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독립적 개체란 없다. 그러다 미친다
타인이란 부모와 같은 강력한 사람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의 공기도 포함하는 것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글ㆍ사진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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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밀도가 높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은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꼭 대도시가 아니더라도 사람들과 수없이 마주치고 부딪힌다. 더욱이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가는지 알고 싶지 않은 타인의 정보까지 알아야하는 세상이다. 특히 간섭의 경향이 자연스럽고 강한 편인 우리 사회에서는 내가 하는 생각들, 행동에 대해서 거침없이 지적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얼굴에 뾰루지가 생겼네. 신경쓰이겠다” (신경쓰이는 건 맞는데 그걸 꼭 내 얼굴 앞에서 해야겠어?)
“왜 만둣국을 먹어? 이 집은 함흥냉면 식당이잖아” (남이야 뭘 먹든. 내가 매운 것 먹으면 설사한다는 걸 꼭 말로 해야 해?“)

 

그러다 보니 반발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제발 혼자 있고 싶어!”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누구의 간섭과 영향에서 벗어난 주체적 존재로 거듭나고 싶어.”

 

라고 마음속으로 부르짖는다. 그 누구의 간섭과 관찰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에 혼자 고독을 씹으면서 살아가고 싶다. 실제로 분석심리학자 융은 인간 성숙의 목표를 ‘개성화(individualization)'이라고 했다. 그 무엇으로도 쪼갤 수 없는 우주에 단 한 명만 존재하는 존재가 되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혼자서 이룰 수 는 없는 것이다. 사회 속에서 상호작용을 하면서 궁극의 목적을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고, 혼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혼자 있음을 고립과 소외가 아닌 주체적 결정에 의한 고독이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꽤 먼 길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이렇게 모든 사람이 가깝게 지내면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남의 일상사에 관심이 많고 간섭을 하고 싶어하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도대체 얼마나 타인이 내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객관적으로 혼자가 되기 위해서 선행해서 알아야 한다. 사회와 가까운 타인은 내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나, 만일 완전히 격리된 채 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내가 의식하지 않은채로도 사람들은 내게 영향을 줄 수 있는가? 이런 고민에 대해 얼추 꽤 정확한 답을 주는 책이 있다.

 

과학 저널리스트 마이클 본드의 『타인의 영향력(The Power of Others)』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에 관심을 두고 사회심리학 연구의 결과뿐 아니라, 역사적 사례들을 수집하고, 시위대, 무장단체, 극지탐험가, 참전용사등 다양한 인물을 직접 인터뷰한 생생한 사례를 분석해서 인간의 독립적 존재와 타인과 관계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나름의 통찰력 있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먼저 혼자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가능할까에 대해서 극지탐험가들의 사례, 그리고 본의 아니게 혼자 지내게 된 장기 독방 수감자의 사례를 제시한다.

 

2010년 나사는 화성탐사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모형비행선에 각국의 우주비행사 6명을 모아 무려 520일 동안 고립시키는 시뮬레이션 실험을 시행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2명은 수면패턴에 교란이 생겨 나머지가 깨어있을 때 잠을 자는 일이 생겼고 인지행동에 영향이 생기고 수면-각성 주기의 교란이 불협화음을 일으킬 위험인자가 되었다.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는 6개월 동안 증가하다가 서서히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는데 외로움이 커지는 시기에는 인지기능도 함께 나빠지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다행히 극단적 분열이나 적대감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이들은 잘 훈련된 우주비행사이고, 사실 이게 시뮬레이션이라는 것도 알고 실시한 것이라는 요인이 크다.

 

반면 미국의 중범죄자를 수용하는 수퍼맥스급 교도소의 2만 5천 명의 재소자를 분석한 결과는 조금 더 일반적인 내용을 반영한다. 이들은 평균 하루 23시간을 독방에 격리된 채 지내는데, 오랜 수감 생활 후에 22-45%에서 완전히 진행된 정신질환이나 뇌손상이 나타나고 자살률이 증가한다. 2005년 캘리포니아 교도소의 자살의 70%가 독방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몇 가지 신체 감각에 집착하거나 옆방의 작은 소음에 매우 예민해진다. 그들은 거의 감지할 수 없을만큼 미세한 감각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그 감각이 걱정거리가 되었다가 결국 마음을 다 뺏기고 실제 질병으로 진행한다. 외부에서 자극이 없으니 내부의 감각에 뇌의 운용이 대부분 투자되면서 생기는 부작용이다. 내부와 외부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건강을 위해 필요한데 그것이 허물어져 버린 것이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강제로 박탈 당한채 정체성을 잃지 않고 적절한 감정을 유지하고 폭넓은 사회와 관계를 맺는 방식을 유지하지 못한다. 환상을 검증할 방법이 없으니 결국 편집증적 성향이 강화되고 결국 분노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채 자신에게 향하기도 한다.

