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부터 30대까지 16년 동안 엽연초 조합의 4급 주사 경리 직원으로 이름 없이 살던 한 남자가 어느 날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얼마 뒤 그는 소설가로 제 이름을 알리는데, 그가 바로 김주영이다. 『객주』를 통해 ‘길 위의 작가’로 자리 잡았으며 『활빈도』, 『화척』 등의 대하소설로 한국 문학에 한 획을 그은 우리 시대의 거장 김주영. 토속적이고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탁월하게 재현해내는 작가이다.
“봉봇방 구석”으로 밀려난 민중 생활의 세부를 풍부한 토속어 문체로 되살려 낸 『객주』는 뛰어난 이야기꾼의 기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김주영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우리 소설상의 큰 성과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며 화석으로 굳어가는 조선 시대의 언어와 풍속을 발굴하고, 당대의 풍속사를 유장한 서사 형식으로 완벽하게 재현한다. 평론가 황종연은 『객주』를 두고 “신분과 지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 상인들의 모험은 피카레스크 소설의 코드, 숱하게 많은 모략과 술수의 이야기들은 의협 로맨스의 코드, 저잣거리를 비롯한 사회적 장소에 대한 치밀한 묘사는 풍속 소설의 코드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객주』는 조선 말기의 특정 집단을 내세워 당대 풍속사를 꼼꼼하게 그려낸 작품일뿐더러, 더 나아가 제국주의 열강의 경제적 침탈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이루어진 봉건 권력 집단의 와해와 사회 질서의 재편 과정을 실감나게 재현한 작품이다. 『객주』에의 곳곳에는 당대 상업의 현황, 다시 말하면 특권 상업 체제인 시전, 그것과 대립하는 사상 도가와 난전, 전국 각처의 외장, 객주와 여각, 금난전권, 매점 매석, 밀무역, 개항 이후 왜상의 진출 상황 등 조선 말기의 물화의 생산과 유통의 양상이 사실적이며 박물적으로 그려진다.
김주영은 절륜의 술 실력으로 유명하다. 노래판이 벌어지면 ‘개화창가에서 신구잡가,신체유행가’를 거침없이 부르고 재담 농담에도 능하다. 또한 김주영은 여행에도 일가견이 있는데, 소설에서 번 돈을 모두 여행에 쏟아 부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작가는 여행할 때 결코 메모를 하지 않는다. 그 공간과 그 나라 터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저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낄 뿐이기 때문이다.
주요 작품으로 『객주』, 『활빈도』, 『화척』, 『홍어』, 『천둥소리』, 『외촌장 기행』, 『아라리 난장』 『도둑견습』, 『잘 가요 엄마』 등이 있다. 1983년 『외촌장 기행』으로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고 이듬해에 『객주』로 ‘제1회 유주현 문학상’을 수상했다. ‘제8회 이산문학상’에 『화척』이, ‘제6회 대산문학상’에 『홍어』가 선정됐다. 『아라리 난장』과 『멸치』는 각각 ‘제2회 무영문학상’과 ‘제5회 김동리문학상’을 수상했다. 2007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객주』는 1983년과 2015년에 드라마로 제작됐으며 만화가 이두호에 의해 만화화되기도 했다.
김주영 작가의 대표작
객주
김주영 저 | 문학동네
김주영 작가의 대표작이자 한국 역사사회소설의 한 획을 그으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장편대하소설. 1984년 아홉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온 바 있는 『객주』는 30여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13년, 서울신문과 인터넷 교보문고에 5개월 동안 연재된 끝에 10권으로 완성됐다. 작가는 4년 전 경북 울진 흥부장에서 봉화의 춘양장으로 넘어가는 보부상 길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진짜 객주를 끝맺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울진 죽변항에서 내륙 봉화까지 소금을 실어 나르는 길인 이 십이령 고개가 그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30여 년 만에 드디어 『객주』 10권이 쓰일 수 있었던 것. 1878년부터 1885년까지 보부상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조선후기의 시대 모습을 세밀하게 담아낸 소설 『객주』는 정의감, 의협심이 강한 보부상 천봉삼을 주인공으로 한 보부상들의 유랑을 따라가며, 경상도 일대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근대 상업자본의 형성과정을 그리고 있다. 피지배자인 백성의 입장에서 근대 역사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대하소설의 새로운 전기를 만든 작품으로 평가된다.
