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혹은 여자가 상대 이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대부분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절묘하게 절반씩 나뉘어져서 공존하고 있지만, 서로 상대방에 대해서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몇 년 전 금성과 화성이라는 별을 남자와 여자로 상징해서 남녀의 차이를 설명한 책이 히트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이성에 대해 모르고, 또 모르기 때문에 알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김광호의 소설 『여자체험』은 남자와 여자의 문제를 거시적으로 포장하고 있지 않다. 마치 우디알렌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이어져서, 즐겁게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쓰여져 있다. 이 소설을 다 읽은 독자들은 한 번쯤 자신의 곁에 있는 남자, 혹은 여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장편 소설 ‘여자체험’은 어떤 내용인가요?
제목 그대로입니다. 28살의 남자가 여자로 변신해서 여러 가지를 체험하는 스토리라고 할 수 있죠. 여장남자의 소설이나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 소재를 정면으로 다룬다기보다는 피치 못 할 사정으로 여자가 되어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었죠.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적극적으로 여자가 되어, 여자로서의 삶을 체험합니다. 사실 누구나가 한 번쯤은 다른 이성으로 살아가는 상상을 해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그러한 욕구를 어느 정도 대리 충족 시켜주고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로 변신한다고 하면 흔히 트랜스젠더를 떠올리는 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소설의 도입부에도 설명되어 있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남자로 태어난 걸 후회한다거나, 본래의 성을 버리고 여자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로서의 정체성은 그대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 같은 느낌도 풍깁니다. 분명히 주인공은 이성으로서의 여자를 좋아하고 사랑합니다. 그러자면 자기 자신의 성이 바뀌면 안 되죠. 이 점이 트랜스젠더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주인공은 여자를 체험하고 싶은 것이지, 여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이 소설은 기존 소설과는 전혀 다르게 가벼우면서 위트가 있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소설이란 어떤 것인가요?
우리 문학의 가장 큰 폐해가 엄숙주의와 도덕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라고 하면 늘 고뇌만하고, 나아가서 사회적인 책무를 안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문단 전체에 퍼져 있습니다. 근래에 한국 문학이 큰 침체를 겪고 있는 이유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대중들에게 어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제는 한국문학도 무거워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새롭고 참신한 작품이 나와야 할 때라고 봅니다. 재미있는 소설이 다 좋은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반대로 독자들에게 부담감을 주는 소설도 좋은 소설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는 양극단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기존 문단은 너무 무겁기만 하고, 소위 장르 소설이라는 것은 수준미달인 경우가 많습니다. 적절한 균형을 갖춘 소설이 나와야 할 때라고 봅니다.
실례되는 질문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가 여자로 살아가고 싶은 욕구가 있어서 이 소설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비단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은 상대 이성으로 살아가는 상상을 해보지 않을까요? 다만 이런 건 있었습니다. 소설의 내용에도 있습니다만, 어쩌다 인물을 그려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 여자를 그리면 흥이 나고 잘 그려지는데 반해서 동성인 남자를 그릴 때는 대충 그리게 되더군요. 그리고 예전부터 여자들과 대화를 나누면 좀 편안해지는 듯한 느낌 같은 것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남자라서 그런지 여자들의 단점은 눈에 잘 안 들어오고 장점이 많이 보이더군요(웃음).
이 소설은 가벼운 대중소설임이 분명하지만, 군데군데에서 여자들이 사회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들도 꼬집어주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거창하게 페미니즘을 다루고 있지는 않아요. 다만 여자로 살아가다 보면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를 상상력으로나마 구체화 시켜보았지요. 사람의 심리란 게 묘해서, 같은 남자끼리도 조금 약한 사람이 있으면 괴롭히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남자들이 여자를 대하는 자세도 비슷할 수 있다고 봐요.