 

이 부분을 보고 나니 얼마 전에 진료한 한 80대 할머니 환자가 기억이 났다. 망상과 환청이 생겨서 입원을 한 환자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최근 몇 년간 혼자 지내는 중이었다. 가족들과는 주말과 한 번 정도 만나는데, 반 년전쯤부터는 무릎에 관절염이 심해져서 외출을 혼자 하기 힘들어졌다. 고립된 채로 지내다가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 심해지고,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많아서 가족들이 발견해서 입원했다. 나는 할머니가 내가 질문을 할 때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치매를 의심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할머니의 귀에서 보청기가 있는데 낄때도 있고 뺄 때도 있는데 분명한 차이가 관찰되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가족에게 보청기를 언제 맞춘 것이냐 묻자 오 년이 되었고 한 번도 보정을 한 적 없다는 것이다. 그게 원인이었다. 청력검사를 새로 하고, 보청기를 새로 맞춘 후에 증상은 극적으로 좋아졌다. 할머니는 혼자 사는 것도 문제였지만 청력저하로 인해 외부의 정보를 제대로 들을 수 없게 되면서 더욱더 고립되었고 결국 자기 안에서 환청과 망상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사회적 고립이 이런 정신증상을 만들어낼 수 도 있었던 것이다. 꼭 탐험가나 우주비행사, 수감자가 아니더라 하더라도 판단과 감각의 균형이 깨지는 것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혼자 지내는 것이 장기화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사회적 관계안에서는 우리는 어떤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 저자는 매우 광범위한 사례를 제시한다. 사람들이 은행이 위험하다고 여겨서 돈을 찾는 것을 보고 나면 불안해지고, 이성적으로는 돈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면서도 은행에 찾아가서 돈을 모두 인출한다. 지급준비율을 모두 소진한 은행은 결국 파산을 하고 말고 위험은 실제하는 현실이 되어버리는데 이를 뱅크런(bank run)이라고 한다. 이는 1930년 미합중국은행을 수 일만에 파산으로 몰고 갔고, 2007년에는 영국의 노던록 은행에서도 일어났다. 한국에서도 수년 전 저축은행 파동에서 관찰되었던 현상이다. 나 혼자 고고하게 자기 생각을 고수하기보다 남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는 매우 본능적인 행동의 결과물이다.

 

이는 이성적 토론에 의해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전염에 의해서 발생하고, 이것이 이성의 판단 경향에 쏠림현상을 만들어낸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선거다. 출구조사나 여론조사의 작은 표본의 결과가 전체적 인상에 영향을 미친다. 정보 쏠림 현상은 감정에 의해 좌우되게 된다.

 

미국의 서브모기지 프라임에 의한 주택 투기가 일어났을 때에는 대중적으로 주택가격 상승 낙관적 정보 쏠림이 심했다. 실제 평균기대치 수익은 연 14% 수준이었지만 설문 응답자의 1/3는 50%를 기대했다. 그래서 모두가 빚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주택을 구입했고 덕분에 한동안은 수익률이 지속적으로 오를 수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비극이 시작되었다. 이런 감정적 전염은 꼭 나쁜 방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유럽의 난민 사태의 극적 반전을 가져온 것은 해안가에서 발견된 시리아의 3세 어린 아이의 시신 사진이었다. 그 사진의 보도 이후 감정적 전염은 획기적으로 일어났고, 난민에 보수적이던 사람들의 마음도 집단적인 변화가 일어날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터키, 그리스, 동유럽과 일부 부유한 서부 유럽의 국민들의 난민에 대한 인식차이다. 언뜻 생각하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의 국민들과 서부 럽의 서민들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난민들에게 우호적인 생각을 가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들은 난민들이 가뜩이나 힘든 자기나라 경제를 더 어렵게 할 것이라 여기고, 자기들에게 돌아올 복지 택를 나눌 경쟁자이자, 저소득 일자리를 놓고 경쟁할 대상으로 보고 강력한 반대를 하는 경향이 관찰되었다. 이런 부분을 저자는 불경기가 사람을 보수적으로 만든다고 해석한다.