홍어
김주영 저 | 문학동네
1997년 <작가세계>에 발표되었을 당시 문단으로부터 본격소설의 미학을 보여준다는 찬사를 받았다. 폭설로 고립된 산골 마을에서 가족을 떠난 아버지를 기다리는 열세 살의 소년을 화자로 내세운 작품으로, 시적 상징과 서정적 묘사를 통해 한 폭의 수묵화와 같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김주영 작가가 이순(耳順)에 다다라 인생을 반추하듯 써 내려간 『홍어』는 열세 살 소년 세영의 성장소설로 읽을 수 있다. 세영은 유부녀와 통정(通情)한 뒤 사라져버린 아버지를 기다리며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삯바느질꾼인 젊은 어머니는 아버지가 좋아했던 홍어를 부엌 문설주에 매달아두지만 아버지에게선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고 홍어는 먼지와 그을음을 뒤집어쓴 채 말라갈 뿐이다. 세영은 정초마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가오리연을 날리며 날개를 달고 자유롭게 비상(飛上)하는 몽상에 빠져든다. 이 세상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 때문이다. 작가는 『홍어』에 대해 "아랫목에 앉아 인생을 반추하고 싶은, 아주 조용한 소설"이라 말한 바 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과 오지 않는 이를 조용히 기다리는 모자(母子)의 삶이 고요히 하지만 가슴속 깊이 다가오는 작품이다.
잘 가요 엄마
김주영 저 | 문학동네
등단 41년,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작가생활 동안 김주영이 한 번도 그 이름을 올린 적 없었던 '엄마'. 작가는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품고 살 수밖에 없는 그 이름을 비로소 소리 내어 부른다. 그것은 작가 자신의 어머니인 동시에 우리 시대 모든 어머니들이 살아낸 모성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길고 긴 산고를 겪고, 제 젖을 물리고, 제 살을 떼어주며 우리를 키워낸 어머니. 그 촌스럽고 어리석고 못난 이름,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미운 사람'이다. 미련하고 바보 같은 엄마의 이야기는 대가 김주영의 단련된 손끝에서 더욱 미련하고 촌스럽게, 그래서 더욱 아프게 그려진다. 소설은 엄마의 죽음을 배다른 아우에게서 전해 듣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결국 제 발로 고향을 떠나 떠돌이로 살게 만든 엄마에 대한 원망을 노년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떨쳐버리지 못한 '나'는, 엄마의 장례에 관해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며 회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 있던 엄마에 대한 애잔함과 미안함이 '나'로 하여금 자꾸만 흔들리게 만든다.
젖은 신발
김주영 저/임인식 사진 | 김영사
김주영의 첫 산문집. 작가의 성장과정이 한국 다큐멘터리 1세대 사진작가 임인식의 미발표 흑백사진과 어울려, 읽는 이를 순식간에 1950, 60년대 앞으로 데려다 놓는다. 가난했지만 아름다웠던 시절의 풍경들, 소박했던 서민들의 삶을 특유의 따뜻한 문체로 그린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들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누이들이 겪은 삶의 애환과 지난 시절의 정겨운 고향 풍경을 지금 시대에 올곧게 재현해놓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빛 바랜 사진 속에 작가의 성장기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본격적인 자전 에세이는 아니지만 내용 곳곳에 소년 김주영이 겪은 여러 정황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책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를테면, 돈이 없어서 운동화를 사지 못하고 심지어 친구들과 찍은 사진마저 찾지 못하는 상황 등이 그렇다. 『젖은 신발』에는 작가의 자전적인 모습이 일관된 주제에 담겨 있고, 따뜻하고 정겨운 우리만의 고유 정서가 올곧게 재현되어 있다. 방향감각을 잃은 현대인에게 큰 위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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