이런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해도 좋을까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의 남자들 사이에서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때려야 한다는 말이 쓰이곤 했는데, 그것은 그만큼 여성을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흔히 가전제품을 구입해서 사용하다가 사용법을 모르는 상황에서 작동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주먹으로 두드리거나 흔들어보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랬다가 더 망가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웃음).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특성은 귀찮고 성가신 것으로만 치부를 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여성을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면 살아가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앞에서 예를 든 것처럼, 새로운 전자제품을 구입했으면 사용법을 제대로 숙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뜻대로 안 된다고 집어 던지면 자기만 손해를 보는 거죠. 그리고 배우기가 까다로울지는 몰라도 한 번 배우고 나면 평생 유용한 것 아닙니까? 여성을 전자제품과 비교해서 좀 그렇습니다만, 여성에 대한 남자의 관점을 설명하기 위해 예를 들었습니다. 제가 이런 소설을 쓰기는 했지만 저 역시 남자라는 한계를 크게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저는 제가 아는 만큼 소설에서 표현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화제를 좀 바꿔보겠습니다. 이력을 보니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등단을 하셨더군요. 시나리오 작가로 서의 출발을 했는데, 소설가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1990년이니 정말 오래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나한테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오래되었습니다. 그 당시 영화진흥공사(현 영화진흥위원회)와 스포츠 서울이 공동으로 시나리오 공모전을 열었어요. 1등은 아니었고 2등이었는데, 그래도 하늘을 나는 것처럼 기뻤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게 된 건 그때 내 꿈이 영화감독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연출부는 고생스럽다기에 꺼려졌고, 시나리오를 쓰면 작가로 서 대우도 받고 감독도 수월하게 할 수 있다기에 쓰기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영화화된 시나리오도 없었고 감독으로 데뷔도 못 했습니다.
감독으로 입봉을 못했지만, 그래도 감독의 꿈을 이루기 위해 꾸준히 시나리오를 쓴 것이 생활에는 적잖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영화계를 나와 만화제작사에 들어갔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계에서 늘 불안정한 생활만 하다가 내 책상이 있는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글을 쓰고 다달이 봉급을 받게 되니 생활의 안정이 찾아오더군요. 그 무렵 나의 성향이라는 것이 여러 사람과 공동 작업을 하는 것에는 맞지 않고, 혼자 하는 일이 적성에 맞는다는 걸 자각하고 소설로 진로를 정했습니다. 첫 작품으로 국정원 요원의 삶을 다룬 「북경에서의 커피 한 잔」을 완성했는데, 출판사에서 제목을 변경하자고 해서 『52개의 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정작 히트작은 전자책에서 나왔지요?
그렇습니다. 소설을 쓸 때는 작품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출간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출판사를 찾는 게 정말 버겁더군요. 그리고 어쩌다 출판사가 나서더라도 대부분 작품의 수정을 요구했습니다. 작가의 작품을 수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출판계의 관행이었는데, 그것이 저에게는 큰 부담이었습니다. 그래서 큰 비용 없이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전자책에 전념했습니다. 다행히 결과가 좋아서 몇 편의 전자책이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 가운데 한 편은 장기간에 걸쳐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다음 작품의 집필 계획이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추구했던 대로 대중들에게 읽는 즐거움을 주면서도 수준을 갖춘 작품을 계속 쓸 예정입니다. 지금 제게 중요한 건 독자 여러분들의 지지입니다. 새로운 소설을 바라는 독자 분들이 저의 작품에 애정을 보여주신다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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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체험 김광호 저 | 아담
나는 여자로 살아가기로 했다. 성 정체성에 전혀 문제가 없지만,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행복해보여서 여자가 되기로 했다. 과연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여자로 서 행복할 것인가? 성이 바뀌는 소설이나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자발적으로 여자가 되어 여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소설은 없었다. 과연 여자로 살아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이 소설은 그 궁금증을 풀어주고, 성이 뒤바뀌므로서 벌어지는 일들을 유쾌한 필치로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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