 

1979년부터 1982년 사이 미국의 실업률은 5.8%에서 9.7%로 상승할 정도로 심한 불경기였다.  이 시기는 이후의 5년에 비해 미국민은 엄격하고 보수적이고 특이한 견해에 대한 포용력이 줄어들었다. 세세한 변화가 관찰되었는데,  KKK가 늘어나고, 반유대주의가 늘고, 애완동물조차도 치와와와 같이 귀여운 종류보다 군용견인 쉐퍼드의 수요가 늘어났고, 당시 레이건은 강한 보수주의로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 이를  터틀링 turtling 효과라고 한다. 불경기처럼 자원과 기회의 제약이 생기면 더 내부로 파고들어 지역사회의 극단화가 심해지고 불신은 적대감으로 변하기 쉽다. 사회내부에서 인종 갈등과 폭동이 일어나는 곳은 지역 경제가 좋지 않고, 문화적으로 인종과 계급 사이가 잘 섞이지 않는 곳이 많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집단의 환경의 변화에 의해서 쉽게 영향을 받는데, 문제는 ‘내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전문적 훈련을 받은 미국의 대법원 판사들 조차 그렇다. 민주당 계열의 판사가 두 명의 공화당 지지성향의 판사와 배석을 하는 경우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판결을 내리는 성향이 있다는 조사를 봐도 그렇다.

 

이런 모든 면을 볼 때 우리가 내릴 수 있는 현재 결론은 이렇다. 일단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그러다가 미친다. 끊임없이 외부와 소통하는 것을 통해 튜닝하고 방향을 재조정하면서 나아가는 것인 인간의 기본설계다. 우리의 뇌는 타인에게 다가가고 사람들고 소통하도록 세팅이 되어있는데, 이는 설계의 특징이지 결함이 아니다. 이런 설계를 바탕으로 우리는 진화할 수 있었다. 이런 사회적 존재의 불가피성을 먼저 받아들이고, 그후에는 내가 혹시 타인이나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나의 온전한 자아가 지나친 침해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역시 언제나 확인은 해야 한다.

 

미디어에 의해, 영향력있는 타인에 의해, 집단의 압력에 의해 내 평소 소신이나 가치관과 다른 판단을 하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예민한 센서를 열어 놓아야 한다. 환경의 변화, 집단 구성원의 차이, 리더의 가치관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우리의 감정은 달라지고, 이에 따라 이성적 판단은 영향을 받는다. 더욱이 이런 방식은 평상시 작동하던 검열장치외부에서 자동적으로 작동해버리기에 이미 행동을 해버린 다음에야 겨우 알게 된다.

 

유럽의 난민 유입에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 일부는 몇 년전까지는 진보적 지식인을 자처하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아프리카에 구호물품을 보내던 사람들도 포함되어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판단이 바뀐 것에 대한 불편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진짜 중요한 타인의 영향력이다. 그런 면에서 타인이란 부모와 같은 강력한 사람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의 공기도 포함하는 것이란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로 또 같이‘ 살아가면서 보이지 않는 타인의 영향의 존재를 인정하되, 고립과 소외가 아닌 적당한 고독을 견딜 수 있는, 그리고 외부와 자기 내부사이의 균형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 그것이 아마도 가장 온전하고 건강한 성인의 정신 상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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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영향력마이클 본드 저/문희경 역 | 어크로스 | 원서 : The Power of Others
한 개인은 여러 집단에 다양한 방식으로 속해 있으며, 인류 역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 타인과 촘촘하고 광범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그 관계망 속에서 타인과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이 책은 감정 전염부터 동조 심리, 넛지 전략, 집단사고, 카멜레온 효과, 루시퍼 이펙트, 방관자 효과, 고독의 사회학까지 내 안에서 작용하는 타인의 영향을 바로 보게 하고 나를 둘러싼 타인들의 움직임과 그 속에 내포된 의미를 포착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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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마음서가 #타인의영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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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koko111

2015.09.21

이 책 궁금했어요. 나름 화제작 아니었던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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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