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시대의 정신적 위기를 노래한 시인
1970년대 한국 시의 역사에 굵은 점을 찍으면서 등장 한 후, 끊임없는 모험과 분출되는 실험으로 우리 시대의 정신적 위기를 노래한 시인.
글ㆍ사진 채널예스
2016.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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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예스24 작가파일).jpg

 

경북 상주 출생으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보여 초등학교 시절부터 여러 백일장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경기고교에 입학하여 당시 국어교사였던 시인 김원호를 통해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때 <창작과 비평>에 실린 김수영의 시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1971년 서울대 불문과에 입학하여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하여 황지우, 김석희, 정세용, 진형준 등과 친분을 쌓았고 1976년 복학하여 황지우 등과 교내 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1977년 「정든 유곽에서」 등을 <문학과 지성>에 발표, 등단했다. 대구 계명대학 강의 조교로 있으면서 무크지 『우리세대의 문학1』에 동인으로 참가했다.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평가하는 말을 빌리자면 “철저히 카프카적이고 철저히 니체적이며 철저히 보들레르적”이었던 이성복은 1984년 프랑스에 다녀온 후 사상에 일대 전환이 일어나 김소월과 한용운의 시, 그리고 논어와 주역에 심취했다. 이후 낸 시집이 동양적 향기가 물씬 풍기는 『남해금산』이다. 시에는 개인적, 사회적 상처의 원인을 찾아나서는 여정이 정제된 언어로 표현되었다. 시인은 보다 깊고 따뜻하며, 더욱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뛰어난 시 세계를 새로이 보여준다. 서정적 시편들로써 서사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이 시집에서 이성복은 우리의 조각난 삶과 서러운 일상의 바닥에 깔린 슬픔의 근원을 명징하게 바라보면서 비극적 서정을 결정적으로 고양시켜 드러낸다. 이 심오한 바라봄-드러냄의 변증은 80년대 우리 시단의 가장 탁월한 성취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때로는 환상소설의 한 장면처럼 납득하기 힘든 상황의 묘사, 이유가 선명하지 않은 절규 등을 담아냈다는 비판도 받았다.

 

또한 이성복은 섬세한 감수성을 지녔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언어 파괴에 능란하다. 의식의 해체를 통해 역동적 상상력을 발휘, 영상 효과로 처리하는 데도 뛰어나다. 그러나 객관적 현실에 대해 냉소적이라거나 『그 여름의 끝』 이후의 관념성을 비판 받기도 했다. 그는 초기 시의 모더니즘 경향에서 벗어나 동양의 형이상의 세계에 심취했다.

1989년 「네르발 시의 역학적 이해」로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하고 1991년 프랑스 파리에 다시 갔다. 다른 삶의 방법에 대한 모색의 일환으로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와 함께 후기구조주의를 공부했다. 1982년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로 ‘제2회 김수영문학상’을, 2007년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나무인간 강판권」등으로 ‘제53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성복 작가의 대표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이성복 저 | 문학과지성사 

'제2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 이성복은 개인적인 삶을 통해서 얻은 고통스런 진단을 우리의 보편적인 삶의 양상으로 확대하면서, 우리를 끈질기게 그리고 원초적으로 괴롭히는 병든 상태와 치열한 싸움을 벌여왔다. 많은 미발표시들을 포함한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는 이 같은 우리의 아픔으로부터 깨어나게 하는 진실의 추구에서 얻어진 귀중한 소산이다. 시인은 시집에 실린 산문을 통해 "문제는 우리의 아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에 있다. 오히려 아픔은 <살아 있음>의 징조이며, <살아야겠음>의 경보라고나 할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진실은 우리가 지금 <아프다>는 사실이다. 그 진실 옆에 있다는 확실한 느낌과, 그로부터 언제 떨어져나갈지 모른다는 불안한 느낌의 뒤범벅이 우리의 행복감일 것이다. 망각은 삶의 죽음이고, 아픔은 죽음의 삶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어둠 속의 시   

이성복 저 | 열화당 

1976년에서 1985년 사이에 쓰인 미간행 시 150편을 묶은 『어둠 속의 시』는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 두 번째 시집 『남해 금산』(1986)과 같은 시기에 태어났다. 문학평론가 김현이 말한 이성복의 '풍경'이 처음 자리 잡은 당시를, 시인은 자신의 정신적 성장의 '부름켜'로 생각한다. 이 시절 그는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비정상의 도시에서 날 선 언어로 성열한 아픔을 토해냈다. 그는 곤핍한 현실 앞에서 눈을 감는 대신 썩어 문드러져 가는 상처를 상처 그대로 느끼며 아파했다. 능멸 당한 누이 앞에서 기껏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어머니를 찾는 자신의 나약함을 자책할 뿐이었다. 이 시들을 통해 독자는 이성복의 '치욕'과 '아픔'의 시편들이 태어난 자리를 정확히 되짚을 수 있으며, 시퍼렇게 살아 있는 감각적 언어, 말의 암편(岩片)들을 통해 '불가능'의 꼭지점에 이른 오늘의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

 

 

