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대(對) 소설 <내부자들>
배우는 연기를 잘할수록 더 어려워진다는 말이다. 연기를 잘해냈기에 전작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그 후부턴 자기 과거를 갱신하는 연기력을 보여줘야 한다. 과거가 훈장이자 동시에 뛰어넘어야 할 벽이 되는 것이다.
글ㆍ사진 최민석(소설가)
2015.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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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은 뭣하지만, 지면을 채워야 하니 말한다. 내 공식적인 직업은 소설가다. 하나, 생계를  에세이나 칼럼을 써서 해결하기에, 소설가인지 에세이스트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느릿느릿 글을 써서 여유자적하게 살기에는 소설가가 좋다. 적당히 바쁘게 살기에는 에세이스트가 좋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특성인지 ‘에세이스트’라는 발음이 어려워서 그런지, 어딜가나 나를 항상 소설가라 부른다. 소설은 별로 안 쓰고 에세이를 잔뜩 쓰는데도 말이다. 가는 데마다 ‘소설가’라 불리면서 소설을 안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소설은 에세이보다 훨씬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평생 소설 따위는 쓰지 않고 에세이만 주구장창 쓰다가 얼렁뚱땅 소설가라 불리면서 사는 게 편하다. 소설을 쓸 때마다 이전 작품과는 다른 ‘무언가’를 쏟아 내야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고민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이 배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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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부자들>에서 배우 ‘류태호’는 대기업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재무팀장이다. 그가 무슨 생각인지 비밀 파일을 검사에게 넘기려다가, 그만 납치되고 만다. ‘류태호’ 씨는 의자에 꽁꽁 묶인 채 벌벌 떠는 표정을 짓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 살벌한 장면이 꽤나 친숙하게 느껴졌다. 그렇다. 그는 자그마치 12년 전 <살인의 추억>에서 동네 변태로 분하여 송강호에 의해 의자에 묶인 적이 있었다. 그 때의 벌벌 떨던 표정이 1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아 ‘아, 이 장면 너무 친숙한데!’하고 느끼고 만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배우는 상당히 불리하다. 


한데, 이 배우 ‘류태호’를 꽁꽁 묶게 한 사람은 이병헌이다. 이병헌이 누구인가. 그는 십년 전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배우 김영철에 의해 산매장 당해 죽을 뻔한 인물이 아닌가. 나는 영화를 보며, ‘아아. 이거 너무 하는구먼. 당해 본 사람이 이해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하며 봤다. 그러다 ‘인과응보’,‘종두득두’,‘출이반이’ 같은 사자성어가 떠올라, ‘아아, 저 친구 저러다 또 당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십여 분 뒤에 또 다시 의자에 묶여 ‘으으으’ 하며 치를 떨고 있었다. ‘사필귀정’이라 했던가. 예감이 맞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배우는 연기를 잘할수록 더 어려워진다는 말이다. 연기를 잘해냈기에 전작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그 후부턴 자기 과거를 갱신하는 연기력을 보여줘야 한다. 과거가 훈장이자 동시에 뛰어넘어야 할 벽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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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류태호와 이병헌의 몇 장면만 보더라도, 전작이 떠올라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나처럼 이것저것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배우는 참으로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길게 돌아왔지만, 결국 소설 역시 배우들의 작업 못지않게 새로움을 전해야 한다. 다들 ‘어깨에 힘을 빼고 쓴다’고 하지만, 전작과는 조금이라도 다른 무엇을 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약간의 기시감이라도 느껴지면, ‘아, 그 작가는 책 제목은 다른데, 쓰는 것마다 비슷해서 열 권을 읽어도 한 권을 읽은 것 같아’라는 말을 듣는다. 


그렇다면, 에세이는 어떠냐고? 누가 죽는 사건으로 시작하건, 옆 집 개가 편식을 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하건, 결국은 ‘작가 색깔대로 글을 풀어갈 것’이라고 독자들은 기대한다. 물론, 모든 독자와 이에 대해 따져보진 못했다. 하지만, 만나본 독자는 대부분 ‘어차피 최 작가님은 자기 쓰고 싶은 대로 쓰잖아요’ 하며 단념하듯 말했다. 그러니까, 전작과 같은 방식으로 쓴다는 것은 소설에서는 지루함을 안겨주지만, 에세이에서는 묘한 안정감을 선사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에세이 쓰기가 훨씬 간편하고 즐겁다. 에세이 청탁 많이 주세요.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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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 #영화 #내부자들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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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이여자

2016.01.08

매번 새로움을 전해 전작의 한계를 넘어야한다는 부담감을 갖는것이 소설과 배우의 공통점이라고 하신부분을 보면서.. "아..소설이 주연이라면 에세이는 조연이 아닐까.... 매 작품마다 자기색깔대로 연기해서 안정감있게 정감을 선사하며 작품안에 진하게 녹아나는게 조연을 뜻할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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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