쉽다. 가사에 이미 ‘피(血)’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는 노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광석은 「녹두꽃」과 같은 민중가요를 부를 때나 「사랑했지만」과 같은 대중가요를 부를 때나 동일하게 핏덩이를 입에 물고 불렀다.

 

“누가 김광석을 영혼의 가수라고 했습니까? 김광석은 영혼의 가수가 아니에요. 김광석은 혼과 몸 모두를 전인격적으로 투척하는 가수였어요. 결국 ‘사람이다’라는 것이죠. 영혼은 사람이 아닙니다. 얼과 몸이 전인격적인 투척의 상태가 됐을 때 진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죠. 저는 김광석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김광석에 대해 평할 때 남의 노래를 자기 노래로 잘 소화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용석 교수는 단순히 그것에 머물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김광석은 남의 노래를 자신의 입을 거쳐서 우리의 노래로 만들었다. 이번 책을 쓰면서 그는 대구 김광석 거리와 김광석의 노래비가 있는 학전블루 소극장, 그리고 위패가 안치된 청광사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김광석의 생을 좇고, 노래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면서 김용석 교수는 자신 역시 삶의 진정성을 실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광석의 노래가 철학이 된 것이다.

 

“그는 스스로 그 과정에 대해 서술한 글에서 ‘노래의 참뜻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썼어요. 참뜻을 찾는다는 것은 철학하기라는 것이죠. 진리를 우리말로 표현하면 참뜻이에요. 김광석은 적어도 음악이라는 세계에서 진리를 추구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부르기 자체가 바로 철학하기인 것이죠. 저는 ‘치유’한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요. 치유한다는 것은 일단 그 사람을 병자로 전제해야 하는 것이죠. 마음의 병은 남이 치유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 스스로 성찰하고, 사유하고, 용기를 갖고 일어서야 하는 거예요. 감상주의에 빠지지 말고 낭만적 숭고함으로, 갈 길을 스스로 가는 것입니다. 음악적인 면에서 그런 길을 우리에게 보여준 사람이 김광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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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우리 삶의 노래김용석 저 | 천년의상상
문화철학자 김용석이 대중가수 김광석의 예술과 삶을 인문학의 시선으로 해석하며 철학적,예술적,문화적 가치를 드러내는 책이다. 저자는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서 김광석이 우리에게 남긴 철학적 주제들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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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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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프러스

2016.02.27

김광석... 핏덩이를 입에 물고 노래했다는 표현이 정말 딱이네요. '감상주의에 빠지지 말고 낭만적 숭고함으로 갈 길을 가라.' 낭만적 숭고함이라... 현장에서 작가한테 듣고 있는 듯 꼼꼼한 기사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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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예원

재미있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책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