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경의 소설이 지니고 있는 슬픔의 힘은 그녀의 소설을 이끄는 순정성의 미학에서 비롯한다. 요컨대 그녀의 소설에서 배어 나오는 슬픔은 작품이 지나치게 착하다는 점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늘진 삶의 구석구석을 애정 어린 시선과 정교한 필치로 형상화 해온 대표적인 여성작가인 이혜경은 더디지만 탄탄하고 뚜렷한 행보를 걸어왔다.
1960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으며,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2년 동안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1982년 <세계의 문학>에 중편소설 「우리들의 떨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이 작품에서 이혜경은 무기력한 아버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가족의 갈등과 화해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이혜경의 소설은 가족을 둘러싼 내력을 작중화자의 자전적 회고를 통해 서술하는 가운데 슬픔과 절망의 서정을 체념이나 화해로 이끌어간다. 현재시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대개 과거의 사건들을 보고하게 하거나 자아와 세계에 대한 반성을 촉발시키는 계기로 작동하고 있다. 그녀의 소설에서 회상되는 사건들은 현란하거나 새롭기보다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그런 만큼 과거를 회상하는 시선의 성격과 회상의 현재적 효과에 큰 비중이 주어진다.
1995년 발표한 『길 위의 집』을 통해 붕괴 위기에 빠진 가족 관계를 형상화했다. 중편소설 「그 집 앞」에서는 서출인 주인공과 시어머니의 불화, 청력을 잃어가는 남편의 갈등과 극복 과정을 보여준다.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단편 「고갯마루」는 현대 사회의 가족 문제를 깊이 있게 탐구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대부분 이혜경의 작품은 해체되어 가는 가족, 그 속에서 고립되어 가는 구성원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아버지는 가해자이거나 무기력한 존재이며, 아버지의 세계로 편입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봉쇄하거나 거부함으로써 부성적인 것을 부정하는 양상을 띤다.
“죽음을 작품 전면에 내세우거나 배경으로 삼고 서사적 구성이나 이야기보다는 문체에 힘을 실어 다채로운 은유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 이혜경은 『길 위의 집』으로 ‘1995년 오늘의 작가상’과 독일의 ‘리베라투르상’ 장려상을 받았다. 『피아간(彼我間)』은 ‘제13회 이상문학상’에 선정됐다. 단편소설 「틈새」로 ‘2006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장편소설 『길 위의 집』, 『저녁이 깊다』를 비롯해서 단편집 『그 집 앞』, 『꽃그늘 아래』, 『틈새』, 『너 없는 그 자리』, 산문집 『그냥 걷다가, 문득』 등을 출간했다.
이혜경 작가의 대표작
길 위의 집
이혜경 저 | 민음사
'1995년 오늘의 작가상'과 '2004년 독일 리베라투르상'을 수상한 작품. 차분하고 꼼꼼한 관찰이 돋보이는 삶에 대한 무게 있는 통찰과 감회가 인상적이다. 신세대 취향의 소란스러움을 훌쩍 뛰어넘으며, 현대사회에서 와해되다 못해 해체 일로에 있는 가족의 운명에 대한 사려 깊은 탐색이 담겨 있다. 『길 위의 집』에 대해 소설가 이문열은 "오랜 문학적 연륜을 드러내주는 유려한 문체와 곰삭은 세상 읽기"라고 평가했으며,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삶에 대해 만만치 않게 무게 있는 통찰과 감회가 짤막하지만 인상적인 지문에 실려 있다. 또 삶과 글에 대한 태도가 있어서도 요즘의 일반적 풍조와는 다르게 진지하기도 하다. 그 점에 있어서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라고 호평했다.
틈새
이혜경 저 | 창비
소설집 『틈새』에서는 긴 여운과 잔잔한 문학적 감동을 던지는 이혜경 소설미학이 농익으며 변주되는 장면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오늘을 사는 인간의 더욱 깊어진 아픔을 섬세하게 천착하는 작가의 감성을 확인케 하는 다양한 소재와 등장인물이 눈에 띈다. 이주노동자, 전화선으로만 삶을 사는 네트워커, 소도시 가전제품 기사, 여행가이드, 대형마트의 보안요원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욕망으로 벌어진 현대인의 삶의 틈새에 밀착해 감싸고 보듬으려는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틈새』에는 2006년 '제13회 이수문학상' 수상작인 「피아간(彼我間)」을 비롯한 8편의 단편과 미발표 신작 단편 「섬」이 수록되어 있다.
꽃그늘 아래
이혜경 저 | 창비
이혜경의 두 번째 작품집. '현대문학상' 수상작 「고갯마루」를 비롯하여 여러 문예지에 발표된 열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첫 소설집 『그 집 앞』과 장편 『길 위의 집』에서 우리 삶의 낮고 후미진 곳을 치밀하게 들춰내며 독자들을 고통스러운 진실로 차분하게 이끌어가는 빼어난 솜씨를 보여줘 그 문학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꽃그늘 아래』에서도 신산스러운 삶의 굴곡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과 다채로운 호흡을 느끼게 하는 유려한 단편들을 선보인다. "따뜻하지만 감상적이지 않고, 다감하면서 또한 치밀하며, 충만하되 결코 넘치는 법이 없는" 이혜경 소설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소설집이다.
저녁이 깊다
이혜경 저 | 문학과지성사
『길 위의 집』에 이은 이혜경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2009년 8월부터 2010년 8월까지 계간 <문학과사회>에 '사금파리'라는 제목으로 연재됐던 작품을 엮었다. 작가의 첫 장편과 유수의 단편들이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서 빚어지는 애정과 증오, 갈등과 화해의 면면을 이야기해왔다면 『저녁이 깊다』는 1960년대 말 지방 소읍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동급생으로 만난 기주와 지표가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개발 중심의 1970년대를 지나 격동의 80, 90년대를 거쳐 오늘에 이른 현대 한국 사회의 부면을 조명한다. 우리 삶의 허위와 오류에 대한 직시를 "공감 어린 연민과 배려"로 감싸 안는 이혜경 소설의 미덕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그냥 걷다가, 문득
이혜경 저 | 강
이혜경의 첫 번째 산문집 『그냥 걷다가, 문득』은 그간 소설로 작가를 만나온 독자들에게 각별한 책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소설에서 익히 보아온 작가의 섬세한 마음결이 산문을 통해 새로이 불러오는 감흥은 좀처럼 만나기 힘든 것이다. 가히 산문의 정수라 할 이 글들은 그 자체로 이미 오롯해 더 보탤 말이 없기도 하거니와, 어쩌면 말하지 않는 것이 이 산문에 대해 가장 잘 말하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걷다가, 문득'이라는 언뜻 담담해 보이는 제목에는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 '그냥'에서 시작되어 '문득'에 이르게 한 농밀한 감정의 힘이 숨어 있다. 일상에서, 때로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과 잊지 못할 순간들 그리고 그때 마음에 스친 무엇들을 작가는 60여 편의 글에 찬연히 되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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