래여애반다라

이성복 저 | 문학과지성사

이성복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언뜻 불교 용어 같기도 한 낯선 제목 '래여애반다라(來如哀反多羅)'는 신라 시대 향가 「풍요, 공덕가」의 한 구절로, 이 여섯 글자 이두는 '오다, 서럽더라'로 풀이된다. 시인은 『래여애반다라』에서 자신의 지난 인생과 지금껏 발표한 여섯 권 시집의 자취를 고루 담아내려 했다. "이곳에 와서(來), 같아지려 하다가(如), 슬픔을 보고(哀), 맞서 대들다가(反), 많은 일을 겪고(多), 비단처럼 펼쳐지고야 마는 것(羅)"이 바로 우리들 삶임을, 탯줄을 끊고 세상에 나온 누구나 예외 없이 생-사-성-식의 기록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하여 우리는 절망과 서러움으로 점철된 생의 '불가능성'을 거듭 되씹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있노라 말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시종 담담하고 또 허허롭다.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나무인간 강판권

이성복 등저 | 현대문학

'2006년 '제53회 현대문학상' 수상작. 심사 당시 정현종 시인은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나무인간 강판권」에서는 "자신이 있는 것을 내색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는 나무인간 강판권을 기리고 있는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오늘날 그러한 식물적 미덕은 시와 시인의 존재 이유가 될는지도 모른다"는 말로 작품을 평가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실감 있되 호들갑스럽지 않은 심적 정황의 극화가 만만치 않은 예기(銳氣)를 뿜고 있다"는 심사평을 남기기도 했다.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

이성복 저 | 문학동네

지난 2001년 출간되었던 이성복 시인의 산문집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했는가』의 개정판으로 2015년에 출간되었다. 앞서 출간되었던 동명의 산문집은 1990년 도서출판 살림에서 출간된 산문집 『꽃핀 나무들의 괴로움』에서 일부를 가려 뽑고, 1994년 웅진출판사에서 간행된 『이성복 문학앨범』에 실린 산문들과 그 이후 여러 지면에서 발표했던 글들을 시인이 간추려 엮었던 것이다. 개정판을 출간하며 다시금 그의 손이 덧대어져 더는 빼고 넣을 것도 없이 매만져졌다. 이성복의 산문에 있어 가장 큰 힘은 특유의 솔직함이다. 그의 솔직함은 피부를 홀딱 벗길 요량으로 덤비는 때밀이의 타월 낀 손과 같은데, 이쯤 해서 보태지는 것이 그의 타고난 직관이자 집요한 직관이다. 그 레이더망을 좀처럼 피해가기가 힘든 것이 보고 낚은 것을 순식간에 종이에 비벼 증거로 남길 줄 아는 정확한 문장을 가졌기 때문이다. 산문이라 이름 붙였지만 시라 불러도 부족함이 만무한 산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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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타비오 파스, 중남미 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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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북어워드 #김수영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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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 출생으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글쓰기에 재능을 보여 초등학교 시절부터 여러 백일장에서 상을 타기도 했다. 경기고교에 입학하여 당시 국어교사였던 시인 김원호를 통해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때 「창작과 비평」에 실린 김수영의 시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1971년 서울대 불문과에 입학하여 문리대 문학회에 가입하여 황지우, 김석희, 정세용, 진형준 등과 친분을 쌓았고 1976년 복학하여 황지우 등과 교내 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1977년 「정든 유곽에서」 등을 『문학과 지성』에 발표, 등단했다. 대구 계명대학 강의 조교로 있으면서 무크지 『우리세대의 문학1』에 동인으로 참가했다.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평가하는 말로 “철저히 카프카적이고 철저히 니체적이며 철저히 보들레르적”이었던 시인은 1984년 프랑스에 다녀온 후 사상에 일대 전환이 일어나 김소월과 한용운의 시, 그리고 논어와 주역에 심취했다. 그리고 낸 시집이 동양적 향기가 물씬 풍기는『남해금산』이다. 이 시에는 개인적, 사회적 상처의 원인을 찾아나서는 여정이 정제된 언어로 표현되었다. 시인은 보다 깊고 따뜻하며, 더욱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뛰어난 시 세계를 새로이 보여준다. 서정적 시편들로써 서사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이 시집에서 그는 우리의 조각난 삶과 서러운 일상의 바닥에 깔린 슬픔의 근원을 명징하게 바라보면서 비극적 서정을 결정적으로 고양시켜 드러낸다. 이 심오한 바라봄-드러냄의 변증은 80년대 우리 시단의 가장 탁월한 성취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때로는 환상소설의 한 장면처럼 납득하기 힘든 상황의 묘사, 이유가 선명하지 않은 절규 등을 담아냈다는 비판도 받았다. 또한 그는 섬세한 감수성을 지녔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언어 파괴에 능란하다. 의식의 해체를 통해 역동적 상상력을 발휘, 영상 효과로 처리하는 데도 뛰어나다. 그러나 객관적 현실에 대해 냉소적이라거나 『그 여름의 끝』 이후의 관념성을 비판받기도 했다. 그는 초기 시의 모더니즘 경향에서 벗어나 동양의 형이상의 세계에 심취하였다. 1989년 「네르발 시의 역학적 이해」로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하고 1991년 프랑스 파리에 다시 갔다. 다른 삶의 방법에 대한 모색의 일환으로 시인은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와 함께 후기구조주의를 함께 공부했다. 이 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테니스. 시인에게 마치 애인과도 같은 테니스는 그에게 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의 삶을 보다 즐겁게 만들었다. 2007년 「기파랑을 기리는 노래-나무인간 강판권」등으로 제53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인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